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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60대 (1992-2001)

[백남준]"메가트론/매트릭스"(1995) 워싱턴 미국 국립미술관 소장품 백남준 "메가트론/매트릭스"(1995) 워싱턴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소장품 / 워싱턴 DC를 방문하기는 했으나 미술관이 문을 너무 일찍 닫았고 일정이 너무 빠듯해 백남준 작품을 보지 못했다 백남준에게 TV 화면은 전자 회화를 그리는데 하나의 큰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것과 다르게 이런 담백한 전자 설치는 역시 동양 정신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 구조는 단순한 4X4다 가운데 숨통을 열어 놓다. 작은 여백의 미다. 단색화 풍의 TV 전자 회회다 더보기
[백남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160만 동원, DAUM 창안자 'NJP' 백남준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동원에 성공  1995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며, 한국 미술이 국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활력을 넣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명에 달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백남준이 직접 관여한 ‘INFO Art(김홍희 관장 여기서 처음 한국 측 큐레이터 미국 측 큐레이터는 미디어아트 최고권위자 미국 IBM미술관 관장을 지낸 신시아 굿맨)’전이 주목받았다. 또한 백남준은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전시관 부문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같은 해 그의 예술적 정수가 담긴 Electr.. 더보기
[백남준] 작품 <(동대문) 시장> 여기 '보이스' 등장, 동서의 만남 2013년 9월 24일 북서울 시립미술관 개관전 / 백남준 작품 시장>이 소개되다. 동대문 시장 같은데 거기에 '보이스'가 등장, 동과 서의 또 다른 만남이다. - 김홍희 관장 총기획 더보기
[백남준] 한국 젊은 작가에게 주는 충고 "선진국에 딴죽을 걸기" 1995년 백남준 한국의 젊은 작가에게 주는 충고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자>그들에게 실험적으로 도전하고 대들고 도박하듯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자> / [백남준 1995년 후배 작가들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는 1) 강한 이빨론(동서의 문화가 어떤 것이든 다 씹어 잘 소화시켜라) 그리고 2) 선진국에서 하는 말에 대해 항상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반론(특히 서양의 이원론)과 딴죽을 걸고, 그들에게 실험적으로 도전하고 대들고 도박하듯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라] 백남준은 1963년 독일 첫 전시에 상징적인 몸짓이기는 하지만 서양미술의 목을 치다 //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자>“ 나는 청년들.. 더보기
[백남준] 1회 광주비엔날레(1995) 최고 공로자, 한국미술 세계화 닻 1984년 이전부터 백남준 조수를 한 폴 게린(그도 비디오아티스트)과 인터뷰(2022년) 중질문: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대답: 그저 백남준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를 존경하고 존중해야 되는 건 맞지만 그가 얼마나 유쾌한 사람이었는지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얼마나 풍자적이고 시스템에 반하는 사람이었는지. 많은 사람이 백남준을 특유의 방법으로 묘사하지만 저는 제가 예전에 했던 것만큼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백남준이 작고했을 때 저는 칼 솔웨이에게 편지를 썼어요. 제가 그 편지에 썼던 것처럼 다시는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편지를 다시 돌려 받으면 좋겠네요.본질적으로 백남준은 '아나키스트'였어요. 그의 친구들을 한번 보세요. 렌 긴즈버그, 주디스 몰리노 등 모.. 더보기
[백남준] 이경희 여사 1993년 그의 베니스 작품 보고, 쓴 감상문 그런가 하면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은 소리며, 재미, 화면의 변화와 형태가 복잡하고도 다양하고,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어서 제2전시실과 / 제3전시실 안은 관람객이 들어가기만 하면 그 어두운 곳에서 나오질 않았다. 하긴 텔레비전이란 화면이 자꾸 바뀌기 때문에 보게 되는 것이지 정지되어 있으면 오래 들여다볼 맛이 있을까? 백남준의 비디오 화면은 끊임없이 바뀌고 있었다. 두 군데 전시실에서 머리와 귀가 멍해질 정도로 뜻도 없이 윙윙대고 돌아가는 음악과 화면으로 얼이 빠졌을 관람객들은 이번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야외 전시장에 설치된 비디오 조각을 푸른 수목 사이사이에서 발견하고 감상하게 되어 있었다. 마르코 폴로, 칭기즈 칸, 알렉산더 대왕, 캐서린 여제 같은 이름의 비디오 조각이 있었는데, 백남준 전.. 더보기
