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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40대 (1972-81)

[백남준] 인터뷰 독일어판 "12세기경까지 만주지역 절반은 한국인" "만주 지역의 절반은 12세기경까지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항상 북부, 아시아 부족, 심지어 유목민이었다" // "민족적으로 한국과 만주, 그리고 시베리아와 몽골, 몽골, 타타르의 많은 부족들은 매우 가깝다. 언어적으로 가깝다. 헝가리(부다페스트)와 꽤 가까워요(헝가리어는 우리와 이름을 적는 순서가 똑같다)" / " 그리고 물론 저는 Schönberg를 먼저 선택하고 배우고 공부했다. 하지만 내 마음 가까이에는 바르토크다. 그는 나에게 가깝다. 바르톡의 3/5/7 장단이 한국 장단이기 때문이다. 이 소위 롤링 3/5/7: 팜팜, 파파파... [노래] 그게 다 여전히 한국적이에요. 리듬적으로 한국음악은 일본음악보다 바르트, 헝가리음악에 더 가깝다. 그게 아시죠?! 그리고 어느 날 보이스와 샤머니즘에 관해 .. 더보기
[백남준 ] 1974년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미래를 예측> 백남준 2021년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 테이트 모던 순회전 / 백남준 작품 소개 도록 자료 // 진정한 세계적, 초국적 예술가 중 한 명인 Paik은 대중 매체와 새로운 기술의 중요성을 예견했으며, 1974년에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미래를 예측>하면서 '전자 고속도로'라는 문구를 만들어냈다 //  One of the first truly global and transnational artists, Paik foresaw the importance of mass media and new technologies, coining the phrase ‘electronic superhighway’ in 1974 to predict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an inter.. 더보기
[백남준] 무명 시절 지원자 '장 피에르 빌헬름' 사망 10주년 추모 백남준 무명 시절 그를 도와준 장 피에르 빌헬름(독일 미술계 정신적 아버지로 백남준과 플럭서스 후원자) 사망 10주년에 그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표시로 사진을 주문해 찍다 아래 사진 만프레드 레베(Manfred Leve) '백남준의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1978년(백남준 독일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로 취임하던 해) 흑백 25*15cm 사진저작권 만프레드 레베> * 장 피에르 빌헬름은 1968년 7월 뒤셀도르프에서 사망했다. ) 흑백 25*15cm 사진저작권 만프레드 레베>  걷는다, 뛴다, 행인들을 바라본다, 생각에잠긴다, 웃는다. 백남준은 만프레드 레베에게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찍어 달라고청했다. 장소는 갤러리 22가 위치했던 곳으로,백남준이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처음 발표할 수 있었던.. 더보기
[백남준] 미술사가 '이본 스필만(Y. Spielmann(PH.D)'이 본 'NJP' 작곡가이고 음악가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품의 지배적인 미적 원리는 시각 자료를 왜곡시키는 분해와 해체(déformation, décomposition et la déconstruction)이다.그는 텔레비전 녹화 자료와 피드백을 통해 생성된 추상 이미지로 조작된 전자적 촉진과 자극과 충격으로 전자 콜라주를 만들고 있다. 백남준은 1977년 도쿠멘타에서 위성아트를 실험적으로 시도하다 - 미술사가 '이본 스필만(Yvonne Spielmann(PH. D)'  Le musicien et compositeur coréen Nam June Paik s’est imposé comme le plus important pionnier de la vidéo avec la première projection vidéo.. 더보기
[백남준] 20세기 전반: 피카소가, 20세기 후반: 백남준이 주도하다 20세기 전반부 세계 문화계 프랑스에서 [피카소]가 주도, 프랑스 지식인: 라캉, 사르트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엘뤼아르, 아폴리네르 등과 교류 20세기 후반부 세계 문화계 미국에서 [백남준]이 주도, 미국 지식인' 존 케이지(작곡가), 커닝햄(무용가), 문학가 시인 긴스버그(비트세대) 살렷 무어먼(행위 예술가) 그리고 독일 요셉 보이스 등을 이끌다 더보기
[백남준]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두 주제: '세계평화-지구보존' 백남준, 1970년 미디어 작가로 미디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영방송이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 2가지는 1) 세계평화이고 2) 지구보존이다" [백남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TV아트'로 세계 미술계 데뷔하다. 그리고 1년 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0년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영양실조에 걸리다. 큰 깨달음은 얻다. 여기에 대한 대안을 작품으로 발표한다.  그를 세계적 작가로 만드는 2개의 유명한 작품이 그것이다. 하나는 'TV부처'(동서가 서로의 장점을 살려 공존해야 인류가 산다 / 전쟁 예방하는 평화 사상/ 백남준이 보기에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서로 윈윈하는 상생의 관계를 유지하라고 충고한다)이고 또 하나는 'TV정원'(자연과 문명이 서로 존중하며 공존해야 .. 더보기
