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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미디어의 기억(La Mémoire médiatique)1992년> 백남준 일제식민지 태평양전쟁 시대 다매체와 정보를 접하면서 경험한 뼈아픈 기억들 / 교실에서 무의식적으로 한국어 말했다가 한국 동급생으로부터 고자질 당해 일본 담임선생에서 혼나는 이야기 등도 나온다  영국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상대로 켈트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뿌리를 뽑는 데 1000년이 걸렸다. (얼마나 심했으면 켈트어를 쓰면 모가지가 날라간다)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데는 겨우 3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본식 완벽주의가 지닌고유의 '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루카치나 카프카도 작품을 헝가리어나 체코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썼다. 그것도 강요가 아닌 자유의지로 그렇게 했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영어로 쓰고 있다(물론 내 의지로). 조이스나 존 레논, 버나드 쇼, 와일드 혹.. 더보기
[백남준] TV정원(1974)TV부처(1974), 나오게 된 시대 배경 [백남준] 1974년 TV부처, 1974년 TV정원(50주년), '비교' [백남준]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40주년) [백남준] TV정원(1974)TV부처(1974), 나오게 된 시대 배경 백남준 작품 뜬 구름 잡는 이야기 절대 아니다 다만 50년 먼저 이야기하다.[1] 1974년 TV 부처는 미중갈등 우크라이나-하마스 전쟁을 예고한 것이다[2] 1974년 TV 정원은 코로나와 환경 재앙 이상기온을 미리 예고한 것이다    세계평화(여기서 'TV부처'가 나왔다)와 지구보전(여기서 'TV정원'이 나왔다)이야말로 공익 제1호이며, 이것이 바로 공영TV의 제1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디오공동시장(Marché Commun de la Vidéo 비디오 공론장[하버마스 이론] 즉.. 더보기
[백남준]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 발명 생고생 백남준-아베 [비디오합성기: 신디사이저] 발명 과정에서 겪은 고생은 마치 달마대사가 9년간 화장실을 가지 않고 '사지가 녹아들 정도로' 수도(좌선)와 명상에만 전념할 때 그 고생과 맞먹었다(생고생을 했다고 백남준 고백한다) // 그리고 이 발명품 특허를 모두에게 공개하면서 공유했다 // 여기서 바로 유튜브가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는 달마승이야 […] 9년 동안 달마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좌선과 명상을 했다. 그의 옆에 쌓아 배절이 결국 그의 사지를 녹여 내렸고, 달마는 다리가 없는 부처로 숭배되었다. 다리 없는 그가 수행한 무선 소통은 오늘날 TV와[…] 자동차가 사라진 미래사회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나는 아베 슈야와 함께 차도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완전히 고립되었다 [… 지저분한 뉴욕 지하철이 그.. 더보기
[백남준] 인간이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길이 뭔지 고민 [백남준은 인간과 시간과 공간(천지인)에 문제에 대해서 늘 고민했다. 특히 인간의 시간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떻게 하면 시간에 갇히지 않고 시간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가? 이걸 예술로 표현했다. - 비디오아트가 시간 베이스 예술이 된 이유다(?) 그의 시각예술에서 음악이 중요한 이유인가?]내가 나름 10년 그 이상 백남준에 관심을 두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사상의 초입에도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세계는 아무리 캐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아진다.  그래서 그의 예술세계는 항상 흥미롭다. 절규로 유명한 '뭉크' 같은 예술가를 이해하는데 하루면 되지만, 백남준은 이해하는 데는 천년이 걸린다(?) 그래서 30세기를 예언한 밀레.. 더보기
[백남준] "몽골인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따위는 없었다" 1984 몽골인이 없었다면 르네상스 따위는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르네상스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동양문화를 서구에 갖고 돌아온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그가 당시 어떻게 베네치아에서 베이징까지 올 수 있었는가 하면 실크로드라는 긴 길을 칭기즈칸이라든가 쿠빌라이가 잘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백남준, 1984년 12월 파리에서 강연 (내 예술의 뿌리는 민중의 시간예술) 중 일부 발췌> 백남준 따라하기, 목포 백남준 전시에서 / 서구 고급 예술의 성상이지 상징물인 바이올린에 백남준 평생 여지 없이 모독을 가하고 조롱하다. 이런 백남준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바로 칭기즈칸의 유산(?)이다. / 12세기~13세기 이탈리아를 문명화시킨 것은 몽골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 다리(이탈리아와 중국과 몽골)를 .. 더보기
