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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백남준과 30세기] 20세기에 3천년 인류미래 펼치다

[백남준과 30세기] 이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

 

한국, 2번이나 새천년을 열었다. 자부심, 가져도 된다. 이제 3번째 새천년을 열어야 한다> -백남준과 30세기

 

첫번째 새천년 열다: 고려금속활자(구텐베르크가 고려금속인쇄술 모방하다)

두번째 새천년 열다: 백남준 1974년에 인터넷 발상: 전자초고속도로

또다시 세번째 새천년(3000) 열라고 백남준 우리에게 유언으로 부탁하다

진정한 예술가란 이렇게 한 세기(혹은 밀리니엄 1000년)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voyant, 見者)이다

 

[추가설명] 구텐베르크의 스승이 고려일까? 개성에서 고려시대 추정 금속활자 발굴 / '고어' 전 미국 부통령(노벨평화상 받은 미국에서 수준 높은 지식인)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술은 고려에서 배운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하다. 그가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을 방문한 후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발언 그는 지난 2005년 국내에서 열린 행사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여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고려를 다녀간 교황사절단을 거쳐 전파된 기술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얼마 뒤 스위스의 인쇄박물관도 고어 전 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화제를 모았다.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는 것. 사절단이 고려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금속활자의 그림과 설명도 같이 갖고 왔는데, 구텐베르크가 그들로부터 금속활자에 정보를 얻었음이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추가설명] 지난 천년간 세계 최고의 발명으로 꼽히는 금속활자 / 예전에 엘 고어 (전 미 부통령)이 한국에 와서 말하기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한국의 기술이 전해진 것이라 했죠./당시 교황사절단이 중국에 (또는 한국까지) 와서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을 배워갔으며 그들이 구텐베르크의 친구였기 때문에 구텐베르크가 그걸 배웠고 이 사실을 앨 고어 자신이 스위스의 인쇄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고 했죠.

 

"아이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다" - 존 핸하르트(미국스미소니언국립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백남준과 30세기> SNS가 한 개인의 일상이 되고, 한 사회의 문화가 된 지금, 다시 백남준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그가 상상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백남준은 끊임없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구현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남는 것마저 거부하고 30세기 즉 3,000년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상상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재미에 대한 추구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백남준을 불멸의 위대한 예술가로 만든 것이다. - 김바솔

 

<21~30세기 한국인의 과제는 뭔가?>

 

그러면 왜 우리 단군은 이스라엘의 모세와 같은 세계적 거물이 못 되었느냐? 간단히 말하면 삼국사기가 구약성서에 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대한민국은 이스라엘처럼 민족의 유리표방을 거치지 않고 그래도 안정된 중견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개개인으로 볼 때, 우리 한인은 유대인만큼 문화나 과학에서 세계사에 기여하지 못하였다. 21~30세기 한국인의 과제는 여기에 있다. 참고 세계인구 0.2% 유대인이 노벨상 28% 타면서 20세기 문명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철학 등 모든 분야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제 21세기는 한국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백남준

 

조선의 호랑이는 과거에도 살았고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신화가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함께 한반도가 살아있는 호랑이라는 점을 강조하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기획전 21세기 천지창조 시스틴 채플이 진행 중입니다. 전시는 717()까지 계속됩니다. Nam June PAIK’s exhibition, 𝘛𝘩𝘦 𝘊𝘳𝘦𝘢𝘵𝘪𝘰𝘯 𝘰𝘧 𝘵𝘩𝘦 21𝘴𝘵 𝘊𝘦𝘯𝘵𝘶𝘳𝘺 𝘚𝘪𝘴𝘵𝘪𝘯𝘦 𝘊𝘩𝘢𝘱𝘦𝘭 is currently on view at Ulsan Art Museum. The exhibition continues until July 17th (Sun).

