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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60년대부터 비디오아트로 미국미술을 세계미술로 끌어올려 백남준 뉴욕을 중심으로 비디오아트의 꽃을 피우다 그의 파트너 샬럿 무어먼 등 다수 / 미국 미술을 완전 세계 미술로 끌어올리다 / 이의 촉매제는 바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무어먼 총기획)이었다 백남준은 융합 총체 예술 / 동과 서가 힘을 합치고(전쟁 막고) / 자연과 문명이 힘을 합치고(환경파괴 막고) / 천과 지 하늘과 땅이 힘을 합치고( 원융 회통) 그 비율은 50:50이다 핸하르트(미국국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일찍이 스마트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이를 풀어서 말하면 백남준이 스티브 잡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소리다. 집단지성의 대명사인 온라인 위키백과도 사실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 프랑스 백과사전이 프랑스 대혁명의 동력이었다면, 위키백과는 정보혁명시대의 동력이다. 백남준 초기 TV..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 철학자: 비디오를 조형매체만 아니라, 철학매체로 탐구 [백남준: 비디오철학자] 서양철학의 핵심인 '이데아'(idea). 플라톤 철학의 영원하고 이상적 예술 이미지를 가리키는 이데아(idea)를 '텔레비전의 별명을 연상시키는 '바보상자'(idiot) 말로 고치면서 서양철학의 대부를 심하게 욕보이다. 1972년 비디오 전문 잡지 의 편집자들에게 쓴 라는 글에서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50년대 자유주의자와 1960년대 혁명가 사이의 다른 점을 말하자면 전자는 진지하고 회의적인 반면, 후자는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누가 사회를 더 변화시켰을까?" 1960년대가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아는 해프닝, 팝아트, 플럭서스 운동에 의해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 백남준은 그 뒤를 잇는 1970년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의심의 여지없이.. 더보기
[백남준] 서구중심인 노벨상과 탈영토세계주의의 차이는 뭔가? 노벨상은 지나친 서구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의 지적 제국주의 중 문화적인 침탈이다.  서구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지배하려는 책략이다. 우리는 백남준이 말하는 진정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려면 지구상에 탈영토 세계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글로벌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홍익인간(두루 넓게 인류와 이웃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라)과 인내천 사상(모든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이다)이다. 이 정도 기준이면 세계에 충분히 통할 수 있다  그리고 비빔밥 정신 융합 사상, 인간성을 파괴하고 전쟁을 수시로 일으키는 살인적 경쟁의 정신이 아니라 조합의 정신 동서가 대립할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맛있게 비벼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 전 인류가 상호의존적 주체성 속에 진정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 더보기
[백남준] 음악가로서 그를 다시 찾아보기 - 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 음악가 백남준 되찾기(2017년 12월 2일(토) 오후 2시 백남준아트센터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Day 7) ‘백남준과 TV가든’ 비평글 | 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 발췌 우리가 알고 있는 백남준>우리에게 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좀 더 붙여서 ‘비디오 아티스트의 창시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이 주로 미국에서 작업한 TV 혹은 네온등을 활용한 시각예술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TV 작품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국내에도 용인 소재의 백남준아트센터와 동묘역 부근의 백남준기념관뿐만 아니라 과천현대미술관 중앙에 있는 ‘다다익선’,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설치되어있는 ‘호.. 더보기
