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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백남준] '손철주'가 쓴 그에 대한 짧은 얘기 '헐랭이'

나는 헐렁이 혹은 헐랭이 - '손철주'가 쓴 백남준에 대한 짧은 이야기. 백남준을 만난 대부분 기자들은 "백남준은 하품 빼고 모든 게 코멘트다" 만만한 상대 아니었다.

 

"헐랭이가 일을 낸다구. 헐랭이-헐렁이가 뭔 줄 알아? 헐렁헐렁한 거 말이야. 옷도 헐렁하고, 생각도 헐렁하고, 행동도 헐렁헐렁한 걸 보고 헐랭이라고 그래. 꽉 조인 건 좋지 않아. 헐랭이 같은 사람이 깜짝 놀랄 물건을 만드는 법이지. 진짜예술가는 헐랭이(Software)야."

 

1984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서울에 왔을 때였다. 지구상에 둘도 없는 몽상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예술가가 마침내 고국 땅을 밟은것이다. 언론은 그의 귀향을 '금의환향 이라고 했다. 맞았다. 삼현육각 잡히지 않았다 뿐이지 행차는 대과급제 이후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무심한 그의행보조차 뉴스가 될 정도였으니 “하품 빼고는 전부 코멘트였다"라는 기자들의 높은 놈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개구일성 내뱉은 말이 "예술은 사기다"였다. 예술이 사기라니. 예술가는 그림 사기꾼인가, 미술 동네는 난리가났다. 겨냥않고 쏜 화살이 동료 작가들의 정수리를 딱 맞춰버린 꼴이라고 할까. 그 말의 저의를 두고 찧고 까부는 해석이 난무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진정한 해방의 논리"라며 백남준 편을 들었다. 옹성처럼 구축한 예술의 숭엄과 그 아래 창궐하는 무전취식예술가들, 예술 사기론'은 이들을 경쾌하게 박살내는 파열음이라는 것이다.어쨌거나 그의 선문답은 꼬리를 이었다. "그러면 나는 훌륭한 예술가냐고? 글쎄. 세상에 나쁜 예술가가 좀 많을 따름이지." 그리고 나서 던진 말이이 글 앞머리의 '헐랭이 있다.

 

이 과학 전능의 시대에, 더구나 첨단 전자 매체를 다루는 세계 최초의 비디오 아티스트가 머리 팍팍 돌아가도 시원찮을 판국에 힙합 바지, 아니, 조선 핫바지처럼 살라고 사주하다니. 그러나 이성과 합리를 홀시하고, 게임의 룰을 뒤집는 반칙을 용인하며, 기발한 창조의 에너지를 부추기는 백남준식 창작법이 곧 헐랭이론'에 담겨 있음을 눈치채야 한다.

 

그의 화법은 오차 없는 저격수의 명중이 아니라 언제나 느슨한 적중'이니까.예술의 권력이나 예술가의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백남준은 뒤통수를 쳤다. 요제프 보이스'가 그랬어. 누구나다 예술가라고." 클린턴 대통령 앞에선 헐렁한 바지 때문에 낭패 봤지만 백남준 식의 헐랭이 눈으로 세상 보기 작품 감상에도 권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