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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전시 행사

<NJP 여름 페스티벌-스물 하나의 방>

<NJP 썸머 페스티벌-스물 하나의 방> 
-백남준아트센터 오는 7월 20일 백남준의 79번째 생일에 맞춰 
[오마이뉴스 백남준 써머 페스티벌-스물 하나의 밤] 관련 기사  
[관련기사주간한국 박우진] http://weekly.hankooki.com/lpage/arts/201107/wk20110727005302105130.htm


백남준아트센터 카페테리아 마당 


7월 20일부터 9월 13일까지 총 8주간 펼쳐지는 이번 페스티벌은 백남준이 1961년에 작성한 ‘스코어’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에서영감 받아 기획된 여름 축제로 아트센터 2층과 야외 공간 등에서 전시와 공연, 퍼블릭 프로그램 등 총 20개의 작품과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리치 오와키 Richi Owaki I '스킬 슬라이드 Skinslides' 영상 설치, 2009 

도호쿠예술공대에서 설계공학을 전공 작품 안에는 댄서의 움직임 발걸음 소리 작가의 작품 스킨 슬리아드가 들어 있다. 관객이 이 위를 걸어가면 작품은 작동하며 격한 반응을 보인다. 이곳에 들어오면 작가가 미리 프로그래밍한 제의에 참여하게 된다. 

이화진+박미옥 I 이미지 인스트러먼트(Image, Instrument) 

이  작품은 악기는 연주하면 소리가 아닌 이미지가 생성된다. 음차가 귀를 자극할 대 우리는 귀를 자극할대 우리는 소리를 들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와 같은 공감각을 응용하여 들리지 않은 소리와 리듬을 보여주고 있다. 들이지 않아도 흥겹고 새로운 리듬을 즐길 수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소리가 없어도 흥겹고 신나는 리듬을 즐길 수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즉 소리가 조각이 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백남준의 사운드아트의 상상력을 응용한 것이다. 

김승영 i 소리벽(Sound Wall) 

이 작가는 기억과 소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400여개의 버려진 스피커로 만든 것이다. 이것을 위해 10여년간 수집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10초간 눕거나 서 있으면 웅장한 소리가 들린다. 

백남준아트센터 카페테리아 모습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한 작가들은 백남준과 플럭서스 작가들이 했던 것처럼, 관객참여를 위한 스코어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관객은 작가들이 제시한 스코어를 실천하며, 20개의 방(작품)을 옮겨 다니며 장르를 넘나들고 공간을 가로질러 참여의 공간을 완성시킬 것이다. 

버클리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사운드아트스트 김혜영(뉴욕거주)씨는 테크노 음악에 도취해 자신도 모르게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여와 소통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문화민주주의를 뜻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참여와 소통이 요구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움직임을 다 조각 같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그은  몸짓은 일종의 그림이다. 다만 화폭에 그린 것이 아니라 공간에 그린다. 그래서 기록하기가 어렵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동영상을 볼 수 있고 순간적인 모습은 사진을 기록할 수 있다. 백남준은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를 포함한 보더 넓은 의미의 미술의 영역을 열렸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아트이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읽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미술의 영역과 스케일을 넓혀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고 통합하여 원효가 말하는 두루 넓게 소통하는 원통의 세계를 성취했다. 

이옥경 I 'Eternal Turning' 첼로 즉흥연주 보이스 사운드 댄스 2011 

일상의 흔적과 음악의 호흡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사운드로 표현한 작품이다. 

[백남준 79회 탄생일] 
2011년 7월 20일 백남준 생신 한국나이로는 80번째 서양나이로는 79번째 -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 한국, 일본, 독일, 미국이 4분1씩 작용 

Moon Night Letter CAFE a GoGo New York 1964년 11월 9일 사진 Peter Moore 


오늘이 백남준 선생 79번째 생일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여든 번째 생신이다. 백남준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문화자본이다. 그래서 이자가 많다. 그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행사는 그래서 경계 없이 다양하고 폭넓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나라를 보면 우선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생일날 만난 백남준의 소꿉동무 이경희 선생은 백남준은 순종 한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한국을 일찍 떠났기 때문에 순수한 한국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한다. 물론 고등학교까지는 경기고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은 일본에서 공부했다. 그가 일본에서 공부한 것은 그가 비디오아트를 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 시대는 SONY의 전성기로 일본에 첨단전자산업에서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최고전성기로 세계 1등이었다. 백남준은 당시에 TV에 관심이 많았던지 SONY에서 신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정보를 수집했고 미리 주문하여 신제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작품을 만들었다. 

