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뉴욕을 중심으로 비디오아트의 꽃을 피우다 그의 파트너 샬럿 무어먼 등 다수 / 미국 미술을 완전 세계 미술로 끌어올리다 / 이의 촉매제는 바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무어먼 총기획)이었다
백남준은 융합 총체 예술 / 동과 서가 힘을 합치고(전쟁 막고) / 자연과 문명이 힘을 합치고(환경파괴 막고) / 천과 지 하늘과 땅이 힘을 합치고( 원융 회통) 그 비율은 50:50이다
핸하르트(미국국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일찍이 스마트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이를 풀어서 말하면 백남준이 스티브 잡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소리다. 집단지성의 대명사인 온라인 위키백과도 사실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 프랑스 백과사전이 프랑스 대혁명의 동력이었다면, 위키백과는 정보혁명시대의 동력이다.
백남준 초기 TV 제작 단가가 비싸 소수의 독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비디오 공동시장> 요즘말로 하면 유튜브를 제안했다. 소수 독점이 되면 가장 억압적인 매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문화(향유)가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 점을 강조하다
백남준은 키틀러(유럽의 유명한 미디어아트 비평가)가 보지 못한 부분에서 미디어아트를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예컨대 샤머니즘과 선사상을 도입해 이를 탁월하게 해석해 성공하다. - 조정환 /
추신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서 오웰의 암울한 미래상에 공격을 가하고 바이바이 키플링으로 동과 서 화합의 불가능성을 타파했다. 그 경계를 넘으려고 끊임없이 시도-노력하다 /
위성아트로 일체의 장애 시간과 공간 동서의 벽과 장애물을 없애다 이번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강 작가도 동서문학의 장벽을 허물고 세계문학으로 나아간 것이다. 서구도 한국문학을 아주 늦었지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남준은 50년 전에 바로 그런 것을 시도한 선각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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