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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제8회 백남준포럼] '다빈치와 백남준', 백해영갤러리에서 6월 25일(화)

[제8회 백남준포럼] 일시 : 6월 25일(화), 16~18시 주제 : 백남준과 다빈치 발제 : 김형순 장소 : 백해영갤러리(이태원) 참가 : 무료 이번 달 포럼은 1세대 갤러리스트 백해영관장님의 이태원 갤러리에서 백남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포럼 이후 추가 토론과 식사는 자유롭게 참석 가능합니다. - 백남준포럼 대표 이상미

 

백남준 포럼 벌써 8번째 올 한 학기 종강이 되었네요 // 저는 백남준 하면 벌써 마음이 설레요. 설렘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복이죠. 제 설렘이 여러분에게도 전염되기를 빕니다.

 

오늘 장소 백해영 갤러리에 대해 : 백남준은 언제나 나에게 많은 좋은 분들과 인연을 초연결(텔레파시) 백남준 뭐든지 원하면 해주는 수호신). 백해영 갤러리와 2020년 6월부터 인연을 맺은 셈이조. 꼭 4년이 되었네요. 여기서 열리는 백남준 전시(김순주 기획) <나의 예술적 고향> 때문이었다. 전시장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 백남준 전시구나 알 수 있었죠.

 

백해영 관장님 1982년 야망찬 꿈을 품고 뉴욕대 피아노 전공 유학을 갔다고 오히려 미술에 빠져(옆집에 사는 황규백 작품구입하고 미국의 앙리 마티스 같은 엘스워스 겔리(Ellsworth Kelly) 작가를 좋아하면서부터) 한국 1세대 갤러리스가 되었다 물론 백남준도 만났죠. 같이 작업도 하고요. 미완성이었지만 다빈치를 보면 대부분 작품이 미완성

 

포스터: 우 포스터를 보니 갑자기 3가지 면이 떠올랐어요. 백남준은 천문학 후손답게 1) '갤럭시맨('은하수맨, 위성아트 창안자)이면서 그는 2) '디지털(숫자) 맨'이다. 숫자에 밝다. 웬만한 사람들 전화번호 다 외운다. 그에게 전화번화부는 없다. 그의 전자기술 테크니션 이정성 대표의 고백 "그는 대단한 메모리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3번째 3) '컴퓨터맨'이다. 그의 옷차림은 허술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가 기획하는 작품 구상과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머리가 항상 활발하게 돌아간다. 천재의 특징은 내부 두뇌가 워낙 긴박하게 돌아가 패션에 신경을 쓸 품이 없죠.

 

1 <임영균 사진가 발제 대타, 2021년만남>

 

제8회 백남준 포럼 원래 임영균 사진가가 8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을 만나 함께 나눈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죠. 임 작가의 육성으로 백남준에 대한 현장감 나는 노스탤지어 직접 들을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2021년 백남준 목포 전시에서 임영균 선생의 백남준 짧은 이야기 참신했다.

 

사진 저작권 임영균

위 사진 <뉴욕타임스> 1983년 1월 1일 자 1면에 게재되면서 임영균 작가는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임영균 작가 뉴욕에 유학하면서 백남준과 여러 번 통화 시도 실패에 실패 결국은 연결이 되고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백남준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는 늘 큰 도움을 주었다. 백남준 뉴욕에서 인연은 맺은 임영균 사진가에게 이런 덕담을 했다. 백남준은 그에게 진짜 사진이란 뭔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어요. "사진이란 것은 '진'짜를 베끼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가'짜가 된다" 이해가 됩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내용은 생략 : ''<사진(寫'眞')과 사위(寫'僞')의 단어의 혼란이 온다. 여기서 진짜(reality)가 되려면 가짜(illusion)를 통과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진이란 것은 '진'짜를 베끼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가'짜가 된다. 만고 사위(寫僞)라는 기술이 있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가짜를 베기는 것이므로 반드시 진짜가 되는 것이나? 사진예술이란 사진이 사진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사위(寫僞)에 접근하려는 정신적 의도이다. 임영균은 그런 시도에 있어 한국의 기수이다. 가면의 진리(오스카 와일드)다'' - 백남준

 

사진 임영균

뉴욕 플랫미대 학장을 지낸 '존배' 선생 댁은 당시 뉴욕에 작업하는 한국 화가의 아지트였나 1986년 존배 교수의 집에서 열린 신년회 모습. 왼쪽 끝에는 '시게코 구보다', 소파에는 왼쪽부터 '백남준', '임충섭', '김구림', '백남준'의 뒤에는 '김차섭'이 서 있다. [사진 저작권 임영균]

 

<2> 이 더운 날 수고, 좋은 유튜브 많은데 <백남준 잘 써먹자!>

 

'BTS(방시혁)' 3000년 비전//이 더운 날 여기까지 오려면 참 고생? 요즘 정말 재미있는 백남준 유튜브도 많은데 OFF까지 하여간 저는 보상을 줘야 하는데 재화나 지폐를 돌려드리지 못하고, 백남준의 에너지 불어넣는 것이죠. 삶에 대한 자신감 삶의 활력과 상상력, '보이스'와 '부르디외'가 개념화한 문화 자본을? 하긴 요즘 '국뽕'이 너무 심하지만 예수 당시 사마리아인 세리와 창녀 '죄의식 제로 인간 만들기' 인간구원을 종교운동가? 백남준 국뽕 시대 이전에 한국인을 '열등감 제로 인간 만들기' 인간해방 문화운동가?

