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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30대 (1962-71)

[백남준] 서구예술이라는 우상에 테러 가한 바이러스 '해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포부는 정말 세계미술계의 위상을 전복시키려는 그의 착상과 커다란 그림(big picture)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한 정도로 대단한 것, 서양을 뒤집어버리고 동서양 문화의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이다 //

 

백남준은 서양에 직접 가서 원자폭탄 떨어뜨리고 서양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었다. 그 터전 위에 '비디오 아트'라는 서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예술의 신기원을 세웠다.// 백남준은 1963년에 그의 첫 전시에서 서양미술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려고 그들의 성상을 파괴하고 그들이 믿는 서구적 우월주의나 과학주의라는 우상에 테러를 가한 (바이러스) '해커'였다.

백남준은 서양 예술가의 혼을 빼놓고 대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피드백''랜덤 액세스'라는 기괴한 노이즈 방식을 도입했다. 동시에 백남준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미술로 음악을 하고 음악으로 미술을 하는)" 융합적 회통 사상을 첨단의 TV 전자 아트로 실현함으로써 세계 미술 혁명의 기린아가 되다. 백남준은 서양에 직접 가서 원자폭탄 떨어뜨리고 서양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었다.

그 터전 위에 '비디오 아트'라는 서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예술의 신기원을 세웠다. 백남준 TV를 결국 30(1963-1993)만에 인터넷으로 바꿔버렸다. 일방형 불통(먹통)의 상징인 'TV', 비디오아트라는 중간 여과 과정을 통해 쌍방형 '소통'의 상징인 'INTERNET'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런 시공간을 초월해 경계가 없는 인터렉티브 한 방식의 소통을 통해 인류가 다 같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세상(코뮌 공동체)에 대한 백남준식 유토피아를 구현한 셈이다.

 

추신

 

[해프닝이나 퍼포먼스가 소통의 기술을 고안한 일회용 '참여 공연'이라면, 비디오아트는 매체의 본성을 활용한 상호소통의 '참여 TV'라고 말할 수 있다]  '비디오는 상호적인 매체이다. 그 매체의 상호성은 우선 매체와 친숙할 수 있는 바다를 메카니즘에 기인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점은 비디오를 통한 새로운 이미지 개발이 간 지각을 변화시킨다는 생태학적 차원의 소통 문제에 관계된다. 백남준의 비디오 테이프 작업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직접적이고 접촉적인 참여 TV를 만드는 일로 일관 되어있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의 직접적이고 접촉적인 효과를 배가하기 위하여 그 제작 과정에 콜라주 편집 수법을 사용한다. 회화적 콜라주가 현실의 우연적 요소를 화면에 차용하여 예술의 내적 논리를 파괴하고 동시에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었듯이 음악적 비음악적 원천들로부터 다양한 소리의 합성을 만드는 음악적 콜라주 테이프 역시 비논리적 구성자체가 제시하는 새로운 미학 을 마련할 수 있었다 // 해프닝, 퍼포먼스가 소통의 기술을 고안한 참여 공연이라면 비디오 아트는 매체의 본성을 활용한 상호 소통의 참여 TV 라고 말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는 그 매체의 속성상 해프닝이고안한 참여를 통한 소통의 양상, 즉 복합매체와 비결정성을 내포한다. 즉 비디오는 비결정성의 전자 이미지가 만드는 복합 매체 환경으로 관객의 총체적 지각 경험을 양양하여올바른 인식주체로서 새로운 차원의 소통을 이루게 하는 생태학적 의미의 소통매체가 되는 것이다. 비디오를 대중매체로 인식할때는 사회학적 차원의 대중 소통 문제를 상정할 수 있다. 즉 비디오는 TV 송신의 일방성을 교정하여 상호 소통 매체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비디오를 등용하여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통합이라는 또 하나의 이상을 성취하게 된다. - 김홍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