[백남준] '수전 손탁' 등 세계 석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다 [해방, 예술, 문화 제국주의] 논제로 "On Liberation, Arts and Cultural Imperialism: A Conversation between Susan Sontag, Vytautas Landsbergis, Nam June Paik, and Jonas Mekas" edited by Jonas Mekas, draft with edits. 1) 수전 손탁(미국 철학자 문화비평가), 2) 란츠베르기스(리투아니아 초대 대통령, 작곡가, 소르본대 명예박사 플럭서스 회원), 3) 백남준, 4) 조나스 메카스(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거장 플럭서스 회원, 시인)의 4인 대화를 나누다A conversation between: VYTAUTAS LANDSBERGIS : the first Presiden.. 더보기
[백남준] MMCA(과천) 타계 1주기 추모전 '부퍼탈의 추억' 보도자료 국립현대 백남준 1주기 사진전(아래 보도자료)을 열고 2022년까지 한번도 백남준 전시를 열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故백남준 타계 1주기 추모전 《부퍼탈의 추억(Memories of Wuppertal)》, 2007년 3월 23일~5월 6일 / 나도 여기에 참석했는데 이정성 선생님과 시케코 여사 등등이 오셨다.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아트의 출발을 알린 《음악전시회-전자텔레비전(1963)》을 기록한 만프레드 레베 사진 연작, 독일 로젠크란츠 컬렉션 등 50~60년대의 백남준을 회상할 수 있는 작품 120여점 전시 ● 프랑스 디종 대학 김순기 교수, 사진작가 만프레드 레베 초청 강연회 개최 1963년 3월 11일, 세계 미술사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이 독일의 작은 도시 부퍼탈에서 일어.. 더보기
[백남준] 무명 시절 지원자 '장 피에르 빌헬름' 사망 10주년 추모 백남준 무명 시절 그를 도와준 장 피에르 빌헬름(독일 미술계 정신적 아버지로 백남준과 플럭서스 후원자) 사망 10주년에 그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표시로 사진을 주문해 찍다 아래 사진 만프레드 레베(Manfred Leve) '백남준의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1978년(백남준 독일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로 취임하던 해) 흑백 25*15cm 사진저작권 만프레드 레베> * 장 피에르 빌헬름은 1968년 7월 뒤셀도르프에서 사망했다. ) 흑백 25*15cm 사진저작권 만프레드 레베>  걷는다, 뛴다, 행인들을 바라본다, 생각에잠긴다, 웃는다. 백남준은 만프레드 레베에게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찍어 달라고청했다. 장소는 갤러리 22가 위치했던 곳으로,백남준이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처음 발표할 수 있었던.. 더보기
[백남준 ] Zen for walking 걸음을 위한 선, '문화 칭기즈칸'임 과시 백남준과 플럭서스 구성원들은 스코어 즉, 악보 혹은 지시문도 작성했다. 끌기 조곡>(1963)은 백남준이 만든 스코어 중 하나로 전시된 사진에서는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있다. 행위와 소리가 결합된 작업, 행위예술이자 음악이다. // 백남준은 1963-2006년까지 죽을 때까지 독일과 미국에서 서양 예술의 성상인 바이올린에 목줄을 달고 40년 이상을 끌고 다니다 // 그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결 같이 지구촌 공존과 상생과 원활한 소통을 추구하며 세계를 호령하는 문화 칭기스칸>이었다 더보기
[백남준] 그의 천재성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백남준의 천재적 창의성은 그가 단군의 홍익인간의 전승과 역동적인 몽골 기마민족의 혈통을 이어 받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왔다. 자부심이 모든 창조성의 근원이 된다. "내가 황색재앙이다", "내가 문화 칭기즈칸이다: 다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내 안에 우리 안에 1%의 열등감이라도 담고 있으면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백남준 열등감 제로 인간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백남준 은 천재임에도 진정 겸손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내가 살아가는 나의 처세술은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의 특징이다 백남준 영화에 보면 백남준 쾰른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백남준 그런 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미국 뉴욕 플랫 미술대학교 명예 박사를 받았지만 이.. 더보기
