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70대 (2002-2006)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남준] 그는 왜 죽은 날까지 퍼포먼스를 했나? 왜 백남준은 죽은 날까지 퍼포먼스를 했을까? 그는 평생 관념주의와 치열하게 싸우기 위해서? / 그의 대답을 들어보자 / 질문 : 당신은 왜 평생 퍼포먼스를 끝이지 않고 해 왔나? 대답(백남준) : 행위 하는 예술이란 거기 부닥쳐서 즉흥적으로 하는 것인데 거기에 인생이 농축되어 있다고 보는 거야 아래 2002 더보기 [백남준] 평생 가난, 부인 장례식장은 뉴욕 고급스런 장소 선정 백남준 평생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부인이 그가 사망했을 때만은 뉴욕에서 그래도 고급에 속하는 장례식장을 정했다고 한다. 죽은 순간만이라도 좀 편하게 보내고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백낙승)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1920년대부터 1300여대의 방직기를 갖춘 태창방직을 운영했다. 부친은 일본 니혼대 상과과 메이지대 법과를 나온 엘리트였다. 동대문집이 3300평이고 당시 드문 캐딜락이 있었고 차 수리공이 1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식민시대 사업가이기에 일본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고 백남준은 그런 점이 못마땅하게 생각해 평생 부친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내인 백남준은 결국 집안에서 말썽쟁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중에 백남준 부친 .. 더보기 [백남준] 다빈치와 비교 <Paik Nam June, 21C Leonardo> 아래 사진 이 문장이 인상적이다 세계의 가장 위대한 두 작가: 다빈치와 백남준, 2013년 영국 에딘버레 축제에 초대> 서양미술사에서 예술과 과학(Art and Technology)을 융합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이후에 500년이 지났는데 다빈치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백남준은 세계미술사에서 미디어아트 창시자인데 500년 후에도 백남준보다 더 훌륭한 미디어아트 작가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동서를 대표하는 영원한 르네상스 인간이다 그래서 영미권에서 백남준 21세기 다빈치라 부른다아래 2013년 영국에서 열린 에딘버러 예술제 중 세계의 가장 위대한 두 작가: 다빈치와 백남준> 더보기 [백남준] 공부에 도움이 되는 도서 및 그의 연대기 이은화 선생님(오마이 기사 제가 초대 / 미술 미술사랑 미술사람 사람 생생한 미술관 이야기 전세계 누비다) - 저의 소개(제 이야기 좀 이해가 안된다?) 백남준 연재 2년 -유튜브 6개월 -백남준 / 포럼 6회 뉴욕 독일 1달씩 / 백남준 불가해한 작고 -대체불가능 작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예술가 지루하지 않고 항상 새롭다 설렌다 / 애인보다 더 설레임/ 5차원 6개국 600년 살다 /부친과 인연/ 백남준 운이 좋았다. 도울과 비교/ [백남준] 공부에 도움이 되는 도서 및 그의 연대기 [백남준 1991-2006] ▲1991년 = 취리히 Kunsthaus Zürich `백남준 회고전'. ▲1992년 = 서울에서 춤의해를 위한 백남준의 퍼포먼스공연. 비디오예술 30년 회고전(갤러리현대, 원화랑, 갤.. 더보기 [백남준] 그의 예술론("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로제타 스톤]" 1996년 전문 이 제목은 '인터넷'을 연상시킨다)의 키워드를 친절하게도 총정리해 로제타석에 새기다. 참 특이한 일이다. 원래는 5개국어로 적혀 있는데 모두 한글로 바꾸다] // 나는 내 비디오에서 쿠르트 슈비터즈(Kurt Schwitters: 독일의 화가·판화가·조각가)의 발전을 본다. 비디오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에 기초한 정보'(Time-based information) 즉 '무중력 정보'(No-gravity Informalion) 라는 것에 착안하게 되었는데, '무중력 정보'는 역사기록 (점토, 판, 석주, 죽간, 목간, 양피지, 종이) 이전 시대, 즉 부족사회 시대와 사유재산 발생 이전이자 농경 기술 이전의 유목시대일 때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 반도에서 이스라엘 아일랜드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기.. 더보기 [백남준]과 보이스의 차이점 대해 한 마디- 장 폴 파르지에 장 폴 파르지에에게 인터뷰에서 백남준과 보이스의 차이점을 대해 한 마디 부탁한다고 했더니 인터뷰에서는 짧게 말했지만, 보충 내용을 A4 용지로 10장 정도의 글로 보내오다 // 요약 백남준은 세계에서 예술무당 / 반면 보이스는 유럽에서의 예술무당 / 그 범위에서 차이가 난다. / 장 폴 파르지에, 탁월한 문장가라 은유가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장 폴 파르지에 원고 Cher Hyung Soon, très honoré par votre attention, hier, à mes propos sur Paik Nam June... / Voici le texte sur Beuys et Paik dont je vous ai parlé... Bien à vous / de JPF L’hypothèse du chape.. 