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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30대 (1962-71)

[백남준] 1963년 백남준 전자 페인팅만, 1968년 전자신문만 남는다 [야듀 캔버스 – 김홍희] 발췌 -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오일 페인팅 사라진다. 전자 페인팅만 남는다 / 1968년 종이신문 사라진다. 전자신문만 남는다 "콜라주 기술이 오일 페인팅을 대신하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 1965년 이와 같은 예언을 하기 이전에 이미 백남준은 작품을 통해 브라운관 캔버스의 가능성과 그 의미를 보여주었다.  1963년 부퍼탈(Wuppertal)의 파르나스(Parnass) 화랑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회 - 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은 백남준의 TV 작업이 처음 소개되는 최초의 개인전인 동시에, 비디오아트의 문이 열리는 역사적인 전시회였다.  음악의 전시회>는 행위 음악의 상징인 '장치된 피아노.. 더보기
[백남준] 그의 흠모자, 부인 된 시게코, 갑부집 딸, 전위예술가 [백남준의 부인이 된 시게코] 대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 집안을 보면 상당히 지식인 층이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화가였고 그래서 미술지망생인 시게코 생애 영향을 가장 많이 주었다고 그의 아버지는 도쿄대학 출신으로 중고교장이었다. 어머니는 갑부집안 딸이었다고. 시케코를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여자애라고 투덜거렸지만 딸이 미술을 한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아버지가 딸을 위해서 지방 교장이었기에 동경에 가서 일본 최고대학 나온 미대생을 교사를 모시기 위해 동경 출장 갈 정도 그게 다 딸을 위한 아버지의 배려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게코는 타고난 반항적 소녀였고 그래도 공부는 1등을 했다고 중고시절 우리나라로 치면 성인용 국전(일본 중앙미술전)에 학생이 출품을 해 입선도 했으니 천재 소녀가 태어.. 더보기
[백남준]+위너, 사이버네틱스/피드백(쌍방소통)/비결정론 이런 비결정론은 예술을 만드는 과정에 관객이 참여하는 것을 충분히 정당화했다> [백남준과 위너, 사이버네틱스와 피드백(쌍방형 소통) 그리고 관객의 참여와 비결정론, 백남준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를 선불교 등 동양사상과 연결해 사유하다] 1960년대를 통해서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 백남준은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토대 위에서 그의 비디오 예술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의 한 가지 전략은 그의 비디오 예술과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를 연관 짓는 것이었다. 백남준은 비디오 예술과 사이버네티스 모두 피드백이라는 공통 특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 나아가서 이 둘 모두가 복잡한 피드백 메커니즘 때문에 결정론적인 통제로부터 벗어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예술가가 텔레비전 영상을 조작하고 이에 관객이 참여하는 것은 .. 더보기
[백남준]+매클루언, 랜덤 액세스, 촉각적 텔레비전 -디터 다니엘스 백남준과 매클루언> 랜덤 액세스가 가능한 촉각적 텔레비전 -디터 다니엘스"존 케이지Cage의 불확정성 아이디어, 매클루언McLuhan의 TV에 대한 적극적 지각 이론, 위너Norbert Wiener의 사이버네틱스 피드백 개념, 이런 것의 조합은 1968년 뉴욕의 보니노 갤러리 Galeria Bonino에서 열린 백남준의 두 번째 개인전 전자아트Electronic Art II에서 실행에 옮겨졌다“ 이러한 실험은 매클루언이 같은 시기에 텔레비전을 촉각적 미디어로 논한 것과 매우 유사한데, 백남준은 1965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 분명히 매클루언의 이 글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향'을 따지는 문제는 여전히 간단하지 않다. 어떤 종류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던 베냐민과 매클루언의 유사성을 떠올려 보라. 19.. 더보기