 

과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가 시스틴성당에 그린 천장화 천지창조’ (1508~1512)최후의 심판’(1535~1541)을 통해 종교적 환영을 보여줬다면 20세기의 백남준은 디지털 미디어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사진·종이를 오려서 덧붙이는 콜라주 방식을 영상에 접목한 이를 두고 백남준은 비디오 콜라주라 불렀다. 과거 창조의 능력은 조물주인 신()만이 가능했던 것이었으나 다가올 미래에는 인간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백남준 인터넷 9단계

 

1963년 백남준 1차 인터넷: TV(미래의 인터넷) 첫 전시에 도입

1965년 백남준 2차 인터넷: 비디오(더 진화된 미래의 인터넷) 도입 달은 가장 오래된 TV(월인천강지곡에서 나옴)

1970년 백남준 3차 인터넷: 비디오 코뮌, 1969년 비디오 편집기 나와 가능했다)

1973년 백남준 4차 인터넷: 글로벌 그루브는 백남준 만든 최초의 유튜브

1973년 백남준 1인 미디어시대 유튜브 시대 예언하다

백남준 1973년, 유튜브 예언

1974년 백남준 5차 인터넷: 초기 인터넷 록펠러재단에 프로젝트 제출/백남준, 인터넷 미디어 아이디어(전자초고속도로)1974년 록펠러 재단에 제출해 예술 기금을 타다. 클린턴이 이 아이디어를 훔쳐서 이름을 살짝 바꾸다. <정보초고속도로>라고 그리고 이것을 대선 공약(미국전역에 정보초고속도로 개통)으로 내세우다. 백남준 이를 알아차리고 클린턴에게 항의하다.

 

BILL STOLE MY IDEA 1993

BILL STOLE MY IDEA 1993

1978년 백남준 6차 인터넷: “종이는 죽었다뉴욕 모마강연 '인터넷' 예언,

1984년 백남준 7차 인터넷 : 위성인터넷(굿모닝 미스터 오웰), 뉴욕 파리 서울 TV 방송채녈 연결

1993년 백남준 8차 인터넷: 전자초고속도로(인터넷 예술화), 베니스비엔날레

1994년 백남준 9차 인터넷: W3 작품 등 발표, 몇 년 전부터 기획

1996년 백남준 10차 인터넷: 미디어 아트의 원리를 5개국어로 요약해서 새겨놓다

 

 

[백남준, 몽골 세계지배 노하우-노마드-실크로드 등 통해 인터넷 발상하다]

 

<몽골은 '세계사'의 기원을 만든 나라다. 그리고 '인터넷 원조(조상)''실크로드'를 처음 열었다. 스키타이 족 등 '등자'를 발명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말을 타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인터넷이 가장 빨랐다.

 

또 오늘날 네트워킹 원조인 '역참(400KM마다 1500여 개 역참 Station or Platform이 있었다. 여기서 먹고 자고 쉬고 다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재충전하는 정박소)'이라는 '디지털 경영(거미줄 같은 방사형 연결체계로서 지금의 인터넷 링크시스템과 같은 구조. 아래 사진)'을 통해서 전 세계를 지배하다. 종교나 사상이나 지역이나 출신에 차별 두지 않고 '포용정책' 쓰면서 매우 효율적이고 합리적 정치-행정시스템을 가진 제국이었다. 몽골은 고려를 당시 그 어느 나라보다 특대우해 주다. 몽골지배층은 고려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최고 영예로 생각>

 

'세계사''세계화'라는 말이 13세기 몽골제국에 의해서 처음 생겼다. 그러니까 모든 것에서 서양보다 동양에서 생긴 것이 많다. 백과사전도 중국이 유럽보다 2000년 전에 먼저 만들었다. 백남준이 서양인 중 일부지만 동양인을 얕잡아 보는 것 같은 사람이 등장하면 백남준은 나는 몽골의 후손이라는 말을 사용해 상대방을 압도하기도 했다.

 

<아래사진> 1978년 백남준 뉴욕 MOMA Lecture

 

1978[6단계 인터넷] 그해 백남준은 종이는 죽었다예언하죠. 그리고 뉴욕 모마 미술관 특별 강연이 이 선언을 하다. 지금은 종이신문보다 인터넷 신문이 훨씬 많아졌죠. 이것은 '인터넷' 예언과 함께 인터넷이 환경운동에서 도움이 된다고 발표한 것이다. 왜 그럴까.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무를 덜 죽인다는 뜻 즉 현실적인 환경운동이 되죠.

 

"인터넷 시대를 예견한 급진적 아티스트"

 

런던 테이트 모던 전시와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백남준 전시 다음으로 미국 샌프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열렸다.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순회전

백남준 잘 모르는 영국인들에게 그를 더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백남준 '전자초고속도로(일명 인터넷)''초원초고속도로(일명 실크로드)'에서 온 것이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는 작품이 바로 '스쿠터'이고 또한 '스키타이(단군)'인 것이다. 스쿠터와 스키타이는 바로 가장 빠른 궁수 혹은 말을 상징하는 것으로 백남준은 이걸 통해서 인터넷(전자초고속도로)을 상상한 것이다]

 

<질문> 백남준 작품 스쿠터(왼쪽 작품)와 또 다른 작품 '스카타이 단군(1993년 작 오른쪽 작품)와 관련성(?) 여부와 그리고 초기 백남준 콘서트에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이유와 의도에 대해서 간단 설명하신다면?

