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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파리 김순기 작가, 뉴욕 백남준 쳐들어가다 파리에 사는 김순기 작가, 뉴욕에 사는 백남준을 쳐들어가다 1982년 / 그녀는 인터뷰를 비디오로 작품화하다. 프랑스 유명 철학자 데리다와 낭시 등과의 대담도 작품화하다. 백남준은 가장 오래된 문서는 바로 이라고 말한다. 인류문명적, 인류학적 대화를 나누다 [인터뷰 ] 백남준과 김순기, 질문과 대답이 다 예리했다. 백남준 자택에서 //김순기 재불작가의 탁월한 비디오 작품 1982년 백남준 예술론에 대해 다양하게 묻는다. 백남준의 사상의 광맥은 무궁무진하다. 아니 광활하다. 이 작품 옆에 김순기 작가가 프랑스 사상가이자 해체주의 철학으로 유명한 데리다와 인터뷰 내용을 비디오아트로 만든 것이 같이 있다. 백남준도 데리다 그 이상의 대단한 사상가였다. 김순기는 백남준에게 물었다. 중국과 몽골의 차이는 뭔가? ..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아트' 탄생은 목숨 건 '15,000 볼트' 위험 ''난 1961년부터 시작한 전자공부를 매우 즐겼고 1만 5천볼트의 전기로 작업을 하면서 생명의 위험도 얼마간 즐겼다. 내가 미국인보다 2년 앞서 트랜지스터의 원리를 발견한 천재적인 아방가르드 천재공학자 '우치다 히데오'(우치다 라디오 리서치 연구소소장)와 과학이 논리보다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아는 전능한 기술자 '아베 슈아'같은 훌륭한 동료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현재 우치다 히데오는 전자기술적으로 텔레파시와 예언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 백남준"15000 볼트의" - 백남준  백남준 첫 전시를 하기 전부터 비밀방을 만들어 전자공학을 독학으로 하다. 그는 독서광이었기에 어디에서나 책을 읽었는데 비밀방을 만든 것은 거기에 가서는 전자공학 책만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는 10대 때 .. 더보기
[백남준] '안심낙관(1999년)' 이 제목 '안빈낙도' 연상된다 백남준의 병원 환자를 위해서 만든 작품 그런데 이 단어를 들으면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인생을 안빈낙도(low price, high happiness 최저의 비용(청빈함)으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삶(극락의 실현) 과연 가능한가?)로 살면 이 세상의 모든 삶이 천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백남준 당뇨등 병이 많았기에 이런 작품에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인가 왼쪽은 1992년 작품이다. 우리가 수없이 봐왔던 부처를 첨단의 전자 부처로 변형시키다. 부처의 아우라가 최고도로 올라간다. 디지털시대 문맥에 맞추다 더보기
[백남준] 우리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근거, '스키타이 단군' 백남준 말처럼 한국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근거는 단군 신화에 있다. 두루 넓게 인류에게 도움을 주라는 홍익인간 즉 인류애와 형제애 사상을 품고 있다. 이렇듯 "단군 건국 신화에는 인류 보편의 인권 사상이 있다."(프랑스 출판 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건국 과정을 보면 인디언 학살에서 시작한다. 이런 나라가 세계를 호령할 수는 절대 없다. 세계를 호령하려면 도덕적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프랑스는 미국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자유의 여신상 (뉴욕)을 선물로 보냈다. 미국이 자유의 나라라는 이념이 있지만 이건 결국은 강자에게만 자유를 보장하는 절름발이 사상이다. 인디언에겐 자유가 없다. 인류 보편의 사상이 아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품어도 된다고 단군 신화는 말하고 있다. 백남.. 더보기
[백남준] 그리고 임충섭, 그에게 백남준은 이웃지기로 든든한 백 대표적 뉴요커 작가, 백남준과 임충섭 예술가란 시대의 우상과 처절하게 싸우는 사람이다. 백남준은 서양의 미신과 평생을 싸우다. 독일 첫 전시에서 아예 서구미술사에는 한번도 없었던 비디오아트라는 원자폭탄 떨어뜨리다. 내가 황색재앙이라고 하면서 내가 예술로 세계를 지배하는 칭기즈칸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그에게는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이 붙었다. / 임충섭 작가(82세 예고와 서울대 회화과 졸업)도 뉴욕에 50년 살면서 미국의 콘크리트 정글의 수직 문화에 대항해 한국의 심경, 어려서 냇물에서 놀며 즐기던 그 자연스러운 수평의 마음으로 싸우다. 아니 그는 한국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길로 그들을 파멸에서 구원하다. 백남준처럼 뉴욕의 파멸을 구원한 임충섭 작가, 그는 혼자 외로울 때 가까이 살고 있는 .. 더보기