[백남준] 달 항아리 버전, Electronic Moon <달은 가장 오래된 TV> 한국 미술의 원류는 달 항아리다. 김환기는 물론이고 백남준도 예외가 아니다 백남준은 달 항아리를 전자예술로 바꾸다. 그게 바로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한국인은 달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이 편해지는 매개체이다. 더보기
[백남준] '해원상생(解寃相生)'과 'TV코뮌'과 하버마스 '생활세계' [해원상생(解寃相生)] 하버마스의 생활세계와 공론장 이론이나 백남준의 해원상생(돈보다 삶의 축제가 먼저다)은 동서를 너머 같은 것이다 서양철학언어로 쓰면 현상학에서 말하는 '약자의 힘(La force des faibles)'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백남준은 이것을 '글로벌 그루브(전지구적으로 축제가 넘치는 세상)'라고 했다. "해원(解冤)은 강자의 ‘갑질’로 인해 맺힌 약자의 ‘원(寃)을 푼다’는 뜻이 분명 있다. 그래서 강자와 약자가 조화와 균형 속에 상생하며.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원윈의 세상을 이루자는 메시지다. 그런데 이에 대한 뚜렷하고 체계적인 철학적 해석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아래 백남준 난관에 부딪친 인류문명사를 어떻게 구원할까 고민하는 모습>> 백남준이 말하는 'TV코뮌(Commune)'.. 더보기
[백남준] 전자 물감, 1천 200백만가지의 컬러를 내다 전자 물감은 1천 200백만가지의 컬러를 낼 수 있다(백남준의 말) / 유화 물감은 500가지의 컬러가 있다 / 전자 페인팅과 유화 페인팅은 비교를 할 수가 없다 / 1963-1964년을 기준으로 해서, 유화 페인팅 시대는 가고, 전자 페인팅 시대가 오다. 요즘 모든 공공미술이 바로 전자 페인팅이다(뉴미디어 페인팅). 전자 페인팅은 게다가 움직임과 사운드가 들어간다. 오감각(공감각)을 만족시켜 주는 페인팅이다 // 백남준이 일으킨 세계 미술사의 대혁명이다Electronic painting has 12 million colors / Oil painting has 500 colors / There is no comparison between electronic painting and oil painting .. 더보기
[백남준]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유라시아의 원시적 샤머니즘 결합 [백남준의 위대한 점은 서구의 과학도 잘 모르는 첨단 코스모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유라시아의 원시적 생명사상인 샤머니즘을 결합했다는 점이다]이용우 글, 초원의 원시생명력 찬가> 백남준 작업에 등장하는 자연 소재물은 동양과 자연주의 사상과 환경적 소재를 담고 있는 비디오 환경주의와 깊게 연결된다. 그의 멀티 모니터 작업이나 폐쇄회로를 통해 나타났던 부처와 화초, 물고기, 돌, 흙 등은 자연의 위대한 조화와 소재를 직접 비디오를 통해 투사하고 그것을 내적인 위대한 것으로 비추어 내는 것이다. 에디트 데커나 불프 헤르조겐라트는 이것이 동양의 선종, 선불교사상의 영향으로 보았으나 이것은 굳이 불교사상의 영향보다는 전통적으로 인습화된 동양인의 생명철학(生命哲學)에 기인된 것이며, 자연과 인간과의 상호 보완, 또는 .. 더보기
[백남준] 1963년 첫 전시 '포스터' 16가지 개념에 대한 정리 백남준 첫 전시 포스터에서 제시한 16가지 개념(제안)> // 1. 성인을 위한 유치원? / 2. 70%로 만족하며 사는 법 / 3. 이데아에 대한 맹목적 숭배(페티시즘) / 4. 20세기에 대한 기억(Erinnerung an das 20 Jahrhundert 영어로 Memory of the 20th Century) / 5. 소리 나는 오브제(양혜규 작가가 이 개념을 능수능란하게 활용) / 6. 사운드 아트가 있는 방(소리나는 방) / 7. 선(Zen) 수행을 위한 악기(도구) / 8. 조작된 화장실(Prepared WC, 이건 존 케이지의 Prepared piano에서 나온 것) / 9. 미국식 소곡(바가텔 bagatelle) 양식 등등 / 10. 나는 무엇을 아는가? / 11. 스스로 해라(...) .. 더보기
