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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60대 (1992-2001)

[백남준] 1995년 베니스에서 한국미술의 '세계화' 선언

<호랑이보다 호랑이 꼬리가 더 무섭다. 1995년 베니스에서 열린 '호랑이 꼬리(The Tiger's Tail)'라는 특별전은 한국미술이 이제 세계 미술계에서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2000년 0시 백남준 이걸 호랑이는 살아있다 위성아트로 업그레이드시키다>

백남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개관할 때 백남준의 세계적 미술계 인맥이 총동원되었다. 그분들이 움직이도록 보이지 않게 로비를 했다. 1993년에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탔기 때문에 그의 말이 먹혔다. 또 한국관(세계 25번째, 동양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 독립관) 개관 기념 국립현대미술관이 특별전인 <호랑이의 꼬리(한국작가 15인 소개)>를 열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전시 제목도 백남준이 정한 것이다. 그때 국립미술관 측 담당 학예연구사는 안소연 씨. 그녀는 후에 삼성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베니스에서 개최된<호랑이 꼬리전>포스터] 이런 의미에서 1995년은 최소한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하 는 일에 있어서는 그 원년이 아니었나 싶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실험적인 전시 기획으로 유명한 미토(水戶)아트 타워와 아이치(愛知)현립미술관에서 각각 "마음의 영역"과 "환류(環諦)"라는 제명의 한국현대미술전을 개최한 바 있고 영국 에딘버러의 프룻 마켓(Ruit Market)전시장을 통해서도 우리나라의 현 대미술가들이 소개된 바 있다.

 

또한 독일 슈투트가르트치 제6회 소형 조형물 트리엔날레와 터키의 이스탄불 트리엔날레, 그리고 프랑스의 제3회 리용 비엔 날레 등에 한국대표가 참가하여 한국미술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문화올림픽을 방불케 하는 이들 국제 무대에서 한국작 가들이 구색맞추기의 들러리로서가 아니라 담론을 이끌어 내는 관심의 대상으 로 부각되었다는 점을 특기해야 할 것이다.

 

'95년도에 있었던 한국현대미술의 해외전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 로는 무엇보다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을 개관한 일일 것이다. 비엔날레 창립 1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에 한국은 카스텔로 공원의 부지 내에 26번 째이자 마지막으로 독립된 국가관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는 향후의 전시 프 로그램이나 내실의 문제를 떠나 일단은 세계 미술무대에 한국을 독자적으로 선포한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베니스 비엔날레와 때를 맞추어 베니스에서 한국현대미 술 특별전을 조직한 이유 는 한국관 개판을 기념한다는 자축의 의미도 있었 지만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인구가 집결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성을 최대한 이용하여 한국현대미술을 가장 효과적으로 세계 에 알린다는 목표가 전제되었다.

 

[호랑이의 꼬리(Tiger's Tail)] 라 명명된 전시회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태리의 무디마(Mudima)현대미술재단이 주선하여 베니스 현지에서 전시장소를 물색하고 15인의 한국 현대미술가를 당당히 세계무대에 소개한 이 전시는 한 국미술의 세계화 대열 그 첫머리에 우뚝 서있는 백남준에게 여러모로 빚진 바 가 맡다. 혼자 힘으로 세계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겪었을 무수한 어려움과 세계 화된 문화가 내포하는 엄청난 양의 부가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이기에 이번 전시회의 조직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던 것이다.

 

<추신> 정보교류와 여행이 자유로운 이 시대에 우리는 남발되고 있는 "국제화"라는 용어에 대해 오히려 둔감해져가고 있지만 해외에 나가서 혹은 외국인과 마주했 을 때 그들이 알고 찌는 우리의 작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60-70년대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동족상잔의 경험을 지닌 처참한 나라의 이미지를 일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들에겐 아직까지도 그저 졸부의 나라라는 인상만을 남겨두고 있으니 말 이다. 문제는 문화이다. 훌륭한 가문의 가정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는 사실을 공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 대한 인식은 그 나라의 유구한 역사, 민족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까지도 내포한다.

 

이 세기를 문화전쟁의 시대라 일컬을 만큼 각국마다 해외에 자국의 문화심기에 열을 올리 는 이유도 문화야 말로 그 나라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때 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신라시대 이후 주변국에 영향을 미치며 전승되었던 맡은 문화유산들이 오늘날 크리스티(Christie's)나 소더비 (Sotheby's)등 세계 주요 경매시장의 관심을 고조시킬 만큼 "국제화"되어 있 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일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여기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은 선대의 유산에만 의존하는 삶이 아닐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오늘의 어법에 맞는 문학 경쟁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조성묵[메신저] 1995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 온 "호랑이의 꼬리"라는 전시제목은 한국인 또는 그 문화의 정체성을 가장 함축 적으로 그리고 해학과 겸양의 미덕을 고스란히 담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호랑이의 꼬리전]의 기획의도는 한국현대미술의 역사적인 흐름을 재현하면 서도 현재 진행형의 다양성을 포괄한다는데 있었다.

 

60년대 이후 본격화된 한 국현대미술은 서구 모더니즘을 우리 토양에 맞게 체화시켜 소위 한국적 미니멀 리즘이라 일컬을 수 있는 단색조회화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고 이에 대한 반발 로서의 민족주의적 전통과 사회 속의 현실미술의 대두를 보게 되었으며 근래에 와서는 산업사회화와 상업자본주의화를 겪으면서 파생된 문명을 비판하고 그 본질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의 시각적 표출로 변천하였다.

 

하종현. 이종상, 윤명루 백남준. 조성묵, 심문섭, 이규선, 정연회, 이형우. 곽덕준, 임옥상, 윤석남 조덕현. 김수자. 안성금 등의 작가들이 이 흐름을 단면적으로나마 대표하여 보여주었다. 본래 백남준을 포함하여 총 15명의 작가를 선보인 [호랑이의 꼬리 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귀국전을 가지면서는 유감스럽게도 14명의 작가 작품만을 소개할 수 밖에 얼었다.

 

베니스 현지에서 제작한 백남준의 「행복한 호피 인디언」과 초대형 비디오 선박 「콘티키」가 운송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작 가의 활동무대인 미국으로 곧장 철수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니스의 18 세기식 건물인 팔라쪼 벤드라민(palazzo Vendramin ai Carmini)에 설치되 었던 전시를 대한민국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전위시 킴으로써 본래의 전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세 계인들에게 오늘의 우리미술을 알리는데 일조한 전시회를 우리에게 친숙한 공 간에서 재해석하여 우리 국민과 함께 감상하고 음미하는 기회를 갖는다. 의의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