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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10대 (1932-1951)

백남준과 나와 나의 부친과 나의 누이

[하나] 1956에 유학차 독일에 도착 1957년 백남준 독일에 있었다. 1957년 부친 독일에 있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둘 ] 1978년-1982년까지 누이가 뒤셀도르프에 있었다 백남준 1977년 말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 되다

이것도 인연인가

 

백남준과 나는 어떤 인인이 있는가 사실 나는 백남준은 직접 본 적은 없다. 물론 TV 많은 영상과 뉴스에서 봤다. 백남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70년 말 경인 것 같다. 백남준 1978년부터 독일의 명문 미술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를 했는데 그때 누이가 뒤셀도르프 살았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간간히 들은 것 같다.

 

 

당시에는 차범근도 독일에서 축구선수로 이를 날리 때다 차범근의 나의 중고 동기동참이다. 그는 중3대 경기도 화성인가 축구 특기생으로 전학을 했다. 그 당시에도 크가 켰다 조금은 순한 인상이다 당시 우리반 깡패애들에 많이 맞았다. 일종의 호독 식고식 매형이 무력협해 유럽 지부 주재원이었기에 누이도 백남준과 같은 도시에 살았다 누이의 아는 한국학생 중 이 대학 미술대 학생이 있었는데 백남준의 지도교수는 아니지만 자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80년 독일 뒤셀도르프 누나네 가족과 친구 가족

백남준과 나의 부친은 195년 독일에 같이 있었다 물론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겠죠. 아비저지 프랑크푸트 근처에 있어었고

백납ㅁ준은 당시 프라이부프크 음악대학은 다녔다. 원래 뮌헨 대학 다녔지만 너무 봇저적이로 생각해 일년 공부해 보고 학교를 더 자유로운 프랑이 옮겼다 그때 백남준은 그 다음에는 쾰른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1957년 독일에서 부친

80년 초에 서울 예일여고 교사 나보다 1년 늦게 미술교사 들어왔는데 홍대미술교육과 출신 박진화 나중에 민주미술 그아 나는 친했고 그는 세잔에 미쳐있었다. 추상황의 창시자 그러면 나를 보면 맨만 백남준 이야기를 햇다 뒤에 유학해 백에게서 배우겠다는 큰 포부로 넘쳤다 그는 개인사정으로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창작에 열을열려고 그러나 결국 80년 전두환 시절 그는 민중미술쪽을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