 

<대답(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 이영철교수)> 그는 유독 가장 대중적인 정보통신매체인 신문을 탐독했고, 소문, (horse), 전보, 전화, TV, 라디오, 레이저 등 통신 매체를 고려했습니다. 백남준 미디어아트의 원천이 바로 여기서 유래합니다. 맥루한의 지적처럼 신문의 발전된 형태는 책이 아니고 TV입니다.

 

저는 최근 백남준의 데뷔 콘서트에서 스쿠터가 등장시킨 의도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스쿠터가 중앙아시아에서 인류 최초의 유목국가 집단을 형성했던 스키타이의 어원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스키타이는 말을 향해 쏘는 자 <궁수>라는 뜻입니다 스쿠터는 오토바이니까 이동성을 암시하는 상징어죠 말을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게 해준 발명품인 '등자'는 흉노가 발명한 것입니다. 신격화된 하늘을 흉노부터 <탱그리>라 불렸다고 하는데 탱그리는 그냥 하늘과 다르며 단군이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를 통해 미디어아트의 칸 역시 흉노에서 유래한 용어가 되었는데 작품 제목 전자초고속도로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까지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이미 많이 소개되었으니 생략하고 요점은 이런 발상이 몽골의 초원제국으로 거슬러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15세기말 바닷길이 개척되기 전에 역참(Jam) 네트워크로 대륙을 연결하는 최대의 육롱들이 열리고 그것이 초원고속도로입니다. 백남준의 전자고속도로의 발상은 바로 정보화시대를 예견한 하늘에서의 전지구적 고속도로입니다

 

[1] 백남준: 4차 산업시대 미디어의 뉴플랜 1974. 여기서 인터넷 개념 예언하다. 백남준은 인터넷에 대한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대책과 방안은 없었지만, 1974년 초부터 인터넷 사용에 대해서 끝없이 상상했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를 "전자식 초고속 도로"라는 제목으로 록펠러 재단에 아트 프로젝트로 제출하다. Nam June Paik, "Media Planning for the Postindustrial Society-The Twenty-First Century Is Now Only Twenty-Six Years Away," 1974.

 

[2] 백남준 1968년 종이 없는 (전자) 사회를 언급하다 Nam June Paik, "Expanded Education for the Paperless Society," 1968, published in Magazine of th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 London, UK: no. 6, 1968; Nam June Paik Papers,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 1960년대 백남준 전자아트, 초기 인터넷 아트 시도

[2] 1960년대 미국에서 초기 인터넷 군사용 태동기

[3] 1982515, 한국은 처음으로 인터넷 방식 시스템 개발 네트워크(SDN) 운영 시작(South Korea's first Internet system, the System Development Network (SDN) began operation on 15 May 1982)

[4] 1992년 인터넷 협회(ISOC) 발족: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오픈 개발, 발전과 인터넷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국제 단체

[5] 1993년 백남준 인터넷을 '전자초고속도로'라는 제목으로 예술작품으로 바꾸다.그래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 수상하다 <아래사진>

 

맥루언 '지구촌' 개념을, 백남준은 '인공위성'을 통해, '인터넷' 아트로 바꾸다. 더 근원적으로는 맑스의 '코뮌사상'(소외와 착취가 없는 평등한 인류공동체)에 근거하고 있다. 백남준 전 지구적으로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가장 손쉽게 전 인류가 소통하는 전자네트워크와 글로벌 초고속도로 미디어가 필요하다고 상상한 것이다.