[백남준] 1993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선정된 이유 백남준은 베니스비엔날레에 자기가 독일 대표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즉시 독일관 선정위원인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 교수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나를 선정해주어서 무척 영광이다. 그런데 독일같이 큰 나라에서 어떻게 나 같은 작은 한국 놈을 뽑을 생각을 했는지? 나에겐 독일 패스포트도 없고... 게다가, 이번 비엔날레는 독일이 통일된 후 첫 번째라서 보통은 동독 출신 작가 한 명과 서독출신 작가 한 명을 선정해서 참가시킨다는 생각을 할 텐데…" 했더니, 클라우스 부스만 교수는 "만약에 동쪽에서 한 사람을 택한다면 아예 아주, 아주 먼 동쪽인 '극동 지역 작가로 독일에 거주했던 한국인을, 그리고 한때 동독에서 살다가 아주 아주 서쪽인' 현재 미국에서 사는 독일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더.. 더보기
[백남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작품 구상(41개)에 대한 설명 자르디니 숲에 만든 백남준의 통로, '아시아로 가는 길' - 알리손 사라 재크(Alison Sarah Jacques) 기자와 나눈 인터뷰 비엔날레 신문에 실려 있었다. 그 주제는 결국 '동서의 연결(베니스와 울란바토르를 연결하다)'이었다. " 나의 비엔날레 작업은 대략 41개의 안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투영한 빛은 달에 의한 것이거나 태양에 의해 반사되는 빛입니다. 직접 발사되는 빛은 햇빛, 촛불, 그리고 교회의 창입니다. 그렇게 나는 반사에 의한 빛과 만든 빛을 사용했습니다. 첫 번째 파빌리온에는 만든 빛을 사용했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정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는 물고기와 함께 30초의 침묵을 그리고 하나는 요셉 보이스 같은 이미지의 30초의 멀티미디어를 그리고 나머지는 Living Theater.. 더보기
[백남준] 키치 선구자, 로봇에 '기' 넣어 살아 움직이게 백남준은 키치정신에서도 선각자다. 아는 척하는 않은 그의 반지성주의는 몸의 철학과 예술의 생활화과 통하죠.소통과 참여가 바로 그런 정신에서 나온 것이겠죠. 그는 TV에다 기를 집어넣어 살아움직이게 하는 요술가죠. 그리고 기계를 가지고 가장 재미있게 놀다간 사나이죠. 그런 흔적을 이런 작품에 남겼죠. 자연과 대화만이 아니라 기계와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나이의 본을 보이고 갔다. 앞으론 그런 인간형이 사회를 이끌어가게 될지 모른다위 백남준 'TV는 키치(TV is kitsch)' 1996 백남준의 장난기가 최고로 발동 더보기
[백남준] 1995년 베니스에서 한국미술의 '세계화' 선언 백남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개관할 때 백남준의 세계적 미술계 인맥이 총동원되었다. 그분들이 움직이도록 보이지 않게 로비를 했다. 1993년에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탔기 때문에 그의 말이 먹혔다. 또 한국관(세계 25번째, 동양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 독립관) 개관 기념 국립현대미술관이 특별전인 를 열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전시 제목도 백남준이 정한 것이다. 그때 국립미술관 측 담당 학예연구사는 안소연 씨. 그녀는 후에 삼성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베니스에서 개최된포스터] 이런 의미에서 1995년은 최소한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하 는 일에 있어서는 그 원년이 아니었나 싶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실험적인 전시 기획으로 유명한 미토(水戶)아트 타워와 .. 더보기
[백남준] 1996년 스스로 정리한 예술론(5개국어, 열쇠말) [백남준 1996년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1년 전 자신의 예술론(특히 미디어론)을 백서처럼 5개국어로 정리]  제목: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다시 말해 전자초고속도로를 발상한 이유를 말하다.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빠르게 쉽게 정보와 지식을 얻어 소통이 가장 빠른 사회 그래서 인류가 소외와 독점 없이 공존하는 평화 세상 해원상생>이 구현되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이상향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의 골자는 물론 소통과 참여다. 이는 가장 원활하게 한 것이 바로 굿과 샤머니즘이었고 이게 바로 현대미디어의 원류이며 자신은 그런 미학적 사상에 근간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왜 로제타 석이 이런 예술론은 새겼나? 이게 핵심어라는 소리다. 그 중 한부분만 소개: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더보기
