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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다가오는 21세기는 백남준시대

"20세기 전반은 피카소, 20세기 후반은 워홀

그리고 20세기 전체를 뒤샹의 시대라 부른다면

다가오는 21세기는 백남준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진중권 

https://www.youtube.com/watch?v=Kdc8CGJpTpE 

 

 

 

백남준은 어려서 피아노 2대를 놓고 연주하고 싶어 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찾고 있었다나의 스승은 내가 원하는 음은 음표들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나는 피아노 두 대를 사서 각 피아노의 음이 서로 어긋나게 조율하였다. 백남준 


그 사이 인터미디아(
intermedia)에 관심이 있었다는 소리인가그렇다그는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놓고 아트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보다그래서 비디오아트가 탄생한 것이리라마치 백남준이 첫 전시에서 음악과 미술을 비빔밥을 만들 듯이 백남준은 시공간마저도 비빔밥을 만들려고 했다. 

 

 

 

 

 

백남준은 장난기로 한 작품에 대해서 기성 비평가들이 너무 심각하게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건 무리수를 두는 것이라고 이정성 선생의 평은 일리가 있다백남준 아트의 핵심은 인류 평화공존코뮌 공동체와 함께 무엇보다 "fun, fun, fun"이다

 

백남준 TV 안경

요즘 이것을 상업화해서 3D 안경이 나왔다최근에선 BR이 아니라 AR(Augmented Reality)이 나와서 아예 안경을 쓰지 않고도 입체화면을 볼 수 있단다이런 장난기가 위대한 아트를 낳은 단초가 되는 것이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에서 16개 개념미술 제시>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에 백남준 예술의 중요한 16가지 테마(핵심개념)가 나온다. 아직 누구도 이에 대해 전혀 연구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김남수 선생(백남준 연구가) 지난번 백남준 전시(세종문화회관) 때 해설을 붙였다. 대단한 일이다.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에 16가지 중요한 주제가 나온다. 그중 하나인 <아이디어에 대한 물신주의> 백남준의 평생 과제였다. 즉 관념(주의)을 깨부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지배담론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 인간성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다. 이밖에도 이 포스터에는 15가지 테마다 더 있다.

 

그중 하나가 <소리 나는 오브제(Objets Sonores)>라는 테마다. 이것은 물건에서 나는 소리도 음악으로 보는 것이다 즉 사운드 아트를 뜻한다. 혹은 무계음악, 즉 기존의 음악의 위계를 해체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잉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양혜규가 최근이 이런 개념을 작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20세기와 21세기가 대화하는 것 같았다

 

1984년 백남준 34년 만에 귀국해서 가진 백남준 비디오아트에 대해서 KBS에서 특별방송이 있었다질문자로 한국의 서울대 이화여대 등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수 미디어 전문가 미술사학자 신문방송 무용 예술론 관련 교수들 5명 이상이 동원 대학생을 비롯해 방청석에서도 누구나 질문을 하고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전체 진행은 고려대 불문학교수 김화영(카뮈 연구자)이 맡았다그런데 당시 교수들 질문 수준은 표현은 상당히 세련되었지만 그 내용은 너무 부실해서 수준 아래였다좀 민망했다질문과 대답 20세기와 21세기가 대화하는 것 같았다어찌 보면 소통이 잘 안 되는 대화이기도 했다당연한 일이다. 

 

 

백남준처럼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으면 전 세계 신문을 봐라그래야 지구촌 돈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고 그래서 시대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그래야 인류와 대화하고 인간의 구원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작가가 되기 때문이다백남준이 벌써부터 가짜(거짓)뉴스에 대해서 그 구조악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었다백남준이 생각한 신문의 5가지 특징이 1. 섹스 2. 폭력 3. 허영심 4. 기만 5. 탐욕으로 본 것이다. 

 

 

 

이정성선생 며칠 전에 만났는데 뉴욕에서 작업할 때 아침마다 백남준 선생을 위해서 신문 사는 게 첫번째 일이었다고 하도 가니 신문가판대에 직원이 이 선생이 가면 벌써 미리 챙겨놓았다고 한다. 

 

 

백남준은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자기가 만든 인터넷을 활용하다백남준은 시사 예술가이다 시대정신가 뭔지 항상 탐구하다그래서 그는 정보아티스트이고 미디어아티스트이다 아래 보니 완전 야행성이군요. 

 

 

백남준은 인터넷 없는 시대에 세계 신문을 통해서 인터넷을 봤다물론 한국신문과 독일신문 슈피겔지도 같이 읽었죠.백남준은 뉴욕주식시세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번은 백남준 월가 금융계 회장의 초대로 만난 적이 있는데 월가의 인사발령까지 다 알고 있어 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백남준 

 

 

 

백남준의 문명비판은 신랄하나 익살극처럼 재미있다. 축제주의자로서의 백남준의 면모

https://www.hdg.de/lemo/biografie/nam-june-paik.html

독어판인데 백남준 연대기 아주 상세한 자료다. 

