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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다다익선'이 미국국립미술관이었다면 저렇게 ['다다익선'이 워싱턴국립미술관에 있다면 저렇게 내버려둘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7172125005&code=960202 미국 워싱턴 국립스미소니언미술관 큐레이터와 미술보전 전문가와 연구진은 10년이 넘게 백남준의 남긴 먼지나 다름 없는 쓰레기 같은 소품 하나라도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면서 백남준 아카이브실에 잘 보관하고 그걸 시대 별로 분류하고 연구하고 정리하면서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아직도 10%정도 밖에는 정리를 못했다고 하면서 지금도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백남준이라는 작가에 대한 태도와 높은 존경심은 우리하고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미국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백남준 작품 백남준.. 더보기
[백남준] 내 텔레비전은 물리적 음악이다 백남준 학사논문발굴은 그의 예술의 블랙박스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 백남준의 연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00 "내 텔레비전은 물리적 음악이다(PHYSICAL MUSIC)" -백남준. 전자공학으로 만든 음악 01 백남준의 동경대 학사논문 을 읽어보면 이건 학사논문이 아니라 거의 박사논문 수준이다. 작곡한 악보(33편)도 포함되어 있다. 나같이 음악에 대해 문외한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수직적 음악보다 수평적 음악을 중시한 것 같다. 음악의 민주화 그러면서 반음계주의-불협화음주의-신즉물주의다. 쇤베르크가 한 말도 작곡가는 예견하는 자 개념미술처럼 음악적 아이디어가 중요하는 말도 보이네요. 지금까지 백남준 연구는 이 논문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허술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번에 베를린에서 활동하.. 더보기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 시작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 이미 시작 by 유목민 2009/07/28 20:50 seulsong.egloos.com/2793827 덧글수 : 0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 이미 시작 백남준은 21세기를 예견한 철학자 슈퍼하이웨이 첫 휴게소(The First Stop on the Super Highway) 2009년 3월7일~5월16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홈페이지 www.njpartcenter.kr/ie.html 백남준아트센터 블로고 blog.naver.com/njpartcenter 백남준 오블 blog.ohmynews.com/seulsong/252076 "현대예술은 예술 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다" - 백남준 백남준 봄나들이 슈퍼 하이웨이 첫 휴.. 더보기
[백남준 생애] 남준神堂 가슴에 모시다 In présentation des collections, 1994 « Michel-Ange de l’art électronique », « missionnaire visionnaire », « terroriste culturel », les qualificatifs ne manquent pas pour évoquer ce pionnier de l’art vidéo qu’est Nam June Paik, né en Corée en 1932 et installé aujourd’hui à Düsseldorf et New York. De ses premières performances aux installations multi médias, en passant par les bandes vidéo, les «.. 더보기
[백남준] 권위적 오페라 거부하고, 로봇 오페라 창안 1 // 120년 간 가족사가 담긴 사진저작권 김수경 아래 백남준 해외여행 때 꼭 가지고 다니는 가방, 뒤샹의 La Boîte-en-valise(여행용 가방)과 비교가 된다. 로봇 오페라 아리아가 포함된 오페라는 평범해 아리아가 들어있는 오페라는 지루해 카라얀은 너무 바쁘고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고 바흐는 너무 길고 돈은 너무 귀해 메트로폴리탄은 너무 어렵고 멜로드라마는 너무 구닥다리고 엔디 워홀은 너무 팝적이다 로봇오페라 로봇오페라 유럽고전오페라를 내동댕이칠 할 정도로 배짱 좋은 백남준 그는 기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오페라를 거부하고 로봇오페라를 창안했다. 더보기
