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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60대 (1992-2001)

[백남준] '1990~95' 한국미술세계화, 광주에서 '꽃', '96' 쓰러지다

<백남준, 한국미술 세계화 1990년(보이스 추모 갤러래 현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Pre-Bell Man)-1991년( 비디오 때-비디오땅, 유럽)-1992년(비디오 때-비디오땅, 과천 한국)-1993년(대전과학엑스포)-1994년(강익중과 2인 전)-1995년(광주비엔날레) 문을 열어 완성(기반 세우다). 그리고 백남준 과로로 1996년(호암상 수상) 후 쓰러지다>

뉴욕 휘트니미술관 데이비드 로스 관장

 

1990('보이스 추모굿'을 통해 한국 샤머니즘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다)-1991-1992(국립현대에서 백남준 '비디오때 비디오땅' 전시를 열다 비디오아트를 세계적 기준에 맞는 시간 공간개념을 도입하다)-1993(미국최고미술관 휘트니전시를 한국에 직수입하다. 한국과학의 선진화를 위해 대전 엑스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열기 위해서 전초전)-1994-1995(광주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열다) 백남준 동네미술인 한국미술을 5개년 계획으로 세계미술 수준으로 끌어올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개막되어 백남준의 한국미술 세계화는 성공적으로 끝나다.

 

당시 1990년대 뉴욕 휘트니미술관 데이비드 로스 관장이 백남준에 대한 평가다. 이분 때문에 1993년 국현(과천미술관)에서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순회전이 가능했다. 백남준 동네미술인 한국미술을 세계미술로 끌어올리려고 이런 시도를 하다. 여기서 백남준, 국립현대미술관(당시 과천)이 돈 없다고 해서 2억 정도 기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