현대예술에서 무슨 매체를 쓰느냐가 중요하다20세기 초반에 현대미술에 변기가 들어온 이후캔버스와 붓보다는 오브제가 중요하게 되었고 어떤 재료를 쓰느냐가 화두였다. 백남준은 TV모니터를 활용한 셈인데 기막힌 오브제로 그의 붓이나 마찬가지다. 1960년에 미국에서 컬러TV가 나오면서 미국인의 80%가 TV를 시청하게 되었고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졌다. 소비사회가 된 것이다. 유럽이 전쟁의 잿더미가 되는 바람에 미국은 전후 크게 경재부흥이 일어났다. 

백남준 피아노 연주 '소호 사중주' 1976년 9월 5일 서베를린 아카데미 쿤스테(미술대학) 사진 Peter Moore 

백남준의 예술에서일본의 첨단전자기술이 없었다면 그의 예술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 특히 SONY와 일본인 아베선생님 이분은 그에게 작품을 하는데 기술적 자문을 해 주었다. 백남준은 1950년 후반에 독일에 음악공부를 하러 갔다. 독일은 그 당시 전쟁 복구에 여념이 없었고2차 대전의 후유증에 시달렸고 지식인들은 그동안 유럽인의 신이었던 합리주의를 버리고 비합리주의로 기울고 있을 때다. 그리고 정신보다는 몸에 관심을 두었다. 

당시에 가장 천재적인 아티스트들이그룹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fluxus다. 시대의 흐름이라는 뜻으로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다. 일종의 다다운동인데 기존의 일체의 가치를 다 부정한다. 그렇게 된 데는 바로 1차 2차 대전의 경험 때문이다. 그들은 좌파적이고 급진적이고 실험적이고 모험가들이었다. 문명의 위기와 서구의 종말을 논했다. 

그들은 머리보다 몸을 정신보다는 육체를 중시했다. 그래서 몸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 바로 행위예술(performance) 혹은 해프닝이다. 해프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남을 뜻한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뭔가가 일어났다. 피아노가 박살이 나고 난리도 이런 난리법석이 없다. 

백남준의 첫 전시는 음악의 전시였는데 미술에 음악을 도입했다. 그것도 음악이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대등한 것으로 여기서 새로운 비디오아트가 탄생한다. 공간예술이 시간예술이 합쳐지는 혁명이다. 그리고 연주도 그림도 몸으로 했다. 백남준은 머리로 피아노를 쳤다. 거기서 우연을 발견한다. 의도적인 것이 없다. 

순수한 예술로 환원했다. 간교한 전쟁광들과는 달랐다. 그리고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비정형성, 비선형성 바로 랜덤 액세스를 취했다. 일체의 조작을 거부했다. 과격한 activism이 생긴 것이다. 몸 철학을 예술화했다. 퐁티는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했는데 몸을 철학과 미학의 근간으로 바꿨다는 뜻이다. 

제3회 뉴욕 아방가르드축제에서 존 케이지의 피스 연주하는 백남준 1965년 9월 7일 사진 Peter Moore 

백남준아트센터에 갔다가 버스에서 독일인(성균관대 미대교수) 뒤셀도르프 졸업 그는 역시 보이스 전공자 같았다. 그 당시 독일을 주류는 activism이라고는 한단어로 요약한다. 그러면서 보이스의 드로잉을 보고 너무 반했다는 말을 한다. 드로잉은 작가의 내면을 읽어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말한다. 그는 백남준과 보이스가 이 그룹의 양대 산맥임을 언급했다. [이름과 주소] KLEGA info.klega@yahoo.com 성대이메일 klega@skku.cdn 