[백남준] 그는 '인복'이 터진 사람이다. 왜? '홍익인간'이기에 홍익인간(두루 넓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백남준은 세계 예술가 중에서 인복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샬럿 무어먼, 슈톡하우젠 등등 기라성같은 예술가와 절친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인복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홍익인간으로 먼저 남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을 만난 미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일본인 등등 모두 그에게 반했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만큼 그들도 도움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미국 록펠러 재단 자금부장과도 절친이 되다. 그는 MoMA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이 록펠러 지원금을 받도록 백남준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다. 바바라 런던은 미술지원금을 받게 되고, 그 후 백남준에게 별명 하나를 붙이다. 백남준은 예술가 이전에 외교관이다. 협상에 귀재라.. 더보기
[백남준] 1974년 <TV 정원(생태주의 설치작)> 코로나 막으려 했다 데이비드 조스릿 하버드 미대교수는 백남준이 50년 전인 1974년 을 통해 코로나를 막으려 했던 바이러스(해커)였다고 평가했다. 조스릿은 백남준이 수잔 손택의 '생태학'적 관점을 공유했고 또 그는 백남준이 이미지를 둘러싼 검역선(Cordon sanitaire: 이미지를 통제하는 장벽)를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 전 인류가 백남준이 TV 정원을 통해 하려고 한 메시지(자연과 문명이 50대 50으로 공존=정원과 TV의 공존)를 귀 기울여 들었다면 '코로나'는 발생하지 않았다. 더보기
[백남준] 랭보, 두 사람 'Voyant', 감각의 착란 속 본질 보다 [백남준과 랭보 두 사람은 Voyant] 천재 시인 랭보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고 사라지다.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하다. 1984년 35년 만에 귀국 백냠준 예술이 뭐냐고 묻자 "예술, 사람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 기막힌 말이다. 이 말을 랭보는 '모든 감각의 착란(dérèglement de tous les sens)'이라고 했고, 미술사에서는 '착시(trompe oeil 눈속임 일종의 시각적 사기)'라고 하고, 브레히트는 '낯설게 하기(Verfremdungseffect)'라고 했고, 보들레르는 '엽기(bizarre)'라고 했다. 현대미술은 '차별화'라고 했다. 한마디로 너무나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보는 것. 혹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 나만의 눈으로 꿰뚫어 보기 우리말에 천리안 혹은 통찰력.. 더보기
[백남준] 1963년 'TV아트' 창시,1969년 '신디사이저' 발명, 1973년 '유튜브' 예언, 1974년 '인터넷' 착안 백남준 독일에서 미국 뉴욕으로 넘어가는 시기 1957-1974년 20여 년 치열한 도전 속에서 천재의 불꽃을 피우다 [1] 백남준 독일시대 : 1957(1956년 말)~1963년 7년간(독일대학 수업 관심 없었고, 독일 대학교수들 우습게 보다, 아예 대학을 차버리다시피 하다. 전위적 실험예술가들(존 케이지, 슈톡하우젠, 플럭서스 회원들과 놀다) 이 독일 수업시대 전자공학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지난한 고생과 어려운 진통 끝에 하다. 이때는 유학비를 집에서 보내주었기에 굶지는 않았다 [2] 백남준 뉴욕시대(1964년 뉴욕 도착) 중 : 1968~1979년 11년간 '벨연구소'를 다니면서 '미래사회 4차산업시대 대비하는 리포트를 쓰는 중 (중간에 록펠러재단 기금도 받다) 1969년 유튜브가 가능한 시디사이저(.. 더보기
[백남준 ] "그 안에 무당 있다". 엑스터시 같은 황홀경 없이 어찌 예술이? 시게코 여사 책 재구성 "남준 안에 무당 있다". 남준 어머니는 무속신앙을 믿는 분이었다. / 그의 어머니는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 점괘를 받아 오셨단다 남준과 그의 부인은 동양철학을이야기하다가 말싸움을 심하게 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 일본의 선도 좋지만 한국의 샤머니즘에 비하면 무척이나 따분하지 이에 부인은 발끈한다 / 무슨 소리예요 둘 다 각자의 이론과 배경을 가진 철학 아니에요 위아래가 어디 있어요 / 남준도 이에 못지 않게 반박한다 / 절대 아니야 한국의 무당은 훨씬 창의적이라고 / 사실 한국문화의 뿌리는 샤머니즘이다 한국문화는 유교적이기보다는 불교적이고 불교적이기보다는 샤머니즘적이다 이것은 동학사상과 함께 한국문화의 기원이자 뿌리가 되는 근간이다 그러나 이를 창조적으.. 더보기