[백남준] '종이TV(Paper-TV)' Heliogravure, 78 x 60cm, Köln Nam June, Paik Paper-TV Heliogravure, 24 x 32 auf 78 x 60 cm, Köln, 1974 Auflage 100 als AP 9/20 signiert / 백남준은 모니터가 종이를 대신하는 시대가 오고 있음을 이런 작품을 통해서 암묵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 백남준은 1970년(?) 모마(MoMA) 특강에 초대되어 종이가 사라질 것을 예언('종이 없는 사회: The paperless Society)'라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지구 환경에도 좋아지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보기
[백남준] 직지 발명국 후손으로 인터넷 창안, '30세기' 열다 금속활자(지식과 정보를 무한대로 확장-전달시키는 도구)를 백남준이 20세기 전자방식으로 네트워킹 코드로 변환해 만든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 그리고 보니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발명은 다 한국인이 해낸 셈이다. 이러니 우리가 30세기 열 수 있는 역사적 책무와 자격증을 문화유산으로 받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조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고의 기부자가 되었다. 문화유산으로 이 자본은 쓸수록 많아진다. 지금 한글이라는 자본이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  황제국 고려는 우리 인류에게 금속활자라는 최고의 기부금을 남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 세계에 Korea라는 이름을 기부를 했다 Korea는 고려에서 나온 말이다 //  그리고 백남준은 지구촌 시민들에게 전쟁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면 공생하면서 즐겁게 살라고 .. 더보기
[백남준] 그야말로 '텔레비전(TV)' 즉 '멀리 보는 자' 그 자체 백남준은 그야말로 '텔레비전(TV)' 그 자체였다. 텔레 즉 '멀리' 비전 즉 '보다'(영어로 Visionary / 랭보가 말하는 Voyant(선견지명의 혜안을 가진 견자) // 백남준은 가장 먼 과거인 즉 '선사시대'라는 말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야 가장 먼 미래 혹은 30세기의 비전(즉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우랄알타이족의 사냥꾼인 우리는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네팔, 라플란드(핀란드의 북부)까지 세계를 누볐고, 그들은 농업중심의 중국사회처럼 중앙에 집착하지 않았고 몽골처럼 더 멀리 보기(텔레-비전) 위해 여행을 떠나 새 지평을 봤다." - 백남준 / 위 1970년대 사진들. TV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다양한 상상을 하다. 그래서 1974년 그.. 더보기
[백남준] 위성아트, 1977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시작 [백남준의 위성아트는 1977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시작되다]   비디오 아트의 중요한 기원을 갖고 있는 독일은 1977년 제 6회 카셀 도큐멘타를 매체 도큐멘타로 꾸미면서 비디오 탄생 이후 최초의 대규모 국제 벤트를 기획했다. // 독일의 비디오 큐레이터이며 이론가인 '볼프 헤르조겐라트'에 의해서 특별기획 전시는 14명의 미국 및 유럽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 1) 스페인 안토니오문타다스 2) 미국의 베릴 코롯 3) 백남준 대형설치 TV 정글 4) 쿠보다 시게코의 계단으르 내려오는 나부 5) 더글러스 데이비스 그리고 독일 6) 올리케 로젠바흐, 7) 호로, 8)) 페졸트의 작품이 선보였다. // [1] 1977년 카셀: 개막식의 위성 원격 생방송: 제6회 도쿠멘타는 개막식부터 화제. 1960년대 .. 더보기
[백남준] TV정원(1974)TV부처(1974), 나오게 된 시대 배경 [백남준] 1974년 TV부처, 1974년 TV정원(50주년), '비교' [백남준]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40주년) [백남준] TV정원(1974)TV부처(1974), 나오게 된 시대 배경 백남준 작품 뜬 구름 잡는 이야기 절대 아니다 다만 50년 먼저 이야기하다.[1] 1974년 TV 부처는 미중갈등 우크라이나-하마스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2] 1974년 TV 정원은 코로나와 환경 재앙 이상기온을 미리 예고한 것이다    세계평화(여기서 'TV부처'가 나왔다)와 지구보전(여기서 'TV정원'이 나왔다)이야말로 공익 제1호이며, 이것이 바로 공영TV의 제1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디오공동시장(Marché Commun de la Vidéo 비디오 공론장[하버마스 이론] 즉.. 더보기
