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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30대 (1962-71)

[백남준] "내가 TV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괴츠 교수 덕분"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대화는 더 풍요로워진다.’ - 백남준 그의 불확정성(예술이란 사실 아무도 가보지 않고 시도하지 않는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모험을 거는 것이다. 잘못 가면 죽을 수도 있고 길을 헤맬 수도 있다 백남준이 TV로 예술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엽기적이다 - 조가연 조선대학교 대학원 논문 중 일부 발췌

 

백남준에게 TV로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사람은 바로 '칼 오토 괴츠((Karl Otto Götz 1959년부터 1979년까지 뒤셀도르프 미대교수)'였다. 백남준은 그가 그때 컴퓨터페인팅 얘기를 했어요.”라고 기억했다 // 백남준은 스쳐지나가듯 괴츠가 문제로 지적한 전자TV의 카오스적 상태를 존 케이지식의 리듬 구조로 수용했을지도 모른다. 백남준은 첫 전시에서 괴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백남준은 예술 분야에서 불확정주의를 탐색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방법을 발견했다. 예술분야에서 불확정주의에 대한 탐색은 존 케이지의 영향을 시사하고, ‘탐색 방법에 대한 발견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시사한다.

 

존 케이지의 과정으로서 작곡과 칼 오토 괴츠의 브라운관 실험’385)은 백남준의 음악적 사유에서 연결되었고, 새로운 예술형식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백남준 아버지 역할을 한 장 피에르 빌헬름은 괴츠의 이론 체계와 케이지의 음악에서 백남준이 이끌어낸 결론이라고 표현했다.

 

백남준은 전시 서문에서 가장 먼저 칼 오토 괴츠(Karl Otto Götz)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장 피에르 빌헬름도 전시 서문에서 “17년의 기간 동안 괴츠가 구축한 이론 체계에 백남준은 아주 많은 것을 의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칼 오토 괴츠는 독일 앵포르멜 화가였고, 1959년부터 1979년까지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 교수였다.

 

1959년 뒤셀도르프 갤러리 22에서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 공연했을 때, 갤러리 주인 장 피에르 빌헬름이 소속 작가 칼 오토 괴츠를 백남준에게 소개했다. 백남준은 그가 그때 컴퓨터페인팅 얘기를 했어요.”라고 기억했다.

 

백남준은 내가 텔레비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괴츠 교수 덕분이었다.”라고 밝혔다. 괴츠는 백남준에게 브라운관을 통해 형성되는 전파 이미지의 불확정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남준은 전자TV라는 전파 매체가 예술적 매체로 변용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잡는다.

 

괴츠가 한 말: “(17년 전) 노르웨이에서 브라운관을 가지고 많은 실험을 했는데, 거기서 어쩌다가 나오는 이미지들이 정말 멋졌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문제는 그 이미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고, 그 상태로 고정시킬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괴츠는 전자 TV를 실험하면서 우연적으로 목격한 전자 이미지들에 대해 언급했다.

 

전자 이미지의 등장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그것은 조정하거나 고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오토 괴츠의 관점에서 유감스러운 문제였던 전파 이미지의 불확정성은 오히려 백남준의 관점에서 전위 예술이 갖는 미학적 특징으로 수용되었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음악을 통해 우연성과 불확정성의 관계와 가치를 예술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츠의 말을 듣고 전자TV에 잠재된 예술적 가능성을 단번에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괴츠의 말에 이어서 백남준은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이를 내적 독백처럼 서술했는데, 자신의 깨달음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케이지식의 리듬 구조를 수용한 백남준의 음악적 사유를 전제하고 이를 유념하여 백남준의 말을 들어보자.

 

고정이라고! 그 말이 번개처럼 내 뇌리를 스쳤다. 그렇지, 그것이 불확정주의를 탐색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임에 틀림없어.(오늘날 [] 미학이 당면하고 있는 중심 사안이 바로 그것이다. []) 내가 텔레비전을 가지고 벌인 실험들의 기본 콘셉트는 바로 이것이다.

 

백남준은 괴츠가 문제로 지적한 전자TV의 카오스적 상태를 존 케이지식의 리듬 구조로 수용했을지도 모른다. 백남준은 전자TV가 갖는 구조의 불확정성에 착안하여 실험TV를 고안했다. 그것은 우연적인 음향을 수용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시청각 매체이자 물리적 음악이었다.

 

20세기에서 21세로 넘어가면서 9가지가 달라지다 

시대 문명(혹은 시대 운명)1)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갔다 BTS는 소프트 파워다 // 2)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갔다 // 3) () 음악(harmony music)에서 무() 음악(a-music)[랜덤 음악]으로 넘어갔다(유선통신에서 무선통신으로) // 4) 이원론(분석 논리)에서 일원론(융복합)으로 넘어갔다 // 5)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갔다. 6) 유대인에서 한국인으로 넘어 갔다 // 7) 뒤샹에서 백남준으로 넘어갔다 // 8)) 고체에서 액체로, 9) 액체에서 기체로 넘어갔다. // 여기에는 철학적, 미학적 테러리즘 작동했다. 기체란 뭔가? 바로 가벼움의 철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