[백남준] 자화상 <스키타이 단군> '두루 넓게 인류에게 이익 주는 인간' [1] 세계사는 선사시대를 알아야 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사는 단군시대를 알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백남준은 자화상이기도 한 '스키타이 단군(아래 작품 1993년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 수상, 단군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전자 인간으로 부활)'이 되어 두루 넓게 인류에게 이익을 주는 을 예술로 구현하다, 그 도구가 바로 액션 뮤직-미디어 굿-퍼포먼스-비디오-유튜브-생태보전-위성-레이저-인터넷-SNS 등등이었다. 스키타이 단군을 인류의 갈등과 대립의 문제 해결사로, 구세주로, 최고 미디어로, 슈퍼스타로 등극시키다. [2] 백남준 두루 즉 동서의 사람들을 연결하여 모두에게 이익을 주려는 예술철학을 가지다 TV 부처 : 동서를 연결 고리로 소통하기, 방법은 하이테크와 사상의 비빔밥, MEDIA 굿 : 동서의 연결 통.. 더보기
[백남준] 그의 친구 '플럭서스'의 경제 사정은 어땠나? 독일시대(1958년~1962년) 정도 백남준은 유학비를 받아서 경제가 바닥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예술가들은 날마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지경이었다. 남정호(뉴욕특파원)과 바우어마이스터와 인터뷰 소개 [질문] 남정호: 당시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나? [대답] 바우어마이스터: 당시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플럭서스 동료 중에 디자이너 겸 기자가 있었는데, 시내에서 리셉션이 열리면 우리는 2마르크를 모아 그에게 쥐여 주면서 그곳에 가도록 했다. 그에게는 아주 품위 있는 검은색 양복이 있어서 그것을 입고 리셉션장에 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보였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는 “아, 택시에 두고 내렸네”라고 둘러댔다. 연기까지 하며 행사장으로 들어간 뒤에는 호주.. 더보기
[백남준] '다니 블로흐'(비디오아트박사) 1978년 12월 인터뷰 [백남준과 다니 블로흐(미술비평가)와 인터뷰1978년 12월] 신문학(Les Nouvelles Littéraires)지>에서 / 다니 블로흐(Dany Bloch 아래 사진)는 누구인가? 1925년에 태어나 1988년에 사망한 프랑스 국내외 비디오 아트 전문가. 1982년에 그녀는 비디오아트에 대한 박사학위 받고 이를 바탕으로 '아트 앤 비디오(1960-1980)', 1983년에 '비디오아트' 출간하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이 1920년대에 추상적 시간을 발견한 이래로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공간>을 생각하는 건 더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1. "시간의 개념이 당신의 모든 작업을 조건 짓는 게 맞습니까?".백남준: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개념이며 피드백은 이를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저에게 피드백은.. 더보기
[백남준] 진정한 '한국인'인 동시에 6개국을 하는 '세계시민' 백남준 한반도 화합과 공존의 수호신으로 갓이 잘 어울리는 진짜 한국인이었고 동시에 를 통해 동서 문명을 연결하고 6개국을 하는 '세계 시민'이었고, TV를 매체로 20세기 미술사에 새 장을 연 세계적 비디어아티스트였다. 백남준은 을 통해 죽어가는 세상에 기를 살려주는 노마드 몽골 코드 이어받은 '전자샤먼'이었고, 을 통해 두루 넓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라는 '홍익인간 실천가'였고, 를 통해 가상 공간에 그림을 조각하는 첨단의 '실험미술가'였다. 을 통해 환경의 대안을 상상하고, 2차대전 격전지 솔로몬 제도에서 로 세계대전 재발을 경고한 '반전주의자'였고, 를 통해 성의 행복을 추구한 '정신분석가'였다 를 통해 맑스가 언급한 착취사회를 이겨내려는 '인류동포주의자'였고 을 통해 쌍방소통으로 지구촌 통합을 구현.. 더보기
