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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30대 (1962-71)

[백남준] 노이즈 마케팅은 세계적, 인터넷 전자초고속도로 1974 백남준의 노이즈 마케팅은 세계적이다 백남준은 사기꾼이다 유럽을 완전히 대 혼란으로 빠뜨리다 주변 서양 예술가들 다 쓰러뜨리고 그 사이로 유유히 혼자 살아서 걸어나온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 백남준의 노이즈 마케팅을 정치활동에서 따라하고 있다 좋은 의미보다는 나쁘게... 백남준, 인터넷 미디어 아이디어(전자초고속도로)를 1974년 록펠러 재단에 제출해 예술 기금을 타다. 클린턴이 이 아이디어를 훔쳐서 이름을 살짝 바꾸다. 정보초고속도로>라고 그리고 이것을 대선 공약(미국전역에 정보초고속도로 개통)으로 내세우다. 백남준 이를 알아차리고 클린턴에게 항의하다. 더보기
[백남준] 뉴욕 빈민가, 서울 산동네(빈민가)보다 더 가난하다 백남준 왈 뉴욕의 빈민가가 서울의 빈민가(산동네)보다 더 가난하다>[도올 질문과 남준의 대답 1992년 이야기] // 질문: 한국에서 와서 가장 형편없는 동네를 가봤냐? // 대답: 누나 차가 있어 그 운전기사에게 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를 데려다 달라고 했다. 빈민자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달동네를 뒤집고 다녀 봐도 뉴욕의 슬럼 수준은 아니었다. 아주 처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그런 희망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은 없었다. 물론 개선할 점은 많겠지만 너무 비관할 수준은 아니다.촌평: 실제로 뉴욕의 중심가 맨해튼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교외로 나가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환경에서 사는 흑인촌이 많다. 한국보다 훨씬 못한 것이다 미국은 사실 부자나라지만 그만큼 빈부.. 더보기
[백남준] 18세기까지 동양 3국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이었다 18세기까지 동양 3국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 - 백남준 //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하는 동양을 후진국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히 미신이다. 18세기까지 유럽인은 동양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중국을 선진국의 모델로서 글을 썼고, '몽테스키외'나 '아담 스미스'까지도 그렇게 썼다.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직물, 실크, 식기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며, 유럽에서는 목기, 즉 나무로 만든 식기였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설거지가 잘 되지 않아서 병원균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죽었다. 중국이나 동양에 왜 인간들이 많은가 하면 일찍부터 도자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목기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게 때를 닦아낼 수 있다. // 페스트가 동양에서 그렇게 크게 유행하지.. 더보기
[백남준] 1964년 뉴욕 도착 후, 미국 미술을 20세기 1등국가로 만들다 20세기 미국미술에서 만약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여기에서 인터넷, 유튜브, SNS 스마트 폰 시대가 열리고, 위성아트, 레이저아트 그리고 AI 디지털 아트까지 다 나온 것이다) 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백남준이 독일에 있을 때는 독일미술을 유럽에서 1등 미술로 끌어올렸고 / 1964년 미국 뉴욕에 와서는 백남준은 미국 미술을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 // 휘트니미술관이 편저한 를 보면 "비디오아트는 60년대 미국의 반체제문화 속 세 가지 경향을 기술하고 있다.다시 말해 1) 뉴 테크놀로지 통해 확장된 지식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과 2) 비틀즈와 미국 비트 세대의 반전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세계 평화 공동체 운동 3) 독재자를 미화하는 광고주만 돈 벌게 하는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 더보기