백남준이 독일다다 문화패에서 두목노릇을 했다. 그가 인정을 받은 것은 행위예술인데 한국의 무당의 후예인 그는 누구보다 격렬하면서도 예술적이고 종교적이면서 세속적이고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행위예술을 선보여 그들을 압도했다. 백남준이 어려서부터 경험한 굿이 그 근간이 되었다. 사실 한국의 예술혼의 출발점은 바로 굿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신명과 생명 예술과 제례 강력한 염원과 예술적 상상력 그리고 강력한 몸짓의 과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첫 전시회 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대가리를 전시장 입구에 걸어놓아 독일인을 압도하고 그들의 기를 팍  죽여 놓았다. 사실 1950년대 키 작은 동양인이 콧대 높은 독일인을 제압하기란 쉬운 일 아니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것을 해 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미국으로 갔다. 샬럿을 만나 그의 몸 예술을 극에 달했다. 그리고 샬럿은 음악엘리트출신이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몸으로 첼로를 연주했다. 샬럿도 마찬가지다. TV브라도 그 때 나오는데 거기서 비디오아트가 탄생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TV로 악기를 만들어주면 더 가속이 붙었다. 

제3회 뉴욕 아방가르드축제에서 폭탄을 들고 있는 백남준과 셔먼 1965년 8월 26일 사진 Peter Moore 

백남준은 음악으로 하는 섹스예술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샬럿은 백남준이 기획으로 나체로 첼로를 연주했는데 결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유럽보다 보수적이었다. 그러다 여러 곳에 탄원서를 내고 프랑스 저명한 예술인에게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자선 연주회로 변호사비용을 충당하려고 했고 샬럿을 어떻게 하든 구해내려고 했다. 

마침내 샬럿은 석방이 되었다. 1960년대 미국은 팝아트 전성기백은 팝아트를 죽여라라고 했다. 백남준은 선불교전통에 따라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미국이 없었다면 백남준은 세계적 예술가가 될 수 없었다. 

미국은 그 당시 달에 도착했다. 이것은 백남준에게 어마어마한 영감을 주었다. 백남준은 위성이 아니라 예술로 달에 도달하고 싶었다. 그는 예술로 세계를 지배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굴 인공위성 아트가 탄생한다. 1980년대 한국은 독재국가였지만 한국의 민중은 어리석은 통치자 밑에서도 슬기롭게 그것을 극복하고 민주화로 가는 도중이었다. 그래서 1984년 전 세계를 향해 위성예술을 쏜 것이다. 그리고 한국무당이 소개되었다. 물론 서구의 첨단음악도 소개되었지만 이런 것은 미국의 소비주의 광고와 자본주의 위성과학과 시각적이고 대중문화가 백남준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결국 인터넷 시대를 예언한 셈이다. 그는 말년에 레이저아트를 시도했는데 이것은 레이저 사다리를 타고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아가려고 했다. 백남준은 2000년대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종종 3000년대 언급하게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만큼 백남준은 태초의 세상을 알고 있었기에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백남준은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다시 말해 산업사회를 정보사회로 바꾼 것이다. 그가 내다본 미래는 생명공학적인 것이었다. 

플럭스 투어 Flux Tour 1976년 5월 뉴욕 

백남준은 이렇게 일본의 전성기 전자공학과독일의 전성기 몸의 미학과 미국의 전성기 대중예술인 팝아트와 위성과학의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았다면 그의 비디오아트는 탄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묶어내는 힘은 바로 한국의 굿의 정신 샤머니즘의 괴력에 있었다. 그는 분면 예술로 세계를 지배한 문화의 칭기즈칸이었다. 그에게 영웅은 단연코 칭기즈칸이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구원하는 코드는 바로 소통과 참여이다. 소통이 안 될 때 사람들은 자살까지도 감행한다. 어느 여자 스님은 4대강을 반대하여 대통령에게 여러 번 탄원했으나 말이 먹혀들지 않자 소신공양 분신을 했다. 이런 것이 바로 불통의 가장 극단적 예이다. 

소통은 다른 말로하면 민주주의다. 그런데 백남준은 단지 정치적 소통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예술적 소통을 바랬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참여다. 이것도 다른 말로 하면 민주주의다. 참여의 반대는 소외다. 속어로 말하면 왕따라고 하나. 소외는 맑스가 발명한 개념이다. 맑스는 유산자가 무산자를 착취하는 세상에서 소외가 온다고 말했다. 


