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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60대 (1992-2001)

[백남준]+혜초(한국 최초의 세계인)의 대일여래(大日如來)

<백남준과 혜초(한국 최초의 세계인)> -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 언론인

 

그래서 이 작품에서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상징성이 연상된다. 일체의 시작이 해에서 비롯되고 일체의 끝이 해에 흡수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이 대일여래이고 그 경전이 대일경전이라고 한다. 걸핏하면 두들겨 부수고 기왕의 질서를 우습게 흩트리는 허튼소리 같은 예술 행위를 보여주지만 실은 그 안에 무섭도록 진지한 식견이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백남준의 예술세계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

 

그는 전기와 전자를 구분 못 하는 예술가를 보며 개탄했다. 그는 전자와 전기의 이치를 상당한 기술자만큼 알기 위해 벨 연구소의 하급직에 취직해 연구도 했다. 비디오아트의 설치를 위해 늘 기계 부속이니 볼트 갈 것을 가지고 다녔고 비행기를 탈 때는 이를 주머니에 넣고 탔다 / '면 무게가 넘쳐 추가 비용이 나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백남준은 고백하곤 했다. 멜빵바지를 질질 끌고 걷는 그의 발걸음이 더 무거울 때가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혜초의 행적은 신비하다. 거의 신의 도움이 함께하지 않았나 싶게 경이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역사 속에 살아 돌아온 인물이다. 그는 스승인 불공() 법사의 유언대로 천축국에서 옮겨온 불경 번역 일을 하다가 고국과 고향에는 평생 돌아오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혜초는 시도 남겼다.

부산현대미술관 백남준 전시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으로 날아가리.

문서 편린으로 겨우 남아 있는 시들은 한결같이 고국과 고향에 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시의 정서가 지금 우리의 감성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다섯 편이 남아 있는데 모두가 고향과 고국을 그리는 것이라고 한다. 천몇백 년의 간격을 뛰어넘어 끌어안아 보고 싶은 마음이 끓어오르는 지성인이다. 그런 혜초가 공연히 그리워진다. 고향 그리움의 절절함을 경험했던 백남준은 그런 혜초에게 얼마나 공감했겠는가. 코끼리 등에 가부좌를 틀어 앉힌 혜초를 가는 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돌아 앉힌 것은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 두 사람이 초월적인 세상에서 해후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혜초는 지금으로 치면 뉴욕인, 8세기 세계적 도시인 당나라 '장안'을 방문했다. // 혜초에 대해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혜초는 오늘날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과 같은 업적을 이뤘다고 말했다. 당시 스님은 유럽의 신학자처럼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위치였다. 유 교수는 백남준이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세계사 흐름에 선 혜초는 마땅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백남준, <코끼리 마차>, 1999-2001, 혼합매체, 가변크기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는 정보통신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과거에 정보를 교환하려면 편지를 주고 받거나 직접 먼 거리를 이동해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지던 코끼리는 먼 옛날부터 이동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서 백남준은 코끼리와 TV라는 소통의 매개체를 연결시켰다. 코끼리 위에 앉은 부처님은 노란 우산을 쓰고 행차 중이며 마차에는 TV가 가득 실려 있다. 정보는 한때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으나 현재는 모든 사람이 TV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정보를 공유한다. 현재 심사정이 <촉잔도권>의 길을 통해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 하는 진지한 자세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면, 백남준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코끼리 마차>를 통해 정보가 공유, 전파되며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정보통신과 관련된 기술을 인간화하려는 이상적인 방법을 모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