 

<3> 백남준을 소장한 한국인 자부심 느껴도 된다.

 

왜? 1) 우리는 직지(1377년, 금속활자 발명 구텐베르크 고려를 방문한 로마교황청 신부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로 1000년을 열었고 2) 백남준 인터넷 아이디어(1974년)를 통해 또 1000년을 열었다. 그러니까 2천 년을 연 나라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15세기 디지털에 가장 적합한 알파벳인 한글(직지 도움도 있었겠지만 세계 최고급 디지털 언어)을 창제했고, 백남준은 20세기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예술인 비디오아트를 창안하여 30세기를 가장 먼저 열어젖혔다. 물론 이렇게 되는데 가장 큰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직지의 발명이다

 

<4> <백남준, 천문학 후손> 5000년 1000년 몽골 3000년 이야기

 

[선사시대에 대한 상상력이 30세기를 보게 한다] 선사시대 백남준의 전생은 말을 타고 우랄 알타이족의 사냥꾼으로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핀란드 북부(라플란트), 헝가리, 네팔 등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라고 백남준 적고 있다. "그들은 몽골처럼 더 멀리 보기(텔레-비전) 위해 여행을 떠나 새 지평을 봤다." 백남준 <백남준 서양 친구들 겁줄 때 항상 하는 말이 "나 칭기즈칸 후손이야!" 서양사람들 지금도 칭기즈칸 하면 무서워한다>,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朝鮮할 때 朝를 보면 별 2 해 1 달 1) 1. 백남준 노마드(탈소유), 퍼포먼스(탈자본), 위성아트(탈시공), 인터넷(탈영토)

 

백남준 사망한 후 500년 1000년 후에 어떻게 되나. 백남준은 21세기의 다빈치. 서양에서 아직도 다빈치를 능가하는 예술가 없었다. 백남준이 그 벽을 깨다 Paik Nam June 21C Leonardo. 다빈치가 사망한 후 500년이 지났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백남준 사망한 후 500년 1000년 안에 백남준 같은 작가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5> 나의 표어> "백남준 잘 써먹자!" 'BTS'과 방시혁

 

난 돈보다 백남준 때문에 여행을 많이 가게 되고 뉴욕에서는 여자친구? / 백남준 잘 써먹으면 순식간에 세계적 초부자 될 수 있다. 드디어 백남준 잘 써먹는 사람이 방시혁이 2017년 등장하다. 그가 첫 테이프를 끊다. 앞으로 제2-제3 방시혁 나오겠죠.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

 

['BTS' 또 하나의 공로 / 백남준 문화재단 강의(누구?) 들은 이야기] 영어 독재와 공포를 깨다. 미국의 10대 한국어로 노래하게 만들다. 소위 들뢰즈의 말 일체의 중심주의를 붕괴된다고 했는데 그걸 실천, 이건 백남준 정신이기도. 백남준이 54년 전인 1963년 독일 첫 전시에서 비디오아트를 들이대며 서양미술의 독재(독점)를 끝내자 (서양미술을 추방하자고 선언을 연상? BTS는 우리 시대의 들뢰즈이고 백남준이다.

 

[탈영토] 백남준이 말하는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문화의 힘(software)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방시혁이라는 대중문화의 칭기즈칸이 되다. 백남준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BTS 그룹을 통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영어공포-독재 시대를 깨 버렸다. 백남준의 피라미드는 크기가 문제가 아니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의 파급력 더 중시했다.

 

BTS가 말하는 LOVE YOURSELF, EXPRESS YOURSELF (카타르시스-건강한 배설)-백남준이 세계 남긴 유산: 유머(예술 사람들 즐겁게) / 평화 공존 / 예술(문화)은 인류의 공공재이자 문화유산이라는 철학 백남준 아카이브: https://www.namjunepaik.eu/category.php?category=33

 

<6> 영국 국제 에든버러 축제(2013) 누가 초대?

 

영국 에든버러(EDINBURGH) 국제 페스티벌: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 2013년 8월 9일(금)~10월 19일(토)까지 장소 : 에든버러대학교 탤봇라이스(Tailbot Rice) 갤러리

 

다빈치와 백남준 특별전이 동시에 나란히 왜 초대받았나? 왜냐하면, 세계미술사에서 두 사람을 거의 동급으로 봤기에 해부학자 같은 다빈치 1452년생, 물리학자 같은 백남준 1932년생 몇 년 차? 480년 약 500년 차이 그럼에도 두 사람은 거의 같아 보인다. '예술과 기술(Art and Technology)'을 결합한 아티스트라는 면에서 같다. 바로 르네상스 인간의 전형들이다. 문화재단 <전시포스터>

 

하여간 두 사람은 동서를 대표하는 영원한 르네상스 인간이다. 그래서 영미권에서 백남준 21세기 다빈치라 부른다(2013년 에딘버러 축제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다빈치와 백남준을 초대하다>

 

2013년 영국 에든버러 국제 축제를 열면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2명 예술가를 초대했는데 두 사람은 바로 다빈치와 백남준이었다. 그 표어를 보면 "백남준은 21세기 다빈치라고 했다(Paik Nam June 21C Leonardo)" 초대 받은 이유는 서양예술사에서 백남준과 견줄만한 유일한 사람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7> 에딘버러 총기획 'Jonathan Mills', 총감독 'Pat Fisher'

 

