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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비디오아트, '반전사상'과 '반체제'와 '신기술'에서 시작 비디오아트는 '반전사상'과 '반항적 반체제정신'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된 지각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에서 시작했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간행 '20세기 미국미술사'를 정리한 현대미술과 문화 1950-2000 > 중에서 세기 미국미술사> [비디오아트, 영화, 그리고 설치 1965-1977] 비디오아트는 1960년대 미국 반체제 문화의 세 가지 경향 속에서 탄생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된 지각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 반 베트남전과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인 시민권 운동,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심이 그것이다.  60년대 중반 태동기부터 비디오는 세 방향으로 발전했다. 1) 환각적으로 굴절된 이미지 프로세싱, 2) 정치화한 공동체 행동주의, 3) 퍼.. 더보기
[백남준] 평생 가난, 부인 장례식장은 뉴욕 고급스런 장소 선정 백남준 평생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부인이 그가 사망했을 때만은 뉴욕에서 그래도 고급에 속하는 장례식장을 정했다고 한다. 죽은 순간만이라도 좀 편하게 보내고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백낙승)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1920년대부터 1300여대의 방직기를 갖춘 태창방직을 운영했다.부친은 일본 니혼대 상과과 메이지대 법과를 나온 엘리트였다 동대문집이 3300평이고 당시 드문 캐딜락이 있었고 차 수리공이 10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식민시대 사업가이기에 일본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고 백남준은 그런 점이 못마땅하게 생각해 평생 부친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내인 백남준은 결국 집안에서 말썽쟁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나중에 백남준 부친 그를 .. 더보기
[백남준] '그의 혁명은 정보혁명' 1989년 작 '자화상 [백남준의 혁명은 바로 '정보' 혁명] 1989년 작 백남준의 '자화상(아래)'을 보면 낡은 모니터 속에 TV 안경을 쓰고, 청동 마스크를 한 백남준이 출연한다. 또 동양사상을 연상시키는 '불상', 시간예술을 상징하는 '시계', 전자아트를 암시하는 '자석', 지구촌을 뜻하는 '지구본', 서구 음악을 뒤집은 '그랜드피아노', 비디오아트를 떠올리는 '비디오테이프' 등이 나온다. 이 작품을 잘 보면 '혁명'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게 무슨 혁명인가? 그것은 아마도 '정보 혁명'일 것이다. 백남준은 60-70년대엔 공간과 소리를 시간과 영상으로 전환하려 했다면, 80-90년대 이후는 "정보가 석유를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하면서 정보 지식사회가 도래했음을 알렸고, 이는 현대 미술의 과제인 경제적 부와 .. 더보기
[백남준] '1990~95' 한국미술세계화, 광주에서 '꽃', '96' 쓰러지다 백남준, 한국미술 세계화 1990-1991-1992-1993-1994-1995 광주비엔날레 문을 열어 완성(기반세우다). 그리고 백남준 과로로 1996년 쓰러지다> 1990년('보이스 추모굿'을 통해 한국 샤머니즘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다)-1991-1992년(국립현대에서 백남준 '비디오때 비디오땅' 전시를 열다 비디오아트를 세계적 기준에 맞는 시간 공간개념을 도입하다)-1993년 (미국최고미술관 휘트니전시를 한국에 직수입하다. 한국과학의 선진화를 위해 대전 엑스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열기 위해서 전초전)-1994년-1995년(광주비엔날레/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열다) 백남준 동네미술인 한국미술을 5개년 계획으로 세계미술 수준으로 끌어올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개막되어.. 더보기