[백남준]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II) [창조하는(예술가)는 신과 대결하는 존재로 최고의 쾌감(주이상스)을 맛본다]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 백남준 45세 선언 // 백남준 아래 음반(태극기를 단순화해서 그리다) 위에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고 적혀 있다 // 백남준, 다음 해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교수 되다 // "처음 쇤베르크 음반을 두 손에 쥐었을 때 난 마치 이집트 묘지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리고 곧이어 느낀 절망감도 잊을 수 없다. 그의 음악은 바그너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앞으로 2주만 있으면 나도 마흔다섯 살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아방가르도의 고고학을 만들 때가 아닐까. 1940년대에 나는 한국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거의 모든 정보통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인쇄된 일본 서적들을 통해서 얻을 수.. 더보기
[백남준] 우리 모두 그의 '갈락시아스(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인류)는 백남준의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너와 나의 '갈락시아스(은하계 γαλαξίας)'" - NJP 우리는 모두 남준의 '갈락시아스(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손에 백남준의 하늘에 그린 성좌와 SNS 은하계가 쥐어져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 인간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주 어디나 구석구석 갈 수 있고 어느 시간이나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다> [은하 어원 명칭] 전 세계의 은하수에 대한 여러 이름과 그 기원, 관련된 창조 신화들을 설명: 한국에서는 ‘은하(銀河, 은빛의 강)’ 또는 ‘은하수(銀河水)’라는 명칭이 주로 쓰이며, 제주도에서는 ‘미리내’라고도 부른다.한자문화권에서는 ‘은하수(銀河水)’ 외에도 ‘은한(銀漢)’, ‘천하(天河)’, ‘천한(天漢)’, ‘천황’ 등 .. 더보기
[백남준 ] 1963년 '참여TV', 1965년 '자석TV', 소통 가능성 1백남준 참여TV는 백남준이 1963년 첫 개인전에 선보였던 13대의 TV(백남준 13가지 종류의 시간을 동시에 보여주다) 중 하나였다. 관객이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내는 퍼포먼스로 작품에 참여할 때만, 텔레비전의 화면에 빛의 선들이 어지럽게 나타난다. 백남준은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조작하는 기술을 통해 텔레비전 화면을 임의대로 바꾸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은 이러한 비디오아트가 해프닝과 퍼포먼스에 새로운 피를 수혈해 주었다고 평가했다. 텔레비전과 같이 이전에는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새로운 미디어와 기존의 예술을 만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담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더보기
[백남준] 프랑스혁명 200주년 작품, '전자요정(La Fee Electronique)'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작품 전자 요정을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만들었다. 백남준 서양의 정치 민주화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위대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서구문명의 맹정과 혹은 허점을 지적하다 1) 서구의 가장 앞선 지식체계인 대백과사전은 중국에 비해 2000년이나 뒤졌음을 지적하다 2) 프랑스 혁명이 서구 유럽의 민주주의에 가장 크게 기여한 놀랍고 혁혁한 역사지만 혁명이라고 해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참고] 한국은 폭력이 없이도 2016-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서 민주주주의 혁명(정권교체)을 이루었다 이를 보고 독일 디 차이트>는 이제 세계는 민주주의를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극찬을 하다 /// 백남준, 서양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진보적 혁명인.. 더보기