[백남준] 첫 전시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낡은 재봉틀 백남준 첫 전시에서 -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였다. 나무들 사이에 깡통, 열쇠 따위를 매달아 바람 불면 소리가 났다> //  1963년 3월 독일 소도시 부퍼탈//시내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망측한’ 전시회가 열렸다. 문 위에 잘린 소머리가 걸렸고 현관은 대형 풍선으로 막아 기어서 들어가야 했다. 안은 마치 고물상 같았다. 이층 욕실에는 잘린 두상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텔레비전 13대를 조작해 관객 참여를 유도했다. 전시된 피아노 넉대 가운데 한대는 벙어리, 또 한대는 뒤집어놔 현 위를 걸어다닐 수 있었다. 멀쩡한 한대는 작가 요제프 보이스가 망치로 산산조각 내 버렸다.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였다. 나무들 사이에 깡통, 열쇠 따위를 매달아 바람.. 더보기
[백남준] 60년대부터 비디오아트로 미국미술을 세계미술로 끌어올려 백남준 뉴욕을 중심으로 비디오아트의 꽃을 피우다 그의 파트너 샬럿 무어먼 등 다수 / 미국 미술을 완전 세계 미술로 끌어올리다 / 이의 촉매제는 바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무어먼 총기획)이었다 백남준은 융합 총체 예술 / 동과 서가 힘을 합치고(전쟁 막고) / 자연과 문명이 힘을 합치고(환경파괴 막고) / 천과 지 하늘과 땅이 힘을 합치고( 원융 회통) 그 비율은 50:50이다 핸하르트(미국국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일찍이 스마트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이를 풀어서 말하면 백남준이 스티브 잡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소리다. 집단지성의 대명사인 온라인 위키백과도 사실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 프랑스 백과사전이 프랑스 대혁명의 동력이었다면, 위키백과는 정보혁명시대의 동력이다. 백남준 초기 TV.. 더보기
[백남준 ] Zen for walking 걸음을 위한 선, '문화 칭기즈칸'임 과시 백남준과 플럭서스 구성원들은 스코어 즉, 악보 혹은 지시문도 작성했다. 끌기 조곡>(1963)은 백남준이 만든 스코어 중 하나로 전시된 사진에서는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있다. 행위와 소리가 결합된 작업, 행위예술이자 음악이다. // 백남준은 1963-2006년까지 죽을 때까지 독일과 미국에서 서양 예술의 성상인 바이올린에 목줄을 달고 40년 이상을 끌고 다니다 // 그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결 같이 지구촌 공존과 상생과 원활한 소통을 추구하며 세계를 호령하는 문화 칭기스칸>이었다 더보기
[백남준] 베토벤과 비틀즈 그리고 백남준과 BTS, 원효의 원융회통 백남준은 베토벤 음악을 비틀즈 방식으로 재맥락화한 비디오아티스트다. 그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뒤섞어서 서구에는 없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창조하다 어떻게 보면 혁명이다.서구의 2원론을 걷어차고 1원론으로 나간 것이다. 고급예술=저급예술 이런 구분을 없앤 것이다. 고급예술에도 저급한 것이 있고 저급한 예술에서 고급이 있다는 소리다. 비틀즈는 대중예술이지만 고급문화라는 말이다. BTS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비빔밥 즉 융합과 통섭이 중요하다. 거기서 미개척 신대륙이 만들어진다 하긴 이런 개념은 이미 원효의 원융회통 같은 사상에 담겨 있었다. '원융회통(圓融會通 백남준 말로 하면 동서가 서로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보다 큰 융합과 상생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란 원효대사의 화쟁 사상(Super commu.. 더보기
[백남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 전자아트 같은 탈장르로 확장 백남준 비디오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시각예술가?> 결국 음악이라는 장르의 한계 벗어나 전자음악이 있듯 전자아트의 전자비전으로 확장 탈장르의 현상을 보인 거죠. 미술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걸 의미하죠> - 백남준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김홍희) 백남준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고전음악을 공부하게 되는데 백남준은 이런 클래식 회의를 가지게 되고 피아노 사이에 피아노 사이의 음악 없을까를 생각해 두 대로 치는 피아노를 치는 발상도 하게 되죠. 그런 어떤 고전음악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때 존 케이지 만남 우연히 만나 사상적으로 크게 매료되죠. 존 케이지 말하는 음악은 문학 철학이 다 음악이고 음의 화음보다 소리의 조직을 음악이라고 보죠, 바로 비트음악 몸의 맥박을 비롯한 신체의 소리 거.. 더보기
