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첫 전시에서 -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였다. 나무들 사이에 깡통, 열쇠 따위를 매달아 바람 불면 소리가 났다> //
1963년 3월 독일 소도시 부퍼탈//시내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망측한’ 전시회가 열렸다. 문 위에 잘린 소머리가 걸렸고 현관은 대형 풍선으로 막아 기어서 들어가야 했다. 안은 마치 고물상 같았다. 이층 욕실에는 잘린 두상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텔레비전 13대를 조작해 관객 참여를 유도했다. 전시된 피아노 넉대 가운데 한대는 벙어리, 또 한대는 뒤집어놔 현 위를 걸어다닐 수 있었다. 멀쩡한 한대는 작가 요제프 보이스가 망치로 산산조각 내 버렸다.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였다. 나무들 사이에 깡통, 열쇠 따위를 매달아 바람 불면 소리가 났다. 이날 주인공은 동양 청년 백남준. 독일에서 공부를 마친 서른두살의 그가 처음 연,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다. - 한겨레 임종업 기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괴이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신화의 전시-전자 테크놀로지’(EXPosition of mythology-ELectronic technology)라는 제목이다. 백남준의 첫 전시처럼 알파벳 대문자 ‘EXPEL’(추방)을 표방하고, 잘린 소머리는 물론 목 잘린 부처도 걸렸다. 다르다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벽암록> 구절과, 백남준의 피에서 추출한 디엔에이(DNA) 염기 서열이 깔린 독일 비스바덴 온천 사진이 곁들여져 있다(비스바덴은 백남준이 자주 갔다는 온천 도시다). 청년 백남준을 다시 보자는 의도가 깔린 전시다. <한겨레 임종업기자>
백남준 첫 전시에 대한 이영철의 평: “국내에서 백남준 하면 비디오 조각가로 이미지가 고정돼 있지만, 그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천재 예술가였다. 46년 전 백남준의 첫 전시는 탈서구적, 탈현대적, 탈장르적 실험이었고, 반세기에 걸친 그의 예술세계에 있어 빅뱅이었을 뿐 아니라, 21세기 예술의 출구를 열어준 문지방이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영철 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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