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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백남준은 2009년 파워블로거들 초대하다

[슈퍼하이웨이 첫휴게소展] "백남준만 생각하면 나는 절로 부자가 되고 행복해 진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009년 5월 31일까지 기획: 토비아스 버거 학예실장 

백남준아트센터에 파워블로거로 초대받은 사람들 


백남준아트센터(용인시 신갈5거리 http://blog.naver.com/njpartcenter)는 작년 10월 <Festival Now Jump> 전시와 함께 개관하였다. 이 미술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학예실장인 토비아스 버거(Tobias Berger)를 영입했다. 그리고 그의 기획으로 첫 전시회 '수퍼 하이웨이 첫 휴게소(5월30일까지)'를 선보인다. 이는 1971년 백남준이 '초고속 전자 통신망'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온 것이다. 백남준의 정신을 잇는 젊은 작가들의 자발성, 창조성, 실험성을 읽을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관계자들은 다양한 블로거들과 자유롭게 대화시간을 가지고자 지난 5월 9일(토) '파워블로거 간담회'를 열었다. 나도 그 중 한사람으로 초대받아 한몫 끼었다. 좋은 시간이었고 백남준전을 다시 둘러보게 되었다. 나의 백남준아트센터 방문은 벌써 3번째다.   

# 셔틀버스 속에서 이영철관장과 나눈 백남준이야기 

백남준의 텍스트 중 하나 

나는 관계자 측에서 준비된 셔틀버스(단국대 건너편 한남동에서 출발)로 이동했다. 마침 백남준아트센터 이영철관장과 동석하게 되었고 30여분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관장은 백남준 텍스트(에세이)가 곧 책으로 발간될 거라며 흥분하고 있었다. 그 텍스트를 보면 그들 다시 새롭게 제대로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위의 텍스트도 그 중 하나다. '종이의 죽음'을 예언한 그가 얼마나 지적이고 선구적으로 살아갔는지 읽을 수 있단다. 

백남준이 생전에 강익중을 만나 대담하는 가운데 3000년대를 언급했다고 이관장에게 이야기를 꺼내니 백남준은 우리민족의 유목전통과 태곳적 역사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그렇게 멀리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과거를 모르고 미래를 볼 수는 없다. 모든 박물관(기념관)이란 과거를 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학습장이다. 그 기억들을 현재로 재창조하는 재구성하는 곳이다. 

우리역사는 과거를 묻지 말자였기에 그래서 한 번도 제대로 과거를 청산하지 않았고 그래서 미래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은 항상 악순환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려면(visionary)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일본이 만든대로 단군의 역사를 신화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글로벌 인코더 Global Encoder' 미국 산타바라라(Santa Barbara) 미술관에서 전시된 백남준 로봇 2000 

이 관장의 백남준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는 지구에 살면서도 외계인처럼 지구를 멀리서 조망했다고 한다. 위 작품에서 그런 외계인으로 산 백남준의 모습이 보인다. 5개 국어를 능수능란한 최고의 지성인으로 그는 인터넷 시대예고했고 그 이전부터 전세계의 신문을 다 읽었다. 그러면서 한 시대의 예언자로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어냈다.

그렇다. 조물주가 인간을 창조하듯 백남준은 인간조물주가 되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냈다. 여기 글로벌 인코더는 지구인 우주인 혹은 외계인의 모습을 하나로 통합하여 탁월한 조형성을 갖춘 작품으로 만들었다. 서구인들의 기계숭배주의나 논리만능주의와는 달라 보인다. 멋진 우산까지 쓴 이 우주인 지구인 외계인은 바로 백남준 자신의 초상화내지 자화상일지 모른다. 

# 이번 파워블로거모임에 참가한 사람들 

이영숙 http://blog.naver.com/jackiekeigh  윤지영 http://blog.naver.com/akeno1113 
권은경 http://blog.naver.com/eunicekk 이주영 grassrootsoutsourcing.blogspot.com 
김종수 http://goigoi.tistory.com  하현혜 orangetoon@hanmail.net 
전효진 http://blog.naver.com/hyoself www.day22.com 
안나 다니엘(Anna Daniell) http://www.annadaniell.com 
록사나 마누체리(Roxana Manouchehri) www.roxanamanouchehri.com 

저작권 록사나 마누체리(Roxana Manouchehri) 2007 

제임스 턴벌(James Turnbull) http://thegrandnarrative.wordpress.com james_turnbull@rocketmail.com 
티미 그래햄(Timmy Graham) www.timmygraham.org 
펜니 트롬슨(Penny Thompson) 
http://penelopethompson.blogspot.com http://art-n-about.blogspot.com 

 
제목 '꽃의 위력' 펜니 트롬슨(Penny Thompson)의 퍼포먼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인생을 즐기세요 꽃을 보면서..." 

On April 10 and 11, 2009 I did a street performance entitled "Flower Power" as part of the VIAF festival in Seoul. This was the 'Various Integrative Artistic Festival' held in conjunction with the cherry blossom festival on the island of Yeouido in the Han River in Seoul. 

The theme of the festival was "flowers bloom in the sky" referring to the multitudes of cherry blossom trees lining the streets, showering their petals down like pink snow in the breeze. 

I chose to create a special new performance for this festival called "Flower Power", as I wanted to give a message to busy city people to slow down and enjoy the beauty of life. 

# 즐거운 점심식사 

행위예술가 펜니 트롬슨와 블로거 제임스 턴벌과 대형벽화 작가 티미 그래햄(우) 

음식은 하나의 그림이다 

담백한 두부와 매운 김치와 기름기 뺀 돼지고기 참으로 코드가 맞는 음식이다. 멋진 삼위일체다. 육식과 체식이 골고루 다 있다. 돼지고기가 김치와 두부를 만나 느끼하지 않다. 이런 음식에는 한국적 맛과 함께 멋과 미의 정신이 깃들여있다. 백색의 두부와 적색의 김치와 갈색의 그을린 고기가 뚝배기와 잘 어울린다. 

음식 앞에 사람은 눈이 부자가 된다 

채색위주의 웰빙 아니 다이어트음식이다. 바다의 우유라는 굴을 쌈에 싸서 먹는 맛도 괜찮다. 밥상공동체는 요즘 갈수록 사라진다. 그냥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만 한다. 그런데 오늘은 음식도 우리와 말하듯 보름달처럼 밝은 블로거의 표정에 만족해 한다. 


밥과 말의 잔치가 통합되다 

밥과 말의 잔치가 하나 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음식이 외국인들이 먹기에는 좀 불편할 수도 있으나 한옥이 더 없이 편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창문 밖 오월의 싱그러움과 초록빛 풀밭이 찬란하다
. 