[백남준] 예술, 지루한 일상에 재미(FUN FUN FUN) 던져주는 것 백남준 서구의 거창한 예술론 걷어차고 예술이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FUN FUN FUN)이라고 말했다> 백남준의 천재성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탁월한 철학에서도 엿볼 수 있다 // "루벤스 시대의 뛰어난 화가는 임금 얼굴을 잘 그리는 것이고 현대에 오면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거지. 결국 예술은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겠지. 지루한 일상에 재미를 던져주는 것. 사람들에게 무언가 할 거리, 볼거리를 만들어주는 거야. 요즈음을 보라고, 우리 주위에 어디하나 부족한 게 있냐고. 21세기는 살물건이 없는 시대야. 뭐든지 다 있거든. 그러니까 무언가 할 것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거야. 예술가는 욕망의 창조자가 돼야하는 거지." 더보기
[백남준] 작품, 첨단기술만 아니라 토목 등 모든 기술의 총집합체 백남준 가장 잘 아는 사람 그의 테크니션 이정성 대표, 1988~2006 그 이후 36년 백남준과 같이 했다. 미국에서 백남준 작품 못 고치며 서울에서 불러가기도 했다. // 아래 이정선 선생의 기록이다 // 백남준 설치미술 기술 조력자로는 말했듯이 아베와 나(이정성) 두 사람이 꼽힌다. 테크놀로지는 백남준 예술의 현실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 자체가 테크놀로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냥 드로잉으로 끝날 일인데, 비디오 아트가 드로잉으로 끝난다면 그저 페인팅이지, 비디오아트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동원되어야만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 백 선생의 작품들이었다. 지금 대표적으로는 메가트론을 언급하지만 또 스미소니언 미술관에 있는 작품 아메리칸 맵(아래 작품) 정말 천재의 작.. 더보기
[백남준] '1990~95' 한국미술세계화, 광주에서 '꽃', '96' 쓰러지다 1990년('보이스 추모굿'을 통해 한국 샤머니즘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다)-1991-1992년(국립현대에서 백남준 '비디오때 비디오땅' 전시를 열다 비디오아트를 세계적 기준에 맞는 시간 공간개념을 도입하다)-1993년 (미국최고미술관 휘트니전시를 한국에 직수입하다. 한국과학의 선진화를 위해 대전 엑스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열기 위해서 전초전)-1994년-1995년(광주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열다) 백남준 동네미술인 한국미술을 5개년 계획으로 세계미술 수준으로 끌어올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개막되어 백남준의 한국미술 세계화는 성공적으로 끝나다. 당시 1990년대 뉴욕 휘트니미술관 데이비드 로스 관장이 백남준에 대한 평가다. 이분 때문에 1993년 국현(과천미술.. 더보기
[백남준] <미디어의 기억(La Mémoire médiatique)1992년> 백남준 일제식민지 태평양전쟁 시대 다매체와 정보를 접하면서 경험한 뼈아픈 기억들 / 교실에서 무의식적으로 한국어 말했다가 한국 동급생으로부터 고자질 당해 일본 담임선생에서 혼나는 이야기 등도 나온다  영국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상대로 켈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뿌리를 뽑는 데 1000년이 걸렸다. (얼마나 심했으면 켈트어를 쓰면 모가지가 날라간다)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데는 겨우 3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식 완벽주의가 지닌고유의 '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루카치나 카프카도 작품을 헝가리어나 체코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썼다. 그것도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그렇게 했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영어로 쓰고 있다(물론 내 의지로). 조이스나 존 레논, 버나드 쇼, 와일드 혹.. 더보기