[백남준] 한국 언제부터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했나? 60년대 백남준 서구에 족보 없는 전자아트 창시 70년대 김민기 노래-노동자 희생과 산업화 기반을 닦다 80년대 백남준 위성아트(인터넷 예고) 90년대 삼성과 LG 전자기술-현대조선과 자동차와 IMF 극복 2000년대 김대중 광케이블 깔기(정보화사회 인프라)-남북평화정책-2010년대 중반 촛불평화민주혁명 2010년대 말기 코로나 대책(세계적으로 돋보이다)-2020년 BTS 등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하다 아래 저서 이미지 정치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무기는 돈이나 권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미디어 조작)이다 - 조슬렛(예술철학) 하버드대 교수 / 백남준, 주류 미디어를 교란시키는 자의 모습을 언급한다 더보기
[백남준]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려고 스노비즘 풍자 스노비즘(어떤 대상의 알맹이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려고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 및 '허영'을 나타내는 문화사회학 용어)에 대한 백남준 풍자> 그때 백남준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성공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여지껏 미술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잘난 체하는 아트 피플을 조롱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계에는 공정한 게임도 없고 객관적인 기준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게임의 규칙을 모른다면, 게임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하룻밤 새에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지요. 당신이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규칙을 바꾸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미술에서 정치의 문제입니다. 미술 잡지에 읽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술 잡지 같은 건 사지 마세요. .. 더보기
[백남준] 보들레르로부터 영감 받다. 예술가, 사회적 안테나 서양의 문화 테러리스트 보들레르(서양문화의 황제) 엽기적 악의 미학 창안동양의 문화 테러리스트 백남준(세계문화의 칭기즈칸) 엽기적 TV 아트 창안이들의 키워드 Visionary(견자론) Tele+Vison(전자 방식으로 멀리보다. 이게 나중에 인터넷이 된다) 오감 만족시키는 융복합(비빔밥) 통합예술 / 백남준 보들레르의 대표시 '조응(Correspondance)'에서 영감 받다 더보기
[백남준] 문화로 20세기를 지배한 칭지즈칸 백남준은 동서를 연결한 유라시아인이었고 지구촌 세계 시민이었고 한 시대를 구가하면서 1000년을 내다본 30세기적 기란아였다. 그는 단지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인이기도 하고 독일인이기도 하고 미국인이기도 한 세계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의 모든 철학과 가치관과 통찰력은 서구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17살 이전에 이미 한국에서 다 배운 것이다.13세기 칭기즈칸은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했지만, 20세기 백남준은 문화로 세계를 지배했다. 그래서 백남준을 문화 칭기즈칸이라고 부른다. 아래에서 보듯 백남준은 1963년에 이미 유럽의 목줄을 개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물론 상징적이고 예술적인 퍼포먼스였지만 말이다. 더보기
[백남준]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하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하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1965) /Tout comme la technique du collage a remplacé la peinture à l'huile, le tube cathodique remplacera la toile(1965)" - 백남준 / 프랑스 바칼로레아 대입 논술시험에 나오다. 위 문장 주고 이에 대해서 (수험자생들) 논하라!!! / 백남준 1960년대 전자붓으로 모니터 캔버스에 그리는 디지털 전자페인팅 발명하다 더보기
