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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50대 (1982-91)

[백남준] 프랑스 여성혁명가 '구주' 석판화에 등장하는 황진이 등 여성들 백남준 프랑스 200주년 혁명가 로봇 시리즈(연작)에 적어놓은 백남준 메모를 발췌하다 / 프랑스 여성 혁명가 '구주' 석판화 작품 위에 11가지 항목의 짧은 문장을 남기다 / 여기에 백남준이 관심을 두었던 동서의 여성 10여 명이 등장한다 / 한국의 탁월한 천재 여성 시인 '황진이'도 빠지지 않는다 / 백남준이 유치원 친구로 인연을 맺은 '이경희' 여사 등 여성들 명단이 나오네요 / 백남준을 두고 경쟁한 3명의 여성 이름: '샬럿 무어먼, 오노 요코, 구보다 시게코'도 나온다 / 평생 백남준을 지원한 일본 갤러리스트 '와타리'도 나오네요 그녀는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 출품한 백남준 TV 정원을 보고 그의 예술에 반하다 / 샬럿 무어먼 만나기 전에 백남준이 예술 파트너로 시도했던 '엘리슨 노울즈'가 나온다... 더보기
[백남준] 1991년 미디어 언론에 대해 언급한 5가지 키워드 백남준 1991년 미디어 언론에 대해 5가지 키워드(1. 섹스 sex 2. 폭력 violence 3. 탐욕 greed 4. 허영 vanity 5. 속임수 deception')로 요약하다. 가짜 뉴스에 조심하라는 메시지다. 독일 방송인도 백남준 말에 동의하다. "당신의 말이 옳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백남준은 이 독일 방송인을 탁상공론형 전략가와는 거리가 먼 훌륭한 방송인으로 평가하다. 백남준 방송과 시사에 관심이 많은 정보(information) 아티스트였다. 그가 인터넷 없는 시대에 인터넷 읽듯 뉴욕타임스, 슈피겔, 월 스트리트 저널 등 전 세계 신문을 읽은 이유다 더보기
[백남준] 언어의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게 21세기 살길 [언어의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21세기의 살길 -백남준. 다양성 강조] 황필호 철학자 : 선생님이 보시기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백남준 : 현재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21세기에 살아 남는 것이고, 살아 남으려면 하이테크의 무역을 해야 되는데, 한글을 가지고는 무역을 할 수 없어요.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내가 3~4년 전부터 한국에 올 때마다 이어령 장관부터 유명한 사람들한테 한글은 참 좋은 글이지만 이젠 안된다고 말해요. 마치 18세기의 맑스를 21세기에 써먹을 수 없듯이, 15세기 세종 때 만든 한글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지요. 한국인들 다른 건 다 잘하는데 한글에 대해선 관념이 고정되어 있어요. 보다 열린 한글의 시대가 필요하다. 황 .. 더보기
[백남준] 사진가 임영균을 1983년 뉴욕 그의 아파트 방문 사진가 임영균을 어렵사리 1983년 여름 백남준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백남준은 때로는 인류학자 때로는 미래학자라는 인상을 받았단다. 이 뉴욕 머스스트리트 110번지 5층 자택(소호구역) 작업실이기도 하다. 그때 백남준이 한 말에는 이런 것이 있단다. 1) 앞으로 TV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온다 2) 난 인공위성을 가지고 작업을 할거야(다음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 3)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자동차를 발명하면서부터야 4) 헝가리 가봤어 우리말과 같은 게 많아. 우리말 '가슴'이 헝가리어로도 '가슴'이야. '굿'도 '굿'이라고 해. 한옥의 나무 냄새도 똑 같아.뉴욕타임스 읽느냐고 물으면서 난 매주 과학 전문기자가 쓴 이 신문 사이언스 섹션을 읽는다네.그리고 임영균을 1995년.. 더보기
[백남준] 거칠 것이 없는 천재의 몸짓, 글과 사진 임영균 [사진 임영균 거칠 것이 없는 천재] 그는 폼 잡는 카라얀의 음악 연주(구음악 Alt Musik)를 시시하다고 보다. 그래서 신음악(Neue Musik)의 창시하다 즉 몸으로 음악을 연주하다. 아래 사진 1982년 백남준 뉴욕에서 미국미술관 휘트니에서 40주년 회고전을 할 때 퍼포먼스 연주> //아래 글> 거칠 것 없는 천재 - 임영균 : 1932년 서울출생인 백남준은 유년시절인 1945년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 백남준은 1947년 15세되던 해에 조숙하게도 서양현대음악의 아방가르드 였던 아놀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에 심취했다. 이후 동경대학교 미학과에서 현대 음악을 공부했는데 졸업논문은 쇤베르크 연구>였다./졸업 이후 스승인 모로이 사부로가 그 당시 서양현대음악의 본거지 독일에서 유학한 것을 알고 서.. 더보기