[백남준] <무음악(a-music)>, 쇤베르크 <무조음악(atonal)>, 케이지 <무작곡(a-composition)> 백남준]의 악보는 콩나물 대가리가 아니라 그냥 지시 내용이다: 백남준의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최후 1초, 교향곡 2번> 아래에서 보는 것 같은 괴상한 악보 혹은 작곡이 무려 20개가 있다. / 백남준 1961년 29살에 20개의 음악을 위한 기상천외한 전시를 열다 / 백남준 1963년 31살에 첫 전시 시간을 다르게 표현한(인간이 시간의 주인이라는 철학과 비디오아트는 음악기반 예술이라는 의미도 있다) 13대의 Prepared TV를 가지고 전시를 하다. Prepared TV는 존 케이지의 영향이다  여기서 전시의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다. 전시의 주인공은 관객이라며 전시의 주도권을 감상자에게 전권을 (정권)이양하다. 이건 보이스가 말한 "모두가 예술가"라는 말과 통한다. 그래서 참여 TV를 강조한다.. 더보기
[백남준]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 별명 붙을 정도 과격했다 백남준이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 라는 별명이 붙은 정도로 과격한 퍼포먼스를 서구에서 선보인 동기는 바로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식민지 시대 때 경험한 지옥 같은 한반도 상황에 대한 처절한 저항의 몸부림이자 예술적 절규라고 볼 수 있다>> 아래 1964년 일본에서 퍼포먼스 공연 온 지구의 질서를 허물다 / 지구촌 운동장을 뒤죽박죽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질서의 새로운 예술이 태어날 요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 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0도)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서구에는 족보가 없는 비디오아트 시작하다. 우리 시대, 가장 큰 적은 바로 병든 언론이다. 그래서 미디어혁명이 필요하다 – 백남준 미디어 생산 주체를 획기적으로 혁명적으로 바꾸다 나는 세계적 예술가라기보다는 세기적(시대정세를 꿰뚫.. 더보기
[백남준] 좌우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황당무계한 교란자 [백남준] 좌우 개념 구분에서 완전히 벗어나 교란자 백남준은 좌우의 개념 구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서구가 만들어놓은 그런 위험한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동양의 태극 사상은 좌가 우고, 우가 좌다. 양이 음이고 음이 양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를 가운데 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서구의 이원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다. 인간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인간은 선하면서 악하고 악하면서 선하다. 새는 좌우 날개가 있어야 난다. 인간은 좌뇌와 우뇌가 있어야 살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길을 가지만 좌우의 덫에 절대 걸리지 않는다. 다만 백남준은 언제나 약자 편이었다. 백남준은 좌우를 다 가지고 노는 교란자였다. 2 내가 세계 지성인과 대화를 해 봤지만 가장 .. 더보기
[백남준]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 – 김광우 미술평론가 글 중에서 백남준의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 – 김광우 미술평론가[성인만을 위한 첼로소나타 1번-생상스 테마의 변주곡-오페라 섹스트로니크-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 플럭서스 후기에 백남준과 무어먼의 해프닝은 비디오아트의 영역으로 이전되면서 좀 더 진전된 복합매체의 공연이 되었다.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란 제목의 수필에서 백남준은 복합매체를 비빔밥에 비유하면서 비빔밥의 본질은 그것이 콩나물, 숙주나물, 표고, 시금치도 아니란 점에 있다고 역설했다.백남준과 무어먼은 1964-1965년 보니노 화랑에서 연 2인조 해프닝에서 [1] 성인만을 위한 첼로소나타 1번 Cello Sonata No. 1 for Adults Only>을 소개했는데, 무어먼은 첼로 조곡 Suite for Cello>을 연주하면서 거의 누드가 될 .. 더보기