[백남준]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 발명 생고생 백남준-아베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 발명 과정에서 겪은 고생은 마치 달마대사가 9년간 화장실을 가지 않고 '사지가 녹아들 정도로' 수도(좌선)와 명상에만 전념할 때 그 고생과 맞먹었다(생고생을 했다고 백남준 고백한다) // 그리고 이 발명품 특허를 모두에게 공개하면서 공유했다 // 여기서 바로 유튜브가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는 달마승이야 […] 9년 동안 달마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좌선과 명상을 했다. 그의 옆에 쌓아 배절이 결국 그의 사지를 녹여 내렸고, 달마는 다리가 없는 부처로 숭배되었다. 다리 없는 그가 수행한 무선 소통은 오늘날 TV와[…] 자동차가 사라진 미래사회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나는 아베 슈야와 함께 차도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완전히 고립되었다 [… 지저분한 뉴욕 지하철이 그.. 더보기
[백남준]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II) [창조하는(예술가)는 신과 대결하는 존재로 최고의 쾌감(주이상스)을 맛본다]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 백남준 45세 선언 // 백남준 아래 음반(태극기를 단순화해서 그리다) 위에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고 적혀 있다 // 백남준, 다음 해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교수 되다 // "처음 쇤베르크 음반을 두 손에 쥐었을 때 난 마치 이집트 묘지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리고 곧이어 느낀 절망감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음악은 바그너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앞으로 2주만 있으면 나도 마흔다섯 살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아방가르도의 고고학을 만들 때가 아닐까. 1940년대에 나는 한국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거의 모든 정보통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인쇄된 일본 서적들을 통해서 얻을 수.. 더보기
[백남준] "미국은 왜 베트남 전에서 졌나?"라고 묻자, 그가 남긴 말 [질문] 미국은 왜 베트남 전쟁에서 졌나요? / [백남준 대답] "정보의 결핍이 없다면 베트남 전쟁과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베트남에게 진 이유는 바로 정보부족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백남준은 결론적으로 모든 전쟁은 바로 정보 부족에서 온다고 결론짓고 있다. 백남준은 인터넷을 발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방지책으로 인터넷만 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초국가적 전 지구적으로 연결하는 소통의 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즉 전쟁의 그늘로부터 아직 벗어날 수 없었던 1960년대 초 독일에서 등장한 그의 TV들은 시각적인 비결정 성의 탐구를 위한 탁월한 매체이자 “일방향적 정보전달 방식”을 지닌 “현대사회의 독재자” 혹은 “반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예술.. 더보기
[백남준] 1974년 <TV 정원(생태주의 설치작)> 코로나 막으려 했다 데이비드 조스릿 하버드 미대교수는 백남준이 50년 전인 1974년 을 통해 코로나를 막으려 했던 바이러스(해커)였다고 평가했다. 조스릿은 백남준이 수잔 손택의 '생태학'적 관점을 공유했고 또 그는 백남준이 이미지를 둘러싼 검역선(Cordon sanitaire: 이미지를 통제하는 장벽)를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 전 인류가 백남준이 TV 정원을 통해 하려고 한 메시지(자연과 문명이 50대 50으로 공존=정원과 TV의 공존)를 귀 기울여 들었다면 '코로나'는 발생하지 않았다. 더보기