[백남준] 위성아트, 다중시간과 다중공간 사이에, 새로운 관계망 발명 [백남준 위성아트] 다중시간과 다중공간 사이에, 부분과 전체 사이에서 백남준은 끊임없이 언제 어디서나 시간, 공간, 창조와의 새로운 관계 발명했다. 작품에서 시작을 잃지 않고 어떤 순간을, 이를 수행하는 방법(이미)전체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개인에 의해서도 가능한 교향곡의 창시자였다 //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1984) 방송을 통해 위성 예술에 나타난 “다중시간적, 다중공간적”뉴욕 WNET 스튜디오에서 동시 방송 샌프란시스코(Laurie Anderson, Merce Cunningham, 필 글래스, 피터 가브리엘, 앨런 긴즈버그, 피터 올로프스키, 로버트 라우센버그, 존 케이지, 마우리시오 카겔, 샬롯 무어먼, 톰슨 트윈스) 및 조지 .. 더보기
[백남준] 'Les Nouvelles Littéraires' 다니 블로흐(미술비평가) 인터뷰 에서 다니 블로흐(미술비평가)와 백남준이 1978년 12월 한 인터뷰 내용 다니 블로흐는 누구인가? 1925년에 태어나 1988년에 사망한 프랑스 국내외 비디오 아트 전문가. 1982년에 그녀는 비디오아트에 대한 박사학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아트 앤 비디오(1960-1980)', 1983년에 '비디오아트' 출간하다1. "시간의 개념이 당신의 모든 작업을 조건 짓는 게 맞습니까?".백남준: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개념이며 피드백은 이를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저에게 피드백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 고리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폐쇄 회로 시간입니다. 노스탤지어(Noslalgia) 20년에 걸친 피드백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이 1920년대에 추상적 시간을 발견한 이래로 시간을 생각.. 더보기
[백남준] '혁명가족(Revolution Family)', '장 폴 파르지에' 해설 가족의 동질성 - 장 폴 파르지에 1989년 5월 파리> [...] 이제부터 백남준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은 가족 간의 닮음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간의 상반된 문화와 제각각의 방식이 위성 중계를 통해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노력한다거나, 다른 것들과 가장 다르게 구분짓는 하나의 성씨로 - 예를 들면 혁명(Revolution Family) 같은 구성된 로봇의 그룹이든 항상 처음 시작과 같은 느낌이다.아. 혁명 가족(Revolution Family)을 만들어 내다니! 1789 프랑스혁명의 200주년 기념식을 위한 의뢰만 아니었더라면 백남준은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Revolution Family 작품은 백남준이 그동안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가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가 .. 더보기
[백남준] 신라금관(사슴뿔 모양의 순금왕관), 스키타이에 온 것 - 백남준 //예를 들어, 스키타이인들이 한국의 남단에 도착했다... 부산 근처에... 그리고 신라의 왕(부산 부근에 살고 있던)이 사슴뿔 모양의 순금 왕관을 썼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스키타이 예술의 특징이다. 비록 두 문화의사슴뿔 크기는 달랐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왕관이 중국이나 일본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다.(누군가 만주 어딘가에 고비사막이나 시베리아 땅에 묻어두었을지도 모르지만.) 보이스가 내게 고비사막은 사막이 아니라고 했다. 그 당시 고비는 온통 수풀이었다고 했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에 집착했다.그는 단지 겉모습만 타타르족(한국인과 민족적인 유사성이있다)을 닮은 것이 아니라 샤머니즘... 그리고 살아 있는 영혼에 대한 집착과 같은 그들의 광기에도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나는 TV.. 더보기
[백남준] 새들은 노래를 통해 공간을 (탈)영토화한다 새들은 노래를 통해 공간을 영토화한다. 현대미술은 노래(무중력 소리)를 통해 전 세계 미술을 영토화한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이 말하듯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식, 즉 탈영토화이다. 백남준은 오늘날의 예술이 음악의 전시가 되지 않으면 탈영토화의 예술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첫 전시 제목이 음악전>인 이유다. 진정한 비소유적 예술형식이며, 진보된 전자통신기술 덕분에 시간과 공간, 자본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선언이다. //Les oiseaux territorialisent l’espace par leur chant. L’art contemporain territorialise l’art dans le monde entier par le chant (son en apesanteur). C’est l.. 더보기