[백남준] 슈툭하우젠과 함께 1992년 피카소상 수상 60년대 질풍노도의 독일시대, 쾰른성당 앞에서 찍은 백남준 사진 TV화면 캡처 // [백남준예술의 원천이었던 쾰른] 쾰론은 백남준에게 그의 예술의 대전환을 가져온 도시였다. 이 도시에서 맑스는 1842년에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창간해 편집장이 되어 그의 혁명사상을 열정적으로 쏟아내기도 했다. / 여기서 백남준은 새로운 음악전자음악을 접했고 쾰른성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 쾰른성당에 스며들어오는 신령한 글라스 빛과 그것이 연출하는 색채에 반해 비디오아트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여기서 슈톡하우젠과 마리를 만나 예술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백남준은 슈툭하우젠과 1992년 공동으로 피카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보기
[백남준] 2001년, 영국 <그로브 음악사전>에 현대작곡가로 등재 2001년, 영국 에 백남준은 현대작곡가로 등재되다 Paik, Nam June, Stefan Fricke Published in print:20 January 2001 Published online:2001 opera sextronique, 1967 / My jubilee ist unverhemmet, 1977 / Bibliography Nam June Paik. Werke 1946–1976 (Cologne, 1980) [catalogue] T. Stooss and T. Kellein , eds.: Nam June Paik: Video Time – Video Space (Ostfildern-Ruit, 1991) E. Decker , ed.: Niederschriften eines Kulturnomaden.. 더보기
[백남준] 왜 독일에서 베토벤처럼 존경? 독일작가에게 묻다 백남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그가 독일국가관 대표 미술가로 나갔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에서 베토벤처럼 존경을 받았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많지만 2015년 취재한 사운드아티스트 독일작가 '알프레드 23 하르트'씨(아래) 대담에서 그 단초가 보인다. 아주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었다. 그의 한국인 부인이 통역했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인기가 높은 건, 알다시피 2차대전 이전은 프랑스가 세계미술을,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했다. 독일은 변방이었는데 70년대 요셉 보이스와 함께 백남준이 혜성처럼 나타나 소리와 영상을 뒤섞는 '전자아트' 를 창안해 독일미술을 세계적 위상으로 끌어올려 '아트스타' 가 되었다. 그는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을 뒤바꾼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한 다빈치 같은 예술.. 더보기
[백남준] 1996년 그의 수난 그리고 2000년 구겐하임에서 승천 예수의 죽음(수난)과 부활처럼 백남준은 뇌졸중은 쓰러진 것은 예수의 십자가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백남준은 2000년 뉴욕 구겐하임 회고전에서 레이저 아트를 통해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달콤하고 숭고한 천국으로 승천했다. 그리고 2000년 구겐하임 전시 전이 열리기 직전인 2000년 0시에 새로운 1000년을 맞이하면서 전 세계 60여 개국 는 위성아트를 보냈다. 여기서 백남준 글로벌 비저너리로 미래를 멀리 보는 유언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세기에 그렇게 고생한 한국은 그 보상을 받을 것이다. 21세기는 한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호랑이 시대가 될 것을 예언했다. 더보기
[백남준] '안심낙관(1999년)' 이 제목 '안빈낙도' 연상된다 백남준의 병원 환자를 위해서 만든 작품 그런데 이 단어를 들으면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인생을 안빈낙도(low price, high happiness 최저의 비용(청빈함)으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삶(극락의 실현) 과연 가능한가?)로 살면 이 세상의 모든 삶이 천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백남준 당뇨등 병이 많았기에 이런 작품에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인가 왼쪽은 1992년 작품이다. 우리가 수없이 봐왔던 부처를 첨단의 전자 부처로 변형시키다. 부처의 아우라가 최고도로 올라간다. 디지털시대 문맥에 맞추다 더보기