[백남준] 글쓰기, 한국 최고의 글쟁이 '김현' 극찬 백남준의 글은 긴장과 공포 무엇보다 억압을 전혀 주지 않는다. 그에게 스노비즘(지적 과시나 허영)은 찾을 수가 없다. 롤랑 바르트 이런 글을 읽으려면 초긴장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때 한국 최고의 글쟁이 평론가 '김현'은 백남준 글쓰기를 극찬하다> 한국의 '롤랑 바르트'라 할 만한 '문학비평'에서 일가를 이룬 '김현', 그는 비디오아트를 잘 이해 못했지만, 문학평론가로서 백남준의 '말'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다. "말이란 원래 억압적인데 백남준 말은 전혀 억압적이지 않다. 말에서 엄숙주의가 없다." -김현> 나는 백남준의 비디오예술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는않지만 그의 말하는 방식만은 높이 평가한다. 그의 말은 솔직하고 억압적이지 않다. "비디오예술은 쇼"에서 역설적 공감"나만 옳다", 풍조에 반성의 자.. 더보기
[백남준] 사유에 대한 나의 단상(fragments) [백남준 예술과 위성] 백남준은 화폭을 캔버스에서 TV 그리고 대지미술처럼 아니 그것보다 더 넓게 우주위성으로 확대했다.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전설에서 왔다. 전설은 매우 요긴한 예술 창작의 동기(motivation)가 된다.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준다. 백남준의 위성아트는 칠월칠석(에틋한 사람의 이야기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 가지고 왔다. 백남준은 미국과 소련의 지식인이 이념을 넘어 위성에서 만나 소통하기를 원했다. 냉전시대를 극복하는 한 방안으로 본 것이다. 백남준은 미국의 좌파 소설가와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위성아트를 통해서 서로 토론하기를 원했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관한 단상 중에서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1월 1일 스타들을 한 자리에 모으.. 더보기
[백남준] 먼 미래인 10만년 후도 생각(11932년, 난 10만 살) 여기서 백남준은 자신이 죽고 10만살(천년의 100배)이 되는 이후까지 먼 미래도 사유하다 "11932년에 만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는 십만 살이 될 것이다" 1978년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마흔여섯 살이 될 것이다. 1979년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마흔일곱 살이 될 것이다. 1980년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마흔여덟 살이 될 것이다. 1981년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마흔아홉 살이 될 것이다. 1982년에 만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쉰 살이 될 것이다. 2032년에 만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는 백 살이 될 것이다. 3032년에 만일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나는 천 살이 될 것이다. 11932년에 만일 내가 여전히 살.. 더보기
[백남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30년, 2010년 한국판 번역 백남준 연구서 서양미술사가(Lemeer Irmeline) 저서 대단한 업적 우리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제는 우리도 해야 한다. 이영철 교수의 큰 공로이다. 이 저자가 도움을 받는 분들, 단체, 갤러리 중 우리가 접근하기 힘든 곳이 많다. 이 책이 나온지 내년 꼭 30년이 되네요(1993-2023) 위 저서 저자(Lebeer Irmeline)가 책을 쓰는데 도움 받은 곳 1) 뉴욕 시러큐스 에버슨 미술관(전위아트 전용 전시장), 2) 쾰른 뒤몽그룹 내 미디어출판사, 3) 슈투트가르트 좀 문서보관소, 4)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연구소, 5) 베를린 독일학술교류처DAAD, 6) 파리 퐁피두센터, 7) 파리 시립미술관, 8)) 뉴욕 휘트니 미술관, 9) 쾰른미술협회와 역사박물관, 10) 취리히 시립미술관, 11.. 더보기
[백남준] 모든 가치 부정하는 선불교, Dada, 직지, 선불교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권위주의에 대한 철저한 부정 혹은 저항). 그래서 서양미술사에 다다이즘(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닮았다. 선불교 경전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조상이나 스승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를 보면 조사를 죽여라" - 백남준 스타일,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다. 직지가 바로 선불교 계열이다. 직접 지적하는 방식(학생을 보고 "니가 바로 부처야!") 백남준 베니스비엔날레 참가해 부처의 목을 치다 선불교의 전승이다. 더보기
[백남준] '손철주'가 쓴 그에 대한 짧은 얘기 '헐랭이' 나는 헐렁이 혹은 헐랭이 - '손철주'가 쓴 백남준에 대한 짧은 이야기. 백남준을 만난 대부분 기자들은 "백남준은 하품 빼고 모든 게 코멘트다" 만만한 상대 아니었다. "헐랭이가 일을 낸다구. 헐랭이-헐렁이가 뭔 줄 알아? 헐렁헐렁한 거 말이야. 옷도 헐렁하고, 생각도 헐렁하고, 행동도 헐렁헐렁한 걸 보고 헐랭이라고 그래. 꽉 조인 건 좋지 않아. 헐랭이 같은 사람이 깜짝 놀랄 물건을 만드는 법이지. 진짜예술가는 헐랭이(Software)야." 1984년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서울에 왔을 때였다. 지구상에 둘도 없는 몽상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예술가가 마침내 고국 땅을 밟은것이다. 언론은 그의 귀향을 '금의환향 이라고 했다. 맞았다. 삼현육각 잡히지 않았다 뿐이지 행차는 대과급제 이후에 .. 더보기