# 백남준아트센터 카페테리아로 이동 커피타임과 자기소개 

백남준아트센터 카페테리아 

식사를 마치고 명찰까지 달고 간단한 자기소개시간,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블로거들이라 소통과 참여라는 종목에서 적극적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스텝들이 번역과 안내 등에서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어간다. 

점차 블로거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짧은 시간에 서로를 알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사람을 알는 것이 즐겁고 흥미로운 것 같다. 요즘 난 나이가 든 측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움직이는 고등동물인 인간은 참으로 아름답다. 인간은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욕심이 많은 존재가 없으나 동시에 이 우주에서 이보다 더 매력적인 존재도 없다. 

한 블로거가 자신을 소개하자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맨오른쪽은 노르웨이의 젊은 작가 안나 다니엘 

지금 한 블로거가 자신을 소개하는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모두가 사람이면서 한 인간에 대해 가지는 호기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예술품의 예술품이다. 불로거는 가장 아름다운 21세기 인간예술품이다. 

동시통역을 하는 백남준아트센터 유경수 스텝 

나는 커피를 안 마시기에 그 많은 이름을 다 모른다. 라떼와 아메리카 커피이던가 하여간 그렇다. 커피색깔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향기는 또한 나를 황홀하게 하고 흥분시킨다. 이보다 더한 악마적 유혹은 없다. 그런데 나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 그런 커피 마시면 정신이 어지러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안 마신다. 하하하 

이란 작가 록사나 마누체리(Roxana Manouchehri)의 소개시간 

이번에는 이란에서 온 작가 록사나 마누체리(Roxana Manouchehri)의 소개시간이다. 나는 처음에 영어를 너무 잘 해 미국인인줄 알았다. 다시 보니 페르시아 왕족 같다. 눈빛이 클레오파트라를 닮았다. 신비하고 이국적이다. 어려서 본 아라비안나이트 영화가 연상된다. 

# 백남준 아트센터 1-2층 전시실 관람 

'TV 물고기' 3채널비디오형식. 미국무용수 머스 커닝햄이 춤추는 모습이 물고기 같다. 

이제 백남준아트센터 상설전시관은 이채영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아 안내를 받았다. 백남준에게 소머리는 뭔가? 한 시대의 터부를 깨는 것이리라. 동양의 백남준이 서양의 우상에 폭탄을 던져다. 그는 독일의 갤러리마다 다니면 유럽미술이 변화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계속 외치면서 문화테러리스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는 제사에 돼지머리를 올린다. 제전에서 피를 보는 그런 원리일 거이다. 신성한 정화는 제전에서 필수다. 그리고 춤이 있어야 한다. 물고기가 춤춘다. 여자가 없는 모임이 무효이듯이 춤이 없는 축제는 무효다. 여기서는 물 속에서도 춤을 춘다. 예술은 삶에 기를 넣는 에너지발전소이다. 동양미학의 핵심은 기운생동이다. 뭔가 작품에서 움직임이 느껴져야 한다. 현대미술의 특징은 바로 무브망이다(Mobile Art). 정지된 것에서 움직임을 주는 것으로 현대예술은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독일 부퍼탈 22번가 앞에 선 백남준 

백남준 독일에 있을 때 부퍼탈 22번지에서 그의 전위미술의 전성기를 보냈다. 아픈 추억과 괴상망칙한 소동이 많았던 곳이다. 이를 추모하는 사진들이 전시장에 벽에 걸려있다. 

50년대 말에 독일에서 부친 

백남준과 관련하여 독일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부친인 김갑권(1918~1970)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위 사진은 내가 최근에 발굴한 부친의 사진이다. 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온라인상에서 안 나온다. 다음(Daum)에 한 곳  그것도 내가 쓴 글이다. 그가 남긴 기록을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독일 있을 때 어머니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소문으로 듣기만 했지 내 손아귀에 없다. 

그는 수필가 전혜린이 독일유학 할 당시 그 중간기간에 독일에 있었다. 백남준이1956년 뮌헨대 철학과 음악 강좌를 듣기 시작했으니(어머니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1956년 2월 23일에 아버님이 서독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편지를 받았다고 함) 거의 동시기에 독일에 체류한 셈이다. 

부친은 독일가정에 홈스테이를 했는데 위 사진은 그 집 부인과 아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그 장소는 어디인지 모르겠다. 프랑크푸르트 근처가 아닌가싶다. 독일인에게 여기가 어딘지 묻고 싶다. 나이 들수록 부친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진은 스위스에서 찍은 것 같다. 장소는 제네바 같은데 모르겠다 

사실 나의 제2의 모국어(?)는 독일어이다. 무슨 소리인가. 나의 아버지는 독일의 BASF와 스위스의 CIBA 등 유명화학회사에서 현장실습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귀한 한 후에도 그곳에서 달력과 수첩을 보내주었다. 대부분이독일어다. 그래서 독일어를 모르면서도 나의 모국어라 우긴다. 

엉뚱한 이야기 하나 덧붙이면 독일은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면이 없지 않다. 내가 독일에 갔을 때도 그런 점은 느꼈다. 하지만 파독 간호보조사로 1970년 독일에 가 지금은 세계적 화가가 된 노은님을 만든 것도 또한 독일이다.

작가 노은님(1946~)은 근무(새벽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외 시간에 할 일이 없어 취미로 그린 그림을 그렸다. 그가 감기로 결근하여 간호장이 우연히 병문안 갔다가 그의 그림을 보고 감동 받아 병원회의실에 전시를 주선했다. 이를 지방지에서서 보고 함부르크 대학교수가 그를 그 대학 입학에 온힘을 썼고 나중에는 학생이 아니라 그 대학교수로 초빙된다. 신정아사건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로선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입학할 때 본인은 반대해도 병원 측에서 적극 지원했다는 말에는 입이 다물어진다. 그의 그림은 지금 프랑스중학교교과서에도 실렸다. 그렇게 보면 독불에서 뿌리를 내린 작가는 있지만 영국에서 한국인이 예술가로 뿌리를 못 내리는 것은 영국이 아직 계급사회 때문인가. 

노은님 관련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9677 

CIBA 회사수첩이다. 1961. 요일명이 3개 국어로 되어 있다 

독일어나왔으니 스위스이야기 하나 한다. 아주 어려서 스위스에서 온 CIBA(스위스 바젤에 본사)수첩은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요일명이 쓰여 있다. 난 50년이 다 된 이 수첩을 아직도 다행히 보관하고 있다. 이 수첩을 CIBA에서 경매로 사 간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것이다. 하하하 그리고 이 블로그 오른쪽 머리사진도 바로 부친이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수에서 누가 찍어준 것이다. 