[백남준] 동갑인 포스텔, 둘은 1963년 '장치된 TV' 활용 [동갑인 백남준과 포스텔은 1963년 '장치된(사전에 조작된)' TV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그 접근 방식이 다르다. 포스텔은 단지 '오브제'로 백남준 '물리적 음악'으로 활용했다] - 김광일 평론가 ‘장치된 TV’는 백남준 외에도 볼프 포스텔에 의해서 제작되고 있었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또는 비디오아트의 황제로 불리지만 그가 아니더라도 비디오아트는 포스텔에 의해서 혹은 몇몇 전자기계를 미술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미술의 형태로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백남준과 포스텔 두 사람은 독일 전위예술에 가담하고 있었고, 슈톡하우젠의 스튜디오에서 함께 전자음악을 연구했다. 둘 다 플럭서스를 무대로 해프닝을 소개, 백남준은 그의 기관지 데콜라주>의 편집일을 했다. 백남준이 그의 .. 더보기
[백남준] '클린징 이벤트', 소게츠 아트 센터, 1964 위사진> '히라타 미노루' I 백남준의 '클린징 이벤트', 소게츠 아트 센터>, 1964(2017 인화), 백남준 32세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이 작품은 백남준이 온몸으로 만든 살아 움직이는 조각 / 백남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MOBILE(움직이는) 것이다 '소게츠 극장'은 일본에서 1960년대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진원지였다. 이 퍼포먼스를 촬영한 작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백남준은 자신의 머리에 세제를 쏟아 붓고, 피아노를 부수고, 옷을 입은 채 욕조 안에 서서 몸을 씻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남준의 클린징 이벤트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정점에 달한 시기에 보여 준 개인적인 작품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작가의 이런 사진들은 백남준 예술 활동의 초기 단계를 보여 주는 기록.. 더보기
[백남준] 그리고 들뢰즈 그들에게 "이제는 변방이 없다" 30세기 예술가 백남준 1000년을 내다본 디지털 노마드 작가 / 들뢰즈는 1000년(개)의 고원(Mille Plateaux)을 언급하다 // 《천 개의 고원》은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의 연구에서 따온 것이다. 베이트슨은 발리 섬의 문화를 연구하는 중, 발리인들의 생활양식 곳곳에서 절정의 추구를 회피한 채 유지하면서 진행하려는 경향을 발견하고 이를 '꼭대기가 있는 산'과 대비되는 '높고도 평평한 고원(Plateaux)'으로 비유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철학적으로 수용하고 《천 개의 고원》을 통해 뾰족한 꼭대기, 즉 하나의 점으로 수축시키고 고착화하는 것들에 대항하고 리좀, 분열분석, 지층분석, 화용론, 미시정치, 영토화, 탈주, 배치와 같은 다양한 개념을 창안한다...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아트도 결국 사진에 빚진 셈이 된다 [사진의 발명 가장 위대한 사건] 근대화(현대화)는 사진이 나오자 시작. 재현의 회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인상파가 나오고 상징파와 표현파가 나오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분리파도 나오고 그리고 추상파가 나오고 구상파(말레비치)가 나오다. 이런 과도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폴 세잔이다. 물론 피카소의 입체파와 뒤샹의 레디메이드도 있다 그리고 1960년 이후 마침내 백남준 TV(1년 후 비디오)를 활용한 추상음악으로 하는 미술 즉 전자회화가 나왔다.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까. 하여간 백남준(아티스트) 이후, 인상파 (화가)는 미술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눈이 변했다. 뒤샹까지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백남준 서양에 가서 인상파 그림이 너무 시시하고 하찮게 보였다고 말했.. 더보기
