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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50대 (1982-91)

[백남준] 백남준 로봇 드림: 팩토리 아카이브' 60년대와 80년대 차이?

<<로봇 드림: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 백남준 60년대 로봇 작품과 80년대 로봇 작품의 차이점?

 

백남준 팩토리(1984-2002)의 협업자 마크 팻츠폴이 백남준을 도와 비디오 조각과 판화를 제작하며, 기록하고 보관해 온 아카이브에서 로봇 작품에 초점을 맞춰 기획된 전시입니다. 기술과 인간의 공생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시도하였던 로봇 작품 탄생 여정이 기록된 이 아카이브는 백남준의 통찰을 따라가 볼 수 있어 특별합니다. /

 

백남준은 "새로움은 진실보다 중요하다. 새로움은 아름다움 보다 중요하다"라 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기술을 반갑게 껴안고 그 기술의 인간화를 사유했습니다.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이 증강되는 새로운 진화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는, 어디까지가 인간인지 정체성을 되묻고 기술 발달의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백남준 로봇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1 [백남준 최초 로봇 K456] K456은 1964년 백남준과 일본 엔지니어들이 함께 만든 최초의 로봇 작품입니다. 30개 채널로 조정되는 키 183cm의 이 로봇은 흰 콩을 배설하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돌발 야외 공연인 <로봇 오페라>에 출연한 이후 20년간 여러 퍼포먼스에 참여하였습니다. K456은 1982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 퍼포먼스인 "21세기 최초의 참사"로 사망했습니다.

“21세기 최초의 참사(재앙)” 위치: 맨해튼 75번가와 매디슨 애비뉴, 휘트니 미술관 외부. 1982년

설명: 로봇 K-456이 자동차에 치인 조작된 사고 / 해설: 이 퍼포먼스를 위해 K-456은 백남준의 회고전이 열렸던 휘트니 미술관의 받침대에서 들어 올려져, 작가의 안내를 받아 75번가와 매디슨 애비뉴 교차로로 이동했다. 길을 건너던 중, 로봇은 예술가 빌 아나스타시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실수로" 부딪혔다. 백남준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충돌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문제점을 제시했다. "충돌" 이후, K-456은 미술관의 받침대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백남준은 이제는 이런 로봇을 만들지 않았지만, K456은 기술과 예술의 통합, 대중 참여 유도 등 현재와 미래 미디어 예술의 지향점을 담은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 백남준, 로봇 K-456, 1964년, 알루미늄과 원격제어장치 등, 182×103×72㎝. 30 채널 /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소장.

 

2 [새로운 로봇과 시대배경] 1982년 K456을 교통사고로 마무리한 백남준은 1986년 새로운 형상의 로봇 작품<로봇 가족>을 제작했습니다. 1980년대는 개인 컴퓨터, 비디오 게임, 모바일 폰 등이 대중화된 시기로 기술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과학 기술의 미래에 대한 공포도 높아져서 영화 스타워즈, 로보캅 시리즈가 크게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발달한 기술이 제국주의적인 우주 침략전쟁에 쓰이고, 인간과 불화하는 사이보그를 만든다는 부정적인 상상력과는 다른 이야기를 백남준은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계는 가질 수 없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존경하는 위대한 사람들을 로봇 형상의 사람으로 만들어, 인간이 중심이 된 기술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조부모부터 아기까지 가족 3대를 <로봇 가족>으로 완성하여, 인간이 중심이 된 기술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3 [초상 비디오 조각 PORTRAIT VIDEO SCULPTURE] 초상 비디오 조각은 비디오의 아버지 백남준이만든 초상 조각입니다. 1970년대 백남준은 낡은 TV 케이스에 비디오 파일을 결합하여 비디오 조각이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었습니다. 비디오 조각은 물질과 비물질을 통합하고 재치와 유머를 담아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예술 대중주의를 지향했던 백남준은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을 융합하여 작품이 친근하고 쉽게 느껴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 <비디오 조각의 협업 제작> 백남준은 평생 작곡가의 마인드로 작업하였습니다. 작곡자가 연주자를 찾아 곡을 완성하듯이 뛰어난 협업자들을 찾아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회고전 ‘비디오 때, 비디오 땅’에서 작품설치를 맡은 백남준의 조수들 마크 파스팔(오른쪽부터), 이정성, 존 호프만, 블레어 서먼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이정성

 

주요 협업자로는 슈야 아베(비디오 합성기), 마크 팻츠폴(신시내티 백 팩토리), 블레어 셔먼, 존 호프만(뉴욕 스튜디오), 요헨 자우어라커(독일, 유럽), 폴 게린(비디오 편집), 노만 발라드(레이저), 이정성(전자기술지원)이 있습니다. 백남준은 협업자들에게 작품의 해석과 실현에 있어 자유로운 재량권을 허용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작업했습니다.

 

둘, <초상 비디오 조각에 도입한 즉흥성> 백남준은 작곡가가 순간적 감흥을 중요시하여 창작한 즉흥곡의 작곡 방식을 로봇 작품 제작에 차용했습니다. 로봇 작품은 다른 비디오 조각들에 비해 더 직관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치밀한 계획보다 순간적인 순발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초상 비디오 조각들은 백남준이 1986년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 년간 꾸준히 만든 작품들입니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중요한 전시의 중심 작품이었고 대중들의 인기가 높았으며, 미술시장에서도 수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술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글로 많이 남긴 연구자형 작가 백남준이 정작 로봇 작품에 대해 쓴글은 드뭅니다. 따라서 그의 로봇 작품을 이해하려면 신기술을 인간적으로 구현하려 했던 그의 예술 철학 안에서, 비디오 조각이라는 형식 아래 표현하 고자 했던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4 [로봇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이름] : 백남준의 초상 비디오 조각은 로마 시대의 초상 조각 방식을 따릅니다. 빈티지 TV, 라디오 케이스 등을 사용한 로봇의 몸체는 개성을 표현하고, 직관적이고 유머 넘치는 어귀들을 일필휘지의 필체로 덧붙였습니다. 주로 한글과 한자로 쓰여진 내용은 동양의 지적 유산을 상기시키며, 백남준 작품의 주요 전략인 동서양 인문학의 결합을 보여줍니다. 로봇의 몸체 안에서 구동되는 비디오 파일은 폴 게린과의 협업으로, 백남준의 발명품인 비디오 신서사이저를 사용해 제작되었습니다.