[백남준] 우리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근거, '스키타이 단군' 백남준 말처럼 한국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근거는 단군 신화에 있다. 두루 넓게 인류에게 도움을 주라는 홍익인간 즉 인류애와 형제애 사상을 품고 있다. 이렇듯 "단군 건국 신화에는 인류 보편의 인권 사상이 있다."(프랑스 출판 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건국 과정을 보면 인디언 학살에서 시작한다. 이런 나라가 세계를 호령할 수는 절대 없다. 세계를 호령하려면 도덕적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프랑스는 미국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자유의 여신상 (뉴욕)을 선물로 보냈다. 미국이 자유의 나라라는 이념이 있지만 이건 결국은 강자에게만 자유를 보장하는 절름발이 사상이다. 인디언에겐 자유가 없다. 인류 보편의 사상이 아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품어도 된다고 단군 신화는 말하고 있다. 백남.. 더보기
[백남준] 그리고 임충섭, 그에게 백남준은 이웃지기로 든든한 백 대표적 뉴요커 작가, 백남준과 임충섭 예술가란 시대의 우상과 처절하게 싸우는 사람이다. 백남준은 서양의 미신과 평생을 싸우다. 독일 첫 전시에서 아예 서구미술사에는 한번도 없었던 비디오아트라는 원자폭탄 떨어뜨리다. 내가 황색재앙이라고 하면서 내가 예술로 세계를 지배하는 칭기즈칸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그에게는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 임충섭 작가(82세 예고와 서울대 회화과 졸업)도 뉴욕에 50년 살면서 미국의 콘크리트 정글의 수직 문화에 대항해 한국의 심경, 어려서 냇물에서 놀며 즐기던 그 자연스러운 수평의 마음으로 싸우다. 아니 그는 한국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길로 그들을 파멸에서 구원하다. 백남준처럼 뉴욕의 파멸을 구원한 임충섭 작가, 그는 혼자 외로울 때 가까이 살고 있는 .. 더보기
[백남준] 자화상 <스키타이 단군> '두루 넓게 인류에게 이익 주는 인간' [1] 세계사는 선사시대를 알아야 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사는 단군시대를 알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백남준은 자화상이기도 한 '스키타이 단군(아래 작품 1993년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 수상, 단군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전자 인간으로 부활)'이 되어 두루 넓게 인류에게 이익을 주는 을 예술로 구현하다, 그 도구가 바로 액션 뮤직-미디어 굿-퍼포먼스-비디오-유튜브-생태보전-위성-레이저-인터넷-SNS 등등이었다. 스키타이 단군을 인류의 갈등과 대립의 문제 해결사로, 구세주로, 최고 미디어로, 슈퍼스타로 등극시키다. [2] 백남준 두루 즉 동서의 사람들을 연결하여 모두에게 이익을 주려는 예술철학을 가지다 TV 부처 : 동서를 연결 고리로 소통하기, 방법은 하이테크와 사상의 비빔밥, MEDIA 굿 : 동서의 연결 통.. 더보기
[백남준] 넘 완벽하면 신도 화 낸다 "When too perfect, lieber Gott böse" 백남준의 “너무 완벽하면 신도 화를 낸다”는 말은 완벽함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 또는 선불교에서 말했듯 "예술 작품이 너무 많은 의도를 드러내는 곳에서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달아난다고 보았다. // 독일 교수 Michael Schumacher 아래 문장에 대한 해석 너무 완벽하면 신도 화를 낸다(2000년 백남준 작품) 백남준 아티스트 소개 // 원래 백남준은 작곡가로서 예술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스승 볼프강 포트너는 한국 태생의 백남준을 "매우 특별하고 비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쾰른에 있는 WDR의 전자 음악 스튜디오에 추천했다. 이곳에서 그는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을 만났고 요셉 보이스도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었다. 1958년 미국 작곡.. 더보기
[백남준] 그의 책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살다' 제4부 편집자 서문 백남준 저서 제 4부 편집자의 서문 [백남준이 New York Times의 TV 평론가로 백남준보다 1살 아래인 존 조셉 오코너(John Joseph O'Connor 아래사진)와 시작한 서간 관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존 오코너(1933~2009)는 누구?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였다. 아일랜드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네 아들 중 한 명인 그는 뉴욕 시립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그는 1959년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서 카피 에디터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저널의 예술 편집자이자 연극 및 무용 평론가가 되었으며, 계속해서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서 활동했다. // .. 더보기
