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 선정된 뒷이야기는 이렇다> <아래 사진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기자 간담회, 오른쪽에서 3번째가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 5번째가 '쾨르히'다>
백남준은 베니스비엔날레에 자기가 독일 대표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즉시 독일관 선정위원인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ssman) 교수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나를 선정해주어서 무척 영광이다. 그런데 독일같이 큰 나라에서 어떻게 나 같은 작은 한국 놈을 뽑을 생각을 했는지? 나에겐 독일 패스포트도 없고... 게다가, 이번 비엔날레는 독일이 통일된 후 첫 번째라서 보통은 동독 출신 작가 한 명과 서독출신 작가 한 명을 선정해서 참가시킨다는 생각을 할 텐데…" 했더니, 클라우스 부스만 교수는 "만약에 동쪽에서 한 사람을 택한다면 아예 아주, 아주 먼 동쪽인 '극동 지역 작가로 독일에 거주했던 한국인을, 그리고 한때 동독에서 살다가 아주 아주 서쪽인' 현재 미국에서 사는 독일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이런 결정에 독일 관리들이 혹여라도 할까 봐 후딱후딱 인쇄물을 만들어 발표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비엔날레 측에도 통고하니까 조직위원회에서는 이 멋진 발상을 인용해 베니스비엔날레 표어를 '예술의 사극점: 東과 西, 南과 北' 그리고 '현대 유목민으로서의 예술가 이렇게 내세운 모양이다. "문화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기발한 생각의 작업을 어떤 제도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진행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사회를 말하는 것임을 알았다. 어떻게 하면 남이 해보지 않은 기이한 짓을 하는 그들의 놀이(?)가 정상의 예술을 만드는가 보다. 그들의 먼 앞을 내다보는 글로벌적 행동에 그저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백남준은 글에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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