[백남준] 진중권이 본 그의 '미디어 아트'론 - 백남준아트센터 진중권이 본 백남준 '미디어 아트'론 요약> 2010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01. 비디아와 비디올로지(videology)는 백남준의 예술적 신앙고백. 비디아(videa)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에서 유래하다. // 02. 비디올로지(videology)는 도상학(iconology)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 03. 구텐베르크 종이시대의 종언을 선언하다. 이제 더 이상 역사는 없으며 영상물과 비디오물이 있을 뿐이다. // 04. 백남준은 낮은 해상도와 노이즈로 승부를 걸다. // 05. TV는 모든 기술적 오작동을 통해 TV아트가 되었다(인터넷 되다) // 06.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언의 명제를 실천하다. // 07. 랜덤 액세스*(비정형-비연속-비결정주의 개척)-1963 선형성의 파괴, 소음의 .. 더보기
[백남준] 서구에 가서, 신사의 규정을 다시 제시하다 그는 서구적 가치의 처절한 파괴자였다. 신사의 규정을 다시 확립한 것이다.[위 사진,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아틀리에서 열린 콘서트 중, 제목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Etude for Piano Forte)'에서 백남준 1960년 10월 6일 사진 출처 클라우스 바리쉬(Klaus Barich)] 년 60년대의 시작으로 1789년 서양의 정치민주화의 시발점을 연 프랑스 대정치혁명이 시작되었다면 그 혁명이 일어난 지 거의 '170년'이 지난 1959~1960년은 서구문명에서 그들의 예술체계가 해체되는 대 문화혁명시기였다.  여기에 뜻밖에 우연히 백남준이 끼어들어 불을 붙이다. 쾰른에 있는 여기서 백남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다 / 쇤베르크-존 케이지-플럭서스-백남준 /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서양음.. 더보기
[백남준] 그의 어린 후배 강익중, 심히 아끼다. 강익중전(청주) [청주시립미술관 전관에서 7월4일~9월29까지]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강익중(1960~)의 커리어 40주년 기념 및 (청주와 청원이 통합청주시로 출범한) 통합청주시 10주년 기념으로 강익중 작가의 고향인 청주에서 청주시립미술관 전관에 걸쳐 청주가는 길: 강익중> 전시가 7월4일~9월29일 열린다. / 이규현 기획 / 작가의 고향에서 전시 / 백남준이 아낀 강익중 / 뉴욕 휘트니에서 백남준 강익중 2인전을 할 때 어린 후배에게 메인 전시장을 양보하다 더보기
[백남준] 홍익대 김은지 교수, 하늘을 나는 물고기 모든 것 설명 1[김은지 홍익대 교수] 이 작품 제작에 필요한 83대의 TV를 한꺼번에 조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고민은 1984년 여름에 한국의 삼성전자가 120대의 TV를 지원해 줌으로써 해결되었다 이때부터 백남준과 삼성은 매우 가까워졌다. 백남준도 전에는 SONY를 많이 사용했다>백남준 1985년 뒤셀도르프의 미술관(쿤스트무제움 Kunstmuseum)에 소장된 작품 하늘을 나는 물고기>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히 적고 있다 / 1초마다 변화무쌍한 모니터 화면이 달라진다. 백남준 원래 1974년 이 작품을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그럴 만한 제작비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드는 TV 부처가 나온 것이다. 이 백남준 대표작은 뉴욕 미술계와 유럽 미술계까지 대박을 치고 결국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소장.. 더보기
[백남준] 유럽,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그를 본다 홍대 김은지 교수 2000년까지 백남준 몰랐던 사람이다. 독일 베를린 대학 유학하면서 백남준이 유럽에서는 20세기 다빈치로 평가받는 것을 보고 놀라 연구를 했고 마침내 베를린 대학 (훔볼트) 백남준 연구로 최우수 평가 박사까지 받았다. 그녀가 백남준을 연구하게 된 이유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신학대학 도서관 "필자가 오랫동안 공부했던 유럽, 특히 독일에서 백남준에 대한 평가는 상당하다. 미디어 예술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인물로, 또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나아가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로 평가한다. 동시에 계몽주의, 낭만주의 이후 정착한 '천재' 개념의 범주에서 백남준을 이해한다. 유럽의 이러한 평가와 달리, 한국에선 그를 '시대의 행운아' 정도로 평가했.. 더보기
[백남준] 서양음악 해체 주동자, 유럽인에서 한국인으로 [1962년까지] 백남준 30살 서양음악 해체 주동자 백남준 아니라 유럽인(쇤베르크, 존 케이지, 플럭서스)이었다. 여기에 한계가 있었다.[1963년부터] 백남준 31살 서양음악 해체 주동자 유럽인 아니라 백남준이었다 그런 면에서 1963년 세계미술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점이다. 이제 드디어 백남준 나서다.  1963(첫전시TV)-1973(인터넷 유튜브)-1983(위성아트)-1993(베니스 황금사자상)-2003(호랑이 살아있다/뉴욕회고전(뉴욕을 점령하다)/록펠러센터앞:레이저아트) 더보기
