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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기술/예술을 결합한 예술가와 기술철학자 시몽동 - 김재희 [기술철학자 시몽동과 기술과 예술을 결함한 백남준] - 김재희 교수 백남준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 의 선구자로 자신을 묘사하는 비평 기사를 읽으며 얼굴 붉힌 적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그 기사가 지나쳤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백남준은 철학, 과학, 기술, 예술의 학제적 간격을 뛰어넘는 사유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업은 특히 기술과 자연의 대립, 기술과 예술의 대립, 기술과 종교의 대립을 무화시키면서 인간과 세계 사이에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관계 양식을 창출했다. 시몽동의 말마따나, 인간과 세계의 관계는 '인간'과 '세계'를 양 항으로 품고 있는 하나의 앙상블로 비결정적이며 준안정적인 것이다. 어떤 매개자, 어떤 매체를 통해서 관계 맺느냐에 따.. 더보기
[백남준] 뉴욕 빈민가, 서울 산동네(빈민가)보다 더 가난하다 백남준 왈 뉴욕의 빈민가가 서울의 빈민가(산동네)보다 더 가난하다>[도올 질문과 남준의 대답 1992년 이야기] // 질문: 한국에서 와서 가장 형편없는 동네를 가봤냐? // 대답: 누나 차가 있어 그 운전기사에게 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를 데려다 달라고 했다. 빈민자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무리 달동네를 뒤집고 다녀 봐도 뉴욕의 슬럼 수준은 아니었다. 아주 처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그런 희망이 없을 정도로 비참한 수준은 없었다. 물론 개선할 점은 많겠지만 너무 비관할 수준은 아니다.촌평: 실제로 뉴욕의 중심가 맨해튼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교외로 나가면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환경에서 사는 흑인촌이 많다. 한국보다 훨씬 못한 것이다 미국은 사실 부자나라지만 그만큼 빈부.. 더보기
[백남준] 18세기까지 동양 3국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이었다 18세기까지 동양 3국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 - 백남준 //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하는 동양을 후진국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히 미신이다. 18세기까지 유럽인은 동양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중국을 선진국의 모델로서 글을 썼고, '몽테스키외'나 '아담 스미스'까지도 그렇게 썼다.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직물, 실크, 식기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며, 유럽에서는 목기, 즉 나무로 만든 식기였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설거지가 잘 되지 않아서 병원균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죽었다. 중국이나 동양에 왜 인간들이 많은가 하면 일찍부터 도자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목기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게 때를 닦아낼 수 있다. // 페스트가 동양에서 그렇게 크게 유행하지.. 더보기
[백남준] 인터뷰 독일어판 "12세기경까지 만주지역 절반은 한국인" "만주 지역의 절반은 12세기경까지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은 항상 북부, 아시아 부족, 심지어 유목민이었다" // "민족적으로 한국과 만주, 그리고 시베리아와 몽골, 몽골, 타타르의 많은 부족들은 매우 가깝다. 언어적으로 가깝다. 헝가리(부다페스트)와 꽤 가까워요(헝가리어는 우리와 이름을 적는 순서가 똑같다)" / " 그리고 물론 저는 Schönberg를 먼저 선택하고 배우고 공부했다. 하지만 내 마음 가까이에는 바르토크다. 그는 나에게 가깝다. 바르톡의 3/5/7 장단이 한국 장단이기 때문이다. 이 소위 롤링 3/5/7: 팜팜, 파파파... [노래] 그게 다 여전히 한국적이에요. 리듬적으로 한국음악은 일본음악보다 바르트, 헝가리음악에 더 가깝다. 그게 아시죠?! 그리고 어느 날 보이스와 샤머니즘에 관해 .. 더보기