백남준도 그 당시 젊은 지성인처럼 맑스를 신처럼 받들었다. 맑스의 어려운 사상 중 인간 소외론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그는 이렇게 해서 세계 미술사에 유래가 없는 비디오아트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음악과 TV로 조각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음악가가 아니라 미술가가 된다. 그가 다빈치보다 20세기의 미켈란젤로로 비유되는 것은 대리석이 아니라 TV로 조각하는 예술가로 보았기 때문이다. 

7월 20일 백남준 생일날을 맞아 그의 예술의 폭과 층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 다시 깨닫는다. 상상력에서 철학 미적 관점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도서관에서 백남준과 관련된 책을 보다 발견한 문장을 여기에 옮긴다. 

"[백남준의 유머] "난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뉴욕에서 살고 있지. 베니스비엔날레에는 독일대표로 나갔고(L'humour de Nam June Paik : né en Corée il fait ses études au Japon, vit à New York et représente l'Allemagne à Venise)", "백남준은 동서 두 문명을 진정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작가 중 하나다(Name June Paik est un des seuls à savoir réussi à faire la synthèse enter deux civilisations)" - 오토 한(Otto Hahn 1964)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다 나는 예술가다. 나는 동양적인 예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양적이다(Je ne suis pas bouddhiste je suis artiste. Je ne cherche pas à faire de l'art oriental. Je suis oriental)" - 백남준어록 

오늘 나는 왜 내가 쇤베르크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생각해본다. 그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다면 왜 그의 극단성에 관심을 보였을까. 나의 몽골유전자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더 먼곳을 보려 떠나야만 했다. 텔레:멀리 비전:보다 - 백남준 

[해외전시 파리시청 옛 센 강변 사진전] 

낭만과 추억의 센 강변 즉흥연주 Concert improvisé sur les quais de la Seine (c) Rue des Archives  AGIP 

L'exposition organisée à l’Hôtel de Ville de Paris, jusqu'au 17 septembre, met en valeur le lien privilégié des Parisiens avec la Seine. La Seine et ses berges ont connu une intense activité économique et festive jusqu'au XVIIIème siècle, faisant du fleuve un haut-lieu parisien. 

Lieu de consommation et de plaisirs, elle rassemble la population parisienne dans toute sa diversité. Se laver et laver le linge, se procurer les biens les plus élémentaires, participer aux fêtes de la monarchie : les occasions sont nombreuses pour fréquenter les bords du fleuve... 

[미국
 아스펜미술관(Aspen Art Museum, AAM) 양혜규전] 축지법Art and Technique of Folding the Land 미국 아스펜 미술관 Aspen Art Museum (AAM) 2011.07.29–10.09 www.aspenartmuseum.org 

양혜규 I '순간이동의 장' 2011 잉크젯 프린트, 포스터지, 가변크기, 마누엘 래더Manuel Raeder와의 공동 디자인 작업 Courtesy of the artists 

현재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 양혜규의 미국 개인전이 오는 7월 28일 아스펜 미술관에서 열린다. 양혜규는 2008년 LA 레드켓에서 첫 미국 개인전, '비대칭적 평등'을 가진 이후, 2009년 미니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에서 '내부자의 온전성', 2010년 뉴욕 뉴 뮤지엄에서 '목소리와 바람'을 선보인 이후 2011년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아스펜 미술관에서 개인전 초청을 받았다. 