[백남준] 베토벤과 비틀즈 그리고 백남준과 BTS, 원효의 원융회통 백남준은 베토벤 음악을 비틀즈 방식으로 재맥락화한 비디오아티스트다. 그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뒤섞어서 서구에는 없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창조하다 어떻게 보면 혁명이다.서구의 2원론을 걷어차고 1원론으로 나간 것이다. 고급예술=저급예술 이런 구분을 없앤 것이다. 고급예술에도 저급한 것이 있고 저급한 예술에서 고급이 있다는 소리다. 비틀즈는 대중예술이지만 고급문화라는 말이다. BTS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비빔밥 즉 융합과 통섭이 중요하다. 거기서 미개척 신대륙이 만들어진다 하긴 이런 개념은 이미 원효의 원융회통 같은 사상에 담겨 있었다. '원융회통(圓融會通 백남준 말로 하면 동서가 서로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보다 큰 융합과 상생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란 원효대사의 화쟁 사상(Super commu.. 더보기
[11회 백남준 포럼 II] 예술적 창의성, 모험정신 그리고 혁명적 실천 "인류 최초의 화가와 조각가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디오아트의 창조자는누구인지 확실하다. 백남준이다. 그야말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이자 조지 워싱턴이다" - 미국 언론에서 // 영어 알파벳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글 창제자는 누구인지 확실하다. 바로 세종대왕.메타버스은 어디서 나왔나? 그건 백남준의 *탈영토제국주의에서 나왔고, 더 멀리는 보들레르의 인공천국에서 나왔고, 확장된 상상력(가상공간인류공동체)에서 나왔다.*앞으로 시대는 지상의 영토 크기 보다 가상 공간의 영토 크기가 그 나라의 위상을 결정한다 김형순 서론 1) 백남준의 창의성(확장된 사유 즉 상상력)에서 혹은 과학, 인문학을 융합2) 도전 정신 3) 혁명적 실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 예: 위성아트(미술확.. 더보기
[백남준] 학벌 그가 공부한 발자취 일본과 독일과 미국 등등 [백남준 학력] 경성수송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5년 재학 중 홍콩 로이든 고등학교 (졸업) 전학. 도쿄대학 문학부 (미술사학 / 학사) 뮌헨 국립 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국립 음악 대학교 (수료) 뮌헨 대학교 대학원 (철학 / 석사) 뮌헨 대학교 대학원 (음악사학 / 박사) 프랫 대학교 (미술학 / 명예박사 이건 맞다) // 백남준 영화에서는 백남준이 뮌헨 대학교에서 박사를 받았다고 나온다. 그런데 백남준 그런 걸 언급한 적이 없다. 마치 예수가 메시아 비밀론>에서 내가 기적을 행한 것을 제자들에게 절대 비밀로 하라고 신신 당부. 백남준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박사를 받을 걸 쉬쉬한 것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독일에서 교수 하려면 어느 정도 학위가 필요하지 않은가. 독일은 미국처럼 그렇지는 않다지만... 더보기
[백남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 전자아트 같은 탈장르로 확장 백남준 비디오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시각예술가?> 결국 음악이라는 장르의 한계 벗어나 전자음악이 있듯 전자아트의 전자비전으로 확장 탈장르의 현상을 보인 거죠. 미술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걸 의미하죠> - 백남준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김홍희) 백남준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고전음악을 공부하게 되는데 백남준은 이런 클래식 회의를 가지게 되고 피아노 사이에 피아노 사이의 음악 없을까를 생각해 두 대로 치는 피아노를 치는 발상도 하게 되죠. 그런 어떤 고전음악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때 존 케이지 만남 우연히 만나 사상적으로 크게 매료되죠. 존 케이지 말하는 음악은 문학 철학이 다 음악이고 음의 화음보다 소리의 조직을 음악이라고 보죠, 바로 비트음악 몸의 맥박을 비롯한 신체의 소리 거.. 더보기