하여간 난 움라우트 붙은 독일어알파벳에 익숙하다. 그리고 풍경사진이 바로 위에서 보는 것 같다. 1989년 처음 독일을 갔을 때 내 고향에 온 착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려서 독일달력이나 아버지사진에서 수없이 본 풍경이기 때문이다. 내가 버거실장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백남준의 색동을 응용하여 만든 다양한 색동노트 

백남준이 좋아한 색동으로 만든 색동수첩 어려서 한복을 입을 때의 행복이 다시 떠오른다. 이런 색이 주는 행복은 바로 안락한 가족애를 연상하게 한다. 색동저고리는 입은 여자 중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다. 

백남준의 색동화 작품들 

오방색계열의 색정적이라기보다는 색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색정적인 것과 색광적인 것은 뭔가 다른가. 그것은 색기와 무기(巫氣)의 차이인데 사실 큰 차이는 없다. 두 가지 공통점은 축제적이거나 제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색채감각이 없이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당이어야 한다. 백남준은 글로벌 아티스트 무당인 것이다. 

백남준과 관련된 잡동사니 글과 사진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이런 복제를 통한 전시방법은 가볍고 놀랍다. 하긴 복제는 오래전부터 예술의 중요한 한 요소이다. 19세기까지 모든 미술은 예쁘게 복제하거나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는 새로운(something new) 그림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은 예쁘지 않다. 낯설고 역겹다 그래서 어렵다. 이를 시작한 사람은 바로 뒤샹이다. 물론 워홀은 복제를 다시 복원시키긴 했지만 그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복제이다. 

현대시는 보들레르에서 나왔듯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샹에서 나왔다. 그래서 백남준의 유일할 라이벌은 뒤샹이다. 최근에 각광을 받는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 영국미술은 보들레르의 추악미에서 나왔다. YBA의 해골그림이나 그들의 구호인 'Down to earth'가 바로 보들레르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색동을 응용하여 만든 스카프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이저광선을 응용한 명품스카프, 검은색과 붉은색바탕에 청록적황색이 멋지게 어울린다. 모든 미술은 선에서 시작한다. 이런 선을 사람의 마음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흔든다.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백남준 I '슈베르트(Schubert)' 로봇 100*100cm 2001. 그의 로봇은 가장 오래가는 장난감일 것이다. 

슈베르트의 '숭어'가 생각난다. 숭어는 독일 어디에서나 쉽게 잡는 물고기라 물고기의 가지고 있는 음악성 톡톡 뛰는 느낌을 여기서 느낄 수 있다. 그런 리듬감과 유쾌함이다. 백남준의 손길에는 장난기와 익살과 해학이 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다. 손의 위대함이 느껴진다. 손에도 뇌구조와 연결된 표정이 있다. 

여러 작가가 쓴 '백남준전기'를 읽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 

여기서부터는 이채영스텝이 작품 설명을 맡았다. 두루 여러 비유와 설명으로 때로는 전문적으로 때로는 쉽게 설명을 해 주었다. 상상력발전소에 들어온 기분이다. 유머와 유희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고정관념을 던져버리기 등 관객들 생각을 코드 변화시킨다. 

백남준 I '작품(Work)' 작품재료 100*100cm 1970 

샬롯은 백남준이 연출한 에로티시즘을 꽃피운 미의 여신이다. 백남준이 만든 'TV브라'를 착용하고 있는데 남자의 손길처럼 그 브라가 작동하면 신음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며 너무나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물론 장난스러운 퍼포먼스이기는 하지만 백남준의 천재성을 샬롯은 자신의 예민한 몸의 감정으로 표출시켰다. 민망할 수도 있지만 그의 용기는 바로 그런 점에서 나오고 그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다. 

백남준의 애인 중 한 사람이다. 샬롯 무어만 그는 줄리아드출신의 첼로리스트 그러나 백남준을 만나서 진정 여성성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자신을 망가뜨린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전위예술가가 되었다. 이 연주자는 얼굴이 조각 같이 생긴 유태인출신이다. 백남준은 두 사람은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연애질(?)을 했다. 

백남준이 이 여성에게서 강한 모성과 여성을 동시에 그리고 미술과 음악을 동시에 동양과 서양의 감수성을 동시에 느낀 것 같다. 여성이 남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남성 백남준은 여성 샬롯에 통해서 진정한 천재가 되었다. 

백남준 I '로봇K-456(Work)' 작품재료 100*100cm 1970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 분야에서 백남준을 뺄 수 없다. 오른쪽은 이 로봇을 일본미술관에서 선을 보였을 때의 모습이다. TV 정원 연작과 아주 잘 어울린다. 이런 것은 1963년에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화랑에서 만난 일본인 슈아아베의 도움이 컸다. 

백남준의 영감을 받아 만든 꽃다발 

이런 꽃다발은 자연미와 인공미의 결합이라고 할까요. 부조화의 조화이기도 하고 최정화의 설치미술을 연상하게 도 한다. 이 작품은 디자인 그룹 밀와우키가 백남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것이다. Design by Milwaukee Organic Gardening Club, inspired by Ruin by NAM June Paik 

'버마 체스트(Burma Chest)' 1990. 플럭서스 카드 

백남준 패거리인 플럭서스들이 놀 때 쓰는 카드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매우 창의적 놀이 중 하나이다. 

백남준 I 'TV 부처' 폐쇄회로 1999 

백남준은 선불교에 심취했다. 존 케이지를 좋아하는 것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반가사유상처럼 아름다운 퍼포먼스가 없다. 나는 유연히 캐나다 몬트리올현대미술관에서 하루 8시간반가사유상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고 퍼포먼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황홀경은 이루말 할 수 없다. 정말 예술이다. 물론 고통의 극점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또 놀란 건 퍼포머가 70대 후반인데도 얼굴에 광채가 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사실이다. 

플럭서스 I '이상향지도(데콜라주 바다의 플럭서스 섬)' 1970 

백남준이 1964년 조지 마쿠나스(G. Macunas)에게 보낸 불어편지의 일부가 전시장 벽에 붙어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중앙조직화를 항상 반대한다네(Et par dessous tout je suis contre toute centralisation a priori)" 

플럭서스 문화패들의 이상향을 그린 지도이다. 기상천외한 발상들이 그득하다. 이렇게 성적 혹은 정치적 취향이 다양하다니 놀랍다. 그 당시에 전위부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카니바리즘(식인문화) 크루쉬토이즘(?) 정말 다양한 종교의 공존이다. 역시 백남준 패거리의 독특한 시선과 종교적 시각의 대한 다양성 인정과 각자의 고유한 색채를 드러낸다. 매저키즘 69%는 이해가 되는데 선불교 -10%는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플럭서스가 만들어낸 창의적 놀이기구들 

여기서 세계 여러 나라의 창의성 점수를 노벨과학상을 통해서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미국 227 영국 74 독일 69 프랑스 30 스웨덴 15 스위스 15 네덜란드 14 일본 12 중국 4 한국은 아직 없다. 이것이 다는 아니지만 이런 자료에 의하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창의성이다. 문화와 과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창의성개발이다. 