더보기 [백남준] 그리고 '다빈치', 영국 '에딘버러 축제'에서 나란히 전시 해부학자 같은 다빈치 1452년 생, 물리학자 같은 백남준 1932년 생 몇 년 차? 480년 약 500년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거의 같아 보인다. 예술과 기술(Art and Technology)을 결합한 아티스트라는 면에서 같다. 바로 르네상스 인간의 전형들이다. 2013년 8월 9일(금)~10월 19일(토)까지 열린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 축제에서 다빈치와 백남준 특별전이 동시에 나란히 열었다. 왜냐하면 세계 미술사에서 두 사람을 동급으로 봤기 때문이다. 더보기 [제3회 백남준포럼] 그의 유언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 [제3회 백남준 포럼], "21세기부터 30세기까지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제3회 백남준 포럼 2024년 1월 30일> 2024년 1월 29일은 백남준 18주년 기일이다. 장소: 광화문 스페이스 본 [백남준 유언]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작성 보완 중' 아래는 백남준 죽음과 관련된 10가지 키문장이다. 01 백남준, 죽음에 대한 생각, 불교 '극락왕생(죽음은 끝 아니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것이기에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사상>,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 / 02 삶의 허전함(바니타스 Vanitas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이 삶의 환희(Jouissance)을 일으키는 원동력(죽음과 고통이 환희와 구원의 밑바당이 되다 역설의 .. 더보기 [백남준] 진정한 '한국인'인 동시에 6개국을 하는 '세계시민' 백남준 한반도 화합과 공존의 수호신으로 갓이 잘 어울리는 진짜 한국인이었고 동시에 를 통해 동서 문명을 연결하고 6개국을 하는 '세계 시민'이었고, TV를 매체로 20세기 미술사에 새 장을 연 세계적 비디어아티스트였다. 백남준은 을 통해 죽어가는 세상에 기를 살려주는 노마드 몽골 코드 이어받은 '전자샤먼'이었고, 을 통해 두루 넓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라는 '홍익인간 실천가'였고, 를 통해 가상 공간에 그림을 조각하는 첨단의 '실험미술가'였다. 을 통해 환경의 대안을 상상하고, 2차대전 격전지 솔로몬 제도에서 로 세계대전 재발을 경고한 '반전주의자'였고, 를 통해 성의 행복을 추구한 '정신분석가'였다 를 통해 맑스가 언급한 착취사회를 이겨내려는 '인류동포주의자'였고 을 통해 쌍방소통으로 지구촌 통합을 구현.. 더보기 [백남준] We are in open circuits Writing by N. J. Paik Essays, project plans, and correspondence from across Nam Jun Paik's career, much of it previously out of print or unpublished. 가격: 50달러 // 백남준(1932~2006)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틀림없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가장 영향력 있고 다작을 한 사람 중 백남준은 전자 동영상을 예술가의 매체로 변화시킨 전설적인 혁신가였다. 그는 친구들과 연락하고, 공연 악보를 작성하고, 텔레비전 프로젝트를 위한 제작 노트를 작성하고, 비디오 설치 계획 초안을 작성하고, 에세이와 기사를 쓰는 등 끊임없이 글을 썼다. 새로운 예술적 도구를 선구적으로 개발하고 비디오와 TV 분야에서 선.. 더보기 [백남준] 영어로 번역한 중국 고사성어 왕자를 따라 외국에 인질로 가게 된 신하가 있었습니다. 출발하던 날 그는 왕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왕께서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 시장 바닥에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뒤에 다른 사람이 달려와 똑같이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약간 의심이 들겠지." 왕이 대답했습니다. 신하가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만약 그 뒤를 이어 세 번째 사람이 들어와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왕은 그렇다면 믿게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신하는 자신이 왕자를 따라 외국으로 가게 되면 이런저런 말로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들이 셋보다는 많을 텐데 그런 말들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것처럼 근거.. 