[백남준] 라울 뒤피,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 1[라울 뒤피와 백남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 퐁피두 전시 / 원문 백남준 아래 설치물은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 있는 Raoul Dufy의 전시실 방을 배경으로 전자 로봇을 설치하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 작품의 이름을 전자 요정(La Fée électronique.)>이라고 붙이다 //Nam-June Paik, 1989, douze postes de télévision en bois, douze moniteurs couleurs, un lecteur vidéodisque laser, tissu, fleurs en tissu, 300*200*50cm, Paris,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L'auteur de ce robot for.. 더보기
[백남준 어린이] '2024 백남준아트센터' 어린이날 행사 [2024 백남준아트센터 어린이날 행사] 상영회 우리 시대의 명인, 백남준, 2024. 5. 3.—2024. 5. 6. / 2024 백남준아트센터 어린이날 행사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1층 랜덤 액세스 홀 일시: 2024. 5. 3.—2024. 5. 6. 아트센터 개관 시간 동안 상시 상영 / 집중 감상 프로그램 〈피드백+〉운영 중에는(5.5, 13:00~16:00) 상영하지 않습니다. 대상: 전 관람객 / 참가비: 무료 백남준아트센터는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백남준을 생활과 예술을 쉽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MBC가 1992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백남준의 뉴욕 스튜디오들을 방문하여 백남준의 작업 과정을 함께 살피고, 주변의 지인들이 기억하는 백남준의 어린 시절을 듣고, 플럭서스라는 당대의 전.. 더보기
[백남준] 그의 인적 네트워킹 찾기: 사과 씨앗 같은 것 여기에는 체코 대통령도 있다 ◦ 전 시 명: 《사과 씨앗 같은 것》 Something like an Appleseed◦ 전시기간: 2023. 4. 27. ~ 2024. 2. 12.◦ 전시장소: 백남준아트센터 1층 제1전시실◦ 참여작가: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만프레드 레베, 만프레드 몬트베, 알도 탐벨리니, 앨런 캐프로, 오토 피네, 저드 얄커트, 제임스 시라이트, 토마스 태들록◦ 전시작품: 총 작품 29점, 백남준아트센터 인터뷰 프로젝트 비디오 14점◦ 전시기획: 조권진(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공간 및 그래픽 디자인: 장효진(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교육기획: 박선영(백남준아트센터 교육연구원)◦ 주최주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이번 전시 백남준이 세계인(마리 바우어마이스터, 만프레드 레.. 더보기
[백남준 이야기마당 사진] 아트센터 카페 뒷뜰 2024.04.25 어제 장소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백남준 아트센터 카페 뒷뜰이은화 미술 평론가가 주도(기획)하는 미술애호가 모임 수준이 상당해 나도 긴장하다백남준이 여기에 와서 이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좋았다. 지금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으로  2024년 3월 21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1층에서 열리는 와  2024년 3월 21일부터 8월 18일까지 1층에서 열리는 r와 이와 관련해서 백남준의 위성아트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의 향연이었다. 지금 작성 중 더보기
[백남준] 공부에 도움이 되는 도서 및 그의 연대기 이은화 선생님(오마이 기사 제가 초대 / 미술 미술사랑 미술사람 사람 생생한 미술관 이야기 전세계 누비다) - 저의 소개(제 이야기 좀 이해가 안된다?) 백남준 연재 2년 -유튜브 6개월 -백남준 / 포럼 6회 뉴욕 독일 1달씩 / 백남준 불가해한 작고 -대체불가능 작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예술가 지루하지 않고 항상 새롭다 설렌다 / 애인보다 더 설레임/ 5차원 6개국 600년 살다 /부친과 인연/ 백남준 운이 좋았다. 도울과 비교/ [백남준] 공부에 도움이 되는 도서 및 그의 연대기    [백남준 1991-2006] ▲1991년 = 취리히 Kunsthaus Zürich `백남준 회고전'. ▲1992년 = 서울에서 춤의해를 위한 백남준의 퍼포먼스공연. 비디오예술 30년 회고전(갤러리현대, 원화랑, 갤.. 더보기