[백남준] 그리고 보들레르 세계 최고의 예술적 경지 도달 부처의 정신 동서의 결합 / 보들레르와 백남준 합쳐지면 세계 최고의 예술적 경지를 도달하게 된다> 서양에 보들레르(악의 미학감성 상징시인)가 있다면 동양에는 백남준(비디오 전자감각적 시인)이 있다.보들레르의 미학의 개념어인 상징적 조응[Symbolic Correspondance] :빛과 소리와 향기 등 상징적 오감이 총동원되어 상호작용하는 융합적 세계를 창조하다)와 백남준의 미학의 개념어인 전자적 통섭[Electronic Convergence] : 이미지와 사운드와 모바일 와 총체적 지식 체계가 전자적 오감이 총동원되는 융합하는 미디어 세상을 창조하다 더보기
[백남준] 플럭서스와 어떤 관계인가? 이 운동 왜 일어났나? 플럭스서가 왜 일어났나? 서양적 예술의 룰을 스스로 깨겠다고 일어난 미술 운동이라 그렇다> 백남준 비디오아트를 태동시킨 플랫폼이 되었던 플럭서스, 이 예술운동의 키워드를 이 단체의 회원인 딕 히긴스는 이렇게 12개의 주제로 요약 매우 유용한 자료 / 1. 동서 예술가 다 모인 국제적 조직 2. 삶과 예술의 일치를 무엇보다 강조하다 3 여러 매체의 결합 인터미디어다 4. 삶의 경험이 중요 5. 우연성을 강조 6. 유머와 재미를 강조 7. 현학적인 것 싫어하다 8. 위기에 대처하는 긴박성 9. 유별난 특별성 10 감각적 예민성 11 시간성 12 음악성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아트, '반전사상'과 '반체제'와 '신기술'에서 시작 비디오아트는 '반전사상'과 '반항적 반체제정신'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된 지각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에서 시작했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간행 '20세기 미국미술사'를 정리한 현대미술과 문화 1950-2000 > 중에서 세기 미국미술사> [비디오아트, 영화, 그리고 설치 1965-1977] 비디오아트는 1960년대 미국 반체제 문화의 세 가지 경향 속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된 지각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 반 베트남전과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인 민권 운동,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심이 그것이다.  60년대 중반 태동기부터 비디오는 세 방향으로 발전했다. 1) 환각적으로 굴절된 이미지 프로세싱, 2) 정치화한 공동체 행동주의, 3) 퍼포.. 더보기
[백남준] 진중권이 본 그의 '미디어 아트'론 - 백남준아트센터 진중권이 본 백남준 '미디어 아트'론 요약> 2010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01. 비디아와 비디올로지(videology)는 백남준의 예술적 신앙고백. 비디아(videa)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에서 유래하다. // 02. 비디올로지(videology)는 도상학(iconology)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 03. 구텐베르크 종이시대의 종언을 선언하다. 이제 더 이상 역사는 없으며 영상물과 비디오물이 있을 뿐이다. // 04. 백남준은 낮은 해상도와 노이즈로 승부를 걸다. // 05. TV는 모든 기술적 오작동을 통해 TV아트가 되었다(인터넷 되다) // 06.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언의 명제를 실천하다. // 07. 랜덤 액세스*(비정형-비연속-비결정주의 개척)-1963 선형성의 파괴, 소음의 .. 더보기
[백남준] 서양음악 해체 주동자, 유럽인에서 한국인으로 [1962년까지] 백남준 30살 서양음악 해체 주동자 백남준 아니라 유럽인(쇤베르크, 존 케이지, 플럭서스)이었다. 여기에 한계가 있었다.[1963년부터] 백남준 31살 서양음악 해체 주동자 유럽인 아니라 백남준이었다 그런 면에서 1963년 세계미술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점이다. 이제 드디어 백남준 나서다.  1953(도쿄대 재학 쇤베르크 논문구상)-1963(첫 전시 TV)-1973(인터넷 유튜브)-1983(위성아트)-1993(베니스 황금사자상)-2003(호랑이 살아있다/뉴욕회고전(뉴욕을 점령하다)/록펠러센터 앞:레이저아트) 더보기
[백남준] 1965년 연설하는 <인간화(휴먼화)된 로봇> 제안 백남준은 21세기 로봇 전성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거기에 따르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1965년 인간화(휴먼화)된 로봇> 제시하다. 백남준 첫 로봇 K-456는 똥도 싸고 모차르트도 연주하고 케네디 대통령처럼 연설도 한다. 출산 절벽 시대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은 불가피하다 //  로봇을 개의 모양으로 만들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로봇을 인간의 모양(휴머노이드)에 가장 가깝게 만들 때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일반폰이 하나의 스마트폰이 발전하듯이 / 로봇도 바로 모든 로봇 기능하는 종합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백남준 1965년 창안하다)으로 나아갈 것이다 / 자판 입력이 아니라 말로 물으며 말로 대답하는 챗 시대가 로봇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보기