또한 양혜규는 2011년 제인과 마크 네이튼슨 레지던시 선정작가이며, 초대 작가의 개인전은 아스펜 미술관의 연간 전시 기획 중 주요 국제전으로 꼽힌다. 특히 매년 8월 첫 주 개최되는 아스펜 미술관의 연간 기금 조성 행사 아트 크러쉬(Art Crush) 기간과 맞물려, 국제적인 주요 예술계 인사들에게 소개되는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양혜규 I '만토이펠슈트라세 112 번지' 개별과 단색, 2011 광원 조각 7 점, 알루미늄 블라인드, 파우더 코팅 강철 프레임, 타공판, 전구, 전선. 화장실 라디에이터: 87*49*5cm Courtesy of Greene Naftali Gallery, New York, Kukje Gallery, Seoul,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무용 선생' 설치 전경, 모던 아트 옥스포드, 2011 Photo: Stuart Whipps 

'축지법'전에는 미술관의 공간을 고려한 바람개비 모양의 벽체 디자인 뿐 아니라 현지에서 수집한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장소 특정적 성격의 신작이 선보인다. 유희적이면서도 고도의 조화를 보이는 작가 특유의 재료 탐구와, 공간과 분위기에 대한 유려한 해석이 돋보인다. 즉, 유목(流木)에서 다채로운 전선의 선택까지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여, 전시주제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축지법'전에서 작가가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도교에서 언급되는 기묘한 위치이동 방식에서 영감을 받은 신비주의에 관한 형식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연초 브레겐츠 미술관의 개인전 '복수도착'에서 작가는 '봄의 제전'(스트라빈스키)으로 대표된 원시주의와 아방가르드의 병치를 통해 이미 시작된 '동작(Movement)'의 연구를 시작한 바 있다. 이에 비해 하절기 주요 신작이 발표된 모던 아트 옥스포드의 개인전 '무용선생'의 경우,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로 대변되는 모더니즘과 구르디예프(Georges Gurdjieff)의 신비주의를 대치시키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아스펜의 전시 제목, '축지법'은 다시 원시주의에 입각하여 브레겐츠 전시의 연장선 상에서 축지법, 순간이동 등 동서양의 환상적인 이동법, 혹은 시공간을 축소시키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동화(assimilation)되지 않은 채로도 용인되는 공존의 방식, 부재에도 불구한 우정 등 작가가 지속적으로 집중해온 주제가 바탕이 된다. 

양혜규 I 만토이펠슈트라세 112 번지 – 개별과 단색, 2011 광원 조각 7 점, 알루미늄 블라인드, 파우더 코팅 강철 프레임, 타공판, 전구, 전선 Courtesy of Greene Naftali Gallery, New York, Kukje Gallery, Seoul,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무용 선생' 설치 전경, 모던 아트 옥스포드, 2011 Photo: Stuart Whipps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거리를 뛰어넘으며 불가능한 공존을 도모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만토이펠가 112번지 - 개별과 단색'을 꼽을 수 있다. 작가가 살았던 아파트에 설치된 기구들 중 온기와 관련된 기기의 형태와 크기를 도입한 7점의 블라인드 조각은 장소를 잃은 집, 즉 주소없는 집의 개념을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지역에서 재료를 마련하고 취사선택하는 태도는 베를린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누엘 래더(Manuel Raeder)와의 공동 작업 결과인 벽지 작업 '순간이동의 장(Field of Teleportation)에서도 드러난다. 각 작업 사진, 전시 설치 사진, 괴목 사진 등 제작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참조할만한 이미지들이 떠다니고 날아다니는 듯 배치된다. 벽지작업은 '축지법'으로 명명된 작가의 개인전을 요약하는 의미를 지닌다. 벽지는 그 자체로 일련의 가공물(artefacts)과 작품이 공간이동으로 한 곳에 모인 하이브리드이자, 디아스포라적인 장(場)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모티브는 기존의 위계적인 시간적, 문화적 범주와 구조에 부속되지 않은 채로 제시된다. 

[우리시대 한국서화 거장시리즈 2_걸레스님 중광 <만행>展]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2011.07.22(금)-2011.08.21(일)까지   
[오마이뉴스관련기사] 천진무구한 해학, 동심, 애욕이 화폭에 그득 

걸레스님 중광, 경계 없는 자유인으로 살다. 백남준도 중광의 달마도를 보고 진정한 선화라고 극찬했다 

걸레스님은 전방위 예술가다. 서예를 모든 예술의 시작으로 봤죠. 그래서 서예박물관에서 전시가 열렸다. 우선 그는 독창적인 서예가고 도자기 세라믹 아티스트이고 결렬한 행위예술가이고 시인이고 조각가이고 영화인이고 성속의 초월하는 세속적 성자이자 구도자이고 때 묻지 않는 성의 원초적 에로스를 창조적으로 풀어해친 무당이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기상천외한 스타일리스트이고 여성을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는 페미니스트이고 시대의 통념과 상식에서 완전한 벗어난 기인이기도 하다. 