 

예술이란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예술은 페스티벌이지요, 쉽게 말하면 잔치다.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쟁이예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다. 나의 예술 철학은 관념을 무너뜨리자는 거지요. 수직이 아닌 귀납(수평)이다. 획일을 막기 위해 자유스런 작업을 한다.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지요" -백남준 

 

 

 

죽음을 항상 코앞에 달고 산 백남준 위 퍼포먼스(자화상)에서도 알 수 있다

 

'자화상[Selbstbildnis(Eine Hand); Self-portrait (a HAND)]' 1984 Photo Lothar Schnepf Köln 출처 Paik Video / <백남준의 우연성의 미학> '우연히 발견한 물건(found objects/objets trouvés)'과 폐기물이 50년대 네오다다에서 아주 중요한 미술을 표현의 도구가 되다 아상블라주 아트가 바로 그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물건은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의 중요한 16개 테마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러나 백남준의 공격적 행위는 극단적이기는 하나 넥타이를 자르는 것과 같은 희극적 터치로 수행되기 때문에 보이스의 심오한 표현주의나 보스텔(이 작가도 초기에 TV로 작업을 하다)의 파괴적 허무주의와는 다른 경쾌한 익살극을 연출한다. 익살은 풍자적 방법으로, 문명비판에서 더욱 신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중적 전달 양식으로 인해 관객에게 좀더 쉽게 어필한다. -박혜정(백남준 석사논문) 

 

 

 

제 2회 뉴욕아방가르드축제(1964) 기간 중 거리를 활보하는 로봇 K-456 

 

 

[김홍희 평론가 글] [ 섬뜩할 정도로 토착적인 백남준이면서 동시에는 첨단 아방가르드 작가의 면모가 공존 담뱃대요강장독 등을 피아노 TV 모니터로 현대화] 

 

 

백남준은 샤머니즘과 비디오 아트의 동질성과 차이를 구별하는 미학적 통찰로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양면적 요구를 통합시켜 자신의 양식으로 체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이러한 점에서 샤머니즘적 영감과 상상력으로 점화되는 그의 예술의 아시아성 또는 한국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1950~1960년대 고어들을 구사하고 이제는 구식의 정서가 되어버린 끈끈한 정의 소유자 백남준섬뜩할 정도로 토착적인 그의 행동거지에서 우리는 첨단 아방가르드 작가에 대한 경계를 풀고 안도하게 된다. 

 

 

샤머니즘 요소와 함께 그의 작품에 소도구처럼 자주 등장하는 담뱃대요강장독 등 구시대의 민속품은 고국에 대한과거에 대한 이주자의 향수를 느끼게 하지만백남준은 그것을 비디오와 같은 현대 영상매체로 현재화함으로써 스스로를 탈식민주의 예술의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백남준이자 세계 속의 남준팩으로 자리매김하는 당위를 발견하게 된다. 

 

 

 

[이용우 평론가 해설백남준의 <로봇 가족(Robot Family)>

 

이 90년대 작품은 종래의 공격적이고 전위적이던 그의 작업방식으로부터 놀이와 화해해학을 선사해 준 비디오 아트의 결정체이다백남준의 가족구조 또는 3대가 늘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한국의 가족구조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때문에 한국 전통사회의 혈연구조와 뿌리의식에 깊게 관계된다. 

 

 

로봇 가족은 후에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에 연결되어 보다 폭넓은 외연의 문제로 발전한다그의 이런 생각은 1990년대에 들어 더욱 다양하고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의인화된 로봇 조각을 통해 통로로 넓혀가고 있다.

 

[박만우 2대 백남준아트센터관장의 증언] 백남준은 전 세계의 석학과 과학자와 예술가와 네트워킹(소통)하는 아티스트였다. 백남준은 미국 나사의 우주 물리학자나 하버드대 미생물학교수 같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세계적 예술가 등 2500(이 수치는 박만우 관장의 말)의 전문가와 끊임없이 줄기차게 (전화 등으로소통을 했기에 세계적인 작가 세기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백남준의 이 아카이브를 보면 백남준이 독일에서 어느 도시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등을 일부 알 수 있다 백남준 뒤셀도르프에 처음 전시한 장소(갤러리 22)와 년도(1959) 등이 나온다.

 

*일화 <백남준>나라의 경제 순위는 언제나 쉽게 바뀔 수 있지만 문화 순위는 바뀌기 쉽지 않다우리 어휘에서 15천 단어는 중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백남준).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상품 수입과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중국이 문화국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일본과는 비교가 안 된다일본 문자가 다 중국한자에서 온 것이다.

 

*인공지능도 백남준이 1983년 퐁피두 전시 때 만든 개념이다. TV세트에 인공지능 즉 칩을 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백남준은 프랑스방송과 인터뷰에서 불어로 이렇게 말했다 "J'ai essayé de <mettre un nouveau cerveau dans la télévision>" 나는 TV 속에 새로운 두뇌를 심어주려고 노력한다백남준은 TV에 시간의 영원을 담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는 예술가

 

*1988년 백남준 파리인 것 같다 그의 작품 개선문 앞에서 백남준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전자요정(La Fée Électronique) 등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아마도 1년 전에 파리에서 완성한 작품 같다. 

 

 

*백남준은 서구 근대예술의 아버지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조응(Correspondence)>이라는 시에 크게 감응하여 이를 비디오아트로 번역해서 새로운 전자아트를 탄생시켰다. '백남준은 또한 샤를 보들레르의 상징주의 미학에서 언급한 '색채·소리·향기'의 조응관계를 '시각·청각·촉각'적인 측면에서 적용했고 더 나아가 '과학·문화·예술'도 '자연·기계·인간'도 하나로 통합하는 총체적(비빔밥예술이라는 Kunst Integral(총체예술가)라는 새로운 개념까지도 도입했다. 

 

*이 가장 좋아한 한국의 역사문서는 삼국유사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국인의 판타지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그 대신 왕조사관인 삼국사기는 전혀 좋아할 수 없었죠김훈과 도올과 인터뷰에서 그런 점을 밝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