[백남준]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야기 2024.04.25 백남준 유치원 동창이자 수필가 이경희 선생(1932 생) 오늘 12시에 / 향년 92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내 몸이 그렇게 안 좋더니 결국 이경희 여사가 귀천, 자택은 용인이지만 장례식장 어딘지 확인? 반포 성모병원 장례식장 / 발인 4월 27일 8시 / 문상 25일 12시부터 / 사진 상. 2013년 / 하.이은화 선생님(오마이 기사 제가 초대 / 미술 미술사랑 미술사람 사람 생생한 미술관 이야기 전 세계 누비다 / 미에 미쳐서 미를 나누려고 하는 미술 스토리 텔러) - 저의 소개(김형순 30세기를 산 20세기 인물이라  제 이야기 좀 이해가 안 될수도?/백남준 불가해한 작고 -대체불가능 작가/백남준 연재 2년 -유튜브 6개월 -백남준 / 포럼.. 더보기
[백남준] 만약 코리아에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쫄딱 망했다 [백남준] 만약 대한민국에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쫄딱 망했다 [1부] 백남준 누구?[백남준 10년마다 크게 발전하다] (아래사진 백남준 1964년이후 10년간 뉴욕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 걸리다) / 백남준 '1932년' 초부자 집에서 태어나다 집이 3천평이고 집에 캐딜락 수리공 10명 고용 / '1942년(10대)' 뭘 했나? 프랑스어를 독학, 누이의 피아노 공부를 보면서 혼자 연습과 작곡 / 중간에 맑스를 접하면서 1945년(경기중 1학년) 당에 가입 / '1952년(20대)' 동경대 공부 쇤베르크 연구 / '1962-3년(30대)' 독일에서 첫 전시 TV 혁명(TV아트로 서양미술 추방-서양미술사 해체, 서양미술사에는 TV가 없다) / 그 중간인 60년대와 70년대 사이인 1968-1.. 더보기
[백남준] 퐁피두 삼색기와 랜던액세스 1. "책은 랜덤액세스가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 백남준 * 랜덤액세스는 질서정연한 서구 근대주의의 해체를 의미한다. 선사시대에는 예술(art)에 주술(magic)이 들어갔지만, 21세기에는 예술(art)에 주술 되신 기술(technology)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현대미술에서 주술(근원적 생명을 부활시키는 에너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백남준은 선사시대 주술성을 대신해서 샤머니즘 아트(한국 굿 문화)를 도입했다. 기술에는 야생성, 주술에는 과학성이 결핍될 수 있지만 이를 상호 보완하고 융합해서 만든 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다 2. "의심할 여지없이 백남준의 단일 작품(삼색기 1982년)이 퐁피두센터 전시에서 이렇게 큰 공간이 제공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개월 동안 퐁피두 전시.. 더보기
[백남준] 슈툭하우젠과 함께 1992년 피카소상 수상 60년대 질풍노도의 독일시대, 쾰른성당 앞에서 찍은 백남준 사진 TV화면 캡처 // [백남준예술의 원천이었던 쾰른] 쾰론은 백남준에게 그의 예술의 대전환을 가져온 도시였다. 이 도시에서 맑스는 1842년에 《라인 신문Rheinische Zeitung》의 창간해 편집장이 되어 그의 혁명사상을 열정적으로 쏟아내기도 했다. / 여기서 백남준은 새로운 음악전자음악을 접했고 쾰른성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 쾰른성당에 스며들어오는 신령한 글라스 빛과 그것이 연출하는 색채에 반해 비디오아트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여기서 슈톡하우젠과 마리를 만나 예술가로서 서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백남준은 슈툭하우젠과 1992년 공동으로 피카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더보기
[백남준] "미국은 왜 베트남 전에서 졌나?"라고 묻자, 그가 남긴 말 [질문] 미국은 왜 베트남 전쟁에서 졌나요? / [백남준 대답] "정보의 결핍이 없다면 베트남 전쟁과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베트남에게 진 이유는 바로 정보부족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백남준은 결론적으로 모든 전쟁은 바로 정보 부족에서 온다고 결론짓고 있다. 백남준은 인터넷을 발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방지책으로 인터넷만 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초국가적 전 지구적으로 연결하는 소통의 네트워킹이기 때문이다. 즉 전쟁의 그늘로부터 아직 벗어날 수 없었던 1960년대 초 독일에서 등장한 그의 TV들은 시각적인 비결정 성의 탐구를 위한 탁월한 매체이자 “일방향적 정보전달 방식”을 지닌 “현대사회의 독재자” 혹은 “반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백남준이 텔레비전을 예술.. 더보기