[백남준] 내년 첫날 광화문에서 '굿모닝! Mr.오웰' 재방영하라 "백남준은 세계 미술사에서 하늘(우주)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오페라를 연주한 첫 예술가다" [22세기는 바로 오늘부터 시작한다] 40주년( (1984~2024) 맞아 내년 첫날인 2024년 1월 1일 광화문 광장 역사박물관에서 지금보다 훨씬 큰 대형 스크린으로 방영해야 한다. 1984년 백남준 작품의 오리지널을 살리되 최근 NFT, 메타버스, 뉴미디어 기술을 합쳐 전 세계에 방영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백남준 작품이 임팩트가 없다고 하는데 이번에 한번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백남준은 1984년 캔버스로 전 세계를 연결해 우주로 확장한 천상에서 전자 오페라를 그려낸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하이아트를 반반씩(백남준 주특기)로 살려낸 것이다. 당시에 최고 대중예술가와 고급미술가가 총출동한 지구상에 .. 더보기
[백남준] 신디사이저 발명 후, 다빈치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신디사이저를 발명하고 나서 앞으로 유튜브가 나오면 이런 화면 조정이 가능하다고 예언하다. 1969년 제목 Versatile Color TV Synthesizer (1969) : This will enable us to shape the TV screen canvas. : As precisely/as Leonardo//As freely/as Picasso//As colorfully/as Renoir//As profoundly/as Mondrian//As violently/as Pollock//As lyrically/as Jasper Johns. //Versatile Color TV Synthesizer(1969) : 이를 통해 TV 화면의 캔버스를 형성할 수 있다. :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 더보기
[백남준] 사이버네틱스 아트: 자연과 기계와 인간의 위계를 허물다 1984년 1월 1일 위성아트를 통해 전 세계 속 시간과 공간의 대한 경계가 무너뜨리다(1963년 첫 전시에서 음악과 미술의 경계도 허물었듯이). 시공간에 대한 장막을 부수는 저항가로서 확실한 21세기를 보여주다. 비디오 디지털(뉴미디어) 항로를 열다. 1984년 1월 1일은 오늘부터 21세기 시작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 자연과 기계와 인간의 위계를 허물다 이걸 사이버네틱스 아트(사이버아트, 신매체, 유튜브, NFT, 메타버스 아트 등)라고 부르다 / 백남준은 서구미술의 살해자 파괴자 그래서 동서미술의 위상을 5대 5대로 만들다 / 서양 중심의 룰과 고정관념을 깨고 항상 플럭서스(흐르는 물)처럼 가변성(Mobile)을 중시하다. 여기에 백남준의 변화무쌍하고 유연한 유희의 정신과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유.. 더보기
[백남준] 넘 완벽하면 신도 화 낸다 "When too perfect, lieber Gott böse" 백남준의 “너무 완벽하면 신도 화를 낸다”는 말은 완벽함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 또는 선불교에서 말했듯 "예술 작품이 너무 많은 의도를 드러내는 곳에서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달아난다고 보았다. // 독일 교수 Michael Schumacher 아래 문장에 대한 해석 너무 완벽하면 신도 화를 낸다(2000년 백남준 작품) 백남준 아티스트 소개 // 원래 백남준은 작곡가로서 예술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스승 볼프강 포트너는 한국 태생의 백남준을 "매우 특별하고 비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쾰른에 있는 WDR의 전자 음악 스튜디오에 추천했다. 이곳에서 그는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을 만났고 요셉 보이스도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었다. 1958년 미국 작곡.. 더보기
[백남준] 1984년 1월 1일 우주 미학, 디지털-인터넷시대 선언 백남준 1984년 1월 1일 우주 미학, 디지털시대, 인터넷시대를 선언하다> 1984년 위성아트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creating a multi-temporal and multi-spacial symphony) 일종의 전 세계 방송의 정보와 뉴스가 하나 하나 악기가 되어 총체적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본 것이다. 백남준은 거기서 총감독 총지휘자가 되다. 그래서 이 작품을 흔히 '우주 오페라'라고 한다.  백남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 직전 1993년 겨울에 "이제 우리에게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Pour nous, le XXl e siècle commencera le 1er janvier / For us, the twenty-f.. 더보기
