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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백남준총서 2권 출판회] 서구 미술 뭉개다

[백남준총서 2권출판기념회] 서구문명을 욕조에 쳐박고 돈의 신 뭉개다 
- 2010.4.2(금) 프레스센터 20층
 -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 

 

백남준아트선터 백승원 행정팀장과 이영철관장. 이번 출판에 두 분의 공로가 너무 크죠. 멀리 뒤로 또 한 사람의 주역인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 토비아스 버거가 보이네요 


백남준 그가 왜 천재인가 그는 진정 놀 줄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잘 노는 것이다. 21세기는 영웅은 유희적 인간이다. 바로 그런 21세기형 전형을 보인 사람이 백남준이다. 제대로 놀고 싶은 우선 6개 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는 6개국을 하는 놀이꾼으로 서구의 지성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돈의 신을 완벽하게 뭉갰다. 철저하게 무시했다. 물론 작업을 하는데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남기려하고 않았다.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돈이 보이지 않는다. 돈을 그렇게 까뭉갠 사람이 없다. 무소유주의자 법정스님은 백남준에 비하면 세발의 피다. 그는 어려서 돈의 쓴 맛을 봤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에서 자유롭고 싶어 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한국에서 최고부자 중 최고 부자였다. 그래서 돈에 대한 공포가 없는지 모른다. 돈이 이렇게 우상이 된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래서 너무나 신남을 준다. 돈을 그렇게 까라 뭉갠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신나게 전 세계를 돌며 잘 논 사람이 없다. 인생의 목적은 잘 노는 것이다.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최고의 삶의 목적은 멋이었다. 즉 생활 속에 아름다움이었다. 멋이 돈으로 대체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사회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한국만큼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힘이 약한 나라가 없다. 그래서 자살이 높은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높다. 선진국(?)이 후진국보다 불행지수가 높은 것은 빈부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클라우디아 페스타냐, 이영철, 토비아스 버거 저작권 미확인 백남준아트센터에 가면 살아있는 백남준(이영철)과 살아있는 요셉 보이스(토비아스 버거)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이 미국보다 이런 면에서 문제가 적다. 유럽은 마르크스를 통해 부자가 부자답게 살려면 가난한 자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부자가 폭판 맞지 않고 부자가 정말 부자로 살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최소한 생존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살기 위해서이다. 이런 서양사상의 근간이 되는 구약성서에는 약자보호법이다. 구약의 율법에는 고아 과부 레위인 실업자를 도우라는 말이 수시로 나온다. 10계명의 정신도 바로 약자보호법이다. 성폭행 못한다는 여성보호법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노인보호법이고 법정에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약자보호법이다. 강자는 언제 어디서나 거짓말을 하게 되어 있다. 돈 없어 변호사를 댈 수 없는 약자라고 해서 재판할 때 무시해서는 안 된다가 9계명이 다 그런 것이다. 우리나라 법은 거미줄 법이라고 한다. 미물 똥파리 하루살이 등은 법에 걸리지만 정말 큰 살인자나 죄인은 다 빠져 나간다. 언론과 법의 정신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정반대이다. [계속] 

김남수 백남준아트센터연구원 무용평론가. 퍼포먼스연구가인 그는 백남준의 열렬한 연구자이자 팬이 되었다. 