[백남준] 금속활자 그리고 인터넷 30세기 열다 금속활자(지식과 정보를 무한대로 확장-전달시키는 도구)를 백남준이 20세기 전자방식으로 네트워킹 코드로 변환해 만든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 그리고 보니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발명은 다 한국인이 해낸 셈이다. 이러니 우리가 30세기 열 수 있는 역사적 책무와 자격증을 문화유산으로 받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조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고의 기부자가 되었다. 문화 유산으로 이 자본은 쓸수록 많아진다. 지금 한글이라는 자본이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 황제국 고려는 우리 인류에게 금속활자라는 최고의 기부금을 남겼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 세계에 Korea라는 이름을 기부를 했다 Korea는 고려에서 나온 말이다 // 그리고 백남준은 지구촌 시민들에게 전쟁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면 공생하면서 즐겁게 살라고 1.. 더보기
[백남준] 그야말로 '텔레비전(TV)' 즉 '멀리 보는 자' 그 자체 백남준은 그야말로 '텔레비전(TV)' 그 자체였다. 텔레 즉 '멀리' 비전 즉 '보다'(영어로 Visionary / 랭보가 말하는 Voyant(선견지명의 혜안을 가진 견자) // 백남준은 가장 먼 과거인 즉 '선사시대'라는 말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야 가장 먼 미래 혹은 30세기의 비전(즉 텔레-비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우랄알타이족의 사냥꾼인 우리는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네팔, 라플란드(핀란드의 북부)까지 세계를 누볐고, 그들은 농업중심의 중국사회처럼 중앙에 집착하지 않았고 몽골처럼 더 멀리 보기(텔레-비전) 위해 여행을 떠나 새 지평을 봤다." - 백남준 / 위 1970년대 사진들. TV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다양한 상상을 하다. 그래서 1974년 .. 더보기
[백남준] 석가모니의 번뇌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다 백남준 석가모니의 번뇌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다(Nam June Paik overcomes Buddha's agony and opens a new world)> 석가모니, 인도의 한 왕가에서 태어난 종교적 부처였다면, 백남준은 초부자 집에서 태어난 문화적(예술의) 부처였다 백남준의 라이벌은 부처다. 그는 과연 부처를 능가하였는가? 모든 가르침의 우두머리 종교라 하는데 그런 종교 중 하나인 불교의 깨달음보다 한 수 위인 예술의 절대적 아름다움은 가능한 것인가?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백남준이다 / While Shakyamuni was a religious Buddha born in a royal family in India, Nam June Paik was a cultural (artistic) B.. 더보기
[백남준] 1965년 연설하는 <인간화(휴먼화)된 로봇> 제안 백남준은 21세기 로봇 전성 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거기에 따르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1965년 인간화(휴먼화)된 로봇> 제시하다. 백남준 첫 로봇 K-456는 똥도 싸고 모차르트도 연주하고 케네디 대통령처럼 연설도 한다. 출산 절벽 시대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은 불가피하다 //  로봇을 개의 모양으로 만들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로봇을 인간의 모양(휴머노이드)에 가장 가깝게 만들 때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일반폰이 하나의 스마트폰이 발전하듯이 / 로봇도 바로 모든 로봇 기능하는 종합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백남준 1965년 창안하다)으로 나아갈 것이다 / 자판 입력이 아니라 말로 물으며 말로 대답하는 챗 시대가 로봇 시대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더보기
[백남준] 2000년 세계문화사 중 가장 위대한 예술가다 한국에서 서양의 그리스 철학의 상징적 인물인 플라톤과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사르트르, 독일의 칸트와 니체와 맑스를 능가하는 세계적 철학자가 나왔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서양철학을 앞서는 기원전 동양의 노장이 있기는 하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이런 철학자가 없다. 도올도 매우 훌륭한 세계적 철학자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2000년 서양 미술사를 능가하는 세계적 예술가가 한국에서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가 바로 백남준이다. 이런 일을 사실 상상하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백남준이 유명한 것은 그걸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은 다는 아니지만 그가 세계적 시각예술가의 한 사람이라는 물증(?).  서양예술사에서 백남준과 견줄만.. 더보기
