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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20대 (1952-1961)

[백남준] 동료 M. 바우어마이스터 왈 "그는 기존질서의 파괴자"

[백남준일기 2012-8-10]백남준 동료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왈 "그는 기존질서의 파괴자"

백남준은 기존가치의 전복자다. 백남준이 처음 독일에 도착하여 전위미술그룹에서 알게 된 여자 중 마리 바우어마이스터가 있다. 그는 전위음악의 창시자인 카를 하인츠 슈톡하우젠의 아내이기도 한데 쾰른에서 전위예술과 퍼포먼스를 주도했고 1960년대 독일 예술계의 프리마 돈나였다. 20091월말 한국을 방문하여 백남준 추모 3주기(2009.1.29)에 참석하여 추모강연회를 열었다. 여기에 그의 내용을 요약하야 적는다.

백남준과 나는 쌍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고 생각과 행동이 닮은꼴이었다. 오랫동안 영혼의 대화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나는 같은 세대의 사람으로 당신에 기존문화에 대한 반항과 테러리즘을 감행한 것이 아닌가싶다. 이성적인 것의 종언을 선언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원칙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다만 우리가 주창했던 테러리즘은 사회적 테러리즘이 아니라 철학적 테러리즘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원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었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악기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마음이 열린 사람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운드나 음악을 들을 수가 있다. 우리는 미술이나 문학 음악 철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바로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준다. 쾰른의 스튜디오에는 피아노가 아주 많은데 나는 그 피아노를 다 분해해서 나무로 된 부분을 버리고 기본적인 틀과 현만을 이용하여 백남준과 함께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피아노란 독일 부르주아가정의 상징물이었기에 우리는 그것이 상징하는 것을 라인강에 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피아노 뒤에서 청소하는 빗자루를 총처럼 쥐고 사람들은 향해 쏘는 것은 부르주아의 상징을 파괴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예술이다

우리는 백남준을 통해 서양철학이나 불교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그리고 당신에는 미술하는 사람은 미술만 하거나 건축을 하는 사람은 건축을 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에 함께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스튜디오에 모여 서로 영감을 교류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TV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백남준에게는 TV가 있었다. 그는 자석을 이용하여 TV이미지를 왜곡시키면서 퍼포먼스를 했다. 백남준이 그런 작업을 시도한 것은 그가 TV그 자체로는 멍청하기에 TV에 나오는 이미지를 변환하거나 왜곡시키거나 변형시켜야만 똑똑한 기계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를 이용한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매우 신선하고 한계나 제약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영구성이라는 생각 자체를 부정했고 뭔가 파괴할 수밖에 없는 영속적인이지 않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추구했다. 우리는 예술이 영원하다는 개념에 도전장을 내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실험정신으로 뭉쳐있었다. 백남준은 매번 즉흥적으로 20분이상의 퍼포먼스를 했다. 그리고 백남준은 그 행위자체를 백남준만의 정신력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예술행위로 승화시켰다

나는 백남준이 사람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끌어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조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백남준이 참여한 해프닝이나 퍼포먼스는 다 성공적이었고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백남준과 나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백남준은 "나는 여기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뛰어난 지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뉴욕은 우리의 새로운 놀이터가 되었고 아주 재미있었다. 그는 터부를 건드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무어만과 백남준이 한 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이 해프닝으로 백남준과 무어만은 하룻밤 감옥에서 지닐 수밖에 없었지만 뉴욕에 큰 충격을 주고 언론이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기에 성공을 거두었다 어쨌든 그 당시 미국에는 그 나름대로의 신선함이 존재했고 마음대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백남준은 기존의 질서나 기존적인 것을 파괴하는 것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순전히 창의력과 생각을 통해 엑스터시를 느꼈다. 그런 백남준의 정신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