무제 복합매체 1989년 송기복 소장. 피카소작품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모든 규칙을 깬 파격적인 예술가이다. 그러나 봉건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기피당해 왔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그의 진가를 인정했고 그를 가리켜 ‘한국의 피카소’라고 일컬었다. 중광 자신은 <나는 피카소가 아니라 피카소보다 낫다>고 말했다" - 국제갤러리 전시소개 중에서 


중광의 대표시 '걸레' 

중광에 대한 김영태 기자의 의견입니다. "그분의 삶과 예술, 철학의 일치, 그리고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인으로서 인생궤적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사람 같다고 할까요. 태초의 원시적 생명력 넘치는 세상, 여성의 생명적 가치가 최대로 준중 받는 모계사회에서 온 사람이라고 할까요. 인간이 만든 굴레와 법규에서 완전히 해방된 자유인이나 그 역시 어느 정도의 구속과 번뇌의 굴레가 필요했나요. 그래서 승적을 그렇게 유지하려고 애쓴 건가요. 다만 그것이 이 세상에 더러워진 모든 걸 빨아주고 씻어주는 걸레스님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인으로 남게 되었다. 


중광이 즐겨 있던 누더기 옷 신발 모자 

1981년인가 종로 조계사에서 구상시인 강연과 시화전이 있었는데 그때 중광이 왔다. 군화에 군복패션 빨간 모자 그가 해병대출신이거든요 쓰고 나타났는데 가관을 넘어 포복절도할 정도로 놀라운 패션 감각에 정말 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본 한국사람 중에 천상병과 함께 가장 강력한 인상으로 각인된 예술가였다. 이제는 그런 종자가 씨가 말라 참으로 재미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쌍마' 91*116cm 송기복소장 

중광은 제주도출실이란 말을 많이 그렸다. 이런 풍경은 어려서 본 고향의 한 단면을 우화시의 형태로 형상화한 것으로 무겁지만 세련되고 신비한 분위기를 내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다. 말과 관련하여 많은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마치 제주도의 신화와 전설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닭 호랑이 그림단지 

여기서도 역시 담초록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면서 그릇의 넉넉한 마음과 너그러운 태도를 엿보게 한다. 공간의 여백이 많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이렇게 텅빈 공간이 주는 여백의 풍요로움은 역시 동양의 전통에서는 매우 중요한 공간개념의 한 요소일 것이다 

'무제' 개인소장 

오직 색채와 라인만으로 그린 추상화인데 여기서는 역시 색채가 주는 느낌 분위기 에너지 움직임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도자기의 파격이 역시 중광답다.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큰 알이 깨지면서 새끼가 나온다고 할까 생명의 잉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닭싸움을 남녀의 사랑의 싸움 아니 에로스르 빈댄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남녀가 한몸이 될 때처럼 격정적이고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숭고한 순간이 또 있을까. 인간과 자연과 생물이 온전히 살아움직이는 시간이다. 

'원통' 개인소장 

거친 손길이 정겹게 느껴지는 도예작품 분청사기의 기법인가 중광의 터프한 멋과 낙서 같은 붓질 속에 담긴 활달한 에너지의 분출을 엿볼 수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도다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음을 역력히 볼 수 있다. 

'무제' 1989년 

현대적 색감과 그래픽 요소가 다분하면서도 양쪽으로는 전통적 한국의 풍경이 공존하고 있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 어울리는 묘미가 있다. 밝은 색채와 그림에 활기를 주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만끽하게 해 준다 

중광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해학적 자기 

분청사기에 낙서화 같은 그림이 새겨져 초가집과 호랑이가 사이좋은 이웃처럼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염원한 작ㅜ품이라고 할까 물아일체의 단면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면서 세상을 둥글게 너그럽게 익살맞게 살아가려는 작가의 낙관적인 풍모를 엿볼 수 있다. 

