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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50대 (1982-91)

[백남준] '혁명가족(Revolution Family)', '장 폴 파르지에' 해설

<가족의 동질성 - 장 폴 파르지에 19895월 파리> [...] 이제부터 백남준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은 가족 간의 닮음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간의 상반된 문화와 제각각의 방식이 위성 중계를 통해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노력한다거나, 다른 것들과 가장 다르게 구분짓는 하나의 성씨로 - 예를 들면 혁명(Revolution Family) 같은 구성된 로봇의 그룹이든 항상 처음 시작과 같은 느낌이다.

. 혁명 가족(Revolution Family)을 만들어 내다니! 1789 프랑스혁명의 200주년 기념식을 위한 의뢰만 아니었더라면 백남준은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volution Family 작품은 백남준이 그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가 되었다. 파리에서는 루소(Rousseau), 볼테르 (Voltaire), 디드로(Diderot),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그리고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의 상징을 세운 한편, 몬트리올에선 당통(Danton), 마라(Mara) 그리고 자크 루이-다비드 상징을 세움으로써 백남준은 우리에게 작품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전달한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이 한 전시를 통해 함께 모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자유 평등 박애 전 세계적으로 돌아다니며 세계 어디서나 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세 가지 단어들. 백남준이 프랑스혁명의 8인을 하나의 작품으로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감히 입밖으로 이렇게 직설적으로 이 세 가지 단어들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세 단어는 프랑스혁명의 유산을 압축시키고 나타내는 단어들이자, 건물 입구에도 새겨져 있고, 많은 깃발의 색깔에서도 보이며, 프랑스뿐만이 아닌 별 관심없는 국가들마저도 비디오아트의 창조자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게 떠돌아다니면서도 명백하게 전달되는 자유, 평등, 박애의 메시지를 보기 위해 서성거렸다.

백남준의 작품을 아는 사람들에게, 또는 서서히 발견해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명백히 자유를 타나내는 존재이다. Fluxus 예술가 그룹의 무정부주의의 기치 아래에서 30년 동안 그는 자신의 근본에 대해 부정한 적이 없다. 모든 자유의 아티스트로 남아있는 것이다. 상투적이지 않은 유머 감각, 발명품에 대한 재해석(똑같은 전기 재료들을 쓰긴 하지만 매년 기술의 응용력은 넓어지고 있었다. 상업 시스템에 대한 불복종, 전략적인 다양성(모노 테이프부터 여러 방식을 사용한 설치 / 조각의 위성 중계, 각각 다른 채널에서의 판매 등) 등 모든 것이 백남준과 그의 작업물에 자유의 아우라를 부여한다.

처음부터 독일 부퍼탈 (Wuppertal)에 준비해 놓은(, 처리해 놓은) 13개의 TV 세트들은 전자적으로 생성된 이미지들을 담은 텔레비전의 절대적 위상에 도전하는 것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이 있었을까? 이상의 독재를 뒤엎는 것? 그래서 최첨단 '노예 테크놀로지' 에게 자유를 주면서 현실의 재현에 대한 모든 자유를 주는 것? 이것은 백남준의 '추상 텔레비전'이라 명명한 것에 의해서 성취되었는데, 같은 이름을 가진 회화를 대칭하여 배치해서 전지전능한 상징 (13대의 텔레비전의 서로 교차하는 주사선, 서로 뒤엉켜있는 줄무늬들, 안개 속에 보이는 흐릿한 깜빡이는 빛, 그리고 순수한 리듬을 화면에 띄워 방송시키는 13개의 TV 세트)에 대항하는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하였다.


[백남준 취미: 뒤집어 업기 즉 전복]<프랑스혁명 200주년 맞아 1989년 프랑스정부가 백남준에게 의뢰한 '혁명가 가족 로봇' 시리즈' 진화, 혁명, 결의(Evolution, Revolution, Resolution)<일종의 전자조각>'아래는 판화작품),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 서양사를 뭉개버리다> 여기 보면 프랑스의 백과사전파(프랑스 혁명을 일으키게 한 원동력이 된 책. 당시 프랑스 민중들, 이런 책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접해 혁명이 터지다) 대표주자 디드로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디드로가 만든 이런 백과사전이 나오기 2000년 전에 이미 중국에는 백과사전파가 있었음을 알린다. 그 책이 바로 '여씨춘추(呂氏春秋)' 백남준은 이렇게 동서문화의 차이가 있음을 아시아 문화의 선진성을 함께 담았다. '여씨춘추' 기원전 239년 중국 진나라 재상인 '여불위'가 주도하여 편집한 백과사전으로 제자백가 시절 잡가의 대표작이다.
여기에는 정치와 율령의 참고하기 위해서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을 절충 · 통합시키고 세밀하게 분석해 실었다. 총 26권 160편으로, 연감에 해당하는 기(紀) 12권, 보고서에 해당하는 람(覽) 8권, 논문에 해당하는 론(論)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루고 있는 학설 중에는 도가(道家)의 것이 가장 많고 유가(儒家)·병가(兵家)·농가(農家)·법가(法家)의 주장과 이론도 섞여 있다. // 여불위는 이 책을 진의 수도였던 함양의 저잣거리에 전시해 놓고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고칠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 때문에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가 생긴 것이다. 위 작품 왼쪽을 보면 정말 '일자천금(一字千金)' 라는 글씨가 보인다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 맞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백남준 작품 발표할 때 프랑스 측 미술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1989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