우리는 항상 창의성이나 축제보다는 돈과 출세가 먼저이다. 일류주의는 열등감의 소치이다. 돈이 최고인 나라라명예는 필요 없는 가보다. 그런데 잘 놀줄 알아야 천재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싶다. 한 줄로 세우는 일제고사가 있는 나라는 그런 면에서 문제가 많다. 공부 잘하는 바보를 대량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가장 경쟁력은 창의적으로 유희하는 인간에 달렸다. 백남준은 바로 그런 전형을 보여줬다. 

백남준 I '찰리 채플린(Work)' 로봇 1990 

백남준은 많은 로봇을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과 백남준은 닮았다. 인류 최고의 광대인데다가 유머정신으로 똘똘 뭉치고 자본주의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인간의 소외와 고뇌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서민의 애환도 대언하였다. 그런 이미지를 작품에 그득 담았다. 한 시대의 코미디언 그는 바로 예술가이고 작가이다. 

백남준의 유치원 동창인 수필가 이경희씨 

백남준의 소꿉친구이자 첫애인인 이경희씨가 백남준을 증언하고 있다. 이럴 때 미디어기술은 빛난다. 

백남준집안은 태창무역주식회사를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거상(재벌) 

그의 집안은 종로네거리 대대로 내려오는 견직물 거상으로 조부 백윤수씨는 구한말 경성상업계의 상권을 좌지우지 했다. 태창무역주식회로 토착자본을 형성하였고 태창재벌은 형성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재벌이 되었으나 4월 혁명과 5월 군사정변으로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고 거의 몰락하다시피 한다. 

백남준은 어려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일본과 타협하고 이승만 정권과도 거래 등 재벌(거상)로 사는 가진 자의 비리를 봤기에 마르크시즘에 경도됐다. 그래서 독서량이 많은 그가 15살(당시에는 지금과 비교해서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성숙한 나이) 때 이미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가 주도한 대구폭동(1946년)에 참가하기도 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아트숍 전시물 앞에서  

백남준의 천재성을 바로 악동인 골목대장의 영웅체험과 장난꾸러기정신을 세계화했다는 데 있다. 그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연고한다. 잘 노는 아이의 전형을 백남준이 동네에서 배운 것이다. 그는 당시에 잘 놀기도 했겠지만 독서량이 많았다. 하여간 그의 못 말리는 개구장이의 근성은 다분했다. 거기서 배운 것은 바로 여성을 배려할 줄 아는 신사도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영웅심인지 모른다. 

오토밀 I '비디어작품(Back to Fucking Cambridge)' 

오토밀의 이런 비디오자료를 보고 웃지 않을 수 없다. 백남준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노는 천재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은 제대로 놀 줄 몰라 불행하다. 돈의 지배냐! 축제의 회복이냐! 이것이 백남준의 평생의 화두였다. 

# 백남준이 초대하고 토비아스가 기획하고 

버거실장이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회 슈퍼하이웨이 첫휴게소를 직접 소개하고 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백남준을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영원한 문화뱅크이자 삶의 지주이자 백(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번 블로거모임도 죽은 백남준이 초대한 것이다. 그는 죽어서도 이렇게 우리에게 축제의 자리를 마련한다. 버거를 통해서 말이다. 이렇게 나는 백남준만 생각하면 절로 부자가 되고 행복해 진다. 

그는 유일무이하게 전세계를 호령한 문화의 징기즈칸이다. 이런 천재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그는 우리의 역사에서 천지인을 기호화하여 세계최초의 독창적 언어를 창제한 세종대왕시대 이후 가장 창의적 인물로 그를 들수밖에 없다. 그는 21세기 한국주도의 미래의 창을 활짝 열었다. 

슈퍼하이웨이 첫휴게소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오마이블로그를 참고하시면 된다. 
주소 http://blog.ohmynews.com/seulsong/rmfdurrl/259769 

# 노르웨이, 호주,  미국, 이란, 한국 등 파워블로거들 이야기 한마당 

블로거들의 진지한 토론장면 

관계자 측에서는 백남준아트센터블로그 활성화에 대한 고민도 드러냈다. 요즘 개인뿐만 아니라 단체나 기관마저도 블로그에 관심이 높다. 저비용 고효율의 가능성 때문이리라. 하여간 블로그로 <일인 미디어시대>가 열렸다. 내가 블로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KBS방송을 하나 가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거기에 취향과 관심분야가 다를 뿐이다. 그리고 백인백색이라고 그 다양성이 큰 장점이다. 

여기서는 블로거들 얼굴이 조금 진지하고 무거워진다. 블로그는 자율성이 높은 만큼 책임성도 크다. 일반 웹 보다 더 자주 업그레이드된다. 신속성이 있고 시공간도 초월한다. 글을 쓴다는 건 가장 많이 공부하는 것이다. 글을 정리하다보면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논리적으로 체계화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록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 

블로거시대의 새로운 도전 

블로거시대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는 더듬어보는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하다. 뭐 제약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그렇게 쓰는 것이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블로그를 쓴다. 그리고 그것이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다. 감동을 주거나 공감을 일으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블로그에 붙는 말은 그밖에도 많다. '온라인 실존'이라든가 '내가 바로 미디어매체 작가나 평론가 수필가' 등등 그리고 다른 의미로는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노출증적 성향'이나 '자뻑' 혹은 '자기애나 나르시시즘' 하긴 이건 일반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하버드대학졸업생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고 물으니 60-70%(?) 글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단다. 사실 블로그는 혼자 스스로 대학을 차려 좋은 대학생이 되는 격이다. 열심히 글을 쓰다보면 지적수준이 높은 지성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교수대신 인터넷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여 그런 면에서 좋은 시대가 왔다. 미네르바의 등장은 환영할 일이다. 객관성 과학성 타당성은 댓글로 정검된다. 이런 시대를 연건 바로 백남준이다. 


기사와 블로그는 미술관으로 비유하면 갤러리와 대안공간과 같은 것이다. 전자는 정형화 후자는 비정형화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비상구가 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블로그가 아닌가싶다. 나의 미술블로그는 지방에 계신 분들에게도 서울의 전시현장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어 좋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관장의 격려사 

이 관장의 격려사 짧지만 힘이 된다. 그가 실장을 독일출신의 버거를 선출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히딩크가 한국축구의 감독이 되었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그런 것이 바로 백남준의 정신이다. 소통과 참여로 선수들을 독려하고 격려하여 4강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4년-5년 계약으로 외국인을 쓰면 어떨까 생각한다. 마냥 하는 것이 아니고 4-5년 정도는 맡길 수 있지 않을까싶다. 그런 경우는 어느 나라도 없지만 우리는 세계에서 맨 처음으로 시도하면 어떨까싶다. 그런 블로그는 안 생기는가. 그것이 백남준의 정신 중 하나가 아닌가. 

