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10대 (1932-1951)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남준] 1932년 태어난 곳은 창신동 아니라 종로구 서린동 45번지 백남준 1932년 태어난 곳은 동대문구 창신동이 아니라 종로구 서린동 45번지(오늘날 서린호텔 자리)다. 지금 서린호텔(지상 20층 지하 2층, 2백11개의 객실과 각종 부대시설)은 1992년 갑을 그룹>에 182억 부도로 넘어가다 더보기 [공자와 백남준] 정치와 예술을 음악으로 풀다 두 사람은 정치와 예술을 음악(결국 평화)으로 풀려했다 1) 백남준 미술(총체예술)을 결국 음악으로 풀려 했다 미술도 음악(성)으로 풀 때 진정한 미술이 된다. // 백남준의 발상이 아닌가 싶다. // 물론 이런 갈 직접 언급으 하지는 않았지만... // 사실 이것은 칸딘스키기 먼저 발상하고 그런 미술을 실천했다. // 그래서 음악적 요소가 많은 추상 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 칸딘스키와 백남준은 음악적 미술을 했다는 면에서 서로 통한다. 2) 공자는 정치를 결국 음악으로 풀려 했다. 정치를 통치가 아니라 음악(율려)이 세상을 다스릴 때 지상에 평화와 공존의 세상이 온다. 공자의 사상과 유사하다> // "율려가 무엇인가? 율려가 무엇이관데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인가? //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정.. 더보기 [백남준]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초들 한국일보 기사 원본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001/wk20100107103740105450.htm 백남준을 이해하는 몇 가지 단초들 백남준아트센터는 2009년 2월과 9월 두 차례의 국제 세미나 를 개최했다.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 적절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내용 중 백남준을 이해할 만한 몇 가지 단초를 추려 보았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이 있다. 바로 전쟁이다. 나는 2차 대전을 겪은 세대다. 백남준은 초기 녹음 작업에서 전쟁 중 사람들이 죽을 때 내는 비명 소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둘 모두에게 친숙한 비명소리다. 우리는 각각 동양과 서양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고통을 알고 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더보기 백남준과 나와 나의 부친과 나의 누이 [하나] 1956에 유학차 독일에 도착 1957년 백남준 독일에 있었다. 1957년 부친 독일에 있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둘 ] 1978년-1982년까지 누이가 뒤셀도르프에 있었다 백남준 1977년 말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 되다 이것도 인연인가 백남준과 나는 어떤 인인이 있는가 사실 나는 백남준은 직접 본 적은 없다. 물론 TV 많은 영상과 뉴스에서 봤다. 백남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70년 말 경인 것 같다. 백남준 1978년부터 독일의 명문 미술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를 했는데 그때 누이가 뒤셀도르프 살았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간간히 들은 것 같다. 당시에는 차범근도 독일에서 축구선수로 이를 날리 때다 차범근의 나의 중고 동기동참이다. 그는 중3대 경기도 화성인가 축구 특..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