[백남준] 푸코, 제만은 깊은 사유의 잠수자들 누구도 감시 조정 못해 백남준, 푸코, 제만은 깊은 바다만 돌아다니는 큰 고래들, 사유의 잠수자들이다. 그 누구도 감시하거나 조정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특히 백남준은 1962년이런 말을 했다.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Creep into vagina of a live female whale)" 백남준 미셸 푸코 이들은 철학자이고 사유자들이다. 그런데 그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사유의 잠수자(thought diver)>들이다. 푸코는 스스로 아무도 볼 수 없는 깊은 바다에 잠수한 사유자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목격할 수 없는 너무나 깊은 바다 속에 잠수해 있기 때문에 고래처럼 누구에게도 조정 당하지 않은 상태에 놓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사회>에서 예외적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백남준도 이와 비슷하다. .. 더보기
[백남준] 나의 실험적 TV는 완전범죄(perfect crime) 시도한 최초 예술 "나의 실험적인 TV는 완전범죄(perfect crime)를 가능하게 한 최초의 예술이다" -백남준. 미술에서 최초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뒤샹 변기그림으로 유명세백남준은 자신의 전시를 완전범죄>라고 했다. 백남준은 첫 전시에서 서양뮤즈(서양의 예술 체계와 그 질서를 완전 해체-전복시키다)와 아폴로 신을 쥐도 새도 모르고 살해했다. 그리고 서양음악의 상징인 피아노를 때려부수다. 그런데 피아노파괴는 백남준이 하지 않고 그의 서양친구인 요셉 보이스가 했다. 백남준이 자신이 할 일을 서양친구가 대신해 주니 흐뭇해 하면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화의 탈영토화를 선언하다. 이제 문화예술의 주도권(텃세) 유럽이나 신대륙 아메리카를 경계를 넘어섰고 있다고 대신 서구에서는 낯선 샤머니즘 굿 문화를 출현시켰다. 그 문.. 더보기
[백남준] WGBH-TV 방송국 1970, Fred Barzyk, 슈아 아베, 백남준 경기 중 다닐 때 모든 시험이 100점 그는 물리학도 잘했다고 한다. / 독일유학 와서 퍼포먼스아트의 한계를 느끼고 전자아트로 결심하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는 '필로소피'라는 말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TV에 몰입했다 / 밀실을 만들어 거기서 혼자 전자공학을 공부했다. 사실 유럽친구들이 하도 자신의 것을 흉내 내 자기 것처럼 써먹으며 자랑하자 전자기술아트만은 1급 비밀로 했다 / 백남준 전문전자 테크니션 이정성 선생 증언에 의하면 "백남준은 독서광이라 책이 있으면 무조건 읽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독서도 스스로 안 하기 위해서 일체의 책을 눈에 보이지 않게 했다"고 / 그래서 1960-1963년까지 전자공학 독학 베를린 공대에 청강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첫 전시를 마치고 당시 최고의 전자선진국 일본.. 더보기
[백남준] '사이버네틱스와 예술(Cybernetics and Art)' - 홍성욱 [사이버네틱스와 예술 Cybernetics and Art 발표자: 홍성욱(Sung Ook Hong) 서울대 과학사 교수] II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미국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제창한 과학 분야이자 방법이었다. 사이버네틱스의 핵심은 유기체와 기계 모두에 정보교신(communication)을 통한 통제라는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기체와 기계의 행동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통제는 아웃풋의 일부가 마이너스 방식으로 시스템에 되먹임 되는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 담당했다. 사이버네틱스의 아이디어는 예술가들 의해 차용되었고, 이 중에는 백남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에세이 「사이버네틱 예」(1965).. 더보기