이영철관장과 이란작가와 대화하는 모습 

이 이란작가는 특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태고의 페르시아문화를 몸에 간직한 블로거로 21세기에 한국에서 만나게 된 것은 백남준 덕분이다. 이 관장은 이란의 유명한 여성작가 시린 네샤(Shirin Neshat)이야기를 꺼내며 말문을 연다.  이라크 이란은 세계문명의 발상지로 우리가 공부할 분야가 많다. 그런데 우리가 서구적 잣대로 보니 그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파워블러거 백남준아트센터방문기념사진 

오늘만큼은 모두가 새로운 나 그리고 지속적인 사고의 혁신을 꿈꿀 수 있는 하루였다. '소통과 참여'라는 백남준의 정신에 조금은 접근한 셈이다. 물론 버거실장의 공이 컸다. 모두 흐뭇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추신 I 백남준은 황석영 등등의 부류와는 너무나 다르게 순수한 영혼이다. 
목수정의 글을 여기에 링크시킨다. "늙은 광대들의 슬픈 코미디는 그만"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3874 

# 다시 인사동으로 

인사동 안국역 입구 거리의 행위예술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한번 감상해 보시죠 

전통한식식당 지리산 입구 

인사동에는 식당이 다양하다 '지리산'이라는 식당으로 메뉴 중에 한번도 안 먹어 본 것이 나올 정도로 묵은 짠지와 60년대 음식들도 볼 수 있다. 모양과 냄새가 진하다 그만큼 깊은 맛이 난다. 


지리산식당 내부 

마루 사이로 물이 흐르고 물고기도 있다. 거북이 등 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그득한 식당이다. 

# [리뷰] '작은 그림 큰마음전' 
노화랑(대표 노승진) 2009년 5월 20일까지 2백만원 균일전 


이왈종 I '제주생활의 중도(Work)' 장지에 혼합재로 2008-2009 

그의 그림은 중도의 생활미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지나침이 없고 마음 편하다. 민화를 볼 때와 같은 기분이다. 그가 교수생활을 포기하고 제주도로 내려간 것도 서울에서 집중되는 생활보다 먼 지방의 생활을 택한 것이다. 그의 그림을 대할 때마다 첫인상은 "야 참으로 그림이 정겹구나"하는 것이다. 

이왈종 I '제주생활의 중도(Work)' 장지에 혼합재로 2008-2009 

이왈종관련 오마이블로그기사 꽃을 집보다 여자를 남자보다 크게 그리는 화가 
http://blog.ohmynews.com/seulsong/228103 

김태호 I '내적 리듬(Internal Rhythm)' 아크릴재료 25*23cm 2009 

김태호작가의 내적리듬 연작이다. 구상보다는 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색채가 화사하면서도 내적 리듬도 조금씩 다르게 매우 다양하게 구사되어 있다. 그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그의 *홈페이지를 참고 하면 좋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그의 내적 내재율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 http://www.artthkim.com/main.htm

"그의 '내재율'은 실제의 각인에 의한 요철들이 만들어 내는 경계와 무수한 구멍들로 현실화되었다. 다시 말해, 그림같이 그려냄으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조각해서 각인해낸 미세공간들의 집합과 도열의 형식을 빌림으로써, 내재적 진동을 기대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 '내재율의 세계' 중에서 - 

황주리 I '그대 안에 풍경' 아크릴 20*25cm 2009 

도시의 작가 황주리는 10년 이상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유목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뉴욕은 언어가 50개국 이상이 혼재된 가장 멀티플한 도시로 그가 맛볼 수 있는 도시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 그는 도시인들 특히 연인들의 복잡 미묘한 상황을 흥미진지하게 표현하고 있다. 

도시에 흔히 보게 되는 남녀의 포옹이나 입맞춤 그런 것이 주는 감흥과 영감은 작가의 뇌리에 오래 남는 모양이다. 사랑은 터치에서 시작된다. 백 마디 미사여구보다 한 번의 키스가 사랑에는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이란 하면 할수록 더 외로워진다는데 함정이 있다. 그것이 깊어져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낫고 싶은 않은 병인지 모른다. 

황주리 I '그대 안에 풍경' 아크릴 20*25cm 2009 

남녀가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 장면은 얼마나 정겨운가. 그러나 현실이 꼭 이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꿈을 가져본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그것을 도시의 풍속화로 그린다는 것은 예술가만 할 수 있는 특권인가. 아니 관객도 같이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키스는 현실 속에서는 순간적이지만 그림 속에 영원하다는 것이 역시 가장 큰 장점이다. 일종에 죽지 않은 죽일 수 없는 키스장면인 셈이다. 


황주리 I '그대 안에 풍경' 아크릴 20*25cm 2009 

# 아프리카미술전-케냐 음부티아(James Mbuthia)전 
인사동 통큰갤러리에서 2009년 6월 2일까지 기획: 정해광 

음부티아전과 관련된 기사 '아프리카로 간 샤갈'-음부티아 전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5/11/0200000000AKR20090511157500917.HTML?did=1179m 

통큰갤러리 입구 전시포스터 통큰갤러리 02) 732-3848 

케냐의 주목받는 화가인 제임스 음부티아(James Mbuthia1958~)전이 인사동 통큰갤러리(옛 동이갤러리 02-732-3848)에서 6월 2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독학으로 회화를 공부했고 나이로비국립병원 미술치료에도 참여했다. 그는 입체주의와 중첩주의를 통해 그의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부티아 I '작품(Work)' 작품재료 130*105cm 2008 

음부티아는 미국대통령 오바마 부친의 고향인 케냐출신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색채의 향연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 가장 풍성하고 강력한 빛을 발하는 곳은 아프리카다. 그래서 아프리카 화가들의 컬러는 가장 황홀하다. 재독화가 노은님도 동양품의 흑백작품을 하다가 강력한 색채를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가 아프리카여행을 한 다음이다. 

음부티아 I '작품(Work)' 작품재료 80*80cm 2008 

그의 그림은 색채와 형태와 구성과 배합에서 완벽하다. 어디 나무랄 데가 없다. 놀랍고 신기하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그린다. 그래서 더욱 환상적인 인상을 준다. 샤갈의 그림에서도 보면 바이올린연주자는 그냥 하늘을 날아다닌다. 여기서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인상을 받는다. 

