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에게 '막혔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를 가나 막힌 곳이 있으면, 그것에 구멍을 냈다. 송곳을 가지고서라도 틈을 내 소통하게 했다> // 백남준 드로잉(작품 구상) 정말 심플하다.
백남준 왈 "[...] 이는 마치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프랑스 철학자)와 노먼 메일러(1923~2007 미국 맑시스트 소설가)와 실존문제를 놓고 위성대담을 벌리는 걸 상상하는 것과 같잖아요. // 양 대륙 간 하늘이 막혔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 고작 몇 백 명을 놓고 하루 저녁 공연하는 브로드웨이공연보다 덜 드는 돈으로 나는 대륙 간 심지어 철의 장막에 갇힌 수백만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작품구상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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