진정한 쾌락주의자는 돈에서 초연해야 한다. 백남준은 철저하게 무소유자였다. 그는 한 번도 돈에 굴복한 적이 없다. 그는 절대로 상대가 가난하다고 해서 깔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축제는 돈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벌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행사에 돈이 들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돈을 얻기 위해서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로는 돈을 전혀 생각하기 않고 창작을 해도 돈이 모자라지 않는데 있다. 그러나 그는 세계최고 작가이니 부자는 아니지만 돈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물론 백남준도 때로 돈이 없어 콜라와 피자를 사먹을 돈이 없어 라면을 혼자서 끓여 먹은 적도 있다고 했지만 그는 절대 돈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돈에 굴복해 본 적이 없다. 그는 구겐하임회고전에서 사실 돈이 엄청나게 모자라 무산될 뻔 했다. 그러나 교토상과 한국기업의 도움 등등을 그 일을 해냈다. 그렇게 그는 아슬아슬하게 돈을 피해갔다. 돈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돈을 가지고 논 것이다. 돈을 가지고 놀 때 진정으로 광대이고 그런 사람만이 정말 잘 놀 수 있다. 노는 순간이란 바로 돈의 위력을 깨부수고 돈을 죽이는 일이다. 돈의 공포를 절대 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절대적 오르가슴이고 엑스터시이고 예술의 최고경지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샤머니즘 특히 몽골에 샤먼에 탐닉했다. 샤머니즘 가장 수평적인 종교이자 무자본주의적 종교다. 몽골은 정복했지만 소유하지 않았다. 그런 정신을 지키라고 칭기즈칸은 법전에 기록하고 있다. 물론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샤머니즘은 그런 면에서 예술인류학을 제창한 박정진교수의 말처럼 인간종교의 원형이다. 샤머니즘은 이렇게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을 통합하고 모든 종교와 예술의 융합시킨다. 신통력은 바로 돈에서 자유로울 때 나온다. 몽골은 이슬람교 기독교 유교 고등종교까지도 샤머니즘 아래에 두었다. 모든 종교를 포용했다. 그래서 탱그리(하늘 푸른 하늘 영원한 하늘 경천애인)이 나온 것이다.  -유목민의 백남준 일기 중에서 - 

전시된 사이코 1963년 

영화 사이코의 욕조살해사건을 연상시킨다. 서구미의 전형인 뮤즈를 욕조에 쳐박아 살해하는 장면이다. 스잔 레너트는 파편들이라는 글에서 백남준은 라인지역 예술무대를 적처럼 소용돌이치게 했다. 

 

 

백남준의 귀환 책 내용일부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창시자가 아니라 문명사적 철학가 사상가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미디어사상가 등으로 가두어두기 힘든 21세기 문화아이콘 그의 예술은 원자폭탄보다 더 무서운 무기 서구인들이 만들지 못한 잠재적 가능성이 무한대나는 세계적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세기의 예술가라고 스스로 말했다. 빈말이 없다. 사기 같은 말이 앞뒤가 다 맞는다. 재치와 유머하늘을 찌를 듯하다. 핵심적이다. 진화론이 아니라 한꺼번에 동시다발로 깨우쳐야 한다. 백남준이 준 선물의 일부를 공부한 결과이다. 그의 경전의 일부가 나온 셈이다. 18개월 동안 왜 그가 그렇게 유명한가에서 그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18세에 한국을 떠난 백남준 그는 세종보다 이순신보다 12-13세기 몽골의 제국정신 혼 북방유목의 샤먼을 주제로 삼다. 샤먼의 강력한 인식체계 작동하다 자부심 몽골초원 유라시아로드 매체미학 문화인류학 로마제곡보다 몽골제국에 더 관심 전 세계적으로 열등감 제로 칸의 영혼으로 가슴이 뛰다. 뒤셀도르프 백남준 회고전 국제세미나 한국주관하기도 결정 소프트웨어의 중요성 강조 유목민에게 춤 시 음악 움직일 수 있는 (mobile) 것 영국 테이트 리버풀에서 전시예정 이제 그에 대한 연구 외국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야 우리의 몫 편견을 없애라 매둡 다시 묶기 고래의 질 속으로 들어가라 뜻하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 엉터리 다시 역사를 쓰다. 유목민 머릿속에 역사를 쓰다. 칭기즈칸의 복원 우주비밀 전자가속기 촉발시키는 광맥 찾기 그는 책속에 파묻혀 살다. 늘 묻히고 다니는 사람 골동품 같은 서울말투로 오해삼 비디오는 시간예술 거기에 몰두해야 백남준은 소유개념 없다. 법정보다 더 무소유주의자 경제적 이득과 관계없다. 몽골제국은 소유개념 없다. 침범 귀환 다 놓고 간다. 어떤 코드가 없다. 마구잡이 소유는 끝났다. 사실 백남준은 한 번도 금의환향한 적 없다. 이도령이 아니다. 거지였다. 랜덤 액세스 그의 사상 넓고 깊고 높다 일종의 오리무중 유태인 자본 한국집결설이 있다. 백남준 고속도로를 타고 지구촌을 여행하는 지구촌 기념 사업회 소유 집착 축적을 포기하다 재물 깨다 남기지 않다 작품만 남기다 정복자도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망한다. 칭기즈칸 어록 텔레토피아 큰마음 가지다. 호연지기 다다익선 영감 은총 선물 정신혼란 소유를 비워라. 비워있는 것에 공포를 없애라. 마이너스 1000에 만족하라.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민에 맡기지 말고 전 세계인에게 넘겨라 [백남준에 대한 이야기 중 일부 인용]

