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발표할 프랑스 혁명 200주년 특별전을 위해 프랑스 관계자와 사전 준비하는 정황이 알 수 있는 사진. 1960년대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의 창시자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등 프랑스 미술계 거물들이 보인다>
백남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프랑스 미테랑 정부로 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프랑스 측 큐레이터와 작업을 하면서 찍은 사진(1989.5.27)이다 큐레이터 수잔 파제(Suzanne Pagé, 현재 파리 루이 뷔통 창조 재단의 예술 감독)와 가운데 세계적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1960년대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의 창시자)가 보인다
[1] 1989년(프랑스 혁명 200주년) 백남준, 홍라희 여사, 박명자 회장, 원화랑의 정기용대표등이 파리 시립미술관 에서 열리는 백남준 전시 관람
[2]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당시 한국의 경제는 단군 이래 최고의 호경기였다. 내가 1989년(프랑스혁명 200주년) 8월 파리에 갔을 때 한국돈 가치가 정말 높았다. 돈을 쓸만 했다. 위사진 1989년 8월 17월 몽마르트르
[3] 당시 내가 백남준은 알았더라면 백남준 로봇 특별전(프랑스혁명200주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는데... 야외전시도 있었군요. 홍라희 여사도 보인다. 홍 여사 백남준 특별전에 참석하다
[4] 홍여사가 쓴 백남준에 대한 글:
"백남준 선생과 삼성과 인연은 <1>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백남준 선생이 35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 국제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삼성 TV모니터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어느 날 백선생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삼성에 대한 기대를 재치 와 유머를 섞어가며 표현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2> 다음 해 1985년에는 백선생은 삼성전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어 자신의 작업에 삼성 TV 모니터를 지원받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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