[백남준]"메가트론/매트릭스"(1995) 워싱턴 미국 국립미술관 소장품 백남준 "메가트론/매트릭스"(1995) 워싱턴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소장품 / 워싱턴 DC를 방문하기는 했으나 미술관이 문을 너무 일찍 닫았고 일정이 너무 빠듯해 백남준 작품을 보지 못했다 백남준에게 TV 화면은 전자 회화를 그리는데 하나의 큰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것과 다르게 이런 담백한 전자 설치는 역시 동양 정신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 구조는 단순한 4X4다 가운데 숨통을 열어 놓다. 작은 여백의 미다. 단색화 풍의 TV 전자 회회다 더보기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설계 공모 그러나 경비문제로 변형 축소 원래 백남준 아트센터 공모에서 키르스텐 셰멜(Kirsten Schemel)가 설계(아래 사진 하단의 2개. 정말 대단한 설계 아쉽게 되었다) 했으나 비용 문제로 셰멜의 동료인 Marina Stankovic(아래사진 상단)이 비용이 허라하는 범위 내에서 다시 설계를 완료하다>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경기도도립미술관] 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계기는 한국경기문화재단이 백남준(NJP)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건축가 키르스텐 셰멜(Kirsten Schemel)은 2003년 국제예술가연맹(UIA)이 주최한 국제 공모전에서 백남준을 위한 매트릭스(Matrix for Paik) 라는 제목의 디자인으로 439 개의 작품을 출품하여 우승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건축가 Marina Stank.. 더보기
[백남준] 한국 언제부터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했나? 60년대 백남준 서구에 족보 없는 전자아트 창시 70년대 김민기 노래-노동자 희생과 산업화 기반을 닦다 80년대 백남준 위성아트(인터넷 예고) 90년대 삼성과 LG 전자기술-현대조선과 자동차와 IMF 극복 2000년대 김대중 광케이블 깔기(정보화사회 인프라)-남북평화정책-2010년대 중반 촛불평화민주혁명 2010년대 말기 코로나 대책(세계적으로 돋보이다)-2020년 BTS 등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하다 아래 저서 이미지 정치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무기는 돈이나 권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미디어 조작)이다 - 조슬렛(예술철학) 하버드대 교수 / 백남준, 주류 미디어를 교란시키는 자의 모습을 언급한다 더보기
[백남준] 1984년 일본 도쿄 소게쓰[草月]홀 '보이스'와 협연 1984년 일본 도쿄 소게쓰[草月]홀(일본 전위아트의 전당)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공동으로 참여한 퍼포먼스 '코요테 콘서트 II'가 펼쳐졌으며, 이들이 각각 몽골의 늑대 울음소리(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풍의 야생의 사고를 예술화)와 초원의 달빛(몽골 코드, 달 중심의 음력문화)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을 통해 1961년 첫 만남부터 23년간 계속 이어온 공동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후 1986년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 공연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셉 보이스의 죽음과 함께 미완으로 끝났다 더보기
[백남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160만 동원, DAUM 창안자 'NJP' 백남준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동원에 성공  1995년 백남준은 제1회 광주 비엔날레 태동의 산파 역할을 하며, 한국 미술이 국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활력을 넣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는 국내외 총 관람객이 160만 명에 달하는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백남준이 직접 관여한 ‘INFO Art(김홍희 관장 여기서 처음 한국 측 큐레이터 미국 측 큐레이터는 미디어아트 최고권위자 미국 IBM미술관 관장을 지낸 신시아 굿맨)’전이 주목받았다. 또한 백남준은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전시관 부문에 한국관을 설치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같은 해 그의 예술적 정수가 담긴 Electr.. 더보기
[백남준] 미술사가 '이본 스필만(Y. Spielmann(PH.D)'이 본 'NJP' 작곡가이고 음악가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품의 지배적인 미적 원리는 시각 자료를 왜곡시키는 분해와 해체(déformation, décomposition et la déconstruction)이다.그는 텔레비전 녹화 자료와 피드백을 통해 생성된 추상 이미지로 조작된 전자적 촉진과 자극과 충격으로 전자 콜라주를 만들고 있다. 백남준은 1977년 도쿠멘타에서 위성아트를 실험적으로 시도하다 - 미술사가 '이본 스필만(Yvonne Spielmann(PH. D)'  Le musicien et compositeur coréen Nam June Paik s’est imposé comme le plus important pionnier de la vidéo avec la première projection vidéo.. 더보기
