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듀 캔버스 – 김홍희] 발췌 -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오일 페인팅 사라진다. 전자 페인팅만 남는다 / 1968년 종이신문 사라진다. 전자신문만 남는다

"콜라주 기술이 오일 페인팅을 대신하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 1965년 이와 같은 예언을 하기 이전에 이미 백남준은 작품을 통해 브라운관 캔버스의 가능성과 그 의미를 보여주었다.
1963년 부퍼탈(Wuppertal)의 파르나스(Parnass) 화랑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회 - 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은 백남준의 TV 작업이 처음 소개되는 최초의 개인전인 동시에, 비디오아트의 문이 열리는 역사적인 전시회였다.
<음악의 전시회>는 행위 음악의 상징인 '장치된 피아노' 3대와 기타 소음 만드는 기구들과 함께 13대의 '장치된 TV'를 선보였다. 장치된 피아노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TV수상기의 외양이나 내부 회로를 변경시켜 뜻밖의 反미학적 효과를 거두도록 조작된 장치된 TV는 전시회 제목이 암시하듯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뜻했다.
'장치된 TV'의 의의는 전자비전을 포함함으로써 전자음악의 영역을 넓히겠다는 백남준의 음악적 포부를 실현함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게 되는 실마리를 마련하였다는 점에 있다.13대의 장치된 TV는 새로운 유형의 이미지들을 창출함으로써 캔버스화면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인다던가, 흑백영상의 명암이 도치되어 기이한 장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크린 위에 수직선의 추상적 선묘를 만들어 <Zen for TV>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였다.
TV 이미지란 전자적 광채의 흐름으로 인해 이미지에 일종의 感이 부여되어, 조각도, 그림도 아닌 새로운 입체적 圖像을 만드는 셈인데, 백남준은 이러한 전자 이미지를 왜곡 또는 추상화시킴으로써 前代의 이미지를 탄생시킨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이런 이미지를 얻어내는 작업과정에서 예술적 의도나 기술을 배제하고 순전히 無爲의 기계적 수법을 사용하여, 그 자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非영상-뉴미디어 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파르나스 화랑의 13대 수상기가 보이는 다양한 이미지들은 기존의 再現 이미지들과는 다른 13개의 이미지를 한 공간에서 보임으로써 同時的 감흥을 유발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최초의 비디오아트, '장치된 TV'는 최초의 生學的 차원의 참여TV'였던 것이다.
백남준은 그 당시 장치된 TV의 이러한 의미가 이해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83년에 프레데릭 제임슨(Frederic Jameson)은 백남준을 가리켜, 새로운 형태의 지각을 고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표적 인물 중 하나라고 치하한다.
비디오아트라는 신천지가 열린 역사적 순간이 소리 없이 지나가지는 않았다. <음악의 전시회> 초대일에 나타난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도끼로 장치된 피아노 한 대를 깨부수었다. 백남준 자신은 방금 잡아 피가 뚝뚝 흐르는 황소머리를 벽에 걸었다. 보이스는 파괴를 통해 창조라는 이러한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비디오 예술의 탄생을 찬양하였고, 백남준은 禪師의 회초리질 같은, 또는 아르토(Antonin Artaud)의 "전기충격"과 같은 충격요법으로 관객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비디오아트라는 신세계 교향곡이 울려 퍼지던 1963년 3월 11일, 보이스는 피아노를 부수는 해프닝으로, 백남준 자신은 황소머리를 제물로 바치는 제식으로 '장치된 TV'를 축수하였던 것이다.
30년이 지난 이제, 멀지 않아 2인치 두께의 얇은 대형 TV 수상기가 개발되고, 보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보듯 보고 싶은 장면을 골라볼 수 있는 任意抽出(random access)방식의 비디오시스템이 개발되면, 백남준의 비디오 理想처럼, 각 가정에서도 벽면의 그림 대신 움직이는 TV 화면을 걸어놓고 즐기는 비디오 세상이 구현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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