<2013년 국제 에딘버러 축제에, 최근 500년 동안 최고 작가로 다빈치와 백남준 2인 초대> <전시 총기획(조나단 밀스, Jonathan Mills) 백남준 초대한 이유로, 올해 주제는 '예술과 기술'의 상호작용, "이런 주제에 백남준처럼 맞는 작가가 없다. 백남준은 비디오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사상가이고 철학자이다. 그는 50년 전에 벌써 우리 시대의 삶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예언자이다(He is a philosopher and thinker beyond a video artist. Fifty years ago, he prophesied changes that would shape the contemporary world.)>

 

<전시 총감독('팻 피셔(Pat Fisher)', principal curator of Talbot Rice Gallery) "백남준 초대한 이유, 백남준 스코틀랜드에서 발명된 TV를 예술화해 매우 진보적인 방식(radical way)으로 인류에게 전자정보사회로 나갈 길을 제시한 예술가다. “It is meaningful that the exhibition is held here at University of Edinburgh, because the university was attended by 'James Clerk Maxwell', who developed electromagnetism theory. In addition, Scotland is the country that produced 'John Logie Baird', who invented the television.”>

 

미국 국립미술관 엘리자베스 브룬 소미스소니언 미술관장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8> 다빈치와 백남준 서론

<다빈치와 백남준> ['알프레드 하르트' 씨와 대담 중에]

 

그는 사운드 아트를 하는 독일작가로 원래 음악 전공이다. 부인은 한국분(이순주 작가, 한예종)이다 내가 왜 백남준은 독일에서 그렇게 인기가 높은가 하고 물어봤어요. <그의 대답> 이랬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인기가 높은 건, 알다시피 2차 대전 이전은 프랑스가 세계미술을,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했다. 그래서 독일은 변방이었는데 70년대 '요셉 보이스'와 함께 백남준을 독일에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독일에 혜성처럼 나타나 소리와 영상을 뒤섞는 '전자 아트'를 창안해 독일 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아트스타'가 되었다. 독일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미술을 뒤바꾼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아날로그와 디지털)를 연결한 '다빈치' 같은 예술가였다" 이 독일 작가의 백남준에 대한 평가는 정확했다.

 

<9> 다빈치 이야기

 

<다빈치 생애> : 레오나르도는 탄생지는 어디인가?(What village is Leonardo da Vinci from? ) 약 570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의 '빈치'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서 다빈치를 붙인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 씨인데 어디 김씨 경주 김 씨, 김해김 씨 등과 같다. 이탈리아어 Da는 영어로 from이라는 뜻이다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다(He didn't go to school) 그러나 아버지 아들의 재능을 인정하고 예술가로 키우려고 피렌체에 유학시키고 '베르키오' 선생을 붙이다.

 

그는 신체 해부를 좋아했다(He liked to dissect corpses) 그는 정확하고 디테일한 작가로 유명한 이유다. 그의 많은 작품 미완성이거나 중간에 훼손된 것도 많다(His masterpiece was destroyed) / 빌 게이츠, 그의 노트를 많이 소장하다(Bill Gates bought Leonardo da Vinci's notebook.

 

<이미지 빌 게이츠 소장품 다빈치 '물에 대한 연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물에 관한 연구(c.1510-12). 수문에서 수영장으로 물줄기가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시트 하단 부분 RCIN 912660. Royal Collection Trust Copyright 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2021.

 

<다빈치와 서경덕> 다빈치 (1452-1519)는 일찍 부모 떠나 혼자 시간이 보냈고, 어린 시절의 대부분 자연을 관찰해, 1) 구름은 어떻게 생기는지, 2) 새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 3) 물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등을 연구하는 드로잉이 많다 // 그는 37살 후배인 조선의 유학자이자 유물론자인 '서경덕(1489-1546)'과 유사한 점이 많다. 서경덕도 다빈치처럼 "새가 땅에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그 이유만을 생각하다가 그만 집안일 돕는 푸성귀 뜯는 일을 잊어버렸다"라고

 

장소 확인

다빈치의 발명품 전시 이탈리아 학생들 견학을 하네요. 백남준 아이디어 뱅크라는 국립미술관에 특별관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용으로도 너무 필요하다.

 

[남자의 몸이 사각형 안에 딱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인간의 몸을 누가 디자인했는지 신비하다. 다빈치는 이를 발견한 자이다] <비례와 기하학> 1482-1499 삶과 작품 레오나르도, 인체비례 : 파촐리의 「신성한 비례에 관하여 (1498년에 쓰고 1509년 출판)의 권두화>,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레오나르도의 친구였던 수학자 '루카 파촐리'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에서 개념을 끌어와 고대인들이 어떻게 인체를 적절한 비율로 배열했으며, 어떻게 다시 이를 자신의 작품에 조화롭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적용할 수 있었는 지를 설명했다. 레오나르도는 유클리드와 기하학에 대한 지식 대부분을 '파촐리'를 통해 얻었다. 그는 날개를 편 독수리 자세의 남자가 어떻게 원 안에 꼭 들어맞을 수 있는지, 또 팔과 다리를 곧게 뻗었을 때 남자의 몸은 어떻게 사각형 안에 꼭 맞아 들어갈 수 있는 지를 그림으로 설명했다. 이 두 인물 형상은 어떤 것을 재현하든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1] 최후의 만찬의 표현 기법 : 1.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물을 표현할 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추구했으며 인체 해부학을 연구하여 인물과 예수를 동일한 비율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묘사했다. /

 

2. 원근법 : 선형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림의 깊이감과 입체감을 표현했다. 최후의 만찬의 건축적 구도는 예수를 수렴하며 보는 이의 시선을 중심인물로 이끌도록 했다.