[백남준] 음극선관과 백남준, 파동의 미학, 그 원류를 찾아가기 파동의 미학> 음극선관과 백남준 CRT & N. J. PAIK 발표자 | 이원곤 Won Kon Yi // 이 연구는 음극선관(陰極線管, cathode-ray tube : CRT)와 백남준의 초기 비디오아트의 관계를 살피고 이를 통해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의 미학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하여, 본고에서는 먼저 CRT기이 확립되어가는 과정과 화상신호처리 및 표시방식의 특성, 50년대에 오실로스코프 (oscilloscope)를 이용한 B. 라포스키(Benjamin F. Laposky)의 ‘전자추상‘(Electronic Abstractions. 1952-), TV수상기를 최초로 화랑에 전시한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1963)로 이어지는 흐름과 그 미 학적 관심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지금까지 백남준과 .. 더보기
[백남준] 세계 최초로 모니터에 수평선-수직선을 그리는데 성공 [백남준 세계 최초로 모니터에 전자기술(전자붓)로 수평선과 수직선을 그리는데 성공하다 이거야 말로 세계 미술사에 혁명이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백남준의 가장 유명한 말(1965년)이 프랑스 대입시 논술 시험에 등장하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하였듯이, 음극선관(TV 모니터)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 - 백남준 (As collage technic replaced oil-paint the cathode ray will replace the canvas/Tout comme que la technique du collage a remplacé la peinture à l'huile, le tube cathodique remplacera la toile - Nam June Paik, 1965)" 이에 대.. 더보기
[백남준] 아시아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준 장본인은 바로 백남준 아시아의 자존감을 회복시킨 장본인, 그 출발점은 바로 백남준이다. 그는 1962년(백남준 만 30살) 선언했다 "내가 황색재앙이다" 몽골의 후손인 내가 너희 유럽을 다 쑥대밭으로 만들겠다. 무력을 쓰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예술을 통해서" 그래서 우리는 백남준은 "문화 칭기즈칸"이라고 부른다. 백남준: 21세기 한국이 세계문명의 전성기를 맞을 걸 미리 예시한 예술가 이제는 아시아가 서구에게 물을 줘야 꽃을 피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풍자화(?) 18세기까지 아시아가 유럽보다 앞서다. 그러나 중국 아편 전쟁(영국이 일으킨 야비한 전쟁)에서 치욕적인 패배(Defeat)로 아시아가 유럽과 미국의 지배를 당했지만 다시 아시아 주도권 시대가 회복된다는 메타포가 보인다. 이를 만든 사람이 바로 백남준이다. 이런.. 더보기
[백남준] 중국작가 구미는 저물고 아시아 부각, 백남준 통해 통찰 [유럽의 15세기 르네상스 미술 아버지 다빈치 그리고 미국의 소비주의를 형상화한 팝아트(원조가 앤디워홀이 아니라 영국 작가 해밀턴이다 아래 해밀턴이 보인다) 또한 20세기 서구 미술의 아버지 뒤샹(아래 뒤샹 대표작)이 백남준 앞에서 꼼짝을 못한다]중국작가 세계문명사의 흥망성쇠 (rise and fall of civilizations)미국과 유럽은 저물고 아시아의 부각을 백남준을 통해서 통찰하다. 지금 모든 지표가 유럽과 미국을 기울고 아시아가 부각되고 있다 특히 한류에서 보듯 한국이 세계문화를 주도한다> // [유럽과 아시아의 위상변화 : 뒤샹과 백남준의 대결구조로 풍자한 중국작가 왕싱웨이(Wang Xingwei) I '늙고 불쌍한(가련한) 해밀턴(Poor Old Hamilton)' 220×280cm 1.. 더보기
[백남준] '러셀 코너' 추상화가 백남준 만나고 나서 180도로 바뀌다' 러셀 코너(R. Connor Whitney Museum of Art의 교육 책임자. 아래 왼쪽)는 1969년 보스턴에서 미디어 비전가인 남준을 만났을 때,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던 추상화가였다. 코너가 어느 날 밤, SAAM의 McEvoy Auditorium에서 열린 백남준의 생일(1932년 7월 20일, 한국 서울에서 태어남)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에서 말했듯이, 그 만남은 코너의 삶을 바꿔 놓았다(코너는 그것을 "마음을 흔들고 삶을 바꾸는" 만남이라고 불렀다). 또한 그의 예술도 바꿔놓았다. 코너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라고 불렀다. 백남준 이전의 삶은 코너에게 다소 지루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예술적 나침반을 잃어버렸거나 잘못 놓았다"고 한다. 그는 추상화가였지만, 자신의 작업.. 더보기