[백남준] 삶과 예술 소개 프랑스어(Keitelman Gallery)> Biography 아래 백남준 삶과 예술 https://www.mutualart.com/Artist/Nam-June-Paik/BC44AEA7A8F9403E/Biography?utm_source=mutualart&utm_medium=share&utm_content=facebook&utm_campaign=1853e7e0dee423-0fd62103508fa9-26021151-15f900-1853e7e0def1bb&fbclid=IwAR1owfb7eQ-LNBUVxTW9Nn2FR8JlIB2XwKl9NFqhqECruVTlgnOvIOgik90 Nam June Paik est un artiste américain d’origine coréenne né en 1932 à Séoul et mort en 2006 à Miam.. 더보기
백남준, 1993년 메가톤갤러리 '하우젠앤워스' 전시 '하우젠앤워스(Heisen and Wirth)' 스위스에서 출발한 글로벌 3대 브랜드 메가톤급 갤러리(9개 갤러리)에서 백남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다. [질문:고승연] 1993년에는 백남준 작가의 전시를 열기도 했는데, 당시 빈 공장 건물을 빌려 성공적으로 이끌었죠. 이 경험이 나중에 하우저앤워스가 어디에 '공간'을 열지 선택하는데 있어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알고 있다. 마침 올해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이기도 한다. [대답: 마누엘라 워스] 백남준은 우리가 대단히 존경하는 작가예요. 당시 우리는 취리히 서쪽의 공업 단지에 있는 빈공간을 빌려 전시를 하자는 제안을 했죠. 그렇게 라는 전시가 탄생했는데, 이게 우리가 처음으로 했던 '팝업' 개념의 전시였고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와의 .. 더보기
백남준 1974년 TV가 INTERNET가 될 것은 예언하다 백남준 여기서 TV가 INTERNET이 될 것과 그리고 INTERNET시대가 되면 종이 없는 사회(paperless information forms)가 될 거라고 예언하다. 인터넷 쇼핑도 언급하다. "TV를 1001개의 새로운 응용을 위한 확장된 혼합미디어 전화(선) 활용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이다" 백남준이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을 그렇게 존경한 이유. 그래서 백남준 1990년 '프레-벨맨' 조각상(21세기 디지털 등으로 무장한 전형적 인간상)을 만들다. 백남준 1990년 '프레-벨맨' 조각상(21세기 디지털 등으로 무장한 전형적 인간상)을 만들다. 전시 장소: 프랑크푸르트 커뮤니케이선 박물관(DER PRE BELL MAN VOR DEM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 더보기
백남준과 절친이었던 2명 대통령(플럭서스회원) 백남준 전 세계 예술인과 지식인, 그들과 우정과 지성의 네트워킹의 천재, 플럭서스 친구들 중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최초의 극작가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통령이고 또 한 사람은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 후 의 초대 대통령이자 음악가이면서 100권의 저서를 남긴 이들과 우정도 각별했다. 1989년 리투아니아의 주권 독립을 위한 연설 중인 란즈베르기스. 리투아니아 국가중앙기록원 더보기
백남준 1969년 누구나 방송인 될 수 있게 하다 백남준 '글로벌 그루브(전 세계인이여! 모두가 신나게 놀아보자) 1973년 작. - 백남준 왈, "비디오신디사이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1973년이면 컬러 TV가 흔하지 않았던 시대인데 어떻게 백남준 '글로벌 그루브(전 세계인이여! 모두가 신나게 놀아보자) 이런 작품이 가능해던 것인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1969년 아베와 함께 '(백-아베) 비디오신디사이저'의 발명으로 백남준은 개인도 방송전문 생산자처럼 KBS 정도의 방송 만들기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만든 최초의 유튜브인 셈이다. 백남준은 1973년 "앞으로 누구나 1인미디어(유튜브)를 만드는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예언하다. 요셉 보이스의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는 말을 더 쉽게 이해시켜준 .. 더보기
[백남준] '서양미술판' 추방시킨 첫 전시, 20개 '공로' 저 백남준 미소를 보라! 그가 단단히 큰일 낼 결심을 한 표정이다 '서양 미술판' 추방(부제)시킨 백남준 첫 전시가 남긴 20가지 '공로' [1] 독일에서 7년간 실험적 TV 후,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SIGHTS & SOUNDS 통합하는 개념 도입 [2] 독일 혁명가 탄생 도시 부퍼탈 전시 그래서 그의 미학적 풍토 혁명적 [3] 서양 성상를 과격하게 파괴하는 문화테러리스트 방식 [4] 모든 예술 장르로 하나로 묶는 통합적 예술 양식(Gesamtkunstwork) [5] 그는 새로운 예술론을 내놓다. "예술이란 사람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 [6] 그의 첫 전시에 소리소문없이 떨어뜨린 서양 미술판에 원자폭탄 투하하다 [7] 서양에는 족보 없는 예술, 7년간 이를 악물고 준비? [8] 왜 부제가 추방 EX.. 더보기