'동심' 80*99cm 유화 

광기 등과 통하는 정서이다. 20세기 모더니즘의 정신이 바로 순수 기원 광기 이런 것들이다. 인간과 자연의 대화를 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경지를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중광의 누더기 옷 

누더기 옷은 바로 그의 정신 욕심을 버리기에서 온 것인데 는 다른 사람의 옷도 많이 벘겼다. 즉 옷 속에 담긴 인간의 욕심을 버리게 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남의 지식을 훔치며 남의 욕심을 버리게 하면서 살았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기룡약국' 서예 종이에 먹 30*93cm 김형국소장 

중광은 모든 예술의 모체를 서예에서 시작한다고 봤다. 지극히 한국적인 미학이다. 글씨에는 작가의 인격과 기질과 성격 스타일 정보 취향 철학까지도 엿볼 수 있다. 중광의 기질은 일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자유분방함이 아닐까 싶다. 

'무제' 91*116cm 장안요 소장 

동심, 순수, 원시, 광기, 엽기까지 이 작품은 장 뒤퓌페의 아르 브뤼(Art Brut)요소가 다분하다 

그의 유머감각과 해학의 기지는 천재급이다. <사진출처> http://blog.daum.net/bkr0200/9636664 

'벙어리 절간'의 전경 

서울로 가는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나들목을 빠져나와 차로 10분쯤 달리면 몇 년전에 돌아가신 중광 스님이 말년에 기거하였던 집이 있다. 숲 속에 서 있는 이 집을 사람들은 '벙어리 절간'이라고 부른다. 집 앞으로는 도랑물이 졸졸 흐르고, 나지막하게 만든 사립문을 가만히 밀고 들어서면 뜰은 온통 떨어진 낙엽으로 가득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겉보기엔 너와지붕에 황토벽을 둘러친 움막 같은 모습의 집이 조용히 서 있다. 

[에바 알머슨 특별전(Eva Armisén Exhibition)] 2011.08.05(금)-08.28(일) 
롯데갤러리 본점 I 에비뉴엘 전관(지하1층~5층) 동시진행 중구 소공동1번지 롯데백화점 본점 12층 

에바 알머슨 I 'Sometimes I go far' oil on canvas 130*195cm 2011 

롯데갤러리 본점에서는 올 여름 바캉스 시즌을 맞아 <에바 알머슨>展을 마련했습니다. 1969년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수학한 에바 알머슨(Eva Armisén)은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해오고 있는 여류 화가입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유화와 에칭, 세리그래프 등 총 80여 점의 근작으로 구성, 눈부시도록 밝은 지중해의 정취를 갤러리로 옮겨 놓을 예정입니다.  

[한호 수교 50주년 기념 국제교류展] 2011.7.29- 2011.9.26 호주와 한국 

ⓒ Bronek Kozka, Pre-dinner drinks, 2008 대화의 단절과 인간소외가 주제인 것 같죠 

하나, 사라진 그러나 남아있는(Disappeared but Remained) 
언제: 2011.7.29 - 2011.8.27 어디서: The Australian Centre for Photography 
둘, 뉴 월드(New World) 언제: 2011.8.27 - 2011.9.26 어디서: 한미미술사진관 

<쉬어 가는 코너> 

진중권 신간 서양미술사(모더니즘편) 저자 강의 

오마이뉴스 백만인클럽에서 오래만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모더니즘편) 강의를 들었다. 

이번에는 진중권이 <서양미술사(모더니즘편)>를 펴냈다. 그가 철들었는지 쉽게 썼다. 아니 독자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높아졌다. 소설책처럼 읽어도 될 것 같다. 완벽하게 알면 문장이 쉬워지는 것이리라. 오래간만에 유쾌하게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한스 제들마이어(Hans Sedlmayr, 1896-1984) 문화보수주의의 근간으로 모더니즘 아방가르드미술을 더 날카롭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었다. 그 키워드는 <순수-광기-근원-기계> 모더니즘은 역시 머리로 기계로 원시로 음악으로 미술이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다. 아프리카미술과 기계주의가 같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시기다. 

