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구적 가치의 처절한 파괴자였다. 신사의 규정을 다시 확립한 것이다.
[위 사진,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아틀리에서 열린 콘서트 중, 제목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Etude for Piano Forte)'에서 백남준 1960년 10월 6일 사진 출처 클라우스 바리쉬(Klaus Barich)]
<1959~1960년 60년대의 시작으로 1789년 서양의 정치민주화의 시발점을 연 프랑스 대정치혁명이 시작되었다면 그 혁명이 일어난 지 거의 '170년'이 지난 1959~1960년은 서구문명에서 그들의 예술체계가 해체되는 대문화혁명시기였다.
여기에 뜻밖에 우연히 백남준이 끼어들어 불을 붙이다. 쾰른에 있는 여기서 백남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다 / 쇤베르크-존 케이지-플럭서스-백남준 /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서양음약(서양예술전반)의 체계를 해체시키는 것이다. 이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바로 백남준의 스승인 쇤베르크다. / 서양문명이 과연 <신사>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나? 백남준 아니다고 대답(?).
백남준은 12세기 몽골의 문명(탱글리 문명, 푸른 하늘 경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경천사상'이라고 번역)이 20세기 유럽의 문명보다 훨씬 더 문명적이라고 본 것 같다. 그는 서구적 가치의 처절한 파괴자였다. 신사의 규정을 다시 확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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