 

3. 빛과 어둠의 대비시키는 기법(키아로스쿠로 기법) :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빛과 그림자 사이의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기법으로, 2차원 작품에서 깊이, 볼륨, 입체감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그림의 볼륨과 깊이를 만들었다. 빛과 그림자의 상호 작용이 제자들의 얼굴과 손에 나타나 현실감과 입체감을 더했다.

 

[2] 최후의 만찬의 표현 재료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에 전통적인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는 대신 마른 벽에 템페라와 유성 페인트를 사용하여 표현했다. 이 기법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이었다. 그 결과 더 섬세한 디테일을 표현하고 섬세한 표면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 프레스코 기법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림의 손상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단점이 있다.

 

<10> 다빈치의 10가지 명언

 

<최고의 아름다움을 단순한 데 있다>

1. 세련미를 극도로 추구하면 단순함에 이르게 된다. 2. 쇠는 쓰지 않으면 녹슬고, 물은 고여 있으면 맑음을 잃듯이, 정신의 활력은 쓰지 않으면 무기력해진다. 3. 공부는 절대정신을 고갈시키지 않는다. 4. 지식은 적용하지 않으면 불충분하고, 의도는 실행하지 않으면 불충분하다. 5. 사람들이 당하는 가장 큰 사기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비롯된다. 6. 침묵만큼 권위를 강화하는 것은 없다.

 

7. 강에서 당신이 손을 담가 만지는 물은 흘러가는 마지막 물이자 다가오는 첫 물이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8. 작은 것들이 완벽함을 만들지만, 완벽함이 사소한 것은 아니다. 9.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보려는 사람들, 보여주면 보는 사람들, 그래도 안 보는 사람들. 10. 사람이 불행한 것은 대체로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서 그것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아서 그것을 이루고 나서다.

 

<백남준> 생애와 명언 생략

 

<11> 다빈치의 다른 별칭

// 다빈치 혁신전략: 연결하라-단순하게 하라-행동하라(Connect-Simplify-Do) 서양에서 천재개념은 언제 생겼나? 낭만주의 시대 17세기

 

[다빈치] 상상할 수 없는 천재(서구에서 천재라는 개념은 언제 나왔나?)

 

1) 화가, 2) 조각가, 3) 발명가, 4) 건축가, 5) 과학자, 6) 음악가, 7) 작곡가, 8)) 문학가, 9) 해부학자, 10) 지질학자, 11) 천문학자, 12) 식물학자, 13) 역사가, 14) 지리학자, 15) 도시계획가, 16) 집필가, 17) 기술자, 18) 요리사, 19) 수학자, 20) 의사 21) 토목 공학자, 22) 동물학자, 23) 철학자, 24) 외교관, 25) 발명가, 26) 화학자, 27) 물리학자, 28) 생리학자, 29) 공학자, 30) 풍자화가, 31) 제도사, 32) 디자이너, 33) 시각-예술가 34) 최초 비행기를 구상하고, 헬리콥터, 탱크, 집중 태양열 발전, 계산기 개념화, 해부학, 토목공학, 광학, 유체역학에 관한 연구 *** 다빈치의 3대 라이벌

 

<12> 백남준의 또 다른 별칭

// 백남준 혁신전략: 연결하라-소통하게 하라-참여하라(초연결)

 

[백남준] [1] 전자 페인터(모니터에 전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자 페인팅과 미디어아트 창안자), 2) 전자 로봇 비디오 조각가(설치미술가), 3) 서구미술의 룰을 파괴자 4) 탁월한 큐레이터 5) 수학(숫자 디지털)에 능한 물리학자, 6) 음악가, 7) 작곡가 및 행위 음악 창시자, 8)) (전자) 공학자로 9) 유튜브(1973) 아이디어 제안자, 9) 인터넷(1974) 아이디어 제안자, 10) 비디오 시인, 11) 문화 인류학자 특히 몽골에서 페루까지 등등,

 

12) 동서 문명의 초연결자 13) 언어 달인: 풍자와 해학 넘치는 유머리스트-인터뷰 능하다 14) 6개 국어 가능 15) 레이저아트 선구자, 16) 문명비평가(TV 부처)와 17) 환경운동가(TV 정원), 18) 선사시대 연구자 19) 미래 사회를 예견한 예언자, 20) 굿 등 샤머니즘 창조적 퍼포머, 21) 천재적 퍼포먼스 작곡가, 22) 축제주의자,

 

23) 감각적 쾌락주의자(라캉 주이상스) 24) 위성아트 창시자, 25) 저술가(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열린 회로 등등), 26) 단군 전승을 이어가는 홍익인간(주변에 두루 도움을 주는 자)의 전형 27) 세계적 예술가이면서 28) 세기의 철학자 혹은 29) 개념미술가 그리고 30) 전시 Project 기획자 31) 유물론자(무신론자), 32) 전자부처 백남준과 반가사유상은 닮았다.

 

33) 탁월한 큐레이터 : 예화를 들면 첫 전시도 그렇고 <1993 Biennale Whitney in Seoul> 포스터 게시물 1993년 서울에서 Nam June Paik이 기획하고 큐레이팅했다. 그 당시 이 전시는 예술 개념에서 매우 진보적이고 아방가르드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흥행에서는 매우 성공 왜 1993년 동네미술인 한국미술을 세계미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백남준이 긴급 수입한 미국의 첨단 현대미술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순회국립현대미술관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여 백남준 약 2억 기부하다.

