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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40대 (1972-81)

[백남준] 쌍방형 소통을 추구한 예언자

백남준과 오마이뉴스10년 그리고 저널리즘 그리고 쌍방형 의사소통 백남준의 화두는 소통이다. 그런데 이제 소통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참여다 이제 참여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마이뉴스와 같은 개념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든 시민은 작가다와 통한다.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했다. 워홀은 모든 것은 다 예술이다라고 했다. 지금 정부는 시대를 거꾸로 가게 한다. 역사의 퇴행이다. 트위터까지 간섭하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들이 인터넷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기에 무식해서 하는 소리다. 언제나 역사의 진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현재를 살지않고 과거를 산다. 물론 현대를 살지 않고 미래를 사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미래나 비전이 없는 현대는 의미가 없다. 과거은 항상 거울이다. 현재를 비추어봐야 하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백남준은 VISIONARY라는 말이 붙은 것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돈을 별로 벌지 못하면서 한 평생을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창조하는 기쁨 때문읻. 남이 하지 않은 말을 하고 남이 생각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이 세상에서 맨 처음 하는 자는 하나의 신 초인이 되는 것이다. , 니체가 말하는 초인 말이다. 백남준은 바로 20세기 니체다. 20세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이기도 하다. 과학과 예술을 하나오 만들었기에 하여간 그는 저널리즘을 중시했다. 그리고 쌍방 형을 예언했다. 그리고 지방자치를 중시했다. 백남준과 저널리즘 오늘날의 백남준을 있게 한 것은 백남준이 저널리즘을 잘 요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984년 보이스와 함께 한 일본공연

 

 