[백남준] 노이즈 마케팅은 세계적, 인터넷 전자초고속도로 1974 백남준의 노이즈 마케팅은 세계적이다 백남준은 사기꾼이다 유럽을 완전히 대 혼란으로 빠뜨리다 주변 서양 예술가들 다 쓰러뜨리고 그 사이로 유유히 혼자 살아서 걸어나온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 백남준의 노이즈 마케팅을 정치활동에서 따라하고 있다 좋은 의미보다는 나쁘게... 백남준, 인터넷 미디어 아이디어(전자초고속도로)를 1974년 록펠러 재단에 제출해 예술 기금을 타다. 클린턴이 이 아이디어를 훔쳐서 이름을 살짝 바꾸다. 정보초고속도로>라고 그리고 이것을 대선 공약(미국전역에 정보초고속도로 개통)으로 내세우다. 백남준 이를 알아차리고 클린턴에게 항의하다. 더보기
[백남준] 뉴욕 빈민가, 서울 산동네(빈민가)보다 더 가난하다 백남준 왈 뉴욕의 빈민가가 서울의 빈민가(산동네)보다 더 가난하다> 미국 인구 50% 미국 전체 부의 2.7%를 차지한다[도올 질문과 남준의 대답 1992년 이야기] // 질문: 한국에서 와서 가장 형편없는 동네를 가봤냐? // 대답: 누나 차가 있어 그 운전기사에게 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를 데려다 달라고 했다. 빈민자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달동네를 뒤집고 다녀 봐도 뉴욕의 슬럼 수준은 아니었다. 아주 처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그런 희망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은 없었다. 물론 개선할 점은 많겠지만 너무 비관할 수준은 아니다.촌평: 실제로 뉴욕의 중심가 맨해튼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교외로 나가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환경에서 사는 흑인촌이 많다. 한국보다 .. 더보기
[백남준] 18세기까지 동양 3국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이었다 18세기까지 동양 3국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 - 백남준 //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하는 동양을 후진국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히 미신이다. 18세기까지 유럽인은 동양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중국을 선진국의 모델로서 글을 썼고, '몽테스키외'나 '아담 스미스'까지도 그렇게 썼다.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직물, 실크, 식기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며, 유럽에서는 목기, 즉 나무로 만든 식기였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설거지가 잘 되지 않아서 병원균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죽었다. 중국이나 동양에 왜 인간들이 많은가 하면 일찍부터 도자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목기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게 때를 닦아낼 수 있다. // 페스트가 동양에서 그렇게 크게 유행하지.. 더보기
[백남준] 1964년 뉴욕 도착 후, 미국 미술을 20세기 1등국가로 만들다 20세기 미국미술에서 만약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여기에서 인터넷, 유튜브, SNS 스마트 폰 시대가 열리고, 위성아트, 레이저아트 그리고 AI 디지털 아트까지 다 나온 것이다) 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백남준이 독일에 있을 때는 독일미술을 유럽에서 1등 미술로 끌어올렸고 / 1964년 미국 뉴욕에 와서는 백남준은 미국 미술을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 // 휘트니미술관이 편저한 를 보면 "비디오아트는 60년대 미국의 반체제문화 속 세 가지 경향을 기술하고 있다.다시 말해 1) 뉴 테크놀로지 통해 확장된 지식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과 2) 비틀즈와 미국 비트 세대의 반전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세계 평화 공동체 운동 3) 독재자를 미화하는 광고주만 돈 벌게 하는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