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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50대 (1982-91)

[백남준] 거칠 것이 없는 천재의 몸짓, 글과 사진 임영균

[사진 임영균 거칠 것이 없는 천재] 그는 폼 잡는 카라얀의 음악 연주(구음악 Alt Musik)를 시시하다고 보다. 그래서 신음악(Neue Musik)의 창시하다 즉 몸으로 음악을 연주하다. <아래 사진 1982년 백남준 뉴욕에서 미국미술관 휘트니에서 40주년 회고전을 할 때 퍼포먼스 연주> //

<아래 글> 거칠 것 없는 천재 - 임영균 : 1932년 서울출생인 백남준은 유년시절인 1945년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 백남준은 194715세되던 해에 조숙하게도 서양현대음악의 아방가르드 였던 아놀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에 심취했다. 이후 동경대학교 미학과에서 현대 음악을 공부했는데 졸업논문은 <쇤베르크 연구>였다./졸업 이후 스승인 모로이 사부로가 그 당시 서양현대음악의 본거지 독일에서 유학한 것을 알고 서양현대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독일 유학을 갔다. 재미있는 공통점은 일본인 스승 모로이 사부로와 백남준은 모두 부모가 그 당시 일본과 한국의 대부호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경제적인 여력이풍부하여 거침없이 동경, 독일로 가서 음악공부와 활동을 할 수 있었다./당시 독일의 전자 음악가로 유명한 칼 슈탁하우젠 스튜디오에서 같이 연구했고 그렇게 현대 음악을공부하던 중에 미국의 전위 음악의 대가 존 케이지를 만나서 음악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리했다.예를 들면, 아름다운 소리만 나는 것이 음악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는 소음도 음악이 될 수있다는 사실을 존 케이지를 통해서 깨달았다.

그러면서 TV 화면에서 생기는 잡음이나 불협화음의 일그러진 영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했었다. 그러던 중 1965년 존 케이지의 권유로 뉴욕으로 이주하여 평생 예술적 동지인 첼리스트 샬롯 무어먼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샬롯 무어먼은 원래 아메리칸 심포니의 첼로 수석연주자로 유명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였다.

백남준은 1950년대 후반 부터 독일에서 플럭서스 활동을 했다. 1980년대는 세계최초의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로 명명되었고, 그 이후에도 뉴욕 프랑스 등지에서 활동한 예술적 공로를 인정받았다.그리하여 그동안 독일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쿠르트 슈비터스 상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교토상미국에서는 건국공로상 등을 받았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1993년 영예의 대상을 한국인 처음 받았던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국가관이 없어서 초청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백남준은 독일에서 오랫동안 활약하였고뒤셀도르프 예술대학 교수 신분으로 독일관 대표로 참가한것이다. 전시 주제도 백남준 답게 시대를뛰어 넘는 동서양을 잇는 <전자 슈퍼 하이웨이>였다. /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은 동서문화 교류의 상징인 실크로드로 설정하고 <스키타이 단군>, <징기스칸>, <마르코 폴로>, <알렉산더 대왕> 등 동서양 교류에 이바지한 역사적인 인물을 텔레비젼 세트를이용하여 만든 TV 로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