사실 모더니즘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1916년 작품)에서 끝났다. 이걸 억지로 아니 간신히 살려낸 것이 바로 뒤샹이다. 그리고 설치미술은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기념비(1920년 작품)에서 끝났다. 이걸 또한 간신히 살린 것이 백남준이다. 다다익선은 이 작품의 모작이다. 


진중권은 현대미술이 정치가 거세되고 내용이 사라지고 오직 형식주의만 남을 것을 아쉬워한다. 남성의 성기가 자본에 거세된 것처럼 말이다. 모더니즘 기간에 미술의 재판관 역할을 한 아카데미즘은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날도 그런 괴물들은 여전히 다시 돌출하기도 한다. 예술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탈과 아방가르드와 추상이 미술을 주도할 때 워홀은 마를린 먼로 그림을 그리고 있자 사람들이정반대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미술의 어처구니없는 코미디다. 

20세기 전쟁의 광기에 대항하여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의 광기로 맞셨다. 어느 광기가 더 센지를 보여주려 한 것인가. 이열치열이었다. 
20세기에 원시의 미술 문명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또한 최고의 코미디다. 피카소의 구원한 것은 역시 아프리카 원시 가면이었다. 20세기처럼 복잡한 연대기에 가장 단순한 것을 최고미로 쳐준 미니멀리즘이 나온 것도 또한 어처구니없는 부조리다. 

중광 없는 대한민국은 재미없다. 천상병 없는 대한민국은 재미없다. 그래도 진중권 있어 대한민국은 재미있다. 

회화는 이제 사물이 되지 벽지가 되어 시시해졌다.미술에 서사(storytelling)적 요소 혹은 건축적 요소(원급법)가 사라진 것은 미술의 본질에 충실하려는 것인데 이런 점은 마음에 든다. 이런 것은 마네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제 예술은 기술(엔지니어)가 되고 말았다. 

무정부주의와 지방자치를 옹호하는 등 일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다다의 정신은 그 무모함에도 현대에서 여전히 필요한 최고의 미덕이다. 진중권은 그런 면을 동시대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그의 책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재현이 아닌 순수를 지향한 추상은 결국 좌절을 맞는다. 그의 유토피아는 음악처럼 음표 없이도 영혼의 울림을 주는 그런 것으로 나아갔지만 결국 미술의 12음법을 만들진 못했다. 하긴 미술은 의미가 아니라 기호일 뿐이다. 

[구글 트위터 북페이스처럼 오마이뉴스에 어울리는 신사옥은 어떤 것일까] 

오마이뉴스 새사무실 황두진 건축사(오른쪽) 

직원들의 효율성과 함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건물개념 혹은 디자인은 어떤 것인가 


개인공간을 최소화 하고 공동공간을 최대화 하기가 과제라고 황두진 건축가는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낯선 hot bedding를 들고 나왔다. 

친근감을 주는 공간이 소통과 참여가 원할하고 창조적 생산공간이 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다 

가장 오마이뉴스다운 건물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인간이 공간을 변화시키고 공간이 인간을 변화시킨다. 공간과 인간 시간과 인간에서 상생하는 길은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가장 소통이 잘 되는 창의적 공간 속에서 효율적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과제다. 그리고 밀실과 광장의 독자성을 확보하는 것 또한 큰 과제이다.  

Subtitled speech by Prime Minister Jens Stoltenberg to the victims of the 2011 Norway attacks 추모연설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성, 인간애" 

"만약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증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랑은 얼마나 클까요" 

Photo AP  Emilio Morenatti 

Photo: The New York Times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분주한 발길 국가재정적자의 폭탄을 막지 못한 것인가요 부자 감세 때문인가?  중국이 미국중심 교역에서 다른 나라와도 다양한 교역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Les États-Unis ont échoué à désamorcer 'la bombe de leur dette', a jugé mercredi l'agence officielle Chine nouvelle et la Banque centrale chinoise continuera à diversifier ses investissements en devises étrangères face aux menaces qui pèsent encore sur le dollar 

The United States failed to deactivate 'the bomb of their debt', judged on Wednesday the official new Chine Agency and the Central Chinese Bank will continue diversifying his investments in foreign exchanges faced with the threats which still influence the doll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