[백남준] 1964년 뉴욕 도착 후, 미국 미술을 20세기 1등국가로 만들다 20세기 미국미술에서 만약에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여기에서 인터넷, 유튜브, SNS 스마트 폰 시대가 열리고, 위성아트, 레이저아트 그리고 AI 디지털 아트까지 다 나온 것이다) 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 백남준이 독일에 있을 때는 독일미술을 유럽에서 1등 미술로 끌어올렸고 / 1964년 미국 뉴욕에 와서는 백남준은 미국 미술을 세계 1등으로 끌어올렸다 // 휘트니미술관이 편저한 를 보면 "비디오아트는 60년대 미국의 반체제문화 속 세 가지 경향을 기술하고 있다.다시 말해 1) 뉴 테크놀로지 통해 확장된 지식에 대한 유토피아적 욕망과 2) 비틀즈와 미국 비트 세대의 반전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세계 평화 공동체 운동 3) 독재자를 미화하는 광고주만 돈 벌게 하는 주류 텔레비전의 제도적 권위에 대한 반항.. 더보기
[백남준] 세계 천재적 물리학자 관심 컸다. 양자역학 창시자 로봇 백남준 전 세계 천재적 물리학자 관심이 높았다 아래 로봇은 영자역학의 창시자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다 // [양자역학의 창시자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덴마크어: Niels Henrik David Bohr 1885년 10월 7일~1962년 11월 18일)] 백남준 이 물리학자에게 보내는 오마주 로봇을 만들다> 원자 구조의 이해와 양자역학의 성립에 기여한 덴마크인 물리학자로서, 훗날 이 업적으로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보어는 또한 철학자이자 과학적 연구의 발기인이다.보어는 원자의 보어 모형을 개발했는데, 전자의 에너지 준위는 이산적이며, 전자는 원자핵 주위의 안정적인 궤도를 돌지만 한 에너지 준위(또는 궤도)에서 다른 에너지 준위로만 이동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보어 모형은 .. 더보기
[백남준] 루이즈 피포(L. Piffault) 올랭프 드 구주(O. de Gouges) 해설 J’ai choisi de travailler à partir d’une œuvre de l’artiste Nam June Paik. C’est un artiste coréen né le 20 juillet 1932 à Séoul, en 1964 il émigre aux Etats-Unis, il meurt en 2006 à Miami. Il a au départ étudié la musique électronique. Il a travaillé à Radio-Cologne avec le compositeur allemand et pionnier de la musique électroacoustique Karlheinz Stockhausen. Il côtoie l’avant-garde de l’époqu.. 더보기
[백남준] 생애와 시대별 전시 소개 <프랑스어판> Nam June Paik / Modifier / Modèle:Nom asiatiqueNam June Paik est un artiste sud-coréen né à Séoul le 20 juillet 1932 et mort à Miami le 29 janvier 2006. Il est considéré comme le premier artiste du mouvement d'art vidéo[1]. Il est lauréat du Prix de Kyoto en 1998. [Sommaire] 1 Biographie 1.1 Ses études 1.2 Le fondateur de l'art vidéo 1.3 Quelques-uns de ses points de vue / 2 Son œuvre 2.1 Aspect.. 더보기
[백남준] 첫 전시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낡은 재봉틀 백남준 첫 전시에서 -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였다. 나무들 사이에 깡통, 열쇠 따위를 매달아 바람 불면 소리가 났다> //  1963년 3월 독일 소도시 부퍼탈//시내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망측한’ 전시회가 열렸다. 문 위에 잘린 소머리가 걸렸고 현관은 대형 풍선으로 막아 기어서 들어가야 했다. 안은 마치 고물상 같았다. 이층 욕실에는 잘린 두상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텔레비전 13대를 조작해 관객 참여를 유도했다. 전시된 피아노 넉대 가운데 한대는 벙어리, 또 한대는 뒤집어놔 현 위를 걸어다닐 수 있었다. 멀쩡한 한대는 작가 요제프 보이스가 망치로 산산조각 내 버렸다. 정원에 펼쳐진 낙하산 천 위에는 오래된 재봉틀이 놓였다. 나무들 사이에 깡통, 열쇠 따위를 매달아 바람.. 더보기
[백남준] '당신이 말하는 추상적 시간은 무엇인가?' 다니 블로흐: "당신이 말하는 추상적 시간은 무엇입니까?"백남준: 내용이 없는 공허한 시간입니다. 사실 그것은 선(Zen) 철학이 발전시킨 종합적 사상입니다. 음악처럼 비디오는 우리의 의식을 멈추고 과거와 현재를 함께 공식화하는 기술입니다. 비디오(영상) 녹화는 바로 우리의 플라스틱한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때때로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통제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를 망각하는 능력이 우리가 미쳐가게 하는 것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니 블로흐(Dany Bloch)  : "Qu'est-ce que le temps abstrait, pour vous ?"백남준(NAM JUNE PAIK) : "C'est le temps vide, sans conten.. 더보기