[백남준] 2001년, 영국 <그로브 음악사전>에 현대작곡가로 등재 2001년, 영국 에 백남준은 현대작곡가로 등재되다 Paik, Nam June, Stefan Fricke Published in print:20 January 2001 Published online:2001 opera sextronique, 1967 / My jubilee ist unverhemmet, 1977 / Bibliography Nam June Paik. Werke 1946–1976 (Cologne, 1980) [catalogue] T. Stooss and T. Kellein , eds.: Nam June Paik: Video Time – Video Space (Ostfildern-Ruit, 1991) E. Decker , ed.: Niederschriften eines Kulturnomaden..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 아트-위성 아트의 창시자, 레이저 아트의 개척자 0 백남준 없었다면 큰일 날뻔 했다. 서양미술 공세가 원자폭탄급이라 / 그들보다 더 센 핵 원자폭탄급이고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방어막인 백남준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가 서양미술에 삼켜 먹힐 뻔했다 1958 케이지 만남 1960 존 케니비 넥타이 잘림 1961 1 백남준, 비디오 아트와 위성 아트의 창시자이고, 레이저 아트의 개척자이다. 2 한국은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천문학의 나라다. 조선에서 아침 朝라는 한자를 보면 이 들어 있다. 백남준은 바로 천문학의 후손답게 을 최대로 발휘해서 를 바탕으로 그것을 예술화했다 그것이 바로 위성아트다. 위성아트의 정신을 바로 초국가적으로 초연결을 의미하는 것이고 지구촌에 인류공동체(참여와 나눔과 공유와 연대를 극대화하는 코뮌세상) 건설하는 것이다 3 백남준과 .. 더보기
[백남준] 왜 독일에서 베토벤처럼 존경? 독일작가에게 묻다 백남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그가 독일국가관 대표 미술가로 나갔다. 그런데 그는 왜 독일에서 베토벤처럼 존경을 받았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많지만 2015년 취재한 사운드아티스트 독일작가 '알프레드 23 하르트'씨(아래) 대담에서 그 단초가 보인다. 아주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었다. 그의 한국인 부인이 통역했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인기가 높은 건, 알다시피 2차대전 이전은 프랑스가 세계미술을, 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주도했다. 독일은 변방이었는데 70년대 요셉 보이스와 함께 백남준이 혜성처럼 나타나 소리와 영상을 뒤섞는 '전자아트' 를 창안해 독일미술을 세계적 위상으로 끌어올려 '아트스타' 가 되었다. 그는 독일 뿐만 아니라 세계미술을 뒤바꾼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한 다빈치 같은 예술.. 더보기
[백남준] 그의 예술론("고속도로로 가는 열쇠[로제타 스톤]" 1996년 전문 이 제목은 '인터넷'을 연상시킨다)의 키워드를 친절하게도 총정리해 로제타석에 새기다. 참 특이한 일이다. 원래는 5개국어로 적혀 있는데 모두 한글로 바꾸다] // 나는 내 비디오에서 쿠르트 슈비터즈(Kurt Schwitters: 독일의 화가·판화가·조각가)의 발전을 본다. 비디오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에 기초한 정보'(Time-based information) 즉 '무중력 정보'(No-gravity Informalion) 라는 것에 착안하게 되었는데, '무중력 정보'는 역사기록 (점토, 판, 석주, 죽간, 목간, 양피지, 종이) 이전 시대, 즉 부족사회 시대와 사유재산 발생 이전이자 농경 기술 이전의 유목시대일 때 정착된 것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 반도에서 이스라엘 아일랜드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기.. 더보기
[백남준] "그는 나의 엄마 / 백남준 한마디로 세계적 예술 샤먼" Art press, nov. 1989 // Intro : pourquoi ce titre : Souvenir de ma mère l’oie… Loi… / Ma mère Paik // Quand Paik en aura fini avec la vidéo, il écrira, me dit-il, un grand livre sur la Chine. Je lui réponds que moi, c’est à peu près le contraire. Quand j’en ai eu fini avec la Chine, je me suis mis à m’intéresser à l’art vidéo. Et comme par hasard, le café où nous échangeons ces propos, au coin d.. 더보기
[백남준]과 보이스의 차이점 대해 한 마디- 장 폴 파르지에 장 폴 파르지에에게 인터뷰에서 백남준과 보이스의 차이점을 대해 한 마디 부탁한다고 했더니 인터뷰에서는 짧게 말했지만, 보충 내용을 A4 용지로 10장 정도의 글로 보내오다 // 요약 백남준은 세계에서 예술무당 / 반면 보이스는 유럽에서의 예술무당 / 그 범위에서 차이가 난다. / 장 폴 파르지에, 탁월한 문장가라 은유가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장 폴 파르지에 원고 Cher Hyung Soon, très honoré par votre attention, hier, à mes propos sur Paik Nam June... / Voici le texte sur Beuys et Paik dont je vous ai parlé... Bien à vous / de JPF L’hypothèse du chape.. 더보기