 

[백남준 80주년 특별전_글로벌 비저너리(Global Visionary] 워싱턴 스미소니언미술관에서

2012.12.13-2013.08.11 주요작품 67점과 미술관소장 '백남준 아카이브' 140여점 전시

작품저작권 Nam June Paik I 'Untitled (Robot)' 1992, single-channel video in robot-shaped assemblage of radio, television, and stereo system parts, with metal hardware, and additions in paint; color, silent,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to the Nam June Paik Archive from the Nam June Paik Estate

 

이번 백남준 80주년 특별전 기획자 SAAM 존 핸하르트 수석 큐레이터 @PaikBot

It's a great work about the United States, but it's also a geography of the movies and popular culture and history, and how those things are captured and represented through the media. Nam June is the one who transformed video and television into an artist's medium. The piece that we have in Watch This! 9/23/69: Experiment with David Atwood, was made on the Paik-Abe Video Synthesizer, which Nam June built with video engineer Shuya Abe. This was an artist-made and artist-developed tool that allowed Nam June to transform and introduce color and abstraction and layers of movement into this iconic medium. He understood that he had a palette of color, that he was changing the cathode ray tube and bringing in a new dimension of time, movement, and color to art. Paik was humanizing technology and he wanted to make it something that you could interact with.

 

[SNS 원조 백남준] "백남준, 아이폰에까지 영감 줬다" 탄생 80주년 특별전 SAAM 존 핸하르트 수석큐레이터 "아이폰으로 음악이나 영화를 다운로드하는 아이디어는 이미 백남준이 오래전에 상상했던 것이다. 남준의 아이디어와 작품은 온라인 교육과 인터넷 등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을 만큼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백남준이 상상한 대로 앞으로 동영상을 담은 책이 나올 수도 있다.- 서울신문 "백남준, 아이폰에까지 영감 줬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214027023

 

"깊은 변화를 가져오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정한 영향은 소수파만이 일으킨다.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이탈자이다" -모스코비치.

 

백남준은 서구에서 완전 이탈자였다. 그러나 뒤샹을 포함한 서구미술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서구에 족보가 없는 비디오아트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미술과 음악을 합친 제3의 미술이다. 기존의 서구미술과 완벽하게 다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주류미술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예술의 혁명이다. 백남준은 맑스와 맞먹는 동양에서 온 예술의 맑스였던 것이다. 맑스는 노동자편 들었다가 자본가로부터 250년 욕을 먹었지만, 아직도 맑스만한 서양의 천재는 없다. 그의 얼굴을 보라! 얼마나 카리스카 넘치나! 그러나 백남준 그런 맑스도 능가한다. 그는 맑스처럼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 아니라 어린아이같은 얼굴로 전 세계미술계를 교란시키면서 가지고 놀았다. 실실 웃으면서 인터넷 아트라는 혁명을 일으킨 것

 

<198411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엔터테인먼트와 맑스의 코뮌(소외와 착취가 없는, 참여와 소통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지구촌 인류공동체) 정치의 결합이다. 인류에게 새 비전을 제시하다. 백남준 "오늘부터 21세기가 시작된다" 고 선언하다. 즉 실물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10년 전에 미리 말했다.

 

백남준 작품 프레 벨 맨(Pres Bell Man 1991년 작품) 복원하는데 박사학위를 가진 독일 백남준 전문가 5명이 붙어 7년간 토론과 기술자 동원해 복원하다. 이 박물관은 이 작품 하나를 하늘처럼 떠받들다. 그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은 전화기를 만든 벨을 이어 전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인터넷 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마상을 한 21세기 디지털 노마드 전자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독일 미학자, 디터 다니엘스] 독일 아헨대에서 미술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마르셀 뒤샹에 관한 논문 «뒤샹과 타자: 근대성에 있어 미술사적 영향의 준례»로 박사학위를 취득(1992) 독일에서 유명한 백남준 연구자. // <소논문> 텔레비전을 만지다: 마셜 매클루언, 존 케이지, 백남준의 참여 매체 Touching Television: Participation Media with Marshall McLuhan, John Cage and Nam June Paik 백남준은 Global Communication 매체인 '인터넷'을 미리 내다봤다는 결론이다.

 

<198411일 굿모닝 미스터오웰(오늘부터 21세기가 시작된다 -백남준) > 인터넷 상용 10년 전에 나온 이 작품은 인터넷 실용화로 가는 중간과정의 위성아트였다. 이 제작과정에서 40만 달러 소요. 국가가 전력투구해도 힘든 프로젝트를 개인이 했으니 말이 아니다. 록펠러 재단 17만 달러, 국립예술진흥기금 등에서 나왔다. 그리고 7만 달러는 백남준 비롯해서 케이지, 보이스, 커닝햄, 긴즈버그 합동으로 제작한 판화 판매기금으로 충당하다. 그리고 프랑스 TV 일부 협찬 그럼에도 백남준 이 때 진 빚으로 몇 년 간 죽을 고생을 했다. 아래 사진 그 빚을 어떻게 갚을까 괴로워하는 백남준 비행기 안에서 모습. 거의 공짜로 인터넷 혜택을 받고 사는 지구촌 사람들 지금이라도 그에게 인터넷 사용세를 내야 한다.