[백남준] 루이즈 피포(L. Piffault) 올랭프 드 구주(O. de Gouges) 해설 J’ai choisi de travailler à partir d’une œuvre de l’artiste Nam June Paik. C’est un artiste coréen né le 20 juillet 1932 à Séoul, en 1964 il émigre aux Etats-Unis, il meurt en 2006 à Miami. Il a au départ étudié la musique électronique. Il a travaillé à Radio-Cologne avec le compositeur allemand et pionnier de la musique électroacoustique Karlheinz Stockhausen. Il côtoie l’avant-garde de l’époqu.. 더보기
[백남준] 1984년 일본 도쿄 소게쓰[草月]홀 '보이스'와 협연 1984년 일본 도쿄 소게쓰[草月]홀(일본 전위아트의 전당)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공동으로 참여한 퍼포먼스 '코요테 콘서트 II'가 펼쳐졌으며, 이들이 각각 몽골의 늑대 울음소리(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풍의 야생의 사고를 예술화)와 초원의 달빛(몽골 코드, 달 중심의 음력문화)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을 통해 1961년 첫 만남부터 23년간 계속 이어온 공동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후 1986년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 공연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셉 보이스의 죽음과 함께 미완으로 끝났다 더보기
[백남준] 퐁피두 전시, 전례(족보) 없는 미술양식, '비디오아트' 창안 백남준은 (서양에서는) 전례(족보)가 없는 새로운 표현양식(l'inventeur d'une forme d'expression nouvelle)인 비디오아트를 창안하다> 나는 추상적인 텔레비전(물리적 음악)을 발명했다 - 백남준>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교황 1982년 퐁피두 전시 텍스트 Contexte historique Par Alexandre Boza / 인터뷰 영어와 프랑스어로 말하다 백남준은 여기 1982년 퐁피두와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을 예언하다 Nous essayons de mettre un nouveau cerveau(신개념의 인공지능) aux televiseurs. 백남준 미디어 조명 확장에 애쓰다 Éclairage média> 백남준은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신하는 것처럼 음극선관이 캔.. 더보기
[백남준] 90년 보이스 추모굿, 장-폴 파르지에 영상 '늑대의 걸음' [백남준] 90년 보이스 추모굿, 장-폴 파르지에 영상 '늑대의 걸음'백남준 굿 -미디어론 맨 마지막 부분 친필 [장 폴 파르지에 백남준 굿론 원문 중 일부] Il a racontél'avion en flamme, le pilote nazi (malgré lui?), la Mongolie, le coup de foudre pourl'Asie./Des flammes en voici. Un des chapeauxen ciment est coiffé d'un bob américain,arrosé d'essence: allumette, feu, fumée.Quand le feu va s'éteindre, Paik le ré-alimente avec son propre chapeau, lechapeau tradi.. 더보기
[백남준] 1984년 홍라희 여사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의 글 받다 홍라희 여사가 백남준에게 고맙다는 인사의 글을 남기다> 년 백남준이 파리에서 전시할 때 참석한 홍라희 여사>  1980년대 삼성, 아직은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이다. 백남준의 큰 은혜를 입다.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의 브랜드가치를 공유한 것이다. 백남준 홍익인간의 전형 / 백남준도 후에 삼성의 TV 기부 등 많은 도움을 받다 // 1984년 홍라희 여사가 백남준에게 고맙다는 인사의 글을 남기다> "백남준 선생과 삼성과 인연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백남준 선생이 35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 국제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삼성 TV모니터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어느 날 백선생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삼성에 대한 기대.. 더보기