[백남준] 1974년 인터넷, 인터넷 쇼핑, 원격치료, 전자도서관 제안 [백남준 1974년 인터넷을 제안] [백남준 1974년 인터넷을 제안] 그리고 인터넷 쇼핑(two way inter-active TV for shopping)도 처음 언급했군요 인터넷 쇼핑만이 아니라 인터넷 전자 도서관, 원격 치료, 전자 여론 조사, 바이오, 국제적 사무실 데이코 교류 등등 그 외에도 많은 것(Library research, opinion polling, health consultation bio communication, inter-office data transmission)을 거론하다. 더보기
[백남준] 노은님, 함부르크 미대 다닐 때 그의 제자 [노은님(아래 작품)과 백남준] 백남준은 뒤셀도르프미술대학 정교수가 되기 전에 잠시 함부르크미술대학에서 초빙교수를 했다. 그때 노은님을 만나 그녀를 평생 자랑하고 다녔다. 훌륭한 화가라고 // 노은님은 노자의 세계를 독일 표현주의 풍으로 천진난만하게 그렸다. 그래서 독일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노자의 동양 사상도 배울 수 있고 거기다 자신의 나라에서 잉태한 독일 표현주의 화풍이 결합되어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더보기
[백남준] 그의 책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살다' 제4부 편집자 서문 백남준 저서 제 4부 편집자의 서문 [백남준이 New York Times의 TV 평론가로 백남준보다 1살 아래인 존 조셉 오코너(John Joseph O'Connor 아래사진)와 시작한 서간 관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존 오코너(1933~2009)는 누구?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였다. 아일랜드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네 아들 중 한 명인 그는 뉴욕 시립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그는 1959년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서 카피 에디터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저널의 예술 편집자이자 연극 및 무용 평론가가 되었으며, 계속해서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에서 활동했다. // .. 더보기
[백남준] 1968-1979년 '인터넷(정보초고속도로)-유튜브' 착안 [아래 사진 백남준 1968-1979년까지 작성하는 모습 이 당시 백남준 제대로 먹지를 못해 영양실조(1964-1974)에 걸리다. 그만큼 힘든 시기였다] [PART 2 Transforming Video and Television: Media Art Practices] 백남준은 TV와 비디오 매체를 미디어아트라는 신 예술의 탄생을 가능하도록 변형시키다 // 뉴욕 소호 자택에서부터 위성 송신 무대까지, 예술에 대한 백남준의 강렬한 인본주의적 탐구는 인간의 정신을 알리고 즐겁게 하며 고양시킬 수 있었다. // 이를 위한 그의 70년대 노력은 Rockefeller Foundation 및 WNET의 Television Lab과 같은 기관의 지원을 받았으며 Shuya Abe, Allan Kaprow 및 Allen.. 더보기
[백남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전 세계적에 영향을 주다 PART 3 Culture and Politics: Local and Global // // 백남준은 혁신적인 예술 아이디어의 창작과 전시의 중심지인 로어 맨해튼에서 살면서 작업했다. 백남준은 이 뉴욕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를 여행했고, 독일, 프랑스, 브라질, 멕시코,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서 현지 예술가처럼 인정받았다. 많은 국가와 문화에서 백남준은 그를 자기 나라의 예술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다른 삶의 방식을 탐구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생각과 예술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 Nam June Paik was an intensely political person. He understood how organizations work, which people held power, an.. 더보기
[백남준] 얼(정신), 얼음(정신 차려), 어른(정신 성숙), '얼'은 Media 즉 '굿' (영문) 포함 Media 中世신학의 개념으로 서신과 交流하는 手段, 모체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굿의 어원은 몽골어의 얼(정신자체)이니 Media와 굿이란 거의 같은 말이다."빛과 어둠(明暗)은 삶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무속의 굿(미디어)은 '어둠(暗)'을 수용하는 예술이고, 할리우드 미디어는 '빛(明)'을 향유하는 예술이다" Media 中世신학의 개념으로 서신과 交流하는 手段, 모체를 의미하는 낱말이다. 굿의 어원은 몽골어의 얼(정신자체)이니 Media와 굿이란 거의 같은 말이다. 따라서 France의 Media가 멀리 한국의 굿을 취재하러 온 것은 자연이라면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보이스(Beuys)는 죽음에서 돌아와서 발언한 극소수의 인간 중 한 사람이다. 죽음이 싫으니까 우리는 갸웃이 넘보다가는 뒷걸음질한다. 공자.. 더보기