[백남준] 그리고 '다빈치', 영국 '에딘버러 축제'에서 나란히 전시 해부학자 같은 다빈치 1452년 생, 물리학자 같은 백남준 1932년 생 몇 년 차? 480년 약 500년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거의 같아 보인다. 예술과 기술(Art and Technology)을 결합한 아티스트라는 면에서 같다. 바로 르네상스 인간의 전형들이다. 2013년 8월 9일(금)~10월 19일(토)까지 열린 영국 에딘버러(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 축제에서 다빈치와 백남준 특별전이 동시에 나란히 열었다. 왜냐하면 세계 미술사에서 두 사람을 동급으로 봤기 때문이다. 더보기
[백남준] 첫 전시 개념 18개 중 하나, 'Objet SONORE' [1] 백남준 7년간 준비한 첫 전시(독일 부퍼탈 갤러리 파르나스 1963년 3월 11일부터 3월 20일까지) 뒤샹과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개념미술가로 16가지 새로운 현대 미술 개념을 첫 전시 포스터에 적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objet(뒤샹 개념) sonore (음악의 전시, 백남준 개념)이다. [2] 음악을 전공한 백남준은, 전자 미술(페인팅)로 전시를 하면서 TV로 피아노로 연주하는 음악 미술가가 아닌가. 미술과 음악을 비빔밥처럼 비벼버린 장본인이다. 서양 사람에게 기절초풍할 일이다. 그들은 한반도 생각해 보지 않는 발상이다. 이 또한 서양에서는 전혀 새로운 실험 미술의 출발(5차원 사기)인 셈이다 [3]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개념 18개 중 왼쪽 3번째인 가 있다... 더보기
[제3회 백남준포럼] 그의 유언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 [제3회 백남준 포럼], "21세기부터 30세기까지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제3회 백남준 포럼 2024년 1월 30일> 2024년 1월 29일은 백남준 18주년 기일이다. 장소: 광화문 스페이스 본  [백남준 유언]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작성 보완 중' 아래는 백남준 죽음과 관련된 10가지 키문장이다. 01 백남준, 죽음에 대한 생각, 불교 '극락왕생(죽음은 끝 아니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것이기에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사상>,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천상병) / 02 삶의 허전함(바니타스 Vanitas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이 삶의 환희(Jouissance)을 일으키는 원동력(죽음과 고통이 환희와 구원의 밑바당이 되다 역설의 .. 더보기
[백남준] 1996년 그의 수난 그리고 2000년 구겐하임에서 승천 예수의 죽음(수난)과 부활처럼 백남준은 뇌졸중은 쓰러진 것은 예수의 십자가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백남준은 2000년 뉴욕 구겐하임 회고전에서 레이저 아트를 통해 야곱의 사다리를 타고 달콤하고 숭고한 천국으로 승천했다. 그리고 2000년 구겐하임 전시 전이 열리기 직전인 2000년 0시에 새로운 1000년을 맞이하면서 전 세계 60여 개국 는 위성아트를 보냈다. 여기서 백남준 글로벌 비저너리로 미래를 멀리 보는 유언을 남겼다. 그것이 바로 21세기는 한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20세기에 그렇게 고생한 한국은 그 보상을 받을 것이다. 21세기는 한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호랑이 시대가 될 것을 예언했다. 더보기
[백남준] 서구미술의 우월주의 한 방에 날리다 피카소보다 한 수 위 뒤샹, 뒤샹 보다 한 수 위 백남준 ​ 카라바조와 그를 모방한 네덜란드 등 유럽의 작가들 그리고 피카소도 마찬가지다. 뒤샹이 서양의 회화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운 레디-메이드를 만들었다는 면에서 위대하다. 그런 면에서 피카소보다 한 수 위다. 그러나 뒤샹도 백남준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다. 백남준이야말로 세계미술사에서 진정한 창조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혀 새로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와 인터넷과 SNS 소통방식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핸하르트'는 백남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폰은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미술 평론가 진중권은 세계 미술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전반은 피카소, 20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