 

34) 신디사이저(비디오합성기) 발명가, 신디사이저를 발명하고 나서 앞으로 유튜브가 나오면 이런 화면 조정이 가능하다고 예언하다. 1969년 유명한 시를 남기다 :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컬러풀하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록처럼 격렬하게,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precisely, freely, colorfully, profoundly, violently, lyrically 요즘 유튜브를 보라! 못하는 게 없다. / 더 나아가 "전자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생산될 수 있다. 이게 총체적으로 결합된 게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백남준의 3대 라이벌> 1. 부처(인간) 2. 칭기즈칸 3. 다빈치 또 누가 있나? 종교와 예술은 궁극적으로는 만날 수도 있다. 둘은 라이벌 관계(?) 우리는 부처님 손바닥에 서 놀다(?) 혹은 백남준 손바닥(?) / 최고의 부처는 와불. 백남준 와불을 흉내 내다. // 백남준 TV 부처 / 백남준 비디오의 부처(La Bouddha de la video) 1984 / 동양에 사상가 혹은 명상가(깨달은 자)로 '부처'가 있다면, 예술가로는 '백남준'이 있다.

 

<13> 다빈치와 백남준 사안별 12가지 비교

 

01 [다빈치(15세기 백남준)와 백남준(21세기 다빈치)] 미몽(迷夢)의 유럽을 개화시킨 사람은 다빈치다. 다빈치의 문화 민주화(르네상스)가 독일에서 종교민주화(종교개혁)가 되고 프랑스에서 정치 민주화(프랑스 대혁명)가 되고 영국에서 경제 민주화(산업혁명)가 되다. 한국에 다빈치급 인물이 바로 백남준(21C Leonardo) ♬

 

02 [다빈치(호모 사피엔스)와 백남준(호모 사이버네티쿠스)]

 

다빈치 시대 '호모 사피엔스'는 가고, 백남준 시대 '호모 사이버네티쿠스'가 오다 //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시스틴 성당이다. 백남준은 르네상스 천장화를 21세기 사이버네틱스 아트로 변형시키다. 그리고 말하다 "우리는 열린 회로 안에 있다" -백남준 1965 백남준 인풋에서 아웃풋의 관계를 규정하는 함수를 바꾸다 / 백남준 사이버네틱스한 세상을 이렇게 공식화하다.

 

<예화> 아래 시스틴성당을 보라 사이버네티쿠스 세상의 풍경이다 : 백남준이 회화(다빈치 전통을 지키는 회화나 미켈란젤로 전통을 지키는 세계미술사의 낡아 빠진 룰을 가지고 현대미술을 했다면 완벽하게 실패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아무런 성과도 없고 무모한 일이었을 것이다. 백남준 서구에서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는 TV 전자 붓과 TV 전자 망치로 전혀 새로운 미술사를 쓴 것이다. 그렇게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장화를 전자 모바일 사운드아트로 재창조했다.

 

베니스비엔날레 1993년 백남준 전시 중 하나였던 시스틴 Sistine Chapel(1번과 2번) 이것이 2019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다시 재현되다(3번과 4번)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압도하는 이 사운드-모바일 설치미술은 왜 28년간 공개가 되지 않았을까 미스터리다.

 

매 순간 격하게 변하는 이미지와 귀가 찢어질 정도로 소란함이 홍수처럼 넘치는 소리가 나는 사운드가 합쳐진 이 작품은 수천수만 가지의 그림이 그려져 서양의 르네상스 미술과는 완벽하게 새로운 개념의 디지털 미술이었다. 시스틴 성당 <백남준 불가능한 일을 하다 그 압도적인 숨 막히는 미켈란젤로를 완벽하게 걷어내다. 서양의 누구도 이에 도전하지 않았다. 백남준 서양미술과 혈투를 벌이는 치열한 모험이지 문화전쟁자였다

 

1973 오노요코 부부 백남준 전시 참석하다

호모 사이버네티쿠스 시대는 백남준이 발명한 구글 안경을 써야 어울린다 ♬

 

03 [다빈치(프랑스 정착)와 백남준(미국 정착)] 1513-1519년 다빈치, 로마에서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인 '느무르 공작(메디치가문의 셋째 아들)'의 지원으로 로마에 머물다. 여기서 <기하학적 놀이에 관하여> 연구를 완성하다. 느무르 공작이 사망하자, 프랑스 프랑수아 1세 궁정으로 초대받아 말기 수작을 남기다. 모나리자, 성 안나, 세례자 성요한 등과 자연에 관심이 많아 대홍수 드로잉도 남기다

 

반면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첫 전시 이후 1974년 TV부처와 TV정원에서 대히트를 치고 1984년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서 위성아트(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와 1993년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 받고, 2000년 뉴욕 구겐하임에서 레이저 아트 등 전성기를 누리다.♬

 

04 [다빈치(디테일)와 백남준(디지털)] 가상으로라도 해부학을 해보면 인간 신체의 놀라운 디테일에 충격을 받는다. 혀의 디자인 하나만 봐도 정말 청천벽력을 맞는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래서 디테일에 강했다. 백남준의 표현이 있다 "다빈치처럼 정확하게" 이제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는 다빈치보다 몇천 배 더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다. ♬