[백남준] 1988년 기자들과 만남에서 웃음보 만들다 백남준 왈 / “태고 때는 말이야, 우리 동북지방에 한 3개월 동안 한 번도 해가 뜨지 않고 늘 밤인 적이 있었어. 일본, 중국, 한국은 음력을 쓰고 있잖아. 그때 당시에는 해가 없기때문에 모두 달을 봤겠지. 달을 봤을 거야. 달을 보고 가령 예를 들어서 달무리가 서면 내일 비 오겠다, 달이 이제 그 어떤 크기에 따라서 날짜가 얼만큼 갔다고 알 수 있는 거고.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면서 정보를 서로 공유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오래된 TV고 달은 인류 최초의 TV였어. 선덕여왕은 첨성대를 지었어. 종이는 이제 죽었어. 단 화장실 종이는 빼고 말이야.”이러니 긴장 속 기자들과 좌중들 웃을 수밖에. 그의 타고난 입담, 그 천재성 놀라웠다 - 당시 다다익선 설치기계기사 '남주희'의 증언.. 더보기
[백남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위성아트 직전 KBS방송 1984년 1월 1일(한국에서는 1월 2일)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위상아트를 중계하기 전에 KBS가 제작한 백남준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내다. 80년대 만든 것인데 요즘 만든 백남준 자료보다 오히려 덜 왜곡되어 훨씬 뛰어난 생동감으로 넘친다. 황병기, 유진상, 이경성 당시예술계 인사들 인터뷰를 통해 백남준 예술의 이해를 돋는 내용도 나온다 사회 최효주(조각가) 백남준은 태평양 10번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완성했다고 한국 김덕련(비디오아트스트)와 장석원(미술평론가) 백남준 아트에 대한 설명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JUS6umKPzw 더보기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제목 붙은 그의 원문 영어 텍스트 백남준 쓴 영문글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살고 있다. 이 중 한 에세이인 에 나오는 텍스트[From Horse to Christo (1981)] 여기서 말(Horse)은 인터넷[통신속도]을 상징(?)A thorough study of video has to start with the horse since up to the invention of the telephone in 1863, also the year Monet invented impressionism, the horse was the fastest means of communication. The coincidence of these two events is significant as both inventions have torn apart a.. 더보기
[백남준] 프랑스혁명, 재해석하며 서구인에게 "더 공부하라"고 백남준은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프랑스의 그 어느 위대한 프랑스 역사학자보다 훨썬 더 창조적이고 객관적으로 과학적으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 논하다. 다시 말해 그는 1989년 전자조각의 한 장르인 전자 로봇을 통해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들보다 더 예리하면서도 통찰력 넘치는 사관을 펼쳤다.  백남준의 결론 "제발 서양인들(프랑스인들 당대에 유럽에서도 가장 선진화된 사람들)에게 공부 좀 해라. 특히 아시아에 대해서 말이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서양에서 가장 콧대가 높은 프랑스의 지성이었지만 이에 대해 조롱하다>백남준 로봇 안에 적힌 빼곡하게 장난스럽게 적어놓은 영어와 프랑스어와 기호에 대해 제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백남준 연구자들의 몫이다> 아래 작품 '디드로' 그는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대백과 사전을.. 더보기
[백남준] 첨단 테크놀로지는 그의 키워드, 근데 왜 굿이 나오나? 백남준처럼 첨단 테크놀로지를 많이 사용한 작가도 없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는 백남준 키워드가 된다. 백남준 예술에게 비빔밥이라는 말만큼 많이 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굿은 왜 나오나? 그것은 바로 기술의 한계점 때문이다. 기술의 인간화 생명화 활성화 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Gut=Good (진짜) 굿은 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홍익인간처럼. 예술에 있어 다빈치는 기술과 예술을 합쳤지만, 백남준은 한 수 위다. 기술과 예술 그리고 주술을 합친 것이다 더보기
