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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20대 (1952-1961)

[백남준] 문화 테러리스트 Eine Kultur Terrorist von Orient

[백남준] 문화 테러리스트 Eine Kultur Terrorist von Orient

2010-01-22 맑음

 

백남준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 Eine Kultur Terrorist von Orient

참으로 멋진 별명이다. 이런 영광이 없다. 한국예술가중 이런 찬사를 받은 작가는 없다. 유일무이하다. 독일인은 백에 완전히 반한 것이다. 예술의 뿌리는 공존과 평화다. 그러나 그 행위는 과격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않는 범위내에서 그런 테러를 통해서 평화를 갈구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테러라 말이 엇나가지만 한국의 미는 바로 엇나가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역설이라고도 말한다. 키에르케고는 연애에 열정에 해당하는 것이 진리에서는 역설이라고 했다

역설은 하나의 열정이다. 미술은 착시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얻고 소설을 허구를 통해서 진실과 만난다. 바로 그런 원리와 같은 것이다. 백은 가장 과격한 행동을 통해서 가장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예술에서는 쉽게 통한다.

 

백은 60년대 독일언론으로부터 동양에서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거칠고 과격한 포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별명을 보이스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이들은 요셉의 죽은 토끼포무대2시간그림을 가르치는 일장연설에 어처구니없는 퍼에 질렸다. 백은 한국인답게 속도감이 넘친다. 한수 위다. 더 파괴적이고 기발하다.단숨에 피와 바이파괴 괴격성과 신속성 넥타리자르고 머리에 삼퓨시키고 객석에소변보기 구두에 물을 담아 마시는 행위 머리를 먹물묻혀 글시쓰는행위 소머리를 전시장에 거는 행위 가히 예술적 테러리스트라할만하다

 

백의 근진적 사고와 행동은 플럭서스해괴망칙한 집단괴상과격콘서트상당히 알려졌지만 독일인에게 백은 큰 위로와 카타르시스주었다고 볼 수 있다. 메가톤급 고격성 백비디오동료 데이비드 앤틴은 가미가제식 공격이라고 했다

 

이런 어마어마한 퍼는 바이올린 독주 피아노포르테 머리를 위한 참선 면고칼로 팔뚝 자해하기 선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피아노포르테연구(삼푸 퍼)는 백이 케이지보여주려고 버른 작품이다. 야심작 정신적 스승에게 멋진 한판 백은 존을 1958년 다름슈타트에서 첨 만나 여름음악페스티발 케이지는 미구게 갔다가 1960년에 겨우 선보일 수 있었다

 

이공연은 백의 과격성 심각성 이념성이 드러난 작품

 

백피아노치자가갑지기울면서이러저리뛰어다니고피아노파괴피아노내장과 같은 부속품꺼내 내동댕이치고 부대바닥에 둘러엎었다. 그리고 가위들고 케ㅣ지 튜터데이비드튜터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앉은곳 무대로나가 충격과 인상 케이지 웃도리 돌려낼려고 차선책으로 넥타이 잘라냈다

 

준비한 샴푸 케이지 튜터들이부었다. 슈톡하우젠 백보고 기업해 후다닥 일어났고달아나버렸다도망가기는 당신한테 안 할거야 케이지 튣 옷 물에 흠뻑 젖었다.

얼마 지난 후 공연장 전화벨소리 요란 백남준 전화목소리 퍼는끝났습니다.

 

퍼가끝나고 한동안 정적이 흐른다 삽시간에 예기치못한 일 상상을 초월하는 것 멍한 분위기 여기저기서 긴 한숨과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어떤 유머도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퍼를 보고 너무 과격하다고 할 정도이니 혼쭐이 안 것이다. 케이지잘보이려지나치게 의식한 것이다

 

뉴욕전위페에서도 먹물 머리쓴채 족자에 기다란 글시 동양적 참선세계 관심을 높였다. 해괴한 행동 누고도 엄두를 못낸다. 예술이란 아무도 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주당 거나해지면 벌이는 해괴한 행동 고무신에 술담아 마시기 있다. 구두로 물마시기 예술로 써먹은 건 내가 최초라고 사실 이런 퍼는 한국주당들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백최초TV이용 전시회하던 19633월 어느날 황소머리 화랑입구에걸다 피가 뚝뚝 떨어지고 소의 눈망울튀어나온 형상황소머리 보이스 피아노부스기

압권이었다

 

음악의 전시 전자TV티뷰13대 활용한 전시회 티뷰13대가 황소한마리를 당해내지 못했다 술회 작심하고 어깨힘주고 뭔가 중대한발표 백의 부인 시게코는 강한 여자를 좋아한다. 술회 물론 강한여자라는 뜻도 있지만 인간미넘치는 똑 쏘는 과격성과 탈이탈성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백의 기행오늘날에도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과격성은 천성이 아니라 연출이고 관객충격줘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한 것일 수 있다

 

그는 분풀이 한풀이 성격도 있다. 한반도에서 이런 퍼가 이루어지기쉽지 않다. 환경이 다른 외국에서 실컷 이를 실험해 볼 수 있다. 일종의 해방감이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그로써 어찌보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놀는 천재가 한번 맘껏 놀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전후놀아보지 못한 세대 전쟁하느라 분주해서 그래서 서로 아구가 맞은 것이다. 기막힌 타이밍이다

 

그런 면에서 백은 운이 좋았고 인덕이 있었다고 할까. 그 시점이 아니면 그런 퍼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는 백의 이 포를 생각할때마다 통쾌함과 시원함을 맛본다. 한국의 60년대 김수영시인이 혼자서 시의 발설로 이런 시적 퍼를 혼자서 하고 있었다. 너무나외롭고 애초롭게 그러나 백은 독일인을 비롯한 세계적 전위작가들과 같이 할 수 있었으니 행운아다. 나는 그런 모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같은 착각에 빠질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