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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40대 (1972-81)

[백남준] 1984년 인터뷰, "신화를 파는 것이 나의 예술"

 

백남준이 말하는 비디오 예술과 인생

 

"전위예술이란 목적이 없는 실험이고 룰이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객관적 평가가 힘들다 "

"그럼 왜 그런 예술이 필요하나고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들이 찾는 사치라고 할까.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행위죠"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자유행위"

 

"싱거운 인생에 양념을 치는 것" (이렇게 문장이 달라짐)

 

1984년 6월 금의환향한 백남준과의

 

정중헌기자와 단독 인터뷰 내용을 내가 35년전 에 스크랩한 것 찾았다

 

 

 

<여기까지 신문 내용 전문이다 부분적으로 종이가 25년 전 신문지라 거의 낡아 부분 부분 안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가 진정 시대를 앞서간 전위예술의 천재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다

 

 

 

비디오예술가 백남준은 누구인가 비디오아트란 무엇인가. 무성이 그들 오늘의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는가. 35년만에 조국을 찾아온 백남준(52)를 숙소인 워터일 빌딩에서 만나 인터뷰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의 면모를 벗겨본다. <편집자-주>

 

 

 

약속시간이 25일 오전 그를 찾아가자 사방에 전화를 받으랴 식사도 못한 채였다.

 

-계속 바쁘시군요?

 

미국에서는 신문에 나오기가 하늘에 별따긴 여기서는 거꾸로 취재요청이 너무 많아 숨쉴 틈이 엄군요 너무 발달하여 그런가보죠

 

 

 

-서울구경도 못 하셨겠군요

 

아직 시내에 못 나가봤어요 비오는 한강변을 바라보며 이틀 동안 방에만 있다 보니 마치 뉴저지에 있는 기분이에요

 

 

 

<한때 체포당하기도 >

 

-35년만 에 본 서울모습을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도시계획을 잘 한것 같더군요. 강남이나 강동의 아파트단지에서 시내까지 30분 내로 갈 수있다는 것은 뉴욕이나 동경보다 생활환경이 편리하다는 얘기가 되지요. 이동시간이 작다는 것은 경제적일뿐만 아니라 생활에도도움이 되고 건강에도 좋은 일이죠

 

 

 

 

 

1984년 당시 인터뷰할 때 사진

 

 

- 선생님이 세계적인 대가란 것을 알지만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전위예술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룰(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

 

 

 

-그런 예술이 왜 필요한가요? 더욱이 무목적적이라는 말이 이해가 안 가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들이 찾는 사치라고 할까요? 밋밋한 삶에 양념을 치는 행위이죠.

 

 

 

-정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 텐데요...

 

“그래서 무당이니 파괴주의자라고들 하지요. 저 역시 행위예술을 하다가 체포당한 일도 있으니까요.”

 

 

 

<비디오는 현대의 종이>

 

- 연초에 보여준 굿모닝 미스터오웰 도 신선하긴 했지만 이해는 쉽지 않았습니다 비디오아트란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분야인 것 같은데요

 

"최초의 시는 음류시인에 의해 구전되었지만 종이가 발달된 후 활자화가 시작했지요. 각가지 뉴미디어가 발달된 오늘에 비디오가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컴퓨터나 새로운 미디어 개발로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 이 분야예요. 현대의 모든예술은 비디오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이를 예술로 창작해 내는 일을 비디오예술가들이 담당하고 있어요.

 

 

 

<당분간 비디오시대-다음 세대는 유전자 예술 예상>

 

-그렇다면 비디오아트도 이미 전위시대 는 지났을 텐데요 한발 앞서 간다는 비디오아트가 더 발전하면 어떤 예술이 나올까요?

 

"지금 구미에서 예측하는 형태로는 홀로그래피 레이저사진술 의학전자예술 마약에 의해 화학적 예술 유전자 예술 등이 있어요. 그러나 모두가 위험한 것들이라 쉽사리 손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마약의 힘을 빌은 예술은 정신병자 만들기 쉽고 유전자공학을 예술에 끌어들이는 문제도 인류생존에 위험을 초래할여지가 많습니다. 당분간은 비디오아트분야가 전성기를 이룰 겁니다.

 

 

 

-그렇게 앞서 가는 예술을 대중은 따라갈 수 없지 않습니까?