[백남준] 굿모닝, "기술-예술 결합한 비디오 예술의 고전이 될 것" 1984년 굿모닝 위성아트에 대해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도 한마디 . 남편을 추켜세우다. "이것은 기술과 예술이 결합한 새 세대의 예술로써 미켈란젤로가 르네상스 예술의 고전이 된 것처럼 비디오 예술의 고전이 될 것이다" /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은 1000년 안에 다시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그 스케일도 그렇지만 1984년 1월 1일 전 세계 최고 아티스트를 한 자리에 같은 시간대에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게 백남준의 슈퍼파워다 더보기
[백남준] '그의 혁명은 정보혁명' 1989년 작 '자화상 [백남준의 혁명은 바로 '정보' 혁명] 1989년 작 백남준의 '자화상(아래)'을 보면 낡은 모니터 속에 TV 안경을 쓰고, 청동 마스크를 한 백남준이 출연한다. 또 동양사상을 연상시키는 '불상', 시간예술을 상징하는 '시계', 전자아트를 암시하는 '자석', 지구촌을 뜻하는 '지구본', 서구 음악을 뒤집은 '그랜드피아노', 비디오아트를 떠올리는 '비디오테이프' 등이 나온다. 이 작품을 잘 보면 '혁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게 무슨 혁명인가? 그것은 아마도 '정보 혁명'일 것이다. 백남준은 60-70년대엔 공간과 소리를 시간과 영상으로 전환하려 했다면, 80-90년대 이후는 "정보가 석유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하면서 정보 지식사회가 도래했음을 알렸고, 이는 현대 미술의 과제인 경제적 부와 .. 더보기
[백남준] 그의 어린 후배 강익중, 심히 아끼다. 강익중전(청주) [청주시립미술관 전관에서 7월4일~9월29까지]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강익중(1960~)의 커리어 40주년 기념 및 (청주와 청원이 통합청주시로 출범한) 통합청주시 10주년 기념으로 강익중 작가의 고향인 청주에서 청주시립미술관 전관에 걸쳐 청주가는 길: 강익중> 전시가 7월4일~9월29일 열린다. / 이규현 기획 / 작가의 고향에서 전시 / 백남준이 아낀 강익중 / 뉴욕 휘트니에서 백남준 강익중 2인전을 할 때 어린 후배에게 메인 전시장을 양보하다 더보기
[백남준] 홍익대 김은지 교수, 하늘을 나는 물고기 모든 것 설명 [김은지 홍익대 교수] 이 작품 제작에 필요한 83대의 TV를 한꺼번에 조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고민은 1984년 여름에 한국의 삼성전자가 120대의 TV를 지원해 줌으로써 해결되었다 이때부터 백남준과 삼성은 매우 가까워졌다. 백남준도 전에는 SONY를 많이 사용했다> 백남준 1985년 뒤셀도르프의 미술관(쿤스트무제움 Kunstmuseum)에 소장된 작품 하늘을 나는 물고기>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적고 있다 /  1초마다 변화무쌍한 모니터 화면이 달라진다. 백남준 원래 1974년 이 작품을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한 제작비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드는 TV 부처가 나온 것이다. 이 백남준 대표작은 뉴욕 미술계와 유럽 미술계까지 대박을 치고 결국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소.. 더보기
[백남준] "몽골인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따위는 없었다" 1984 몽골인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따위는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르네상스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동양문화를 서구에 갖고 돌아온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가 당시 어떻게 베네치아에서 베이징까지 올 수 있었는가 하면 실크로드라는 긴 길을 칭기즈칸이라든가 쿠빌라이가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백남준, 1984년 12월 파리에서 강연 (내 예술의 뿌리는 민중의 시간예술) 중 일부 발췌> 백남준 따라하기, 목포 백남준 전시에서 / 서구 고급 예술의 성상이지 상징물인 바이올린에 백남준 평생 여지 없이 모독을 가하고 조롱하다. 이런 백남준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바로 칭기즈칸의 유산(?)이다. / 12세기~13세기 이탈리아를 문명화시킨 것은 몽골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 다리(이탈리아와 중국과 몽골)를 .. 더보기
