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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30대 (1962-71)

[백남준] 비디오아트, '반전사상'과 '반체제'와 '신기술'에서 시작

비디오아트는 '반전사상'과 '반항적 반체제정신'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된 지각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에서 시작했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간행 '20세기 미국미술사'를 정리한 < 현대미술과 문화 1950-2000 > 중에서

20 세기 미국미술사 현대미술과 문화 1950-2000

 

<20세기 미국미술사> [비디오아트, 영화, 그리고 설치 1965-1977]

 

비디오아트는 1960년대 미국 반체제 문화의 세 가지 경향 속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된 지각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 반 베트남전과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인 민권 운동,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심이 그것이다.

 

60년대 중반 태동기부터 비디오는 세 방향으로 발전했다. 1) 환각적으로 굴절된 이미지 프로세싱, 2) 정치화한 공동체 행동주의, 3) 퍼포먼스 성격을 띠는 아트 비디오테이프와 설치이다.

 

60년대 중반 최초의 비디오 이미지 프로세싱은 라 몬테 영, 토니 콘래드, 존 케이지 같은 작가들이 이전에 전자음악으로 했던 실험들을 연상시키는 오디오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다

 

초기 비디오아트의 주요 인물인 스테이나 비술카와 백남준은 고전음악을 교육받은 음악가였다. 백남준은 1965년 독일에서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처음 소니의 포르타팩 비디오 녹음기를 샀다.

 

그는 멀티미디어로 확장된 시네마 이벤트를 찍으며 영화를 비디오와 결합하고 있던 영화 제작자 저드 얄커트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첫 작품 중 하나인 <비디오테이프 연습 3>을 만들었다.

 

같은 해 백남준은 고전 첼리스트이자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 New York Avant-Garde Festival' 기획자인 샬럿 무어먼과 오랜 공동 작업을 시작해 많은 비디오 퍼포먼스를 함께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960년대 초 서부 해안 추상영화 제작자인 제임스 휘트니의 전자실험들에 이어서 빌 현, 에릭 시걸(러브스토리), 스티븐 벡(영화감독)1968년에서 1970년 최초의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만들었다.

 

이 장치로 카메라 없이 텔레비전 스크린에 추상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흑백 카메라 이미지에 인위적으로 색깔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진이 피드백에 의해 천연색으로 환각적으로 변하는 시걸의 비디오 작품 <아인슈타인 Einstein>(1968)은 최초의 비디오 이미지 프로세싱의 작품 중 하나이다. 에드 엠슈윌러의 초창기 비디오 작품들도 초기 신시사이저 기법을 사용했다.

 

비디오 이미지 프로세싱의 주요 개척자인 스테이나와 우디 바술키는 구조영화의 물질주의적이고 자기 반사적 질문을 환기시키는 교훈적 성향의 <캘리그램Calligrams) (1970) 같은 작품에서 전자 이미지를 재주사해 조작하는 중요한 초기실험을 선보였다.

 

<보충내용>

2-1969
년 하워드 와이즈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미국 내 최초로 비디오아트를 다른 전시를 선보였다. 이 쇼에는 백남준, 폴 라이언 프랭크 질레트 아이라 슈나이더얼 라이백, 알도 탐벨리니가 참여했다. 비디오 전시는 급격히 늘어났다. 처음에는 대안공간에서 나중에는 미술관에서 열렸다.

 

와이즈는 1970년 화랑 문을 닫고 미술가들 최초의 비디오 유통기구인 '일렉트로닉 아트 인터믹스 Electronic Arts Inter를 만들었다. 레오 카스텔리일리애나 소나밴드가 뒤를 이어 1972'카스텔리 소니핸드 테이프와 필름Castelli-Sonnabend Tapes and Films'을 창설했고, 1976년에는 시카고에서 '비디오 데이터뱅크 Video Databank'가 설립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기술공학에 대한 낙관론 덕에 상당수의 창작집단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비디오를 통해 사회적 관계들의 대안적 시스템을 전개하려고 했다.

 

1989년 설김된 '레인댄스Raindiece 창작 집단은 마셜 맥루한벅민스터 풀러의 테크놀로지한 저술에서 영향을 받아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써의 비디오에 관한 급진적인 이론들 제안했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개미농장Antfarm'은 퍼포먼스와 대안 비디오 이벤트를 열고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다.

 

3-1967년부터 70년대 중반까지 몇몇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비디오의 새로운 창조성의 중요도를 인식했다. WGBH 보스턴, 뉴욕의 WNET, 샌프란시스코의 KCED TV는 펠러재단 기금으로 비디오 미술가들을 위한 거주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1969WGBH는 '매체는 매체다(The Medium is the Medium)>'라는 최초의 미술가 비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리처드 세라카를로스쿨만과 함께 제작한 텔레비전 사람들을 구원하다 Television Delivers People>(1973)는 녹음된 배경 음악이 흐르는 스크린 아래로 텔레비전 시청자들에 관한 통계 정보를 스크롤해 드러내면서 상업 텔레비전의 가치에 전면 공격을 가졌다.

 

1968년에 이르자 비디오는 다른 매체들과의 영역 간 실험과 1960년대와 70년대 초 특징지은 미술 형식들을 반영하면서 미술 제작의 새로운 언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즉각적 피드백 작용을 하는 비디오는 퍼포먼스 과정미술 신고, 이들을 위해 비디오는 기록 장치와 거울, 혹은 지각 도구로 가능했다.