[제12회 백남준포럼] <백남준과 AI 시대> 장소 : 국회도서관(지하1층) [제12회 백남준 포럼 / 백남준과 AI 시대] // [1982년 퐁피두 센터 전시 때 장 폴 파르지에 인터뷰에서 백남준 인공지능 언급하다 "Nous essayons de mettre un nouveau cerveau(인공지능) aux téléviseurs" 퐁피두센터 인터뷰에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그는 TV 속에 새로운 (인공)지능을 심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제12회 백남준포럼]은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국회도서관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AI 시대의 교육: 변화의 과제들" 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하는것으로 포럼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 일시 : 10월 22일(화), 15~18시- 주제 : AI 시대의 교육 : 변화의 과제들- 발제 : 프랑스대사관- 장소 : 국회도서관 대강당(지하 1층)- 참가 :.. 더보기
[백남준] 이미 20대 부처의 경지를 넘어서다 백남준과 반가사유상 // 백남준 이 영상 작품이 이번 런던 테이트, '자아성찰' 섹션에서 소개> 더보기
[백남준 ] 1974년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미래를 예측> 백남준 2021년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 테이트 모던 순회전 / 백남준 작품 소개 도록 자료 // 진정한 세계적, 초국적 예술가 중 한 명인 Paik은 대중 매체와 새로운 기술의 중요성을 예견했으며, 1974년에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미래를 예측>하면서 '전자 고속도로'라는 문구를 만들어냈다 //  One of the first truly global and transnational artists, Paik foresaw the importance of mass media and new technologies, coining the phrase ‘electronic superhighway’ in 1974 to predict the future of communication in an inter.. 더보기
[백남준] 60년대부터 비디오아트로 미국미술을 세계미술로 끌어올려 백남준 뉴욕을 중심으로 비디오아트의 꽃을 피우다 그의 파트너 샬럿 무어먼 등 다수 / 미국 미술을 완전 세계 미술로 끌어올리다 / 이의 촉매제는 바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무어먼 총기획)이었다 백남준은 융합 총체 예술 / 동과 서가 힘을 합치고(전쟁 막고) / 자연과 문명이 힘을 합치고(환경파괴 막고) / 천과 지 하늘과 땅이 힘을 합치고( 원융 회통) 그 비율은 50:50이다 핸하르트(미국국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 일찍이 스마트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이를 풀어서 말하면 백남준이 스티브 잡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소리다. 집단지성의 대명사인 온라인 위키백과도 사실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 프랑스 백과사전이 프랑스 대혁명의 동력이었다면, 위키백과는 정보혁명시대의 동력이다. 백남준 초기 TV..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 철학자: 비디오를 조형매체만 아니라, 철학매체로 탐구 [백남준: 비디오철학자] 서양철학의 핵심인 '이데아'(idea). 플라톤 철학의 영원하고 이상적 예술 이미지를 가리키는 이데아(idea)를 '텔레비전의 별명을 연상시키는 '바보상자'(idiot) 말로 고치면서 서양철학의 대부를 심하게 욕보이다. 1972년 비디오 전문 잡지 의 편집자들에게 쓴 라는 글에서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50년대 자유주의자와 1960년대 혁명가 사이의 다른 점을 말하자면 전자는 진지하고 회의적인 반면, 후자는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누가 사회를 더 변화시켰을까?" 1960년대가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아는 해프닝, 팝아트, 플럭서스 운동에 의해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 백남준은 그 뒤를 잇는 1970년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의심의 여지없이.. 더보기