. 그럼에도 저널리즘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다. 언론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다. 그가 반미학적이고 플럭서스 회원인 것과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백남준은 1990년 스위스 쿤스트하우스에서 전시를 열면서 쓴 도록에 미디어의 5가지 속성을 언급하고 있다. 섹스 폭력 허영심 기만 탐욕이다. 온갖 정치 사회적 언어들로 표현된 이러한 해석은 저널리즘 매체가 갖는 권위적이고 권력지향적이고 이익집단으로서의 특징을 열거한 것으로 그동안 백남준 예술이 지향한 비판적 문맥과 일맥상통한다. 백남준이 비디오아티스트가 된 것도 텔레비전매체를 비판하기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비디오아트의 시조가 되었다. tv가 갑자기 대중의 우상이 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사적인 반응이다. 배타적이고 제도적인 저널리즘을 공경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전부터 예술가들이 행한 것이지만 백남준은 이보다 더 강도를 높여 직접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강령을 옮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백남준을 도와주기 지지한 사람들 가운데 미술관 관계자 비평가 비롯 언론이 빠질 수 없다. 그가 언론을 비판하면서도 이에 도움을 받지 않고는 자신의 예술이 생존할 수 없었기에 이를 역이용한 것이다. 그의 예술이 비상업적이고 급진적이기에 그런데 왜 그는 언론이 필요하면서도 언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인가. 하긴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높인 대부분의 작가들이 언론에 대해서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언론에 대해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되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언론과도 플레이를 잘 하는 것이다. 배파적 수용인 셈인데 이는 참으로 현명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다. 언론인들의 백남준의 철학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작가들이 오히려 더 언론을 타고 유명해진다는 것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예술정치를 위해서 저널리즘을 공격하지만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 델리케이트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샬롯의 남편 프랭크 필레지 Pileggi 샬롯과 백남준의 퍼포먼스여행이 많지만 둘 사이를 동해여행을 많이 했다. 당시 샬롯 퍼포먼스는 호주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된다. 백남준은 며칠 늦게 호주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는 백남준에 대해두 사람이 예술적 동반자로 여러 행각을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미리 소개하였던 것이다. 둘은 호주 아들레이트 페스티벌참가예정이었으나 샤롯은 이미 시드니 뉴 사우스 웨일즈 갤러리 단독 퍼포먼스도 대기하고 있었다. 며칠 후 도착한 백남준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프랭크와 샬롯은 백남준이 예약된 호텔방 502호 열쇠와 함께 그동안 보도된 신물을 준비하여 자신들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만준이 호텔에 도착하자 프랭크는 그에게 신문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신문은 보는 둥 마는 둥 한쪽으로 몰아놓았다. 그리고는 우리는 여기 일하려 왔지 흥보하러 온 것이 아니다. 라가 잘라 말했다. 백남준은 여행이 언제 이른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외부사람도 식사시간에 만나는 버릇이 있었다. 이러한 그의 버릇을 잘 아는 샬롯은 프랭크는 아침 일찍 식당에서 만나는데 별 이의가 없었다. 그 다음날 조간신문에 첫 페이지 샬롯과 백남준의 기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프랭크는 신문을 갖고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고 백남준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은 역시 별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다. 못마땅한 표정이다. 프랭트는백남준에게 기금을 모으거나 가금 신청을 위해서 언론보도자료가 중요함을 설명하낟. 그래도 백남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백남준의 태도가 어찌되었든간게 예술가는 원래 이상주의자이니까 자신이 직접 그런 자료를 챙기겠다는 생각에 화장실간다고 하며 슬며서 호텔로비가 내려갔다. 조간신문을 사려고하는 하는데 이미 다 팔린 것이다. 매일 아침 샤롯과 백남준기사로 넘쳐났다. 그런데 백남준은 이에 개의치않고 일만했다. 애태우는 것은 프랭크였다. 그러나 매일아침 일찍 신문을 사려고해도 이미 다 팔렸다. 조간신문이 아침 6시반에 다 팔리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랭크는 호텔종업원에게 왜 이렇게 신문이 빨이 동이 나느냐고 물으니까 참 이상한 일이죠 매일 아침 신문대 열자마자 자그마한 동양인이 그 신문을 다 사기지고 가고는 502호 사인을 하고 갑니다. 몇 주일 수 백남준과 프랭크는 샤롯은 비디오테이프제작을 위해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로 날아갔다. 공항의 세관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세관원은 프랑크와 샤롯의 짐은 조사하지 않았으나 백남준 커다란 가바을 조사하였다 그동안 남몰래 모은 신문이 가득하였다. 짐검사대신 이 신문내용의 주인공아 자신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예술가라고 하자 무사통과 효과만점이었다. 이런 사실은 프랭크가 1993년 전시회 도록에서 밝혔다 사연자체가재미있지만 그러한 사실을 쓴 프랭트의 글을 도록에 실은 백남준도 재미있지 않은가. 백남준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도 그것이 자나친예술적 역사일 경우 아무런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자신의 예술철학과 반하는 것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백남준의 언론관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모든 언론의 열렬한 팬이듯이 그 자시도 언론을 팬으로 삼고 있다. 그러한 이런 책략으로 인해서 모든 저널리즘은 백남준식 표현과 예술을옹호하고 보호한다. 예술과 정보를 하나로 생각한 백남준의 예술철학이나 독자와의 소통을 위하여 백남준은 이 자체고 예술처럼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보이지 않은 합의가 일어난 것이다. 뉴욕에서 나오는 아트뉴스19995월호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 25명 선정되어 특집이 실렸다. 그 가운데 백남주은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끼어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정치적인 기사인지만 게재되는 작가는 나쁠 것이 없다. 백남준으이리 아트뉴스100부를사서주변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서 돌려주었다. 또 아트뉴스20001월백남준이 구겐하임을 점령하다. 소제목 기사가 났다. 구겐하임 개인전 불과 한달 앞두고 나온 기사다. 백남준은 소호의 어느 미술책방에서아트뉴스를 다 사버렸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세계관리하기 위해서 저널리즘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용우는 말한다. 그러나 로비나 책략으로 관객들이 진정 알아야 할 정보가 없어진다는 것은 백남준도 염려한 바이고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