 

미동부에서는 비트 콘치, 데니스 오펜하임, 피터 캠퍼스, 키스 소니어, 사윌리엄 해그린, 서부 해안에서는 브루스 나우면, 테리 폭스, 존 크리스 ,하워트프리트 폴 매카시, 더그 홈 링 허쉬면 같은 미술가들이 비디오 정신적 자아의 개념을 고찰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혼자 때로 오랜 시간에 제작한 퍼포먼스적 행위들은 '라이브' 관객을 대체한 비디오의 고정된 프레임으로 기록 되었다.. 아론치에게 비디오카메라는 도전적인 퍼포먼스의 기록물 신과 관객 사이, 나아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사이에 도발적 대화를 설정함으로 가능했다.

 

4-비디오는 새로운 여성 미술가 세대에게도 중요한 매체였다. 이들은 민주적이며 시간을축으로 하고 미술사적인 비디오의 속성들에서 개인적 표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1) 조안 조나스, 2) 메리 루시어, 3) 마사 로슬러, 4) 에이드리언 파이퍼, 5) 베릴 코로, 6) 구보타 시게코, 7) 데라 번바움, 8) 허민 프리드, 9) 낸시 홀트, 10) 엘리너 앤틴, 11) 린다 벤글리스, 12) 하나 키, 13) 렌다온티노70년대 초에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성적 정체성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의문시하는 비디오테이프와 퍼포먼스들을 제작하고 실행했다.

 

조나스의 수직 롤은 자신의 벗은 부분과 옷을 입은 부분들을 찍은 뒤 반복해서 바뀌는 수평 프레임 속에추상화해 보여주면서 여성의 몸과 비디오 테크놀로지를 동시에 해체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마사 로슬러의 <주방의 기호학 Semiotics of the Kitchen>(1975)은 분노와 좌절을 표손하기 위해 주방 용구를 사용함으로써 요리법 실연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새롭고 급진적인 형식을 탐구하는 여성 작가들은 물론이고 남성 작가들에게 있어서도 시간을 축으로 한 비디오는 개인적, 정치적, 형식적 차원에서 심오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70년대를 통틀어 미술가에게 강력한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5-1960년대 중반부터 미술가는 3차원 공간을 참여지향적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대형동사 필름, 슬라이드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비디오 이미지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환각적인 감수성을 반영했던 이 초기 환경은 청중이 완전히 몰입하여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꿈의 공간으로 가능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미술가는 새롭게 출현한 비디오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다른 형식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는데,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즉각적인 피드백과 실시간적 성질은 인간의 행동을 라이브게 관찰할 수 있게 했다.

 

'라이브' 피드백은 주로 대안공간들이나 미술가들의 스튜디오에서 보여준 새로운 비디오 설치작품의 중심 요소가 되었는데, 그 중요성은 퍼포먼스개념미술, 바디아트와 은밀하게 연관되었다.

 

그것은 미술 오브제로부터 공간에서의 관개의 실존으로 미니멀리즘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프랭크 질레트와 아이라 슈나이더의 <닦기 사이클 Wipe Cycle> (1969)은 여러 개의 모니터와 카메라들을 시간의 지연 . 축적 방식으로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그들은 방영되었거나 테이프에 녹화된 일련의 텔레비전 이미지들과 관객의 '라이브' 사진들을 혼합했는데, 이런 방식은 새로운 참여적 테크놀로지 텔레비전 환경을 암시했다.

 

다른 개념적인 비디오 작품로는 베릴 코로, <다카우 Dachau>(1974), 메리 루시어, <새벽 해가 타오르다 Dawn Burn>(1975), 백남준, <TV 붓다TV Buddha> (1975)가 있다.

 

브루스 나우먼<라이브로 녹화되는 비디오 복도 같은 비디오 설치작품에서 비디오의 시지각적 연구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나우먼은 각 작품을 폐소공포를 자아내는 공간 환경으로 구성했는데, 그 안에서 관객은 신체적 속박과 방향 감각 상실을 경험했다.

 

비디오 설치와 퍼포먼스의 긴밀한 관계는 비토 아콘치와 데니스 오펜하임의 설치작품에서도 밝혀졌다. 오펜하임은 몸이 중심 주제가 된 <진저브레드 인 Gingerbread Man) (197071)을 비롯한 다수의 중요한 행위 영상들, 비디오테이프와 영상 설치물을 제작했다.

 

6-반사경 개념은 이들 및 공간에 실재하는 미술가와 관객에 관한 다른 심리학적 연구의 핵심 요소다. 70년대에 피터 캠퍼스는 일련의 독창적인 비디오 설치물을 제작했다.

 

그 안에서 관객은 곧잘 왜곡되는 자신의 반사 이미지와 맞닥뜨렸는데, 이것은 숨겨진 비디오카메라로 실시간 녹화한 것이다. 댄 그레이엄의 시간지연 방식의 비디오 피드백인 <현재는 연속적인 과거(Present Continuous Pastis)>는 단일한 공간적, 시간적 시지각 시점의 단편화다.

 

자주적인 자아 개념이 파괴되고 있는 풍토에서 비디오 설치는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스튜디오와 화랑, 미술가, 작품과 관객 간의 경계를 재조정하기 위한 주요한 장소가 되었다. - 저자 <크리시 아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