물고기의 눈과 사람의 눈이 하나가 된다. 물아일체의 세계가 아프리카에도 역시 통한다. 인간의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맞추면서 대화하고 소통하고 교류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부티아 I '작품(Work)' 작품재료 100*100cm 2000 

이 세상에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천국 또 있을까. 물론 현실적인 그림이 아니고 이상적인 그림이기는 하지만 역시 사람들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끄집어내어 그려주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관객을 작품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아프리카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음부티아 I '작품(Work)' 작품재료 50*75cm 2008 

여기 두 소녀는 동화 속 주인공이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우주의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것 같다. 꿈의 요정으로 마치 하늘이 바다처럼 보인다. 그리고 너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인다. 이런 그림은 현실을 미화했다기보다는 보다 많은 꿈을 가지고 현실의 아픔과 슬픔과 배고픔과 아쉬움을 극복해보려는 일종의 도전이 아닌가. 

음부티아 I '작품(Work)' 작품재료 40*40cm 2008 

볼룸 풍성한 두 여인은 피카소그림을 연상시킨다. 몸에서 나오는 생명을 잉태하는 자로서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머리모양이 너무 대조적이지만 둘은 너무 잘 어울린다. 균형감이 없은 균형감이라고 할까. 눈빛에 생기가 돈다. 목이 긴 것은 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청색과 적색의 대조미도 괜찮다. 

박병해 I 인사아트센터 '낮은 미' 100*70cm 2008 

# 한생곤
_우연의 초대(An occasional encounter) 10번째 개인전 
담갤러리에서 2009년 5월 27일까지. 작가소개 한생곤 서울대 서양화가 졸업 1966년 경남 사천생 
<길위의 화가가 그린 곰삭은 가겟집들> 오마이뉴스 백종옥기자의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15288 

한생곤 I '접시꽃어머니' 캔버스와 혼합재료 117*91cm 2008 

"평생을 살아봤자 내 잘난 자랑만 일삼을 따름이니 생각하면 허망할 사뜬 일이로다" - 한생곤 

"1990년대 중반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될 쯤 그의 화두는 분명히 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1991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1999년 같은 대학원에서 '깨달음의 회화적 수렴에 관한 연구'라는 졸업논문을 쓰면서 오랫동안 자신의 삶과 예술이 진실하게 만나는 소실점을 찾으려 고뇌했다. 2002년 이후 현재까지도 화실 겸 숙소인 중고버스 하나에 의지해 전국을 떠돌며 유랑화가로서의 온몸으로 던지고 있다"  백종옥기자의 기사 中에서 

그는 최근에 결혼을 했고 고향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그의 정신에는 그런 개인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어느 사상이나 고정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변함없이 유목하는 자세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한가지 것을 추구한다. 바로 인간답게 사는 정겨움과 훈훈함 말이다. 그것을 빼놓고 그의 그림을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인간미와 휴머니티가 물씬 풍기는 그런 화가다. 

한생곤 I '메주 어머니' 캔버스와 혼합재료 117*91cm 2008 

한생곤의 그림은 경험적인 그림을 너머 깨달음의 그림이다. 삶의 노마드와 방랑과 고단함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을 그리는 것의 그의 그림세계다. 그런 깨달음은 동양적 지성의 최고봉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냥 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삶에서 나온 것이기에 생명력이 넘친다. 그의 그림은 바로 그런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한생곤 I '매실어머니' 캔버스와 혼합재료  145*112cm 2008 

"시골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아낙네 같은 사람이 화면 위쪽에 자리 잡고 있고 앞으로는 크고 작은 둥근 용기들이 놓여있는 그림이다. 그 안에는 자신의 텃밭에서 키운 과일, 채소 또는 먹음직스러운 떡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들을 쓰다듬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이제 곧 오가는 사람들이 그가 내놓은 양식들을 가져가게 된다. 

이 순간 그는 너무나 풍요롭고 평화롭다. 그래서인지 후광을 하고 가부좌를 튼 그 모습이 언뜻 화순 운주사의 투박한 돌부처처럼 고즈넉하게 보인다. '장바닥에서의 성화(聖化)!' 바로 그 순간이며 화가 한생곤이 행하는 유목이 '지구별 성지순례'로 도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백종옥기자의 기사 中에서 

'장바닥에서의 성화'라 참으로 그의 미술세계를 꿰뚫어 보고 한 말이다. 길위에서의 화가라는 말처럼 그의 그림에도 어떤 목적지보다는 한 도정에 있다. 그 과정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그런 구도자의 모습을 보인가도 할까. 그의 그림은 그래서 예술보다 예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한생곤 I '논 어머니' 캔버스와 혼합재료 145*112cm 2008 

"말하자면 그는 수행 같은 여로에서 인연을 맺은 자연과 문명으로부터 온 작은 부유물을 '소멸의 제의'를 통해 무형화(無形化) 시키고 다시 자신의 작업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심미적으로 윤회시키는 불교적 유목주의를 치열하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백종옥기자의 기사 中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하나 지워나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길을 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은 물론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다. 그러나 그가 낸 길에는 어느새 아무도 모르게 노란 들꽃이 피어나고 하얀 구름이 멀리서 피어난다. 그리고 거기 하늘에 새로운 그림이 보인다. 


# [리뷰] 정해광 아프리카미술을 외치다 
조선일보미술관에서 2009년 5월 20일까지 기획: 정해광 

이 전시와 관련된 블로그뉴스 http://kr.blog.yahoo.com/dlghd42/MYBLOG/dist_frame.html?d=http%3A%2F%2Fkr.blog.yahoo.com%2Fdlghd42%2F5493%3Fm%3Dc%26amp%3Bno%3D5493&s=d 

정해광 아프리카미술을 외치다 

정해광박사는 아프리카미술을 머리로 느끼고 가슴으로 생각하는 미술이라고 외친다. 아프리카는 유럽과는 반대로 간다. 그러나 극점에서는 서로 만난다. 피카소가 유럽미술의 극점에서 아프리카의 조각과 만나 현대미술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그리고 미술의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색채에서 아프리카는 가장 많은 햇빛을 가진 곳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볼 수 있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아프리카를 여행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현대미술을 이론적으로 공부하려면 뉴욕이나 런던 베를린이나 파리에 가야하지만 진정한 색채화가가 되려는 작가는 아프리카를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진정한 색채를 봤다고 할 수 없다. 그런 빛깔을 보지 못했다면 아프리카작가들의 색채화라도 봐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미술의 고향은 아프리카이다. 

아세파(1967~ Getahun Assefa) I '작품(Work)' 작품재료 140*120cm 2008 

이런 세련된 그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에티오피아 화가 아세파의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기독교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예수가 그의 식민지조국의 앞잡이를 하던 헤롯의 학정에서 아이들은 죽이는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피신한 곳이 바로 에티오피아가 아닌가. 지금도 원시기독교의 원형이 남은 곳이 에티오피아다. 