 

협업자 이정성이 고안한 비디오 분배기를 통해 각 채널에서 쏟아지는 영상들이 순간 구성되어, 1분당 30개의 그림이 현란하게 뿜어져 나오도록 했습니다. <글로벌 그루브> 같은 기존의 시그니처 비디오 영상들과 함께 각 주제에 맞춘 사진들이 삽입되고 변형되는 독특한 형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비디오들은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이 아닌 비선형적 이미지 나열로 랜덤 액세스의 추상적 시간을 구현합니다. 초상 비디오 조각에서 모델은 매우 중요합니다. 백남준은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상상한 사람, 그리고 한국인들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고국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정서적 유대를 보여줍니다.

 

존경하는 사람들에서는 백남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제작한 직업군은 과학자였고, 왕과 대통령, 사상가, 예술가들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위인들도 많이 제작하였습니다. 한국 문화의 잠재력을 강조하며 21세기에는 한민족이 세계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시원인 <단군-스키타이 왕>을 제작하여 유라시아 대륙과 한국을 연결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에게 유목민의 DNA가 있음을 일깨워 21세기 한국인들이 문화 노마드로 진화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마크 팻츠폴은 백남준을 "개인의 힘이 사회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진정 믿었던 사람"이라고 회상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초상 비디오 조각으로 구현되어 어 인간의 존엄과 자존을 보여주려 했던 것입니다

 

5 [백남준의 유산]: 백남준의 유명한 덕담 "내일 세상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는 인간에 대한 그의 신뢰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기계가 주는 정보를 더 신뢰하는 현상을 겪고 있는 지금, 백남준의 통찰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 회복만이 지금 세상의 난국을 풀어갈 열쇠임을 보여주는 백남준의 초상 비디오 조각은 인간과 닮은 기계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화된 기계가 목적임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의도에 따라 윤리적 원칙을 지키며 사람이 조정하고 제어할 수 있는 인간화 된 기술의 예술적 구현으로써, 로봇 형상 사람 조각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사를 끊임없이 재활용하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미래를 사유했던 예술가 백남준, 그의 독특한 방식이었습니다. - 이경은 백남준문화재단 이사 artlink0738@gmail.com

 

K-456의 탄생과 죽음(1964-1982) 이 로봇은 사람처럼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확실하다

https://cyberneticzoo.com/robots-in-art/1964-robot-k-456-nam-june-paik-korean-shuya-abe-japanese

 

1964 - Robot K-456 - Nam June Paik (Korean) & Shuya Abe (Japanese) - cyberneticzoo.com

1964 - Robot K-456 by Nam June Paik & Shuya Abe .

cyberneticzoo.com


 

예술과 미래 : 더글러스 데이비스와 남준파이크의 인터뷰 중 발췌. 1) 도쿄에서 로봇을 개발하고 직접 만들었습니다. '30채널 제어 장치'가 있었습니다. 2) 흑인 남성 한 명은 계속 "신이 이 로봇을 만들었다"고 소리쳤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로봇을 워싱턴 스퀘어로 가져왔을 때였습니다. 정말 큰 센세이션이었습니다.

 

<질문> 1963년에 독일을 떠났다고 하셨는데, 어디로 가셨나요?

<대답> 두 가지 목적으로 일본으로 가셨습니다. 전자 제어 로봇을 만들고 컬러 텔레비전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세 대의 카메라가 있는 텔레비전을 만들어 같은 화면에 컬러를 출력했습니다. 또한 일본인 엔지니어 슈야 아베와 함께 화면에 나선형이 나타나는 나선형 발전기도 만들었습니다. 아베 씨는 1963년부터 TV 아트 분야에서 제 주요 협력자였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질문> 로봇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답> 전자 잡지에서 로봇에 대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쾰른에서 무선 조종 비행기에 사용되는 장비를 발견하고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습니다. 저는 전자공학의 모든 단계, 즉 청각, 시각, 촉각, 그리고 무선 조종까지, 거리를 걷는 무선 조종 로봇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도쿄에서 로봇을 개발하고 직접 만들었습니다. 30채널 제어 장치가 있었습니다.

 

<질문> 로봇을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셨나요?

<대답> 저는 주로 해프닝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잠깐 놀라움을 선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샤워를 하는 것처럼요. 로봇이 당신을 발로 차고는 계속 움직이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것은 거리 음악이었습니다. 1965년 저는 로봇을 미국으로 가져갔고, 그해 가을 저드슨 홀에서 열린 제2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의 오프닝 무대를 맡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로봇을 뉴욕 거리, 57번가, 파크 애비뉴, 그리고 화창한 어느 일요일 워싱턴 스퀘어로 가져갔습니다. 로봇이 오는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습니다. 반쯤 미친 흑인 남성 한 명은 계속해서 "신이 이 로봇을 만들었다"고 소리쳤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로봇을 워싱턴 스퀘어로 가져왔을 때였습니다. 정말 큰 센세이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