 

05 [다빈치(비행)와 백남준(위성)] 다빈치: 비행과 우주에 대한 연구(새의 비행에 대한 연구, 낙화산, 글라이더, 헬리콥터 기계장치 디자인하다). ♬

 

반면 백남준 위성아트 3차례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독창적 방식 방송국 연결하는 위성아트(우주오페라)는 '멀티(다중) 공간/멀티(다중) 시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Satellite art must make the most of these elements (for they can become strengths or weaknesses) creating a multitemporal, multispatial symphony. - Nam June Paik, 1984 <광활한 우주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공간 초월하는 예술 장르다> - 백남준 / 1992 백남준 과천 전시 제목 비디오 때(시간) 비디오 땅(공간)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별들의 랑데부] 백남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을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번안한 것이라고 밝힌다. 견지와 직녀의 만남처럼 넘을 수 없다는 동서의 결정적인 만남(랑데부)을 하이테크로 번안한 것이다. 1995년에 백남준의 <예술과 통신>이라는 글에서 <별들의 랑데부>라는 제목으로 '갤러리현대'(전시도록 1995)에서 밝힌 바 있다. [사진설명] 1986년 백남준이 그의 위성아트오페라 2편 <바이바이 키플링> 작품 앞에서 찍은 것

 

<갤럭시 맨> 중국에는 한여름밤의 꿈같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인은 음력 칠월칠석에 두 개의 별이 만난다는 점을 간파했다. 그 시기가 한 여름이기에 거기에 낭만적인 요소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별 그 하나는 견우(황소를 끄는 총각·별 여기서 황소는 농경사회의 역할모델)이고 또 하나는 직녀(말 그대로 베를 짜는 처녀·별)이다. 두 별이 한여름밤을 만나면 그들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어떤 훼방꾼도 보지 못하게 구름이 그들은 가려주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떠난다.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단물 같은 비가 내린다.

 

이제 동양에서는 칠월칠석 젊은 남녀가 한여름에 만나는 축제일로 기린다. 나는 이런 전설을 1984년 1월 1일 하이테크로 번안하려 했다. 그게 바로 퐁피두(뉴욕 WNET와 연결해)에서 내가 감독한 위성아트 굿모닝 미스터오웰이다. -백남준 PS 전설이나 신화 등 이야기는 이렇게 예술가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일으킨다. 이야기의 힘이다. 1984년에-1986년(바이바이 키플링)-1988년(손에 손잡고) 3부 위성아트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

 

06 [다빈치(스푸마토)와 백남준(화이트 노이즈)] 다빈치: 스푸마토 사람이든 풍경이든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리지 않고 희미하고 뿌옇게 그리는 기법 / 백남준 화이트 노이즈(백색 잡음)를 연상시킨다. 백남준은 침묵만 아니라 제거할 수 없는 잡음인 '화이트 노이즈'까지도 높은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다. ♬

 

07 [다빈치(물파동)와 백남준(전자파동)] 다빈치는 물의 운동(파동)에 대해 연구했다. 백남준은 전자의 운동(파동)에 대해 연구했다. <이미지> 다빈치의 <물에 관한 운동 연구> 빌 게이츠 소장품(collection) ♬

 

08 [다빈치(1452-1519) 유럽의 르네상스 500년 지났는데 그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 안 나오다)와 백남준(1000년 안에 그럴까요?)] 백남준은 세계미술사에서 미디어아트 창시자인데 500년 후에도 1000년 후에도 백남준보다 더 훌륭한 미디어아트 작가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

 

09 [다빈치(엘리베이터, 무기발명가)와 백남준(신디사이저, 인터넷 발명)] 다빈치와 맞짱 틀 예술가는 백남준 밖에 없다(?) 백남준 1969년 아베와 함께 신디사이저 비디오 영상합성기를 발명했다. 그럼에도 저작권 특허권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튜브가 가능해진 것인데 이걸 발명할 때 피똥을 샀다고 고백한 적 있다. 그 발명 과정에서 겪은 고생은 마치 달마대사가 9년간 화장실도 가지 않고 좌선과 명상을 하다 '사지가 녹아들 정도로' 수도(좌선)와 명상에만 전념할 때 그 고생과 맞먹었다. 여기서 바로 유튜브가 가능해진 것이다" ♬

 

10 [다빈치(회화의 원급법)와 백남준(비디오 편집기술 전자 오페라 작품)] 사진과 영상 관련 : 다빈치의 공학(원근법)과 백남준 비디오(화면 굴절 왜곡 디바이스) 통한다 ♬

 

11 [다빈치(예술-기술 2차원)와 백남준(예술-기술-주술 3차원)] 백남준처럼 첨단 테크놀로지를 많이 쓰는 작가도 없다. 모든 기술의 비빔밥처럼 뒤섞다. 그런데 갑자기 굿은 왜 나오나? 그것은 바로 기술의 한계점 때문이다. 기술을 인간화-생명화하고 활성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Gut=Good (진짜) 굿은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다빈치는 예술적 사고+과학적 사고 그러나 백남준은 한 단계가 높다. 예술적 사고+과학적 사고+야생적 사고(레비스트로스, 샤머니즘)를 더 한다 / 하긴 다빈치 시대는 인류학이 없었을 것이다 ♬

 