[백남준] 서구중심인 노벨상과 탈영토세계주의의 차이는 뭔가? 노벨상은 지나친 서구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의 지적 제국주의 중 문화적인 침탈이다.  서구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지배하려는 책략이다. 우리는 백남준이 말하는 진정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려면 지구상에 탈영토 세계주의를 건설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글로벌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홍익인간(두루 넓게 인류와 이웃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 되라)과 인내천 사상(모든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이다)이다. 이 정도 기준이면 세계에 충분히 통할 수 있다  그리고 비빔밥 정신 융합 사상, 인간성을 파괴하고 전쟁을 수시로 일으키는 살인적 경쟁의 정신이 아니라 조합의 정신 동서가 대립할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맛있게 비벼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 전 인류가 상호의존적 주체성 속에 진정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 더보기
[백남준] 음악가로서 그를 다시 찾아보기 - 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 음악가 백남준 되찾기(2017년 12월 2일(토) 오후 2시 백남준아트센터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Day 7) ‘백남준과 TV가든’ 비평글 | 송주호(음악칼럼니스트) 발췌 우리가 알고 있는 백남준>우리에게 백남준(1932-2006)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좀 더 붙여서 ‘비디오 아티스트의 창시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이 주로 미국에서 작업한 TV 혹은 네온등을 활용한 시각예술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의 TV 작품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국내에도 용인 소재의 백남준아트센터와 동묘역 부근의 백남준기념관뿐만 아니라 과천현대미술관 중앙에 있는 ‘다다익선’,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설치되어있는 ‘호.. 더보기
[백남준] '수전 손탁' 등 세계 석학과 예술에 대해 논하다 [해방, 예술, 문화 제국주의] 논제로 "On Liberation, Arts and Cultural Imperialism: A Conversation between Susan Sontag, Vytautas Landsbergis, Nam June Paik, and Jonas Mekas" edited by Jonas Mekas, draft with edits. 1) 수전 손탁(미국 철학자 문화비평가), 2) 란츠베르기스(리투아니아 초대 대통령, 작곡가, 소르본대 명예박사 플럭서스 회원), 3) 백남준, 4) 조나스 메카스(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거장 플럭서스 회원, 시인)의 4인 대화를 나누다A conversation between: VYTAUTAS LANDSBERGIS : the first Presiden.. 더보기
[백남준] MMCA(과천) 타계 1주기 추모전 '부퍼탈의 추억' 보도자료 국립현대 백남준 1주기 사진전(아래 보도자료)을 열고 2022년까지 한번도 백남준 전시를 열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故백남준 타계 1주기 추모전 《부퍼탈의 추억(Memories of Wuppertal)》, 2007년 3월 23일~5월 6일 / 나도 여기에 참석했는데 이정성 선생님과 시케코 여사 등등이 오셨다.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자 비디오 아트의 출발을 알린 《음악전시회-전자텔레비전(1963)》을 기록한 만프레드 레베 사진 연작, 독일 로젠크란츠 컬렉션 등 50~60년대의 백남준을 회상할 수 있는 작품 120여점 전시 ● 프랑스 디종 대학 김순기 교수, 사진작가 만프레드 레베 초청 강연회 개최 1963년 3월 11일, 세계 미술사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사건이 독일의 작은 도시 부퍼탈에서 일어.. 더보기
[백남준] 무명 시절 지원자 '장 피에르 빌헬름' 사망 10주년 추모 백남준 무명 시절 그를 도와준 장 피에르 빌헬름(독일 미술계 정신적 아버지로 백남준과 플럭서스 후원자) 사망 10주년에 그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표시로 사진을 주문해 찍다 아래 사진 만프레드 레베(Manfred Leve) '백남준의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1978년(백남준 독일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로 취임하던 해) 흑백 25*15cm 사진저작권 만프레드 레베> * 장 피에르 빌헬름은 1968년 7월 뒤셀도르프에서 사망했다. ) 흑백 25*15cm 사진저작권 만프레드 레베>  걷는다, 뛴다, 행인들을 바라본다, 생각에잠긴다, 웃는다. 백남준은 만프레드 레베에게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을 찍어 달라고청했다. 장소는 갤러리 22가 위치했던 곳으로,백남준이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를처음 발표할 수 있었던.. 더보기