백남준의 귀환 단행본 2배크기 660쪽 정가 4만5천원 
백남준 총서 II <백남준의 귀환, NOW JUMP> 소개 -<백남준의 귀환, NOW JUMP>는 본격적인 백남준 연구의 붐에 기폭제 역할이 기대되는 일종의 리소스북이다. 이 책은 2008년 백남준아트센터 개관 페스티벌의 도록 부분과 백남준 연구서 부분이 공존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모양새를 갖게 된 것은 2009년 한해 동안 진행된 백남준 리서치 과정이 확대 심화 되면서 백남준 예술의 핵심적인 코드와 함께 그의 예술 사상을 밝히는 일을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백남준 관련 저작이 출간되었지만, 연대기적 정리나 상식의 동어반복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백남준 연구가 정체되어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면서 백남준 연구의 이니셔티브를 제시하고자 했다. -백남준은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로부터 출발한 퍼포먼스나 1963년 첫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 전시회 등등에서 북방 유라시아 문화를 개입시켰다. 미디어 개념을 샤머니즘의 신성한 소통으로 파악했고, 시각예술의 대상(물질)보다는 정신적 사건(비물질)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이 책은 미디어=얼=정신이라는 등식을 증명하고자 백남준이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았던 칭기스칸의 몽골 제국을 관통하고 있다. -1962년 백남준이 <황색재앙!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 선언한 것은 사실상 자신이 서구적 질서의 외부에 존재하는 유목 세계의 지배자 '칸'으로 등극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1965년 <황색 의자들> 퍼포먼스를 통해 엉덩이의 몽골반점을 노출하는 장면은 몽골 제국의 후예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1963년 전시는 이러한 인류학적이면서 문명사적 접근 - 발터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서구의 질서를 요동시키는 "창조적 야만인의 습격" - 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1963년 백남준의 첫번째 전시의 중요성이 서구 예술계에서 급부상되면서 많은 전시와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책은 백남준이 '대감놀이' 라는 굿판을 통해 서구의 근대 문예제도를 상징하는 뮤즈 여신들을 어떻게 살해하는 전시를 펼쳤는가 하는 매우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을 던지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백남준이 달과 관련된 코드를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소머리=부처머리=(달)인공위성으로 이어지는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 개념이 도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마르셀 뒤샹의 세계로 요약되는 서구 근대예술의 바깥을 모색했던 백남준의 예술 실천을 탐문하고 있다. 즉 근대의 분리되어버린 분과 체제가 '고르디아스의 매듭 자르기'에 해당된다면, 탈근대의 무성한 논의를 통과한 현 시점에서는 '고르디아스의 매듭 다시 묶기'라는 전체성과 통섭의 과제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제를 다루었던 백남준을 21세기 예술의 선구자로서 재조명했다. [미술관] 

백남준의 소꿉친구인 이경희 여사(왼쪽)과 다른 손님 

 

윙크하는 백남준 그는 예술적 쾌락주의자이다 

백남준은 24시간 엑스터스 혹은 오르가슴을 느낀 비디오 쾌락주의자였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나가 그것은 바로 몽골의 전승이다. 샤먼이 되는 것 샤머니즘은 생명의 알짜만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백남준에게는 가능했다. 그러니까 천재다. 물아지경 섹스의 황홍경은 단 몇분이지만 백남준의 몰아지경은 24시간이다. 평생 계속되었다. 

요즘 88년생 신세대는 서구에 대한 열등감이 거의 없다고 하는데 백남준 그 시대에 이미 서국에 대한 열등감이 거의 제로였다. 그의 창작의 힘은 바로 유목민 몽골의 후손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다

노는데 천재인 백남준 

 

몽골의 후손을 증명하려고 엉덩이를 내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난 몽골을 좋아해 

난 몽골을 좋아해 몽골사람들하고 우리들하고 3천 년 전에 헤어졌는데 그 3천 년 전 우리 것을 몽골사람들이 보존하고 있어요. 난 공자 노자 이런 사람들 이전의 사람들을 좋아해요. 신석기시대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후대로 내려올수록 역사가 엉터리입니다. 대부분 일고 생각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뿐입니다. 