[백남준] 20대 이미 반가사유상(생불)이 되었다. 백남준 20대 반가사유상 그 신비한 분위기와 그 염화시중의 미소를 퍼포먼스로 완벽하게 연출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 -1000으로 사는 무소유주의자만이 할 수 있다 // 천재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다> // 백남준은 우리와 같이 살았던 생불이었다. 그러나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여기 보면 백남준은 아직도 고뇌하는 모습이다. // 그 나이에 그는 사상가, 철학자는 될 수 있어도 명상가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높은 경지까지 올라갔다. 반가사유상 그 신비한 분위기의 모습과 그 염화시중의 미소를 퍼포먼스로 연출하려면 -1000이라는 무소유주의자만이 할 수 있다. 백남준 20대 그걸 해 냈다. 백남준은 이미 그런 심경의 철학자였고 사상가였기에 충분하게 그걸 비디오아트로 구현해 낸 것이다. 그렇게 보.. 더보기
[백남준] '알타이(유라시아) 연합국가' United KOREA [알타이(유라시아) 연합국가] 남북연합한국 United KOREA(남북철도 당연 포함)+동몽골+남시베리아+헝가리 등등. 백남준의 1960+70년대 생각, 김대중은 80+90년대 생각 백남준 I "지도의 우화(Map Allegory from Crimea to Korea)" 불난 곳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남부 크림 반도다. 1960년대 백남준과 보이스, 에 대한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었다. 더보기
[백남준] 한 미국학자는 중국이 서구를 1300년 간 앞섰다 [한 미국학자는 아시아(중국)가 서구를 1300년 동안 앞섰다 그러나 백남준 아시아가 서구를 1500~1600년 동안 앞섰다고 본다?] 최근 미국의 역사학자 마이클 하트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했다. 서기 2세기까지는 서양 문명이 중국 문화보다 더 발전되어 있었으나, 그 시점에서 발전 규모가 역전되어 중국 문명이 서양 문명을 따라잡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세계문명을 15세기까지 이끌었다. [참고 중국에서는 서기 105년 후한시대 화제(和帝)때 궁중의 물자 조달 책임자였던 채륜(菜倫)이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채륜이 제지술을 개량했던 서기 105년 경은 한나라가 한반도에 낙랑군을 비롯한 4군을 설치했던 시기였다. 이때부터 동양이 서양을 앞서다] 그러나 15세기부터는 서양이 다시 선두주자가 되었다. 마이클.. 더보기
[백남준 ]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77년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77년 백남준 45세 때 Tele-vion means in Greek to see far. See far=fernsehens Tele-vision // 왜 내가 Schoenberg에 관심을 가졌나까? 그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가장 극단적인" 것에 관심을 가졌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한다. 그것은 내 몽골 DNA 때문이다. - 몽골-우랄-알테르 말등사냥꾼들은 선사시대에 시베리아에서 페루, 한국, 네팔, 라플란드를 거쳐 전 세계로 이주했다. 그들은 중국 농업 사회처럼 중심을 보지 않고 그들은 멀리 보았고, 멀리서 새로운 지평선이 보이면 더 멀리 가서 봐야만 했다. // My Jubilee(영어) ist Unverhemmet(독일어) [.. 더보기
[백남준] We are in open circuits Writing by N. J. Paik Essays, project plans, and correspondence from across Nam Jun Paik's career, much of it previously out of print or unpublished. 가격: 50달러 // 백남준(1932~2006)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틀림없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가장 영향력 있고 다작을 한 사람 중 백남준은 전자 동영상을 예술가의 매체로 변화시킨 전설적인 혁신가였다. 그는 친구들과 연락하고, 공연 악보를 작성하고, 텔레비전 프로젝트를 위한 제작 노트를 작성하고, 비디오 설치 계획 초안을 작성하고, 에세이와 기사를 쓰는 등 끊임없이 글을 썼다. 새로운 예술적 도구를 선구적으로 개발하고 비디오와 TV 분야에서 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