[백남준 ] Zen for walking 걸음을 위한 선, '문화 칭기즈칸'임 과시 백남준과 플럭서스 구성원들은 스코어 즉, 악보 혹은 지시문도 작성했다. 끌기 조곡>(1963)은 백남준이 만든 스코어 중 하나로 전시된 사진에서는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있다. 행위와 소리가 결합된 작업, 행위예술이자 음악이다. // 백남준은 1963-2006년까지 죽을 때까지 독일과 미국에서 서양 예술의 성상인 바이올린에 목줄을 달고 40년 이상을 끌고 다니다 // 그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한결 같이 지구촌 공존과 상생과 원활한 소통을 추구하며 세계를 호령하는 문화 칭기스칸>이었다 더보기
[백남준] 그의 천재성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백남준의 천재적 창의성은 그가 단군의 홍익인간의 전승과 역동적인 몽골 기마민족의 혈통을 이어 받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왔다. 자부심이 모든 창조성의 근원이 된다. "내가 황색재앙이다", "내가 문화 칭기즈칸이다: 다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내 안에 우리 안에 1%의 열등감이라도 담고 있으면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다. 백남준 열등감 제로 인간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백남준 은 천재임에도 진정 겸손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내가 살아가는 나의 처세술은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부심이 강한 사람의 특징이다 백남준 영화에 보면 백남준 쾰른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것으로 나오는데 백남준 그런 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미국 뉴욕 플랫 미술대학교 명예 박사를 받았지만 이.. 더보기
[백남준] 베토벤과 비틀즈 그리고 백남준과 BTS, 원효의 원융회통 백남준은 베토벤 음악을 비틀즈 방식으로 재맥락화한 비디오아티스트다. 그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뒤섞어서 서구에는 없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창조하다 어떻게 보면 혁명이다.서구의 2원론을 걷어차고 1원론으로 나간 것이다. 고급예술=저급예술 이런 구분을 없앤 것이다. 고급예술에도 저급한 것이 있고 저급한 예술에서 고급이 있다는 소리다. 비틀즈는 대중예술이지만 고급문화라는 말이다. BTS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비빔밥 즉 융합과 통섭이 중요하다. 거기서 미개척 신대륙이 만들어진다 하긴 이런 개념은 이미 원효의 원융회통 같은 사상에 담겨 있었다. '원융회통(圓融會通 백남준 말로 하면 동서가 서로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보다 큰 융합과 상생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란 원효대사의 화쟁 사상(Super commu.. 더보기
[11회 백남준 포럼 II] 예술적 창의성, 모험정신 그리고 혁명적 실천 "인류 최초의 화가와 조각가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디오아트의 창조자는누구인지 확실하다. 백남준이다. 그야말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이자 조지 워싱턴이다" - 미국 언론에서 // 영어 알파벳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글 창제자는 누구인지 확실하다. 바로 세종대왕.메타버스은 어디서 나왔나? 그건 백남준의 *탈영토제국주의에서 나왔고, 더 멀리는 보들레르의 인공천국에서 나왔고, 확장된 상상력(가상공간인류공동체)에서 나왔다.*앞으로 시대는 지상의 영토 크기 보다 가상 공간의 영토 크기가 그 나라의 위상을 결정한다 김형순 서론 1) 백남준의 창의성(확장된 사유 즉 상상력)에서 혹은 과학, 인문학을 융합2) 도전 정신 3) 혁명적 실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 예: 위성아트(미술확.. 더보기
[백남준] 학벌 그가 공부한 발자취 일본과 독일과 미국 등등 [백남준 학력] 경성수송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5년 재학 중 홍콩 로이든 고등학교 (졸업) 전학. 도쿄대학 문학부 (미술사학 / 학사) 뮌헨 국립 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국립 음악 대학교 (수료) 뮌헨 대학교 대학원 (철학 / 석사) 뮌헨 대학교 대학원 (음악사학 / 박사) 프랫 대학교 (미술학 / 명예박사 이건 맞다) // 백남준 영화에서는 백남준이 뮌헨 대학교에서 박사를 받았다고 나온다. 그런데 백남준 그런 걸 언급한 적이 없다. 마치 예수가 메시아 비밀론>에서 내가 기적을 행한 것을 제자들에게 절대 비밀로 하라고 신신 당부. 백남준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박사를 받을 걸 쉬쉬한 것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독일에서 교수 하려면 어느 정도 학위가 필요하지 않은가. 독일은 미국처럼 그렇지는 않다지만... 더보기