[백남준] '다니 블로흐'(비디오아트박사) 1978년 12월 인터뷰 [백남준과 다니 블로흐(미술비평가)와 인터뷰1978년 12월] 신문학(Les Nouvelles Littéraires)지>에서 / 다니 블로흐(Dany Bloch 아래 사진)는 누구인가? 1925년에 태어나 1988년에 사망한 프랑스 국내외 비디오 아트 전문가. 1982년에 그녀는 비디오아트에 대한 박사학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아트 앤 비디오(1960-1980)', 1983년에 '비디오아트' 출간하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이 1920년대에 추상적 시간을 발견한 이래로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공간>을 생각하는 건 더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1. "시간의 개념이 당신의 모든 작업을 조건 짓는 게 맞습니까?".백남준: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개념이며 피드백은 이를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저에게 피드백은.. 더보기
[백남준] 1974년 인터넷, 인터넷 쇼핑, 원격치료, 전자도서관 제안 [백남준 1974년 인터넷을 제안] [백남준 1974년 인터넷을 제안] 그리고 인터넷 쇼핑(two way inter-active TV for shopping)도 처음 언급했군요 인터넷 쇼핑만이 아니라 인터넷 전자 도서관, 원격 치료, 전자 여론 조사, 바이오, 국제적 사무실 데이코 교류 등등 그 외에도 많은 것(Library research, opinion polling, health consultation bio communication, inter-office data transmission)을 거론하다. 더보기
[백남준 ]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77년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77년 백남준 45세 때 Tele-vion means in Greek to see far. See far=fernsehens Tele-vision // 왜 내가 Schoenberg에 관심을 가졌나까? 그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가장 극단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한다. 그것은 내 몽골 DNA 때문이다. - 몽골-우랄-알테르 말등사냥꾼들은 선사시대에 시베리아에서 페루, 한국, 네팔, 라플란드를 거쳐 전 세계로 이주했다. 그들은 중국 농업 사회처럼 중심을 보지 않고 그들은 멀리 보았고, 멀리서 새로운 지평선이 보이면 더 멀리 가서 봐야만 했다. // My Jubilee(영어) ist Unverhemmet(독일어) [.. 더보기
[백남준] 샤머니즘보다 더 이상적 유토피아는 없다 한국출신 백남준에게 샤머니즘보다 더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없다. // 샤머니즘의 꽃인 '굿'은 영어로 GOOD이다. // 좋은 세상(해원상생 혹은 정음정양)을 만들자는 것이다. // 박경리가 "한국 예술의 뿌리가 샤머니즘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 백남준 예술의 근간이 궁극적으로 샤머니즘에서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백남준의 샤머니즘은 스키타이 북방 아시아 몽골이나 시베리아 우랄 알타이뿐만 아니라 // 북미 인디언과 멕시코와 페루의 샤머니즘도 다 포함한다. // 샤머니즘이 무엇보다 좋은 것은 무정부주의적이기 때문이다. // 개인이 절대로 조직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 독재가 불가능하다. // 그런데 요즘 한국이 신자유주의로 정신 건강이 최악이라 // 권력과 손 잡은 사이비 샤머니즘이 횡행.. 더보기
[백남준] '네트워크-디지털'로 더 평등한 인류애 추구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시 도록 중] 국경이나 문화적 경계나 위계 없이 서로 얽혀 있는 세상에 대한 그의 비전은 점점 더 네트워크화(수직적 혹은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보다 평등한 관계로)되고 디지털로 연결되는 오늘날의 현실과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매우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 백남준은 '문화를 민족주의(애국주의나 파시즘)에서 벗어나게 하고, 허영과 속물근성(스노비즘)에서 벗어나 소통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 His vision of a world intertwined without national borders or cultural hierarchies resonates strongly with our increasingly networked and digi.. 더보기
[백남준] 'TV 정원'을 통해 전지구 생태계아트의 발명자 [미디어 생태계] 백남준아트 센터 이수영 학예연구사 등등 1) 서문_ 김성은 2) 백남준의 미디어 생태학적 탐구_ 이동후 3) 어디에나 있는 미디어: 고래에서 유튜브까지, 미디어 환경의 변화_ 이희은 4) 백남준의 대안적 미디어 생태학_ 이수영 5) TV 정원: 주석_ 이소요 6) 인류세와 백남준의 매개체로서의 에코-에코-펑크_ 조안나 질린스카 7) 전회, 교란, 번역 그리고 백남준의 정치생태학_ 김준수 // Foreword_ Kim Seong Eun Media Ecological Exploration by Nam June Paik_ Lee Dong-Hoo Media That Are All Around: The Change of the Media Environment from the Whale to Yo.. 더보기