[백남준] 퐁피두 전시, 전례(족보) 없는 미술양식, '비디오아트' 창안 백남준은 (서양에서는) 전례(족보)가 없는 새로운 표현양식(l'inventeur d'une forme d'expression nouvelle)인 비디오아트를 창안하다> 나는 추상적인 텔레비전(물리적 음악)을 발명했다 - 백남준>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교황 1982년 퐁피두 전시 텍스트 Contexte historique Par Alexandre Boza / 인터뷰 영어와 프랑스어로 말하다 백남준은 여기 1982년 퐁피두와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을 예언하다 Nous essayons de mettre un nouveau cerveau(신개념의 인공지능) aux televiseurs. 백남준 미디어 조명 확장에 애쓰다 Éclairage média> 백남준은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신하는 것처럼 음극선관이 캔.. 더보기
[백남준] 20세기 전반: 피카소가, 20세기 후반: 백남준이 주도하다 20세기 전반부 세계 문화계 프랑스에서 [피카소]가 주도, 프랑스 지식인: 라캉, 사르트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엘뤼아르, 아폴리네르 등과 교류 20세기 후반부 세계 문화계 미국에서 [백남준]이 주도, 미국 지식인' 존 케이지(작곡가), 커닝햄(무용가), 문학가 시인 긴스버그(비트세대) 살렷 무어먼(행위 예술가) 그리고 독일 요셉 보이스 등을 이끌다 더보기
[백남준] 작품 <(동대문) 시장> 여기 '보이스' 등장, 동서의 만남 2013년 9월 24일 북서울 시립미술관 개관전 / 백남준 작품 시장>이 소개되다. 동대문 시장 같은데 거기에 '보이스'가 등장, 동과 서의 또 다른 만남이다. - 김홍희 관장 총기획 더보기
[백남준] 한국 젊은 작가에게 주는 충고 "선진국에 딴죽을 걸기" 1995년 백남준 한국의 젊은 작가에게 주는 충고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자>그들에게 실험적으로 도전하고 대들고 도박하듯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자> / [백남준 1995년 후배 작가들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는 1) 강한 이빨론(동서의 문화가 어떤 것이든 다 씹어 잘 소화시켜라) 그리고 2) 선진국에서 하는 말에 대해 항상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반론(특히 서양의 이원론)과 딴죽을 걸고, 그들에게 실험적으로 도전하고 대들고 도박하듯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라] 백남준은 1963년 독일 첫 전시에 상징적인 몸짓이기는 하지만 서양미술의 목을 치다 // 선진국에 딴죽을 걸 수 있는 불확실적 선택과 도박술을 배우자>“ 나는 청년들.. 더보기
[백남준] 아카이브전 판화, 백남준의 기록된 꿈과 대화 2024.9.24-11.30 도모헌(구 열린행사장) (부산 수영구 황령산로7번길 60) 연계전시, 2024.9.27-10.10 스페이스원지 @space__onez (부산 영도구 봉래나루로 214 원지)김홍희 선생 발표 / 미국에서 오신 마트 팻츠폴  발표 / 남천우 대표 발표 2024.9.24-11.30도모헌(구 열린행사장)(부산 수영구 황령산로7번길 60)연계전시, 2024.9.27-10.10스페이스원지 @space__onez(부산 영도구 봉래나루로 214 원지)연계전시 일정에 맞추어 오프닝_Opening Event9.27(금), 오후2시, 도모헌(구 열린행사장)_Opening Party , Exhibition 9.27(금), 오후6시, 스페이스원지 @space__onez 더보기
[백남준] 90년 보이스 추모굿, 장-폴 파르지에 영상 '늑대의 걸음' [백남준] 90년 보이스 추모굿, 장-폴 파르지에 영상 '늑대의 걸음'백남준 굿 -미디어론 맨 마지막 부분 친필 [장 폴 파르지에 백남준 굿론 원문 중 일부] Il a racontél'avion en flamme, le pilote nazi (malgré lui?), la Mongolie, le coup de foudre pourl'Asie./Des flammes en voici. Un des chapeauxen ciment est coiffé d'un bob américain,arrosé d'essence: allumette, feu, fumée.Quand le feu va s'éteindre, Paik le ré-alimente avec son propre chapeau, lechapeau tradi.. 더보기
[백남준] 1984년 홍라희 여사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의 글 받다 홍라희 여사가 백남준에게 고맙다는 인사의 글을 남기다> 년 백남준이 파리에서 전시할 때 참석한 홍라희 여사>  1980년대 삼성, 아직은 세계적 명성을 얻기 전이다. 백남준의 큰 은혜를 입다.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의 브랜드가치를 공유한 것이다. 백남준 홍익인간의 전형 / 백남준도 후에 삼성의 TV 기부 등 많은 도움을 받다 // 1984년 홍라희 여사가 백남준에게 고맙다는 인사의 글을 남기다> "백남준 선생과 삼성과 인연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백남준 선생이 35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 국제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삼성 TV모니터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어느 날 백선생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삼성에 대한 기대.. 더보기
