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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사유에 대한 단상

[백남준] '포스트-미디엄 시대의 백남준' - 장 폴 파르지에

[포스트-미디엄 시대의 백남준 - 장 폴 파르지에(Jean Paul Fargier)] 저자 소개: 파리8대학 영화학과 교수, 파리에서 비디오아티스트 겸 TV PD로 활동. 문필가 겸 저널리스트로서 미술 및 영화 평론도 쓴다.

 

내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에게 영감을 얻어서 1969(정치적) 액티비스트 비디오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에, 파리에는 이 새로운 매체에 정말로 관심이 있는 예술가가 대여섯 명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내가 비디오에 관한 저술을 시작했을 백남준이 <글로벌 그루브>(1973)를 완성할 무렵 프랑스에 만수십 명의 비디오아티스트가 활동하고 있었다. 거의 5년 만에 비디오아티스트가 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나는 그들 모두와 개인적으로 알고지냈다. 우리는 작은 집단을 이루었고, 비디오 아트가 좀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기를 바랬다. 우리는 언젠가 비디오 아트가 전 세계에서 번성하리라 자신했으며, 결국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프랑스에만 수백 명의 비디오아티스트가 활동 중이고, 전 세계적으로 전자적 디지털 이미지로 작업하는 수천 명 작가들이 있다. 나는 매년 적어도 10명의 비디오아티스트를 새로발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미술관(같은 작가만 반복해서 다루는 경향이 있는 갤러리(미술관보다는 덜 폐쇄적인 비디오 페스티벌(진정한 놀라움으로 가득찬)을 방문한다. 이게 나는 백남준이 멋지게원어 그리고 그가 정력적으로 탐사했던 포스트-레비전의'채널'(이 말은 '그루브'라는 말의 다양한 의미와 일부 상통하는 면이 있다)에 뒤이어 뛰어든 사람들을 50명이나 알게 되었다.

 

많은 비평가들은 비디오아트 텔레비전과 연관지어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텔레비전과 무관하게 관계적 미학'을 말하고 포스트-텔레비전 시대 간과한 포스트-미디엄의 조건'을 말한다면, 지난 40년간 계속된 비디오아트의이 어떤 예술적 힘을 내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내가 비디오아트의 전개 양상을 계속 탐사하는 이유는 백남준의 작업에서 -> 계속나타났던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연관성 때문이다.

 

나는 1975년에 "비디오는 텔레비전의 자의식이다"라고 선언한 적이 있다. 여전히 나는텔레비젼과 비디오의 관계를 그보다 잘 정의하는 말을 알지 못한다. 또한 이 말은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에 대한 정의로 독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이 자의식은 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사르트르에게 영감을 얻은 나의 선언은 텔레비전이 오직 '()의식'반을 낳는데 반해 의식은 오로지 비디오 그 자체로부터 산출된다는 믿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무의식이라고 한다면, 나의 선인은 조금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1980년대에 모든 비디오 현상은 TV 효과 effect"라는 선언을 내놓았다.프랑스에서 비디오라는 TV 효과를 다양화하는 포스트-텔레비전 아티스트의 사례를 세 명만 골라야 한다면, 알랭 부르쥬(Alain Bourges), 리디 장 디 파넬(Lydie Jean-Dit-Pannel), 로랑 미예(Laurent Millet)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작업은 한마디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200811월 마르세유의 인스턴트 비디오(www.instantvideo.com)에서 처음 공개된 알랭 부르의 <투우스케치 Exquisses taura-machiques)는 투우경기 장면에 기초한 다섯 점의 연작이다.

 

아마도 서로 다른 경기장면에서 소스를 얻었을 테지만, 그 결과는 하나의 신비로운 투우경기로 종합돼 나타난다. 전체 작업은 투우의 전 단계-소가 입장하고, 투우사가카파(망토)를 펄럭여 소를 돌진시키고, 창을 꽂고, 물레타(붉은천)를 휘두르고, 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특히 색채에 대한 독특하고도 심층적인 탐구가 돋보인다. 회화에서 장면의 색조를 조절하듯이, 화사하게 반짝이고 눈부시게 빛나다가 다시 어두침침하고컴컴하게 잦아드는 색채의 변화는 특별한 국면의 변화를 표시한다.

 

여기서 디지털 파레트의 화려함은 시적 떨림의 절정에 이른다. 부르는 백남준이 한국무용으로 성취했던 '포스트-텔레비전의 비디오화를 투우로 다시 보여준다. 한편, 리디 장디 파넬은 지난 10년 간 <팔로공 Panlogon>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의 축도를 구현해 왔다.

 

반짝이고 빛나고 매끄러운 이미지로가득 찬 <광로공> 시리즈는 테크놀로지적 힘을 천명하는 이미지들의전 지구화에 대한 가장 압도적인 응답 중 하나로서, 백남준의 <글로벌 그루브와 유사한 계열에 있다. 작가는 문신을 새긴 수천 개의 팔을 연쇄적으로 한 쇼트씩 촬영하여 그 속에서 작가 자신 또한 작은 연결고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 지구적인 링크를 물질화하고자 한다.

 

또한 로랑 미예의 <사물의 배치 La constellation des choses)는세계가 분절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5년 전부터 비디오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이 생존을 갈구하는 순간을 연출없이 촬영하고 편집한 후, 이미지 상에 보이는 것 이상이 드러날 수있는 배치로 변환하고자 한다. 이 영상은 낱낱의 픽셀 같은 작은 점들이 연속적으로 서로 뒤엉키는 것으로 끝난다.

 

빛이 보유하는 모든 것들로 이미지를 작성하고, 반짝이는 반점들을 길들여 질서 정연하게 조직하고, 그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모든 것이 영속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가이자 순간적인 영속성을 포착하는 비디오아티스트로서 미예의 작업을 추동하는 의도적이고 복합적이며 생산적인 강박이다. 여기까지 백남준과 관련된 세 작가의 아름다운 인류학적, 예술적 여정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다른 신나는 여정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것은 당신이 문을 열어젖히고 발을 디디는 곳,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