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은 1960년대 절친인 슈툭하우젠과 함께 1992년 공동으로 피카소상을 수상> 60년대 질풍노도의 독일시대, 쾰른성당 앞에서 찍은 백남준 사진 TV화면 캡처 // [백남준예술의 원천이었던 쾰른] 쾰론은 백남준에게 그의 예술의 대전환을 가져온 도시였다. 이 도시에서 맑스는 1842년에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창간해 편집장이 되어 그의 혁명사상을 열정적으로 쏟아내기도 했다. / 여기서 백남준은 새로운 음악전자음악을 접했고 쾰른성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 쾰른성당에 스며들어오는 신령한 글라스 빛과 그것이 연출하는 색채에 반해 비디오아트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여기서 슈톡하우젠과 마리를 만나 예술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백남준은 슈툭하우젠과 1992년 공동으로 피카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60년 여기 마리 작업실에서 백남준은 존 케이지에 바치는 전시(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를 열었고 여기서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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