[백남준] 다빈치 비교 II 테크놀로지 예술의 발명가 : 명상가 다빈치와 백남준 비교 / 다빈치가 테크놀로지 예술의 발명가였다면 백남준은 더 나아가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명상가이자 사상가였다 그리고 다빈치가 서양미술사의 최고이 천재적 화가라고 하지만 백남준처럼 천문학의 후손으로 우주의 은하계 속에 전자 오페라 장르(genre)로 거대한 규모의 사운드 아트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물론 당시 과학 수준이 지금이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지지만 더보기
[백남준] 7회 포럼 공간디자이너가 본 천지인 백남준 [5월 백남준포럼]일시 : 5월 26일(일), 14시-16시-장소 : 청운대학교 홍익관 510호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학길 25)-주제 : 공간디자이너가 바라본 천지인 백남준-발제 : 박지연 공간디자인학과 교수-후원 : 1) LIFE 청운대학교 사회서비스대학- 공간 및 점심 식사 제공- 책 선물2) 백포럼 후원회- 교통비 인당 1만원 지원(참석자 전원)# 이번달 포럼은 청운대학교 사회서비스대학 전 학장님이신 박지연교수님께서 국회에서 발표하신 백남준 관련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식당 예약을 위한 참석자 사전 확인 중입니다. 운영진 개인톡 혹은 단톡으로 알려주세요.시간 및 장소 : 12시_동림갈비_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 88-2(식사 이후에 인근 관광지 및 박물관 투어와 청운대학교 캠퍼스 투.. 더보기
[백남준] 다빈치와 비교 <Paik Nam June, 21C Leonardo> 아래 사진 이 문장이 인상적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예술과 과학(Art and Technology)을 융합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이후에 500년이 지났는데 다빈치보다 더 훌륭한 화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백남준은 세계미술사에서 미디어아트 창시자인데 500년 후에도 백남준보다 더 훌륭한 미디어아트 작가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동서를 대표하는 영원한 르네상스 인간이다 그래서 영미권에서 백남준 21세기 다빈치라 부른다 더보기
[백남준] 운이 좋은 사람 그러나 실은 실력과 노력 있었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가 열린 파르나스 갤러리(독일 부퍼탈 ) / 소리에 예민한 광인 작가 / 뒤에서 이 전시 장소를 제공해준 건축가 '예를링 박사'가 아버지처럼 흐믓하게 백남준을 쳐다보고 있네요. 백남준 이렇게 속삭인다 "화창한 날에 라인강의 물결을 세어라 / 바람 부는 날에 라인간의 물결을 세어라" 더보기
[백남준] 호형호제하는 보이스, 어떻게 예술무당 되었나 요셉 보이스는 어떻게 '무당 예술가(shaman-artist 현대미술의 무당)'가 되었나?독일의 전후 예술가인 Joseph Beuys는 고대 샤머니즘 관습과의 연관성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이어왔다.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그는 자연, 동물, 인간의 원시 과거 및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깊이 연결된 수수께끼의 무당 인물로서 대중적 인물로 기성화되었다. 그는 이상한 공연, 의식, 교육 관행을 통해 이러한 주제를 자신의 예술에 통합하여 "현대 미술 의 무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이후 예술을 통해 치유, 변화, 재생 의 메시지를 장려했던 보이스가 채택한 샤머니즘의 핵심 주제를 살펴보자 https://www.thecollector.com/how-joseph-beuys-become-.. 더보기
[백남준] 위성아트, 1977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시작 [백남준의 위성아트는 1977년 '카셀 도쿠멘타'에서 시작되다]   비디오 아트의 중요한 기원을 갖고 있는 독일은 1977년 제 6회 카셀 도큐멘타를 매체 도큐멘타로 꾸미면서 비디오 탄생 이후 최초의 대규모 국제 벤트를 기획했다. // 독일의 비디오 큐레이터이며 이론가인 '볼프 헤르조겐라트'에 의해서 특별기획 전시는 14명의 미국 및 유럽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 1) 스페인 안토니오문타다스 2) 미국의 베릴 코롯 3) 백남준 대형설치 TV 정글 4) 쿠보다 시게코의 계단으르 내려오는 나부 5) 더글러스 데이비스 그리고 독일 6) 올리케 로젠바흐, 7) 호로, 8)) 페졸트의 작품이 선보였다. // [1] 1977년 카셀: 개막식의 위성 원격 생방송: 제6회 도쿠멘타는 개막식부터 화제. 1960년대 .. 더보기