[백남준] 우리 모두 그의 '갈락시아스(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인류)는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너와 나의 '갈락시아스(은하계 γαλαξίας)'" - NJP 우리는 모두 남준의 '갈락시아스(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손에 백남준의 하늘에 그린 성좌와 SNS 은하계가 쥐어져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인간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주 어디나 구석구석 갈 수 있고 어느 시간이나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다> [은하 어원 명칭] 전 세계의 은하수에 대한 여러 이름과 그 기원, 관련된 창조 신화들을 설명: 한국에서는 ‘은하(銀河, 은빛의 강)’ 또는 ‘은하수(銀河水)’라는 명칭이 주로 쓰이며, 제주도에서는 ‘미리내’라고도 부른다.한자문화권에서는 ‘은하수(銀河水)’ 외에도 ‘은한(銀漢)’, ‘천하(天河)’, ‘천한(天漢)’, ‘천황’ 등 .. 더보기
[백남준] 프랑스혁명 200주년 작품, '전자요정(La Fee Electronique)'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작품 전자 요정을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만들었다. 백남준 서양의 정치 민주화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위대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서구문명의 맹정과 혹은 허점을 지적하다 1) 서구의 가장 앞선 지식체계인 대백과사전은 중국에 비해 2000년이나 뒤졌음을 지적하다 2) 프랑스 혁명이 서구 유럽의 민주주의에 가장 크게 기여한 놀랍고 혁혁한 역사지만 혁명이라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참고] 한국은 폭력이 없이도 2016-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서 민주주주의 혁명(정권교체)을 이루었다 이를 보고 독일 디 차이트>는 이제 세계는 민주주의를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극찬을 하다 /// 백남준, 서양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 혁명인.. 더보기
[백남준] 라울 뒤피,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 1[라울 뒤피와 백남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 퐁피두 전시 / 원문 백남준 아래 설치물은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 있는 Raoul Dufy의 전시실 방을 배경으로 전자 로봇을 설치하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 작품의 이름을 전자 요정(La Fée électronique.)>이라고 붙이다 //Nam-June Paik, 1989, douze postes de télévision en bois, douze moniteurs couleurs, un lecteur vidéodisque laser, tissu, fleurs en tissu, 300*200*50cm, Paris,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L'auteur de ce robot for.. 더보기
[백남준]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야기 2024.04.25 백남준 유치원 동창이자 수필가 이경희 선생(1932 생) 오늘 12시에 / 향년 92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내 몸이 그렇게 안 좋더니 결국 이경희 여사가 귀천, 자택은 용인이지만 장례식장 어딘지 확인? 반포 성모병원 장례식장 / 발인 4월 27일 8시 / 문상 25일 12시부터 / 사진 상. 2013년 / 하.이은화 선생님(오마이 기사 제가 초대 / 미술 미술사랑 미술사람 사람 생생한 미술관 이야기 전 세계 누비다 / 미에 미쳐서 미를 나누려고 하는 미술 스토리 텔러) - 저의 소개(김형순 30세기를 산 20세기 인물이라  제 이야기 좀 이해가 안 될수도?/백남준 불가해한 작고 -대체불가능 작가/백남준 연재 2년 -유튜브 6개월 -백남준 / 포럼.. 더보기
[백남준] 만약 코리아에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쫄딱 망했다 [백남준] 만약 대한민국에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쫄딱 망했다 [1부] 백남준 누구?[백남준 10년마다 크게 발전하다] (아래사진 백남준 1964년이후 10년간 뉴욕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 걸리다) / 백남준 '1932년' 초부자 집에서 태어나다 집이 3천평이고 집에 캐딜락 수리공 10명 고용 / '1942년(10대)' 뭘 했나? 프랑스어를 독학, 누이의 피아노 공부를 보면서 혼자 연습과 작곡 / 중간에 맑스를 접하면서 1945년(경기중 1학년) 당에 가입 / '1952년(20대)' 동경대 공부 쇤베르크 연구 / '1962-3년(30대)' 독일에서 첫 전시 TV 혁명(TV아트로 서양미술 추방-서양미술사 해체, 서양미술사에는 TV가 없다) / 그 중간인 60년대와 70년대 사이인 1968-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