[백남준] 운이 좋은 사람 그러나 실은 실력과 노력 있었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가 열린 파르나스 갤러리(독일 부퍼탈 ) / 소리에 예민한 광인 작가 / 뒤에서 이 전시 장소를 제공해준 건축가 '예를링 박사'가 아버지처럼 흐믓하게 백남준을 쳐다보고 있네요. 백남준 이렇게 속삭인다 "화창한 날에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 바람 부는 날에 라인간의 물결을 세어라" 더보기
[백남준] 호형호제하는 보이스, 어떻게 예술무당 되었나 요셉 보이스는 어떻게 '무당 예술가(shaman-artist 현대미술의 무당)'가 되었나?독일의 전후 예술가인 Joseph Beuys는 고대 샤머니즘 관습과의 연관성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왔다.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그는 자연, 동물, 인간의 원시 과거 및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깊이 연결된 수수께끼의 무당 인물로서 대중적 인물로 기성화되었다. 그는 이상한 공연, 의식, 교육 관행을 통해 이러한 주제를 자신의 예술에 통합하여 "현대 미술 의 무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이후 예술을 통해 치유, 변화, 재생 의 메시지를 장려했던 보이스가 채택한 샤머니즘의 핵심 주제를 살펴보자 https://www.thecollector.com/how-joseph-beuys-become-.. 더보기
[백남준] "너 서양 미술 다 죽었다" 내가 "황색 재앙"이다 "예술은 죽었다" 1963 - 백남준 / 백남준 1956년 독일에 처음 도착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한중일 동양어 3개국어와 독불영 서양어 3개국어를 안다고 / 그는 한국의 문화 칭기즈칸으로 서양애를 기를 팍 죽이다.  서양 미술은 죽었다 / 서양 미술 너 나한테 죽었다 / 내가 황색 재앙이다 / 내가 문화 칭기즈칸이다 /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완전히 혁신적인 예술을 하기 위해서 서양 미술판에 싹 쓸어버리다 / 서양 미술의 운동장을 다 물청소하다 / 서양 미술의 잔해와 전통과 유산을 완전히 제거시키다 / 고기 먹을 때 판을 바꾸듯 세계 미술의 판(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갈아엎어 버리다 / 그런데 그게 한번에 가능할까 그럴 때 백남준이 들이댄 것이 바로 TV다 비디오아트다.. 더보기
[백남준] 인간이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길이 뭔지 고민 [백남준은 인간과 시간과 공간(천지인)에 문제에 대해서 늘 고민했다. 특히 인간의 시간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떻게 하면 시간에 갇히지 않고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가? 이걸 예술로 표현했다. - 비디오아트가 시간 베이스 예술이 된 이유다(?) 그의 시각예술에서 음악이 중요한 이유인가?]내가 나름 10년 그 이상 백남준에 관심을 두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사상의 초입에도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세계는 아무리 캐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아진다.  그래서 그의 예술세계는 항상 흥미롭다. 절규로 유명한 '뭉크' 같은 예술가를 이해하는데 하루면 되지만, 백남준은 이해하는 데는 천년이 걸린다(?) 그래서 30세기를 예언한 밀레.. 더보기
[백남준 ] 1963년 '참여TV', 1965년 '자석TV', 소통 가능성 1백남준 참여TV는 백남준이 1963년 첫 개인전에 선보였던 13대의 TV(백남준 13가지 종류의 시간을 동시에 보여주다) 중 하나였다. 관객이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로 작품에 참여할 때만, 텔레비전의 화면에 빛의 선들이 어지럽게 나타난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조작하는 기술을 통해 텔레비전 화면을 임의대로 바꾸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은 이러한 비디오아트가 해프닝과 퍼포먼스에 새로운 피를 수혈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텔레비전과 같이 이전에는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새로운 미디어와 기존의 예술을 만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담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더보기