에티오피아는 사실 아프리카 중에서 가장 앞선 문화를 가진 나라가 아닌가 싶다. 이런 수준의 그림이 나오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튤립은 연상시키는 붉은 꽃의 모양과 여인의 신성한 표정이 너무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 붉은 기운이 낭만적이면서도 성적이다. 온 대지에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 그리고 만물이 붉게 불탄다. 

아세파 I '작품(Work)' 작품재료 110*150cm 2008 

여기서는 더 세련된 모습이다. 클림트의 그림보다 더 에로틱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름답다. 드러난 다리가 미끈하다. 온몸에서 활력이 품어져 나온다. 장미의 강한 향기가 온 대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다. 꽃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 같다. 여인들의 머리스타일은 영락없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 같고 클림트의 요부들 같다. 

타데세(Mesfin Tadasse 1953~) I '작품(Work)' 작품재료 100*70cm 2009 

여기에 오면 이는 마치 중세기 성화를 보는 것 같다. 천재화가가 아니면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유럽의 화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부분 이런 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화가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다. 역시 얼굴의 표현이 특이하다. 머리카락이 없이도 인간의 표정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키부티(Kivuthi Mbuno 케냐 1947~) I '작품(Work)' 작품재료 97*67cm 2008 

키부티와 관련 정해광 해설 블로그 http://cnbnews.com/category/read_org.html?bcode=77649 

키부티는 초자연(supernature)을 그리고 있다. 20세기 유럽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있었지만 현실은 현실로 그래도 그것을 한단계 넘어서는 자연을 그린 것이다. 바로 작가의 안목을 통해서 자연이 거듭난다. 마치 삭막한 겨울풍경에 흰 눈이 내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듯이 여기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완전히 새롭게 해석되고 창조된 자연이다. 

인간과 자연과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산과 대지와 풀과 하늘과 구름이 작가의 눈에서 필터화과정을 거쳤다. 

케베(Ibrahima Kebe 세네갈) I '작품(Work)' 작품재료 97*67cm 2008 

세네갈 작가 케베의 그림이 주는 분위기는 소박한 토속주의 풍이다. 그림을 보는데 부담이 없다. 마음을 넉넉하게 열어준다. 아프리카의 평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한다. 이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인정과 정겨움이 넘친다. 인간의 선량함을 잘 그리고 있다. 

케베 I '입맞춤(Work)' 작품재료 97*67cm 2008 

이런 그림은 UN총회에 걸릴만하다. 온 인류가 이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평화가 멀지 않을 것이다. 키스하는 장면을 잘 그리는 화가가 진짜 천재다. 이 화가의 마음에 얼마나 사랑의 에너지가 넘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키스를 해본 사람은 절대로 자살할 수 없다. 이런 황홀한 경험을 두고 어찌 죽을 수 있겠는가. 

하긴 모든 것이 다 키스다.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미술과 키스하는 것이고 여행을 하는 것도 그 나라와 키스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키스는 인간을 구원한다. 다양한 키스가 많은 삶이야말로 시간을 죽이고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키스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하는 순수한 키스다. 

카툰(Joseph Catoon 1973~ 케냐) I '작품(Work)'95*130cm 2008 

피카소가 모방한 것이지만 위에서 보는 탈 모양의 얼굴은 아프리카적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앞에서 소개한 음부티아와 유사점이 많다. 과감한 생략으로 형태를 단순화시키면서 전위적인 현대미도 보인다. 

그들의 문양과 패턴은 그 어느 의상디자이너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얼룩덜룩한 무늬들이 사람의 눈을 현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편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들의 색채는 태양의 빛 속에서 충분히 삭힌 그런 분위기다. 빛이 모자라는 법이 없다. 오히려 절제된 빛깔이다. 

카툰과 관련 정해광 해설 블로그 http://bizlife.kr/news/detail.asp?ID=76757 

카툰 I '작품(Work)' 85*130cm 2008 

아프리카왕족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번역이 필요 없는 색채와 형태를 통해서 충분히 작가의 감성과 생각을 추리할 수는 있다. 왠지 모르게 아랍풍의 문화적 배경도 깔려 있는 것 같다. 그 다양하고 독특한 문양이 특히 현란하고 눈부시다. 

아느와르(Sadat Anwar 우간다) I '작품(Work)' 작품재료 100*100cm 2008 

"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어머니를 보냈다" - 아프리카신화 

아느와르는 어머니를 포함하여 여성을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린다. 그의 가면무도회에 쓰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여인들의 모습이 너무나 우아하고 감미롭다. 목이 길고 몸은 가냘프다. 매우 세련된 색의 배합 속에 현대적 신화와 축제를 유발시킨다. 눈빛에는 광채가 나고 입술은 야수파가 배운 것인지 제멋대로 색을 칠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 조화를 이룬다. 

아느와르 I '작품(Work)' 작품재료 35*50cm 2008 

이렇게 아담한 미인이 있을까 어깨가 부드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가슴이 크지는 않지만 매우 귀여운 몸매를 갖추고 있는데 그 몸의 카리스마가 커 보인다. 표정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속내가 다 드러난다. 너무 귀엽고 애교까지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의 미인들은 매우 다양한데 이런 여성의 매력은 아주 독특하다. 

아마르 I '작품(Work)' 작품재료 100*80cm 2007 

이 작가는 원래 우리나라의 수묵처럼 모노톤의 작품이 많은데 이 작품은 특이하게 채색화이다. 아주 전위적인 실험미술을 연상시키는 추상화다. 이런 것을 보면 미술의 원형을 생각나게 한다. 한국의 김구림의 근작에서도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여간 그의 그림이 주는 자유분방함과 기운생동 그리고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상상의 세계가 다채로운 색채와 변화무쌍한 형태로 형상화되었다. 

아프리카전 기획자 정해광박사의 인사말 

정해광박사 최근 4월에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신보다는 신앙을 이데올로기보다는 이데아를 추구한다"는 말이 아프리카인들의 특징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신성와 인성의 조합과 신을 절대화하지 않은 그들은 조각이나 회화가 많은 것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역시 머리와 가슴이 유럽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모양이다. 

# [리뷰] 피엣 스톡만PIET STOCKMANS 도자기전 
통인옥션미술관에서 2009년 5월 18일까지 
벨기에 도자기 디자이너 피엣 스톡만 
http://www.ceramicstoday.com/potw/stockmans.htm 
도자기의 나라에 도자기를 선보인 사나이 
http://news.joins.com/article/3607985.html?ctg=12 

피엣 스톡만 I '작품(Work)'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령토로만 사용하는 벨기에 출신 도자기 디자이너 피엣 스톡만(Piet Stockmans 1940~)은 벨기에왕실에서 사랑받는 작가이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되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는 것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그의 청색은 독특하여 페엣 스톡만 블르라고 한다. 회색빛이 도는 그의 청색은 얼핏 봐도 품격 있으면서 은은하게 빛난다. 