<추신> 즉 샤머니즘을 도입해 자신이 스스로 '샤먼 예술가(artist-shaman)'가 되었다. 평생 퍼포먼스아트 혹은 액션뮤직(action music)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서구와 차별성, 노력해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샤머니즘(굿)과 동양의 선불교(혹은 노장사상)다. 거기에 1) 홍익인간=2) 인내천 그리고 3) 천지인 사상과 40 몽골의 경천(텡그리 사상) 사상도 있다. 백남준 비디오아트에서 이걸 단골 메뉴로 활용- 직지(금속활자발명)=세종대왕(디지털에 최적인 한글 발명)=백남준(인터넷 발명) 이렇게 해서 30세기가 열린다. <한국의 세계적 경쟁력과 그 차별성> 서구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은 한국의 샤머니즘

 

12 다빈치 인간중심사회 복원, 백남준은 홍익인간처럼. 한국 굿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다 예술에 있어 다빈치는 기술과 예술을 합쳤지만, 기술과 예술에 주술을 백남준은 한 수 위다.

 

비교) 정약용 대학자이면서 발명가였다. 천재들의 특징인데 그의 저서 『기중도설 起重圖說』에 도르래 원리 설명, 백남준 이 발명품을 또 비디오아트로 예술화했다

 

<14> 백남준 테크놀로지 아트의 '꽃' 인터넷

 

1. '실크로드' / 2. 몽골의 '초원고속도로' / 3, '비디오(글로벌) 코뮌(1970 / 4. 유튜브(글로벌 그루브(1973) / 5. 전자 초고속도로(1974)' / 6. 위성아트(1984 백남준: 2,500만 명을 위한 예술) I II III / 7. '인터넷(1993)'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8. SNS 9, AI [백남준 인터넷으로 가는 10단계 1963-1993] 30년 걸리다

 

1963년 [01단계 인터넷] 첫 전시에서 미래의 인터넷인 TV을 도입하다.

 

1965년 [02단계 인터넷] <달은 가장 오래된 TV> 소니 비디오 처음 사용

 

1968년 [03단계 인터넷] 그해 백남준은 “종이는 죽었다”라고 선언

 

1970년 [04단계 인터넷] <비디오 코뮌>, 69년 합성기(신시사이저) 발명으로

 

1973년 [05단계 인터넷] <1인 미디어> 유튜브 예언 <글로벌 그루브> 발표

 

1974년 [06단계 인터넷] 인터넷 전신 <전자 초고속도로> 개념 발명

 

1984년 [07단계 인터넷]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3탄 위성 아트 시작***

 

1993년 [08단계 인터넷] <전자 초고속도로(인터넷)>의 예술화(전자아트), 베니스비엔날레 참가

 

1994년 [09단계 인터넷] 상용화된 인터넷을 보여주는 W3 '오브제'로 작품화 발표,

 

2000년 [10단계 인터넷] SNS 상용 1974년 'mixed-media phone'에서 시작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위성아트란 뭔가? 전 세계 방송 네트워크를 연결해 우주에 그림을 그리는 천상의 오페라 작곡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것은 그것도 1월 1일 날 당시 전 세계에서 최고 아티스트를 불렸을 때 거기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그런 위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앞으로 1000년 안에 이렇게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작가가 또다시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전자초고속도로 연상시키는 작품

 

1989 스쿠퍼 / 1993 / 1995 / 2001 / 1994

 

<15> 백남준아트와 테크놀로지

 

01 MIT 초빙 <백남준 교수 초빙을 받다 왜 Technology art?

 

[1982년 아트와 Technology를 연결하는 르네상스 인간 다빈치 같은 백남준을 열렬히 교수로 모시고 싶어 하는 미국명문대가 있었다. 50세가 되는 1982년 백남준은 MIT 교수 초청 제안을 받았다. 왜 그는 드물게 Art and Technology 결합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 학력에 대한 과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사실 학력은 인생에서 브로치나 잠시 번뜩이는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나 백남준은 단호히 거절, 그가 그동안 노력한 것은 교수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고 한 것이다. 1982년~1988년까지 위성아트작품 기획 분주 ♬

 

02 다빈치의 정신(Art and Technology)과도 통한다. 1) 백남준의 르네상스 정신, 2) 예술과 기술(정보 통신기술, 하이 테크놀로지) 결합이 비디오아트다 / 비디오아트를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나!! 그런데 왜 예술과 기술을 하나의 원이 되어야 하나? 아마 원효의 말대로 '원융합일' 정신에서 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거보다 더 원활한 소통과 세계 공존과 인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리라 / 다시 말해 전쟁과 독선과 독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리라. ♬

 

03 시게코 부인 의견

 

1984년 굿모닝 위성아트에 대해 백남준 부인 시게코도 남편을 언급하다"이것은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새 세대의 예술로써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 예술의 고전이 된 것처럼 비디오 예술의 고전이 될 것이다" /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은 1000년 안에 다시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그 스케일도 그렇지만 1984년 1월 1일 전 세계 최고 아티스트를 한 자리에 같은 시간대에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그게 백남준의 슈퍼파워다♬

 

04 목숨 건 피나는 노력

 