[백남준] 첫 전시 개념 18개 중 하나, 'Objet SONORE' [1] 백남준 7년간 준비한 첫 전시(독일 부퍼탈 갤러리 파르나스 1963년 3월 11일부터 3월 20일까지) 뒤샹과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개념미술가로 16가지 새로운 현대 미술 개념을 첫 전시 포스터에 적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objet(뒤샹 개념) sonore (음악의 전시, 백남준 개념)이다. [2] 음악을 전공한 백남준은, 전자 미술(페인팅)로 전시를 하면서 TV로 피아노로 연주하는 음악 미술가가 아닌가. 미술과 음악을 비빔밥처럼 비벼버린 장본인이다. 서양 사람에게 기절초풍할 일이다. 그들은 한반도 생각해 보지 않는 발상이다. 이 또한 서양에서는 전혀 새로운 실험 미술의 출발(5차원 사기)인 셈이다 [3]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개념 18개 중 왼쪽 3번째인 가 있다... 더보기
[백남준] 서구미술의 우월주의 한 방에 날리다 피카소보다 한 수 위 뒤샹, 뒤샹 보다 한 수 위 백남준 ​ 카라바조와 그를 모방한 네덜란드 등 유럽의 작가들 그리고 피카소도 마찬가지다. 뒤샹이 서양의 회화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레디-메이드를 만들었다는 면에서 위대하다. 그런 면에서 피카소보다 한 수 위다. 그러나 뒤샹도 백남준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다. 백남준이야말로 세계미술사에서 진정한 창조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와 인터넷과 SNS 소통방식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핸하르트'는 백남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폰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미술 평론가 진중권은 세계 미술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전반은 피카소, 20세..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아트' 탄생은 목숨 건 '15,000 볼트' 위험 ''난 1961년부터 시작한 전자공부를 매우 즐겼고 1만 5천볼트의 전기로 작업을 하면서 생명의 위험도 얼마간 즐겼다. 내가 미국인보다 2년 앞서 트랜지스터의 원리를 발견한 천재적인 아방가르드 천재공학자 '우치다 히데오'(우치다 라디오 리서치 연구소소장)와 과학이 논리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아는 전능한 기술자 '아베 슈아'같은 훌륭한 동료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현재 우치다 히데오는 전자기술적으로 텔레파시와 예언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 백남준"15000 볼트의" - 백남준  백남준 첫 전시를 하기 전부터 비밀방을 만들어 전자공학을 독학으로 하다. 그는 독서광이었기에 어디에서나 책을 읽었는데 비밀방을 만든 것은 거기에 가서는 전자공학 책만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는 10대 때 .. 더보기
[백남준] 1963년 'TV아트' 창시,1969년 '신디사이저' 발명, 1973년 '유튜브' 예언, 1974년 '인터넷' 착안 백남준 독일에서 미국 뉴욕으로 넘어가는 시기 1957-1974년 20여 년 치열한 도전 속에서 천재의 불꽃을 피우다 [1] 백남준 독일시대 : 1957(1956년 말)~1963년 7년간(독일대학 수업 관심 없었고, 독일 대학교수들 우습게 보다, 아예 대학을 차버리다시피 하다. 전위적 실험예술가들(존 케이지, 슈톡하우젠, 플럭서스 회원들과 놀다) 이 독일 수업시대 전자공학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지난한 고생과 어려운 진통 끝에 하다. 이때는 유학비를 집에서 보내주었기에 굶지는 않았다 [2] 백남준 뉴욕시대(1964년 뉴욕 도착) 중 : 1968~1979년 11년간 '벨연구소'를 다니면서 '미래사회 4차산업시대 대비하는 리포트를 쓰는 중 (중간에 록펠러재단 기금도 받다) 1969년 유튜브가 가능한 시디사이저(.. 더보기
[백남준] 신디사이저 발명 후, 다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신디사이저를 발명하고 나서 앞으로 유튜브가 나오면 이런 화면 조정이 가능하다고 예언하다. 1969년 제목 Versatile Color TV Synthesizer (1969) : This will enable us to shape the TV screen canvas. : As precisely/as Leonardo//As freely/as Picasso//As colorfully/as Renoir//As profoundly/as Mondrian//As violently/as Pollock//As lyrically/as Jasper Johns. //Versatile Color TV Synthesizer(1969) : 이를 통해 TV 화면의 캔버스를 형성할 수 있다. :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