[백남준] '포스트-미디엄 시대의 백남준' - 장 폴 파르지에 [포스트-미디엄 시대의 백남준 - 장 폴 파르지에(Jean Paul Fargier)] 저자 소개: 파리8대학 영화학과 교수, 파리에서 비디오아티스트 겸 TV PD로 활동. 문필가 겸 저널리스트로서 미술 및 영화 평론도 쓴다. 내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에게 영감을 얻어서 1969년(정치적) 액티비스트 비디오 작업을 시작했을 당시에, 파리에는 이 새로운 매체에 정말로 관심이 있는 예술가가 대여섯 명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내가 비디오에 관한 저술을 시작했을 백남준이 글로벌 그루브>(1973)를 완성할 무렵 프랑스에 만수십 명의 비디오아티스트가 활동하고 있었다. 거의 5년 만에 비디오아티스트가 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나는 그들 모두와 개인적으로 알고지냈다. 우리는 작.. 더보기
[백남준] 예술은 텃세, 서구 중심의 텃세 걷어차(Long story short) 백남준 서구 미술에 사기를 치다. 그런데 성공하다(?) 아니 서양과 동양의 예술적 위계(hierarchy)를 90:10에서 적어도 50:50은 만들었다. 이것은 확실하다. 백남준 예술은 텃세라고 했는데 그 텃세를 걷어버렸다> 그는 독일에 가서 독일 대학을 시시하다고 발로 차버리고 피아노를 망치로 부수다. 건방진 것으로 치면 그보다 더 건방질 수는 없다. 그가 서구 문화 전통과 예술적 족보를 상징적으로 부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비폭력이다.그렇게 해서 서구 문화와 예술의 운동장을 zero point로 만들다. 다 부숴 버렸기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운동장 위에 백남준 서구에는 족보와 전통이 없는 비디오 아트로 세계 예술사를 새로 쓰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 그의 배경은 한국이라고 보다는 .. 더보기
[백남준]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려고 스노비즘 풍자 스노비즘(어떤 대상의 알맹이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남에게 과시하거나 돋보이게 하려고 껍데기만 빌려오는 성향 및 '허영'을 나타내는 문화사회학 용어)에 대한 백남준 풍자> 그때 백남준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성공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여지껏 미술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잘난 체하는 아트 피플을 조롱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계에는 공정한 게임도 없고 객관적인 기준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게임을 하려고 하는데 게임의 규칙을 모른다면, 게임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하룻밤 새에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지요. 당신이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규칙을 바꾸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미술에서 정치의 문제입니다. 미술 잡지에 읽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술 잡지 같은 건 사지 마세요. .. 더보기
[백남준] 독일 ZKM 전 관장 '페터 바이벨'이 본 그의 예술인류학 백남준은 니콜라 부리오가 말하는 '관계 미학'을 한 발자국 더 나아 갔다> 인간은 자연적 진화의 산물인 동시에 문화적, 기술적 진화의 산물이다. 이는 내가 1993년에 '컨텍스트 아트'라고 불렀던 프레임 워크-같은 제목의 전시와 책도 나왔다. 또는 1998년 니콜라 부리오가 '관계적 미학'이라고 불렀던 것을 다소 넘어선다. 백남준의 미학은 자연, 테크놀로지, 인간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진정한 예술인류학이었다. - 페터 바이벨 페터 바이벨이 본 백남준의 예술인류학 // 예술인류학은 미디어 담론을 넘어선다 - 페터 바이벨(Peter Weibel) 글쓴이 소개: 1966년부터 과학, 예술, 문학, 사진, 그래픽, 조형, 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제적 활동을 펼쳐왔다. 1999년 미디어 기술 및 예술 연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