[백남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 전자아트 같은 탈장르로 확장 백남준 비디오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시각예술가?> 결국 음악이라는 장르의 한계 벗어나 전자음악이 있듯 전자아트의 전자비전으로 확장 탈장르의 현상을 보인 거죠. 미술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졌다는 걸 의미하죠> - 백남준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김홍희) 백남준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고전음악을 공부하게 되는데 백남준은 이런 클래식 회의를 가지게 되고 피아노 사이에 피아노 사이의 음악 없을까를 생각해 두 대로 치는 피아노를 치는 발상도 하게 되죠. 그런 어떤 고전음악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때 존 케이지 만남 우연히 만나 사상적으로 크게 매료되죠. 존 케이지 말하는 음악은 문학 철학이 다 음악이고 음의 화음보다 소리의 조직을 음악이라고 보죠, 바로 비트음악 몸의 맥박을 비롯한 신체의 소리 거.. 더보기
[백남준]"메가트론/매트릭스"(1995) 워싱턴 미국 국립미술관 소장품 백남준 "메가트론/매트릭스"(1995) 워싱턴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소장품 / 워싱턴 DC를 방문하기는 했으나 미술관이 문을 너무 일찍 닫았고 일정이 너무 빠듯해 백남준 작품을 보지 못했다 백남준에게 TV 화면은 전자 회화를 그리는데 하나의 큰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것과 다르게 이런 담백한 전자 설치는 역시 동양 정신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 구조는 단순한 4X4다 가운데 숨통을 열어 놓다. 작은 여백의 미다. 단색화 풍의 TV 전자 회회다 더보기
[백남준] 백남준아트센터 설계 공모 그러나 경비문제로 변형 축소 원래 백남준 아트센터 공모에서 키르스텐 셰멜(Kirsten Schemel)가 설계(아래 사진 하단의 2개. 정말 대단한 설계 아쉽게 되었다) 했으나 비용 문제로 셰멜의 동료인 Marina Stankovic(아래사진 상단)이 비용이 허라하는 범위 내에서 다시 설계를 완료하다>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경기도도립미술관] 박물관을 건립하게 된 계기는 한국경기문화재단이 백남준(NJP)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건축가 키르스텐 셰멜(Kirsten Schemel)은 2003년 국제예술가연맹(UIA)이 주최한 국제 공모전에서 백남준을 위한 매트릭스(Matrix for Paik) 라는 제목의 디자인으로 439 개의 작품을 출품하여 우승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건축가 Marina Stank.. 더보기
[백남준] 한국 언제부터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했나? 60년대 백남준 서구에 족보 없는 전자아트 창시 70년대 김민기 노래-노동자 희생과 산업화 기반을 닦다 80년대 백남준 위성아트(인터넷 예고) 90년대 삼성과 LG 전자기술-현대조선과 자동차와 IMF 극복 2000년대 김대중 광케이블 깔기(정보화사회 인프라)-남북평화정책-2010년대 중반 촛불평화민주혁명 2010년대 말기 코로나 대책(세계적으로 돋보이다)-2020년 BTS 등 선진국 도약의 발판 마련하다 아래 저서 이미지 정치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무기는 돈이나 권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미디어 조작)이다 - 조슬렛(예술철학) 하버드대 교수 / 백남준, 주류 미디어를 교란시키는 자의 모습을 언급한다 더보기
[백남준] 1984년 일본 도쿄 소게쓰[草月]홀 '보이스'와 협연 1984년 일본 도쿄 소게쓰[草月]홀(일본 전위아트의 전당)에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가 공동으로 참여한 퍼포먼스 '코요테 콘서트 II'가 펼쳐졌으며, 이들이 각각 몽골의 늑대 울음소리(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풍의 야생의 사고를 예술화)와 초원의 달빛(몽골 코드, 달 중심의 음력문화)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을 통해 1961년 첫 만남부터 23년간 계속 이어온 공동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이후 1986년 도쿄에 이어 서울에서 공연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셉 보이스의 죽음과 함께 미완으로 끝났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