 

“어느 시대나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예술의 반은 사기>

 

-그럼 대중은 소외되고 마는 것 아닙니까? 늘 따라만 가다보니 뭐가 뭔지 모르고 속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예술이란 반은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것이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그럼 대중이 바보라는 뜻인가요?

 

어느 시대나 바보들은 항상 있지요. 그러나 엉터리와 진짜는 누구에 의해서는 구별이 되지요. 내가 30년 가까이 해외에서 해프닝을 벌렸을 때 대중이 미친 짓이라고 웃거나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것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이 있었죠. 평가해 주지 않는 행위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지요.

 

 

 

-동양인으로서 서양에 첨단의 예술을 이끌어 가기까지 역경도 많았겠군요

 

" 전 그대로 재수가 좋은 편입니다. 82년 휘트니 미술관의 회고전이 제 존재를 인정해준 셈이니까요 그년가을에는 보스턴 암스테르담 뒤셀도르프 브뤼셀에서 중요한 전시가 기획되어 있어요 86년에는 서구생활 30년 기념하는 대규모작업을 벌려 서구에 던져진 내 자신을 확인하고 비디오아트를 결실을 맺어볼 생각입니다.

 

 

 

-고국을 떠나 뉴욕에서 활동하시는 이유는

 

"보통사람에겐 100%의 자유가 필요하겠지만 창작을 하려면 1000%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뉴욕은 전 세계미술가들의 미궁과 같은 곳이죠

 

 

 

- 전위예술로 명성은 얻지만 돈 벌기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까

 

" 가치가 없으면 쓰레기나 폐품이 되지만 인정을 받으면 유무형의 엄청난 가치를 얻게 되는데 전위예술의 마력입니다.

 

 

 

- 부인 시게꼬와는 1977년 결혼도 하셨는데요. 이점에 대해서도

 

- 시게꼬는 비디오조각가입니다. 지금은 내조자이자 경쟁대상자이기도 하지요. 독자적 작업을 하다보면 질투가 생기기도 합니다.

 

 

 

- 앞으로 계획은?

 

"실험과 창조의 연속적인 시도가 없이는 결코 속빈 강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인터뷰내용은 출처는 잘 모르겠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잠자는 내 영혼을 바늘로 깨우는 것이다. 문화인은 나의 위치, 민족의 위치, 세계의 위치를 파악하는 사람이다. 나를 통해서, 세계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문화라고 본다.”

 

 

 

-예술가들은 무엇인가?

 

“예술가들은 무당들이다. 작가의 길 또한 무당의 길이다. 무당의 조건은 희생과 책임과 유연성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 역시 자기를 낮추고 본분을 다해야 하며 유연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문화의 특질은 비빔밥으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를 혼합하는 것이야말로 유연성이라고 본다.”

 

 

 

예술가의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방법론은?

 

"작가는 작품에 빠지지 말고 빠져 나와야 한다. 책이나 영화,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빠져들지 말고 거기서 나와 음미하고 분석해야 한다. 피카소는 한창 그림이 잘 그려질 때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렸다고 한다. 기교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좋은 작가는 날개를

 

펼 때 균형이 맞아야 하고 전체를 바라보고 목표 지점을 미리 정해 그에 따른 급유를 하고 날 때도 바람을 타기보다 바람을 안아야 한다. 끝을 볼 줄 알아야 명작가 명감독이 된다"

 

 

 

-예술가는 많아도 진정한 예술가는 드물고, 작품은 많아도 명작이 많지 않은 이유는?

 

"물을 틀고 물을 받는 것 못지않게 물이 빠질 통로를 열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에는 강약과 리듬이 있고 채움과 여백이 있어야 한다. 빈 곳을 남겨놓고 마지막에 뒤집어 반전시키는 묘미가 있어야 예술이 생동한다. 백남준은 쿠킹(반전)을 잘한 작가다"

 

 

 

-예술 지망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예술가는 서커스에서 외줄 타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외줄을 탈 때 장대가 길수록 균형감을 살릴 수 있다. 장대의 한쪽은 과거의 전통이고, 장대의 또 한쪽은 미래의 비전이다. 이 장대의 길이가 과거로 1000년, 미래로1000년이 된다면 굉장히 지름이 큰 그릇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