[백남준] 20세기에 본 30세기 피드백 - 강의 계획서 초안 백남준, 제3의 천년 30세기를 열다 [백남준과 30세기 연관성] 코리아, 천년 2번 열었다. 앞으로 1번 더 열어야10세기 천년을 열다 직지(금속활자) 와 디지털 언어 한글 발명 20세기 천년을 열다 유튜브와 인터넷과 SNS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등 30세기 천녕을 열다 우리는 30세기 제3의 천년 다시 만들어야(세종+백남준) [백남준의 렌즈로(관점으로 혹은 시각으로) 본 30세기 세상 - 강의 계획서 / 계속 수정 예정[1 섹션] 63년 《음악의 전시》 첫 전시 / 그의 평생 셈법 50 대 50(10가지 정도 예) 동양 50% 대 서양 50%67년 독일 69년 뉴욕 , 전[뉴욕시] 백남준은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클래식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C. Moorman)과 그의 비디오 아트와 그녀 음악을.. 더보기
[백남준] "너 서양 미술 다 죽었다" 내가 "황색 재앙"이다 "예술은 죽었다" 1963 - 백남준 / 백남준 1956년 독일에 처음 도착 자신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한중일 동양어 3개국어와 독불영 서양어 3개국어를 안다고 / 그는 한국의 문화 칭기즈칸으로 서양애를 기를 팍 죽이다.  서양 미술은 죽었다 / 서양 미술 너 나한테 죽었다 / 내가 황색 재앙이다 / 내가 문화 칭기즈칸이다 /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완전히 혁신적인 예술을 하기 위해서 서양 미술판에 싹 쓸어버리다 / 서양 미술의 운동장을 다 물청소하다 / 서양 미술의 잔해와 전통과 유산을 완전히 제거시키다 / 고기 먹을 때 판을 바꾸듯 세계 미술의 판(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갈아엎어 버리다 / 그런데 그게 한번에 가능할까 그럴 때 백남준이 들이댄 것이 바로 TV다 비디오아트다.. 더보기
[백남준] 2013 에딘버러 페스티벌, '다빈치-백남준' 나란히 초대 [에딘버러 국제 예술 축제(2013년 8월~10월)] / 여기서 2명 작가가 초대되었다 /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이 끝난 후 9월과 10월에도 계속될 전은 특별히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의 퀸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영국왕실컬렉션의 : 인간의 역학>전과 함께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예술가의 가장 혁신적인 탐구를 상징하는 다빈치와 백남준, 두 인물의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 정신이 에든버러에서 타전되어 그 너머까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자세한 정보는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 홈페이지에서 확인 [1] 다빈치(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간의 역학 /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기계적 인간) 서양미술의 아버지[2] 백남준 다빈치를 능가하는 새로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 더보기
[백남준] 문화재단 '백남준과 BTS' 포럼 신청하기 [백남준] 문화재단 '백남준과 BTS' 포럼 아래 신청하세요 백남준 문화재단 백남준과 BTS / 30세기(Future)가 20세기(Now)다 https://namjunepaik.org/bts/?fbclid=IwZXh0bgNhZW0CMTEAAR0j6wn7uCMC-tWR42blX7-XcCqjvVJju7pEBokLbBfAVSrS-hwbmVZvZyk_aem_AbHNOMXaJjpbqgPk60QojWPeDn3MKYJWy-3s83NhY9bV6Pu-GkKIOcUMF1nKNtuEwYGQmuq40yABSVQWyeImyBIn BTS – 백남준문화재단 namjunepaik.org 더보기
[백남준] "브라운관, 캔버스 대체하는 시대 온다" 1963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 1963년?>21세기 새로운미술사의 혁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유럽의 미술사는 르네상스부터 뒤샹까지 이어졌고, 그리고 거기서 한 시대(에포크)가 끝났다 그러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21세기 디지털 방식 세계의 미술사는 백남준의 바로 이 작품부터 다시 시작되다. 종이나 캔버스가 아니고 불가능해 보이는 TV 모니터에 직선을 그었다는 것은 세계 회화사의 진정한 혁명이다. 전자붓으로 그린 것이다. 백남준 같은 천재의 작품은 원래 단순하다. 이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다. 물감 페인팅 대신 전자 페인팅 시대 오면 다음과 같은 게 가능해진다고 백남준이 말하다.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분방하게/ 르노와르처럼 화려하게/ 몬드리안처럼 .. 더보기
