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높은 곳이지만 평평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변방이 없다" - 들뢰즈> 30세기 예술가 백남준 1000년을 내다본 디지털 노마드 작가 / 들뢰즈는 1000년(개)의 고원(Mille Plateaux)을 언급하다 // 《천 개의 고원》은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의 연구에서 따온 것이다. 베이트슨은 발리 섬의 문화를 연구하는 중, 발리인들의 생활양식 곳곳에서 절정의 추구를 회피한 채 유지하면서 진행하려는 경향을 발견하고 이를 '꼭대기가 있는 산'과 대비되는 '높고도 평평한 고원(Plateaux)'으로 비유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철학적으로 수용하고 《천 개의 고원》을 통해 뾰족한 꼭대기, 즉 하나의 점으로 수축시키고 고착화하는 것들에 대항하고 리좀, 분열분석, 지층분석, 화용론, 미시정치, 영토화, 탈주, 배치와 같은 다양한 개념을 창안한다.
<백남준은 전자음악에서 전자텔레비전으로 전환했으며, 그 과정에서 백남준 특유의 실험적인 TV와 비디오아트가 탄생했다> 들뢰즈·가타리, '1227년-유목론 또는 전쟁기계' - 《천 개의 고원》 중에서, 새물결출판사 2001, 671~812쪽 // 들뢰즈와 가타리의 '전쟁기계' 개념은 그들의 저서 《천 개의 고원》에서 가장 흥미롭고 논란이 많은 것들 중 하나이다. 이 개념은 오해될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의 전쟁과 관련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기계는 "전쟁이 아니라 창조적 변이와 변화의 조건들에 관한 것"이며, "따라서 '전쟁기계'라기보다는 '변형기계'로 생각하는 것"(폴 패튼, 《들뢰즈와 정치>, 269쪽)이 보다 합당하다. 물론 이 개념은 글로벌리즘과 테러리즘이 번성해 있는 지구촌의 세계 체제에서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띠고 있다. 그런데 그 정치적인 것의 표현은 "감응"이며, 이동술과 결합한 독특한 야금술적 생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야금술은 금속이 아니라고 해도 특유의 금속성 공명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즉 에너지를 내포한 물질성은 준비된 질료를 표출하고, 질적인 변환이나 변형은 형상을 표출하게 된다." (들뢰즈·가타리, <천개의 고원>, 788쪽) ---->
이와 같은 질적 변환이나 변형의 방법으로서 야금술이 유목민의 이동술과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생성이 '유목적 변형 기계'이다. 즉 변화하는 다양한 물질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변형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볼 때 야금술 없이는 전자공학도 존재할 수 없었다." (위의 책, 같은 쪽) 백남준은 전자음악에서 전자텔레비전으로 전환했으며, 그 과정에서 백남준 특유의 실험적인 TV와 비디오아트가 탄생했다. 또한 위성아트를 통하여 "전 세계적 차원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투명하며 서로 연대하는 사회, 다시 말해 전쟁이 없는 사회'에 대한 꿈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유목적 변형 기계'를 구성하는 원리라고 하겠다. (이영철-김남수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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