[백남준 ] 작품 소장, 독일처럼 보수적인 미술관에서 독일의 보수적 미술관은 백남준의 진보를 수용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 마치 필요에 의한 보수와 진보의 결합과도 같은 것이었다. // 또한 마치 타파할 수 없는 보수의 진보성을 과격의 상징인 백남준을 통해 털어버리려 했던 것과도 같았다. -김은지. // 독일의 뒤셀도르프 미술관은 아래 작품(88대 TV 모니터 사용 물고기가 하늘을 날다 1985년 비디오조각으로 불리다. // 이 작품 수집 제안은 1982년이다)을 드디어 소장하다. // 작품이 천장에 붙는 백남준의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것이었다. // 그러나 동심, 어린아이의 거침 없는 상상력이 활활 타오르는 작품이었다. // 백남준 1982년 미국 휘트니 미술과 1982년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 화려한 회고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자 // 독.. 더보기
[백남준] 쌍방형 소통을 추구한 예언자 백남준과 오마이뉴스10년 그리고 저널리즘 그리고 쌍방형 의사소통 백남준의 화두는 소통이다. 그런데 이제 소통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참여다 이제 참여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오마이뉴스와 같은 개념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든 시민은 작가다와 통한다. 보이스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했다. 워홀은 모든 것은 다 예술이다라고 했다. 지금 정부는 시대를 거꾸로 가게 한다. 역사의 퇴행이다. 트위터까지 간섭하려고 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들이 인터넷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기에 무식해서 하는 소리다. 언제나 역사의 진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현재를 살지않고 과거를 산다. 물론 현대를 살지 않고 미래를 사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미래나 비전이 없는 현대는 의미가 .. 더보기
[백남준] 1984년 인터뷰, "신화를 파는 것이 나의 예술" 백남준이 말하는 비디오 예술과 인생 "전위예술이란 목적이 없는 실험이고 룰이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객관적 평가가 힘들다 " "그럼 왜 그런 예술이 필요하나고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들이 찾는 사치라고 할까.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행위죠"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자유행위" "싱거운 인생에 양념을 치는 것" (이렇게 문장이 달라짐) 1984년 6월 금의환향한 백남준과의 정중헌기자와 단독 인터뷰 내용을 내가 35년전 에 스크랩한 것 찾았다 그가 진정 시대를 앞서간 전위예술의 천재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다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은 누구인가 비디오아트란 무엇인가. 무성이 그들 오늘의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는가. 35년만에 조국을 찾아온 백남준(52)를 숙소인 워터일 빌딩에서 만나 인터뷰 베일에 가려져.. 더보기
[백남준] 1974년, TV가 INTERNET가 될 것은 예언하다 런던 테이트모던 전시(2019) 도록> 백남준 여기서 TV가 INTERNET이 될 것과 그리고 INTERNET시대가 되면 종이 없는 사회(paperless information forms)가 될 거라고 예언하다. 인터넷 쇼핑도 언급하다. "TV를 1001개의 새로운 응용을 위한 확장된 혼합미디어 전화(선) 활용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다" 백남준이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그렇게 존경한 이유. 그래서 백남준 1990년 '프레-벨맨' 조각상(21세기 디지털 등으로 무장한 전형적 인간상)을 만들다. 백남준 1990년 '프레-벨맨' 조각상(21세기 디지털 등으로 무장한 전형적 인간상)을 만들다. 전시 장소: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선 박물관(DER PRE BELL MAN VOR DEM MUSEUM .. 더보기
[백남준]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1978 뒤셀도르프 갤러리 22에서 1978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갤러리 22를 운영하던 빌헬름은 무명시절부터 백남준과 플럭서스를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장 피에르 빌헬름(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유명하다)이 백남준 1963년 첫 전시회 서문을 쓰다. 그 서문은 이런 시적 언어로 시작한다 "이번 전시는 온 우주에 음악이 스미게 했다" 결론 백남준은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예술가의 성공은 반은 '운'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