[백남준] <미디어의 기억(La Mémoire médiatique)1992년> 백남준 일제식민지 태평양전쟁 시대 다매체와 정보를 접하면서 경험한 뼈아픈 기억들 / 교실에서 무의식적으로 한국어 말했다가 한국 동급생으로부터 고자질 당해 일본 담임선생에서 혼나는 이야기 등도 나온다  영국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상대로 켈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뿌리를 뽑는 데 1000년이 걸렸다. (얼마나 심했으면 켈트어를 쓰면 모가지가 날라간다)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데는 겨우 3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식 완벽주의가 지닌고유의 '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루카치나 카프카도 작품을 헝가리어나 체코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썼다. 그것도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그렇게 했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영어로 쓰고 있다(물론 내 의지로). 조이스나 존 레논, 버나드 쇼, 와일드 혹.. 더보기
[백남준] TV정원(1974)TV부처(1974), 나오게 된 시대 배경 [백남준] 1974년 TV부처, 1974년 TV정원(50주년), '비교' [백남준]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40주년) [백남준] TV정원(1974)TV부처(1974), 나오게 된 시대 배경 백남준 작품 뜬 구름 잡는 이야기 절대 아니다 다만 50년 먼저 이야기하다.[1] 1974년 TV 부처는 미중갈등 우크라이나-하마스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2] 1974년 TV 정원은 코로나와 환경 재앙 이상기온을 미리 예고한 것이다    세계평화(여기서 'TV부처'가 나왔다)와 지구보전(여기서 'TV정원'이 나왔다)이야말로 공익 제1호이며, 이것이 바로 공영TV의 제1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디오공동시장(Marché Commun de la Vidéo 비디오 공론장[하버마스 이론] 즉.. 더보기
[백남준]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 발명 생고생 백남준-아베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 발명 과정에서 겪은 고생은 마치 달마대사가 9년간 화장실을 가지 않고 '사지가 녹아들 정도로' 수도(좌선)와 명상에만 전념할 때 그 고생과 맞먹었다(생고생을 했다고 백남준 고백한다) // 그리고 이 발명품 특허를 모두에게 공개하면서 공유했다 // 여기서 바로 유튜브가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는 달마승이야 […] 9년 동안 달마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좌선과 명상을 했다. 그의 옆에 쌓아 배절이 결국 그의 사지를 녹여 내렸고, 달마는 다리가 없는 부처로 숭배되었다. 다리 없는 그가 수행한 무선 소통은 오늘날 TV와[…] 자동차가 사라진 미래사회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나는 아베 슈야와 함께 차도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완전히 고립되었다 [… 지저분한 뉴욕 지하철이 그.. 더보기
[백남준] 인간이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길이 뭔지 고민 [백남준은 인간과 시간과 공간(천지인)에 문제에 대해서 늘 고민했다. 특히 인간의 시간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떻게 하면 시간에 갇히지 않고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가? 이걸 예술로 표현했다. - 비디오아트가 시간 베이스 예술이 된 이유다(?) 그의 시각예술에서 음악이 중요한 이유인가?]내가 나름 10년 그 이상 백남준에 관심을 두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사상의 초입에도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세계는 아무리 캐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아진다.  그래서 그의 예술세계는 항상 흥미롭다. 절규로 유명한 '뭉크' 같은 예술가를 이해하는데 하루면 되지만, 백남준은 이해하는 데는 천년이 걸린다(?) 그래서 30세기를 예언한 밀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