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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료 아카이브

[백남준] 유럽,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그를 본다

<백남준 유럽에서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로 평가> <계몽주의,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백남준을 이해한다> 홍대 김은지 교수 2000년까지 백남준 몰랐던 사람이다. 독일 베를린 대학 유학하면서 백남준이 유럽에서는 20세기 다빈치로 평가받는 것을 보고 놀라 연구를 했고 마침내 베를린 대학 (훔볼트) 백남준 연구로 최우수 평가 박사까지 받았다. 그가 백남준을 연구하게 된 이유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신학대학 도서관

 

"필자가 오랫동안 공부했던 유럽, 특히 독일에서 백남준에 대한 평가는 상당하다. 미디어 예술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인물로, 또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나아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로 평가한다. 동시에 계몽주의,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백남준을 이해한다.

 

유럽의 이러한 평가와 달리, 한국에선 그를 '시대의 행운아' 정도로 평가했다. 1950년대말 무렵, 유럽에서 활동한 이 행운아는 당시 몇 안 되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국적 보너스(exotic bonus)'로 특혜를 입은 예술가 정도로 분류하며,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하는 예술가로 한국에선 평가되었다.

 

한국에서의 경우처럼, 서구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백남준 예술에 대한 가치펌하 부분은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더라도, 유럽미술사가들이 백남준을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인정하고 평가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더욱이 르네상스 이후, 유럽은 500여 년의 예술역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며 세계 근현대미술사를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전통 거부발전의 반복 순환은 문화예술사를 발전시켜온 바탕이기도 했다. 전통과 가치체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에서 백남준을 시대의 예술가로 인정하는 사실과 그 이유엔 미술사적 논리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었다.

 

20세기 초, 추상예술의 등장과 전위예술인 다다(Dada)의 등장 이후, 비록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이 기존의 전통에서 이해. 해석되는 범위를 잠시 이탈했다 하더라도, 이 이탈의 배경은 바로 전통이었다. 전통을 기본으로 한 반발. 이 반발은 거부라는 모습으로 표변화되며 발전의 길을 열 수 있었다. 전통 거부는 발전을 위한 도약이었던 것이다.

 

반(反)예술(Anti-art)로 널리 알려진 다다(Dada)와 이 실험예술철학을 이어받은 네오다다(Neo-Dada)인 플럭서스(Fluxus),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비디오 예술은 형성되어 발전했다. 이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백남준과 그의 폭넓은 예술세계엔 유럽미술사에서 인정할 만한 가치와 의미, 또한 유일하고 독창적인 예술세계가 있어야 했다.

 

이렇게 백남준 연구는 시작되었다. 서로 다른 가치평가와 진실에 대한 호기심이 필자의 백남준 연구 시작 동기였다. 동시에 그의 폭넓은 작품세계 및 '특별한' 예술가 백남준에 대한 경이(異)와 감동의 출발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