피엣 스톡만 I '작품(Work)' 

도자기의 나라에서 그의 도자기를 보면 뭐라고 할까 도자기보다는 하나의 도자기를 종이처럼 자유자재로 만든 것 같다. 매우 섬세하고 우아하고 세련되게 보인다. 서구인의 미의식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역시 동양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자기를 평면으로 그린 작품은 회화작품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보기 드문 일이다. 

피엣 스톡만 I '작품(Work)' 

피엣 스톡만 I '작품(Work)' 

"It is a quest for simplicity, peace, physical well-being" 그의 작품의 키워드는 단순함 평화로움 그리고 웰빙인가. 하여간 색채와 모양 그리고 분위기가 아주 차분하면서 품위 있고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피엣 스톡만 I '작품(Work)' 

그는 도자기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태양의 분위기가 아니라 달의 분위기다. 그의 도자기를 내려놓으면 마치 은하수에 위에서 무수히 많은 구름떼가 수를 놓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다. 그의 은은한 색채가 거기서 더욱 광채를 낸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와 그가 만든 도자기나 찻잔 그리고 접시들을 손으로 만지고 싶게 한다. 

#[리뷰] 안덕춘 목칠공예콜렉션:꽃의 숨결(The Energy of Flowers) 
인사동통인화랑에서 5월 19일까지 작가소개 안덕춘(安1德春 1952~) 전주대 디자인부 교수


안덕춘작가는 아직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다. 화랑자료에 보면 그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천연도료인 옻칠을 이용한 장신구류인 브로치, 목걸이, 헤어핀, 핸드폰줄 등 신변 장신구류와 장신구함 등을 선보인다. 꽃의 숨결(The Energy of Flowers)이라는 테마는 꽃의 이미지와 피어나는 숨결과 같은 아름다움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안덕춘 I '꽃의 숨결(The Energy of Flowers)' 작품재료 100*100cm 2009

"작가는 목심칠기, 합성수지, 건칠(협저칠기, 탈태칠기), 유리, 자개 등 생활칠기전을 주로 전시해 왔다. 이번 전에서는 옻칠, 흑칠, 주칠, 색칠을 이용한 장신구의 교칠기법, 난각, 나전기법 등을 선보인다" 


안덕춘 I '꽃의 숨결(The Energy of Flowers)' 작품재료 100*100cm 2009 

꽃이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앙증맞고 귀엽고 예쁘고 마치 연못에 꽃잎들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안덕춘 I '꽃의 숨결(The Energy of Flowers)' 작품재료 100*100cm 2009


그의 작품을 생활칠기 가장 한국적인 미를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목기의 부드러움과 옻칠의 중후함은 바로 서양의 명품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더 앞서나간다. 다만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위에 사진에서 보듯 얼마나 고급스럽고 품격이 넘치는가. 

# [갤러리나우기획전]-최광호의 '숨의 풍경전' 5월 26일까지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삶을 더 풍성하게 살아가다"


오마이뉴스 최광호기사(김영태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37556&PAGE_CD=&BLCK_NO=&CMPT_CD=A0101&NEW_GB= 
오마이블로그 최광호기사 http://blog.ohmynews.com/specialin/240300 
최광호 작가 홈페이지 http://www.kcaf.or.kr/art500/choikwangho/main.htm 

갤러리나우 전시장 입구 포스터 

한국인물사진의 대가 육명심은 이렇게 말했다: "최광호는 누구보다도 벅찬 주제를 붙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시련과 방황이 수없이 뒤따를 것이다. 더욱 힘찬 분발이 있길 바란다" 

그는 죽음을 찍어서 삶을 더욱 살찌게 하는 작가다.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죽음앞에 끄떡하지 않는다. 그만큼 죽음과 가까이 있다. 동생의 죽음도 할머니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죽음을 찍는다. 그래서 삶의 살린다. 그것이 그의 사진미학의 골자일지 모른다. 그가 사진을 통해서 남긴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여린 생명이 토닥토닥 약동하고 있다. 앙드레 말로의 말대로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제대로 살기 위해서다" 

최광호 I '장인의 죽음(Work)' 2005  

이런 죽어가는 장인을 찍은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가 참으로 구도자처럼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과 이렇게 친숙할 수 있는 마음은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는 가능한 그것과 멀리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죽음도 자주 만나 대화라고 친해지면 그렇게 좋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죽어가는 것에서 꼭 죽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새벽도 보는 것이다. 

최광호 I '숨의 풍경(The landscape of breathing)연작' 실버프린트 2009 

그의 작품은 프랑스 중세시인 프랑수아 비용(F. Villon)을 연상시킨다. 몸에 실오리하나 거치지 않고 교수형을 당하는 것 같은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사실 이런 것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인지 모른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그냥 외면할 뿐이다. 

최광호 '숨의 풍경(The landscape of breathing) 포스터 

중앙에 작가 최광호 

그는 죽음의 고비를 한번 넘긴 사람 같다. 그에게 삶을 방해하는 어떤 장벽도 없어 보인다. 그만큼 죽음과 가까이 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므로 죽음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인가. 그의 사진에 죽음의 그림자를 그려 넣어 그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최광호 I '숨의 풍경(The landscape of breathing)연작' 실버프린트 2009 

그는 사진이 뭔지를 안다. 사진을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생각과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일종의 창조행위이다. 그런데 그는 이 작업에서 아무도 근접하지 못하는 고유한 영역을 개발했다. 바로 죽음의 그림자로 죽음의 한계도 뛰어넘는 아주 희미한 옛 추억의 그림자이다. 사진이 잉태하기 바로 직전의 그 어두운 세계 말이다. 

최광호 I '숨의 풍경(The landscape of breathing)연작' 관객들 

그에게는 동료작가나 친구 등 사람재산이 많아 보인다. 아내의 모습이 활기차다. 그가 너무나 사진을 열심히 찍으니까 그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런 면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인지도 모른다. 1973년부터 사진을 찍었고 1980년대에는 뿌리깊은 나무기사로 근무하기도 했고 일본과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서 사진의 광기와 신기를 본다. 그리고 까맣게 타버린 정신을 본다. 그것이 바로 이런 거무튀튀한 사진이 된다. 그런데 그의 사진에는 죽음도 넘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숨겨져 있다.  

전시장 관객들. 정치는 따지는 것이고 예술은 즐기는 것이다. 덧없는 인생에서 그 무상함과 지루함을 이겨내는 것으로 가장 좋은 명약은 역시 예술이다. 그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모였다. 

전시장 근처 한 식당에서 뒤풀이 장면. 이 식당의 서가래 천장에 걸린 한지문짝이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