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악보는 콩나물 대가리가 아니라 그냥 지시 내용이다: 백남준의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최후 1초, 교향곡 2번> 아래에서 보는 것 같은 괴상한 악보 혹은 작곡이 무려 20개가 있다. / 백남준 1961년 29살에 20개의 음악을 위한 기상천외한 전시를 열다 / 백남준 1963년 31살에 첫 전시 시간을 다르게 표현한(인간이 시간의 주인이라는 철학과 비디오아트는 음악기반 예술이라는 의미도 있다) 13대의 Prepared TV를 가지고 전시를 하다. Prepared TV는 존 케이지의 영향이다
여기서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다. 전시의 주인공은 관객이라며 전시의 주도권을 감상자에게 전권을 (정권)이양하다. 이건 보이스가 말한 "모두가 예술가"라는 말과 통한다. 그래서 참여 TV를 강조한다. 그러니까 1961년 20개의 음악의 전시와 1963년 13대의 prepared TV 전시를 합쳐 첫번째 전시의 이름이 바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다.
<물결 즉 파동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런 것을 발명한 백남준 환희로 몸서리친 것이 아닌가!>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백남준 45세 // 나마다 먹고 마시고 하는 게 아니라 창조의 즐거움을 말하는데 그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백남준, 리모콘 이용해서 바이올린이 물 위에서 연주를 하게 한다
쇤베르크가 <무조음악 (atonal)>이라면, 존 케이지는 <무작곡 (a-composition)>이고, 나는 <무음악 (a-music)>이다. 무음악이란 뭔가 무선통신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1백남준 80년대 별하고 놀다 위성아트 시작 (1982) 1984-1986-1988 다 전세계를 하나로 초연결하는 사회를 만드려 했다 이것이 결국 1990년대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 되다. 아래 작품은 작품은 1982 퐁피두 센터 삼색기
환경미술의 선구자 1974년 <TV정원> 바로 그 시발점이다. 자연과 문명이 50대 50대으로 균형 유지 못하면 코로나가 온다고 예언하다1미디어 뒤에는 돈(군산복합체, 제약회사, 핵 마피아 등 광고비)세력이 있다 - 백남준 // 백남준은 미디어의 5가지 특징 이렇게 요약했다 1. 성 sex 2. 폭력 violence 3. 탐욕 greed 4. 허영 vanity 5. deception 속임수 1991년
<<백남준이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 라는 별명이 붙은 정도로 과격한 퍼포먼스를 서구에서 선보인 동기는 바로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식민지 시대 때 경험한 지옥 같은 한반도 상황에 대한 처절한 저항의 몸부림이자 예술적 절규라고 볼 수 있다>> 아래 1964년 일본에서 퍼포먼스 공연 온 지구의 질서를 허물다 / 지구촌 운동장을 뒤죽박죽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질서의 새로운 예술이 태어날 요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 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0도)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서구에는 족보가 없는 비디오아트 시작하다
우리 시대, 가장 큰 적은 바로 찌든 언론이다. 그래서 미디어혁명이 필요하다 - 백남준 / 미디어 생산 주체를 획기적으로 혁명적으로 바꾸다
나는 세계적 예술가라기보다는 세기적(시대정세를 꿰뚫어보는) 예술가다1우리 시대, 가장 큰 적은 바로 삐뚤어진 언론이다1<나는 세계의 예술가라기보다는 세기(시대정세를 꿰뚫어보는)의 예술가> 시대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병든 언론이다. 그 뒤에 돈(군산복합체, 제약회사, 핵 마피아 등등의 광고비)세력이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1. 유튜브 2. 인터넷 3. 스마트폰 착안)으로 백남준은 1973년 1인 미디어 시대가 올 걸 예언.
백남준 시사정보(information)를 다룬 예술가다. 인터넷이 없는 시대 전 세계 유수의 신문(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을 다 읽은 이유다. 그래서 본인은 말하기 "나는 세계의 예술가라기보다는 세기(시대정세를 꿰뚫어보는)의 예술가"라고 했다. 이제는 뉴스생산을 언론에 의지하지 말고 개인 방송(인터넷 1인 방송 혹은 SNS 1인 방송)이 맡으라는 소리다. 이말은 정보화시대가 되면 개인이 방송하는데 별로 돈이 안 들고 그래서 광고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그래야 언론이 공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이 생각한 21세기 미디어 혁명인 것이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 <고인돌>말고 또 다른 출품작, 초연결이 그 주제다. 백남준의 '전자 마차(일명: 통신, 운송, 무역(Communication Transportatiom, Trade off-Trade) in 1995)' 역시 대단한 작품. 백남준 정말 천재네요 Video installation 277*533*150cm Exhibited in the special exhibition <Info Art> 1st Gwangju Biennale 199511995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백남준 <고인돌>에 대한 해설 / 고인돌은 선사시대 인터넷이다1백남준 I '해와 달과 별'. LA아트페어 출품작. 신시내티 칼 솔웨이 갤러리(Carl Solway Gallery)의 '백남준 팩터리'에서 만든 작품. 마크 파스팔마크 교수가 강연 중 찍은 사진. 단군의 후손답게 천문학에 관심이 높았다 조선의 조(朝)라는 한자를 잘 보면 <해 하나와 달 하나와 별 둘>이 보인다
<백남준 1996년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 승리자가 되었다. 다시 웃음을 되찾은 것이다. 그 소감을 작품으로 남겼다> 백남준 선생, 노마드로 전세계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그가 쓰러졌을 때 너무나 심정적으로 괴로웠을 텐데 그는 6개월만에 그 고통을 다 극복하고 다시 재기했는데 여기서 보니 그의 강력한 재기의지를 읽을 수 있네요. 1996년 작품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백남준 재기 노상 중"
백남준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한 후 쓴 텍스트 아트 1996년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을 생략하고 응용해서바로 '웃는 집안에 많은 복이 깃든다'는 뜻(?) 현대화랑 전시The laughter virus is the source of ten thousand blessings.1"세계사에서 우리가 이길 수 없다면 우리가 그 룰을 바꿔버리면 돼" - 1992년 그의 나이 60에 한 말이다. 백남준은 '교란자'였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중 문구> 세계의 역사에서 우리가 이길 수 없다면 우리가 그 규칙을 바꿔버리면 된다 1992년 [원문 Cependant, l'histoire du monde nous apprend que nous ne gagnons jamais à un jeu, nous pouvons par contre en chanter les règles] 가장 백남준다운 생각이죠. // 그는 서양음악 법칙을 깬 쇤베르트를 좋아했고 그 역시 그 법칙을 깼죠. 피아노연주를 손으로 하지 않고 머리로 하는 방식에서는 백남준이 세계최고의 연주가가 된 것이다. 누구든지 진정 1등을 하고 싶으면 기존 법칙을 무시하고 스스로 법칙을 만들고 그 법칙대로 하면 된다 // 우리가 한국사를 바뀌려면 서울대식 규칙 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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