 

백남준과 홍라희 여사

백남준 예술분야에서 세계적 흐름 제대로 읽다. 인터넷, 유튜브, SNS와 연관된 아트에 집중하다. 이건희 기업분야에서 세계적 흐름 발 빠르게 읽다. 스마트폰, 반도체 개발에 집중하다. 백남준이 먼저 비디오아트로 전 세계를 치고 나가다. 그래서 삼성에게도 도움을 주다. 홍라희 여사가 백남준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호암상(1996) 받을 때 백남준(왼쪽)과 홍라희여사(오른쪽) 이때 백남준 건강 최악이었다. 안색이 검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가 오래지 않아 뇌졸중으로 쓰러지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백남준 과로

 

백남준 1970년대부터 가졌던 인터넷 드림 그 이름은 '전자고속도로'였는데 클린턴이 이것을 도용해서 전자 대신 정보로 살짝 바꿨다. 그래서 '정보고속도로'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이걸 대선 캠페인에 활용해 당선이 된 것이다. 그런데 클린턴이 이에 대한 사과는 물론이고 변명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백남준은 그가 나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호되게 비난했죠. 백남준이 클린턴 백악관 연회(김대중대통령을 위한 만찬)에 초대를 받았을 때 백남준이 바지를 내린 이유 중 하나이다.

 

백남준이 천재는 천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품(?) 인터넷 개념,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상징 백남준 I '마차(Communication Transportation, Trade off-Trade in)'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인포아트' 출품작 비디오설치 277*533*150cm

백남준 인터넷 발상은 바로 스카타이 단군의 홍익(두루 넓게 이익 주다. 상생과 공유와 서로 다른 것의 융합과 공존의 인류 코뮌 공동체)사상이다. 누구나 정보를 가장 싸게 가장 쉽게 가장 빠르게 접하도록 하려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관점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경계를 싹 없애려 했다.

 

고 백남준 선생 14주기가 돌아왔군요. 백남준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굿과 축제와 밥상공동체(feast of food)가 넘친다. 오늘 또 가봐야겠네요. 서양의 대표적 피아노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통 근 예술가 세계적으로 드물다. 놀아도 크게 노네요. 작년 봉은사 원명 주지스님의 덕담 "여러분 손에 다 백남준이 들어있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죠. 그가 상상한 인터넷 세상에서 직업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신나게 놀고 있다.

 

백남준 인터넷 아이디어(TV Commune)는 맑스에서 나왔고, 백남준 신음악(몸으로 연주하는 실험음악) 아이디어는 쇤베르크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백남준이 17살 때 대스승이었다. 백남준이 천재인 것은 맑스의 인류공동체를 연결하는 소통과 참여 정신을 예술화(전자아트)했다는 점이다.

 

백남준, 인터넷 드림 , 1994, 설치 전경, 테이트 모던, 런던 © 백남준 에스테이트

 

 

Nam June Paik: The Future Is Now | Gagosian

March 14–October 4, 2020, Stedelijk Museum Amsterdam

gagosian.com

 

고 백남준 선생 14주기가 돌아왔군요. 백남준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굿과 축제와 밥상공동체(feast of food)가 넘친다. 오늘 또 가봐야겠네요. 서양의 대표적 피아노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통 근 예술가 세계적으로 드물다. 놀아도 크게 노네요. 작년 봉은사 원명 주지스님의 덕담 "여러분 손에 다 백남준이 들어있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죠. 그가 상상한 인터넷 세상에서 직업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신나게 놀고 있다.

 

백남준 인터넷 아이디어(TV Commune)는 맑스에서 나왔고, 백남준 신음악(몸으로 연주하는 실험음악) 아이디어는 쇤베르크에서 나왔다. 두 사람은 백남준이 17살 때 대스승이었다. 백남준이 천재인 것은 맑스의 인류공동체를 연결하는 소통과 참여 정신을 예술화(전자아트)했다는 점이다.

 

1993

인플럭스 하우스(In-Flux House) 1993 모니터를 통해 플럭서스 퍼포먼스의 이미지들이 다채롭게 편집됐고 레이저 디스크의 지붕이 백남준의 재치와 유머를 보여주는 작품

 

이정성 대표 아카이브, 백남준 작품(1993년, 2001년) 수정 내지 보완 지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