더보기 [백남준]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에서, 1974년 '인터넷' 창안 언급 뉴욕타임스(2006년 01월 31일) 또 다른 부고 기사 중 몇 문장 [1] 그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파악하고, 진통 끝에 탄생한 기술의 가능성을 간파하며 1974년 '전자초고속도로(인터넷)'라는 용어를 창안했다(He presciently coined the term "electronic superhighway" in 1974, grasping the essence of global communications and seeing the possibilities of technologies that were barely born) // [2] 백남준은 자신의 뉴욕 작업실(머서 스트리트)을 3개월 뒤처진 TV 수리점으로 비유했다 (He was a writer once compared his New .. 더보기 [백남준] 안은미, 추모굿 퍼포먼스 공중에 피아노 74대 뜨다 피아노가 등장한다. 이 피아노들인 포크레인을 타고 하늘에 올라간다. 하늘로 띄어 그 연결된 끈을 도끼로 잘라내면 아니면 가위로 그 끈을 자르면 피아노가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다. 백남준 스타일이다. 이런 광기가 어디서 나왔다. 당시 모든 사람이 완전 미쳤다. 이영철 관장의 호연지기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당시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 포퍼먼스에서 퍼포머는 누구인가? 한국에서 이걸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바로 무용가죠. 백남준아트센터(2009년) 앞에서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는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도 있었죠 백남준상 시상식 날 이 세상의 모든 장벽과 편견과 아집과 경계를 없애는 정말 과격한 이날 포클레인은 물론이고 피아노만 해도 74대 동원 여기서는 피아노가 바닥에 떨어지는 장면은 볼 수 없다... 더보기 [백남준] 유작 '엄마(Ommah)' 감상 - 오나경 작가 및 평론가 감상 포인트> 융합예술의 창시자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은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세계를 놀라게 하던 실험적 예술가이며 비디오아트의 창안자이다. 비평가나 전문가들은 그를 “20세기에 21세기를 산 희대의 선지자”, 또는 “비디오 아티스트라고만 정의하기엔 너무도 큰 예술가” “전무후무한 융합의 창시자”라고 지칭한다.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뉴 미디어를 언제나 한 발 앞서 예술에 접목하던 동시대 미디어 예술의 선봉장이었으며 그의 예술적 행보는 그 자체로 세계 미술계의 거대한 유산이 되었다. 2005년 완성한 마지막 비디오 영상 설치작 ‘엄마(Ommah)’는 그의 49재 때 공개된 후,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살구색 모시 두루마기 안에 설치된 TV화면에 백남준의 초기 비디오 작품이 상영되고.. 더보기 [백남준] 그의 마지막 꿈, 서울 한강에서 뉴욕 맨해튼까지 서울에서 날마다 뉴욕 맨해튼 거리를 볼 수 있는 백남준 메가트론 작품(서울에서 뉴욕까지, 40인치 TV 150대)이 마포 한강공원에 설치되었다면 미국을 가지 않고도 생방송으로 매일 뉴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백남준의 마지막 꿈은 서울 한강(마포 여의도)에서 미국 맨해튼을 보고 미국 맨하튼에서 서울 한강(마포 여의도)을 보는 메가트론을 만든 것이었다 - 백남준 전자 테크니션 이정성 더보기 [백남준] 평생에, 학벌 그런 이야기한 적이 없다. 백남준 학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 그의 트라우마인가? // 그의 아버지는 일본 니혼대 상과와 메이지대 법과를 나온 최고 학벌을 가진 엘리트였다. // 백남준은 학벌이 좋을수록 나쁜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 것인가 보다 // 도무지 부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부친과 대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단다 // 부친과 원수 그 이상으로 지냈다 // 사업가인 부친은 일제시대에 일본과 친할 수밖에 없었다 // 백남준 학벌, 교수나 뭐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 백남준 왈, 철자법이 귀찮으니, '초역' 신약성서로 돌아가자 // 음악가는 풍악쟁이, 화가는 도배쟁이, 조각가는 미장이야 // 레비스트로스 말하는 학벌이 없는 '야생의 사고'로 돌아가자고... 더보기 [백남준] 100세기~300세기를 내다보다 백남준 100주년을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 올해가 91주년 앞으로 10년 첫 해다. // 멍하니 있다가 시간 다 놓친다. // 분주히 할 일이 많다. /// "2032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백살이 될 것이다. 3032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천살이 될 것이다. 11932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십만살이 될 것이다" - 백남준 // 그는 30세기를, 300세기를 내다보고 있었다.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