<첫 전시 독일 부퍼탈에서 첫 전시 1963년 그 이후부터 1969년 비디오합성기 발명하기까지 일본 왕래, 아베 도움을 받아가면서 6년간 비디오 화면 자유자재로 바꾸는 기술 연구하고 적용해 보면 실험을 수없이 했다(1959-1969) 1963년 첫 전시가 끝나고 백남준 전자기술의 부족으로 일본으로 가 전자기술의 권위자 '우치다 히데오(진공관 발명자)'도 만나고도 그의 소개로 전자공학자 '아베'도 만나 평생 그와 협업을 했다. 1963년 첫 전시 준비로 3년간 피 말리는 물리학과 전자공학을 독학했다. 베를린 공대에 도강도 했다. 그리고 보니 백남준 비디오아트 창시자가 되는 데 근 10년, 그의 초기 비디오아트 실험은 15000 볼트 전선 사고로 타 죽을 수 있다고(위험) ♬

 

1973년 유튜브 초기 성공

 

1968년 백남준은 보스턴의 WGBH-TV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보스턴 공영 TV 방송국 WGBH-TV에서 방송용으로 초기 작품을 제작했다. 이 글은 백남준이 참여형 텔레비전에 대한 관심에서 사회적 관심을 명시적으로 강조하는 협력적 실천으로 옮겨가는 동안 매체에 대한 백남준의 접근 방식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여준다. ♬

 

05 백남준 가장 잘 아는 사람 그의 테크니션 이정성 대표

 

1988~2006 그 이후 36년 백남준과 같이 했다. 미국에서 백남준 작품 못 고치며 서울에서 불러가기도 했다. // 아래 이정선 선생의 기록이다 // 백남준 설치미술 기술 조력자로는 말했듯이 아베슈와와 나(이정성) 두 사람이 꼽힌다. 백남준의 드로링이 완성되려면 첨단의 하이테크가 결국 하이테크가 지원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메리칸 맵 대단한 작품 전자기술자뿐 아니라 철공(iron) 일하는 사람, 목수를 비롯해 수많은 기술자들 동원되었으며 이 테크놀로지 집합체가 백남준 예술이다. ♬

 

06 영국 교수 [예술과 과학을 연결한 모험가 백남준]

 

그의 레이저 작품에 대해 국제 과학 저널 <네이처>에는 어떻게 소개? 이에 대해 2000년과 2005년 두 편의 논문을 실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는 아트와 과학의 결함으로 완성한 종합예술이다 -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예술역사가 마틴 캠프(Martin Kemp) 교수> So can art be science and science can be art? 이 교수의 화두다. 심각한 교수들 이런 질문을 하지만 백남준에게는 예술과 과학의 경계란 전혀 없다. // 하여간 백남준은 세계미술계 존재조차 희미한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16> 백남준의 아트의 목표: 참여(반소외) 소통(반전쟁) 공유(반독점-반독재) 실현 텔레토피아

 

Nam June Paik was a truly global artist. // Paik believed that technology would give us all the chance to make(창조) and share art. 'The invention of camera(video) changed the scene(시대 모습 바꾸다) and made everybody into an active visual artist', he wrote, predicting the future of camcorders, live-streaming and social media. Nam June Paik was a truly global artist.

 

[하나] 참여(소외반대) <백남준, 참여형 텔레비전에 관심> 비디오코뮌 백남준 1970년 작품에 대한 큐레이터 MARINA ISGRO(펜실베이니아 대학 박사) 에세이: 서양에서 600년간 다빈치를 능가하는 예술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엉뚱하게 서양도 아니고 동양에서 그를 능가하는 예술가 백남준이 등장하다.

 

전기와 전화와 사진과 영화와 TV와 인터넷과 유튜브 발명자가 정확하지 않다. 하여간 백남준 유튜브(1973) 인터넷(1974) 아이디어를 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남준 우선 TV를 예술화했고 유튜브와 인터넷을 예술화했다는 점, 이런 일은 해낸 사람은 동서의 예술가 중에서 백남준이 유일하다.

 

[둘] 소통(전쟁반대) <백남준의 국제소통> 백남준 2500명 세계 석학과 소통 <소통의 천재, 백남준 5개 국어가 힘> 공부를 잘하는 게 천재가 아니라 백남준처럼 2400명의 세계적 석학과 초연결하는(초소통하는) 능력을 가지는 게 천재였다. - 박만우 2대 백남준아트센터관장의 증언, 백남준은 전 세계의 석학과 과학자와 예술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네트워킹하는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 나사의 우주 물리학자나 하버드대 미생물학교수 같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세계적 예술가 등 2500명(이 숫자는 박만우 관장의 말)의 전문가와 끊임없이 줄기차게 (전화 등으로) 소통을 했기에 세계적인 작가 세기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

 

[셋] 공유(독점반대) 실현 목적 / <백남준 유럽에서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로 평가> <계몽주의,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백남준을 이해한다> 홍대 김은지 교수 2000년까지 백남준 몰랐던 사람이다. 독일 베를린 대학 유학하면서 백남준이 유럽에서는 20세기 다빈치로 평가받는 것을 보고 놀라 연구를 했고 마침내 베를린 대학 (훔볼트) 백남준 연구로 최우수 평가 박사까지 받았다.

 

우리가 백남준에서 배울 점 1) 환한 햇살처럼 투명한 물처럼 맑고 명료하다(LA CLARTE) 2) 어마어마한 용기 3) 과감한 모험과 거침없는 시도 4) "내세우지 않는다" 그의 세계 속 처세술(겸손) 5) 일체의 우상숭배를 부정하다 (유튜브, 위성아트, 인터넷, SNS, 스마트폰, 쌍방소통, 레이저 등등) 백남준 비디오 장르 장치로 세계 문화의 전혀 새로운 형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 Edith Decker 독일 백남준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