[백남준] 얼(정신), 얼음(정신 차려), 어른(정신 성숙), '얼'은 Media 즉 '굿' (영문) 포함 Media 中世신학의 개념으로 서신과 交流하는 手段, 모체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굿의 어원은 몽골어의 얼(정신자체)이니 Media와 굿이란 거의 같은 말이다."빛과 어둠(明暗)은 삶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무속의 굿(미디어)은 '어둠(暗)'을 수용하는 예술이고, 할리우드 미디어는 '빛(明)'을 향유하는 예술이다" Media 中世신학의 개념으로 서신과 交流하는 手段, 모체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굿의 어원은 몽골어의 얼(정신자체)이니 Media와 굿이란 거의 같은 말이다. 따라서 France의 Media가 멀리 한국의 굿을 취재하러 온 것은 자연이라면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보이스(Beuys)는 죽음에서 돌아와서 발언한 극소수의 인간 중 한 사람이다. 죽음이 싫으니까 우리는 갸웃이 넘보다가는 뒷걸음질한다. 공자.. 더보기
[백남준] 한 미국학자는 중국이 서구를 1300년 간 앞섰다 [한 미국학자는 아시아(중국)가 서구를 1300년 동안 앞섰다 그러나 백남준 아시아가 서구를 1500~1600년 동안 앞섰다고 본다?] 최근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하트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했다. 서기 2세기까지는 서양 문명이 중국 문화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으나, 그 시점에서 발전 규모가 역전되어 중국 문명이 서양 문명을 따라잡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세계문명을 15세기까지 이끌었다. [참고 중국에서는 서기 105년 후한시대 화제(和帝)때 궁중의 물자 조달 책임자였던 채륜(菜倫)이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채륜이 제지술을 개량했던 서기 105년 경은 한나라가 한반도에 낙랑군을 비롯한 4군을 설치했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동양이 서양을 앞서다] 그러나 15세기부터는 서양이 다시 선두주자가 되었다. 마이클.. 더보기
[백남준] 비빔밥(소프트웨어)의 미학-포스트산업시대 예술 비빔밥(소프트웨어)의 미학-포스트산업시대의 예술(1995) -백남준 // 상당히 긴 문장인데 앞부분만 살짝 소개하다. // 과거에 파인아트로의 미술은 경제생활의 끝자락에서 나오는 파생물, 장식으로만 여겨졌다. 예를 들어, 품위 있는 아들이 미술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방탕한 사람 취급하며 집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파인아트로의 미술은 경제사회의 원동력으로서 경제적 성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왜 코페르니쿠스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걸까? / 21세기를 살아남기 위해 / 하드웨어 자본주의'에서 '소프트웨어 자본주의'로 전환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Aesthetics of Bibim-bab [a rice hash]-The Art of Post Industry Era (1995) In.. 더보기
[백남준] 스카타이 단군과 홍익인간 단군이 생각한 홍익인간 두루 많은 사람들(우리나라만 아니라 인류가 포함된다)에게 넓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라 홍익인간의 이념을 정보시대에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람이 20세기이 등장하다 바로 백남준이다. 그는 비디오아트로 위성아트도 인터넷 아트로 전 인류가 원활한 소통을 통해 전쟁을 막고 세계 평화와 공존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예술을 펼쳤다 그래서 백남준에게 단군은 영웅이었다 그래서 백남준은 단군 스카타이 단군을 전자조각으로 작품화했다. 이런 사람이 나와 21세기 인류에게 희망을 주다. 고구려와 로마가 붙으면 고구려가 이긴다는 설이 있지만 한국역사를 보면 남의 영토에 대한 욕심이나 의지가 없다. 그렇게 평화와 공존 무엇보다 홍익인간을 이상적 인물로 삼았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과는 가치관 다르다. 더보기
[백남준] 'TV와 함께 요강, 놋그릇으로 연주하는 (전자)굿' [영어판] Gut played with chamber pots and brassware, along with TV [1] Gut, the original experience of Nam June Paik's childhood Gut was the origin of all arts to Nam June Paik Gut seems to be related to childhood memories. Once a year, on the first lunar month of the lunar calendar, the family brought a shaman and held a Jaesu Gut' or a Gut for good luck of the family to help the family business. Each t..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