"나는 세계적인 예술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기의 예술가이니라." - 백남준 

이게 바로 랜덤액세스 

임의 접촉 재구성한 작품 1976 볼프 헤르초겐트라트 쿤스트할 브레멘 1999 

몽골제국 

그가 한 말을 묶어 낸 책의 제목이 <말에서 크리스트까지> 여기서 말(馬)은 몽골 혹은 정보고속도로를 뜻한다. 크리스트는 대지작가를 뜻하지만 동시에 부다페스트 혹은 유럽을 뜻한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즉 지구의 시작에서 끝까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넓은 영토를 백남준은 자신의 문화영토를 정복해보려는 야심으로 넘쳤다.-레오나르도만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락처런 난폭하게 재스퍼존스처럼 서정적으로 - 백남준 -마르크스에서 슈펭글러까지 톨스토이에서 토크빌까지 어떤 예언가도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인 주차문제를 예견하지 못했다 - 백남준 1968 -언어의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21세기의 살 길입니다. - 백남준 영상시대예언-바둑돌이 어디 떨어질리 모르듯이 백남준은 항상 예측불허였다. - 아베 슈아 2008년 인터뷰.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이영철관장 

 

출판기념에 축사를 하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이경희여사 

 

작가김구림부인 작가 김구림 작가 박래현 미술평론가 하계훈 

 

미술가 유준상, 미술가 선생님,  작가 김구림,  예술인류학을 제창한 박정진교수(시계방향) 

 

건축가 김원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총무간사 

 

마무리 총평을 하시는 이영철관장 

 

백남준아트센터 식구들. 사진저작권 김민관 

 

<백남준의 귀환> 책표지. 책의 분량에 사람들이 많이 놀란다. 18개월만이 이런 책이 나오다니 열공한 셈이죠. 

[국제갤러리 김홍주 전 2010.4.4-4.30] 

김홍주작품 

내가 그리는 이미지들은 어떤 특별한 상징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공백을 주기 위한 것이다. 내 작업의 의미는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다고 생각한다. - 김홍주 

꽃그림 작가, 글자그림 작가 등 작가 김홍주를 명명하는 데에 있어 수많은 별칭이 따르는 것은 1970년부터 시작된 긴 작업의 여정 동안 끊임없이 다양한 소재를 다루어 온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김홍주 작가는 1970년대 S.T 그룹 활동을 시작으로 하여 다양한 소재를 시도하고 탐구해왔다. 이때 김홍주의 작업에서 소재적 차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꽃이든 문자든 혹은 풍경이든 작가는 동일한 방식으로 이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 하나의 도식화된 이미지일 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어떤 의미를 강요하지도 않으며 단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들을 전적으로 다시 보기를 제안한다. 따라서 다양한 소재들 속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소재로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릴 것인가와 관련된다. 이는 “그리기” 라는 회화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귀결되는데, 작가는 회화의 본질을 다룸으로써 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을 인식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김홍주작품 

새로운 방식의 현실인식은 우리가 관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물을 본다, 이해한다는 문제를 뒤트는 데서 출발한다. 김홍주는 모든 사물들, 그것이 풍경이든 인물이든 그저 평범한 시각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그는 그 소재들을 해체하고 재구성 하면서 낯익은 요소들을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예컨대 풍경화를 그림에 있어 상식화된 원근법을 지양하고 부감법을 이용한다 던지, 서양화에서 오랫동안 무관심해왔던 여백의 문제를 적극 활용하는 문제들이 바로 이러한 시도의 방법이다. 또한 작가는 세필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물리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회화에 개입시킨다. 세필의 반복적인 터치로 완성되는 그의 작업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의 시간과 행위를 캔버스에 담으면서 회화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보다는 회화 자체, 그리기 본연의 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감각하도록 유도한다. 

의미의 공백, 그를 통한 무한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들이 작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보편적인 규범을 거부하고 개방된 사유를 추구하며 모순적인 가치들을 서로 공존시키면서 작가 김홍주는 모든 의미들이란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재해석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이 특정한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틀에 박힌 양식이나 관념적 유희에 빠지지 않고 부단한 자기갱신을 거듭해 온 것도 그의 이러한 일관된 회화정신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자료] 

김홍주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