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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10대 (1932-1951)

[공자와 백남준] 정치와 예술을 음악으로 풀다 두 사람은 정치와 예술을 음악(결국 평화)으로 풀려했다 1) 백남준 미술(총체예술)을 결국 음악으로 풀려 했다 미술도 음악(성)으로 풀 때 진정한 미술이 된다. // 백남준의 발상이 아닌가 싶다. // 물론 이런 갈 직접 언급으 하지는 않았지만... // 사실 이것은 칸딘스키기 먼저 발상하고 그런 미술을 실천했다. // 그래서 음악적 요소가 많은 추상 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 칸딘스키와 백남준은 음악적 미술을 했다는 면에서 서로 통한다. 2) 공자는 정치를 결국 음악으로 풀려 했다. 정치를 통치가 아니라 음악(율려)이 세상을 다스릴 때 지상에 평화와 공존의 세상이 온다. 공자의 사상과 유사하다> // "율려가 무엇인가? 율려가 무엇이관데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인가? //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정.. 더보기
[백남준]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초들 한국일보 기사 원본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001/wk20100107103740105450.htm 백남준을 이해하는 몇 가지 단초들 백남준아트센터는 2009년 2월과 9월 두 차례의 국제 세미나 를 개최했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 적절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내용 중 백남준을 이해할 만한 몇 가지 단초를 추려 보았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이 있다. 바로 전쟁이다. 나는 2차 대전을 겪은 세대다. 백남준은 초기 녹음 작업에서 전쟁 중 사람들이 죽을 때 내는 비명 소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둘 모두에게 친숙한 비명소리다. 우리는 각각 동양과 서양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더보기
백남준과 나와 나의 부친과 나의 누이 [하나] 1956에 유학차 독일에 도착 1957년 백남준 독일에 있었다. 1957년 부친 독일에 있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둘 ] 1978년-1982년까지 누이가 뒤셀도르프에 있었다 백남준 1977년 말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 되다 이것도 인연인가 백남준과 나는 어떤 인인이 있는가 사실 나는 백남준은 직접 본 적은 없다. 물론 TV 많은 영상과 뉴스에서 봤다. 백남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70년 말 경인 것 같다. 백남준 1978년부터 독일의 명문 미술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를 했는데 그때 누이가 뒤셀도르프 살았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간간히 들은 것 같다. 당시에는 차범근도 독일에서 축구선수로 이를 날리 때다 차범근의 나의 중고 동기동참이다. 그는 중3대 경기도 화성인가 축구 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