백남준 '영화를 위한 선', 여전히 논쟁적" -이한범 백남준론 -이한범 "이 작품 여전히 논쟁적이다" "백남준은 빛이 이미지가 된 자리에, 이미지 자체를 없애버렸다" -메카스. 영화를 위한 선의 16mm 버전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아카이브 형태로 수장고에 보존 중이다 http://leehanbum.com/writing/zen-for-film 이 작품은 동양의 선(Zen)으로 조명해본 서구적 영상기법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려는 상상을 한 작품 같다. 플럭서스 정신과 라우센버그와 존 케이지의 영향이 보인다. 백남준은 고다르 식 누벨바그 실험을 선(Zen)의 철학을 통해 이미 시도한 것인가. ‘을(를) 위한 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백남준의 작업은 1961년부터 196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작업은 머리를 위한 선(1961)으.. 더보기
"책은 랜덤액세스의 가장 오래된 형태" -백남준 "책은 랜덤액세스가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 -백남준 질문: 백남준의 랜덤액세스 미학이란 뭔가? 대답: 1) 우선 서구근대주의 이중적 위계를 해체하는 것으로 백남준 미학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자 무기이다 쉽게 말해 뒤통수를 치는 도깨비 장난 같은 예측불허의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취해야 우리가 서구와의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서양이 만든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그 룰을 바꿔라") 첫 전시에서 자기 마음대로 작곡하기를 시도하는 [랜덤액세스(작곡하기)]발표하다. 막대꼬치에 꽂혀 있는 레코드를 관객이 즉석에서 마음대로 골라 변형해 작곡할 수 있는 방식이다. 관객이 전시의 주인임을 선포한 것이다. 이 말은 롤랑 바르트가 1968년 에서 한 "독자의 탄생과 저자의 죽음"이란 말을 연상시킨다. [총괄] .. 더보기
[백남준] 삼국유사 판타지, 장자보다 더 무시무시해 백남준 한자와 노장사상 경기 중 시절 천관우 선생에게 배우다 “老莊? 老莊사상하고 나하고 관계를 말하라구? 내가 경기학교 다닐 때 동아일보의 천관우가 우리 한문선생을 했거덩. 그때 『莊子』를 가르쳐줬어. 그런데 너무 어려워. 너무 복잡하고 방대해. 그리구 읽기도 어려워. 그러니깐 『老子』를 읽어야지. 노자는 五千말밖엔 안 돼니깐 짧구 클리어(clear)해. 『老子』를 뻥 튀기면 『莊子』가 되는 거야. 그런데 그냥 튀긴 게 아니구 『장자』에는 판타지가 들어갔지. 『莊子』의 판타지는 무시무시해. 하여튼 나사(NASA)에서 일하구 있는 사람들보다 스케일이 더 크닝깐. 『莊子』에게서 배울 건 시공관이야. 시간하구 공간이 따로따로 놀지를 안커덩. 그리구 그 스케일이 엄청나. 하여튼 무시무시해. 그런데 이 무시무시.. 더보기
[백남준] '장 피에르 빌헬름에 대한 경의' 1978 뒤셀도르프 갤러리 22에서 1978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갤러리 22를 운영하던 빌헬름은 무명시절부터 백남준과 플럭서스를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장 피에르 빌헬름(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유명하다)이 백남준 1963년 첫 전시회 서문을 쓰다. 그 서문은 이런 시적 언어로 시작한다 "이번 전시는 온 우주에 음악이 스미게 했다" 결론 백남준은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예술가의 성공은 반은 '운'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더보기
[백남준] 20세기에 천리안으로 30세기 인류의 미래 펼치다 [백남준과 30세기 연관성 ] 코리아 천년 2번 열었다 앞으로 1번 더 열어야 한다10세기 열다 직지(금속활자) 와 디지털 언어 한글 발명 20세기 열다 유튜브와 인터넷과 SNS 인공지능 메타버스30세기 열다 우리는 30세기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세종+백남준=제3의 천년) 한국, 2번이나 새천년을 열었다. 자부심, 가져도 된다. 이제 3번째 새천년을 열어야 한다> -백남준과 30세기 첫번째 새천년 열다: 고려금속활자(구텐베르크가 고려금속인쇄술 모방하다)와 디지털 언어 한글두번째 새천년 열다: 백남준 1974년에 인터넷 발상: 전자초고속도로또다시 세번째 새천년(3000년) 열라고 백남준 우리에게 유언으로 부탁하다진정한 예술가란 이렇게 한 세기(혹은 밀리니엄 1000년)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voyant, .. 더보기
백남준과 나와 나의 부친과 나의 누이 [하나] 1956에 유학차 독일에 도착 1957년 백남준 독일에 있었다. 1957년 부친 독일에 있었다 이것도 인연인가 [둘 ] 1978년-1982년까지 누이가 뒤셀도르프에 있었다 백남준 1977년 말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 되다 이것도 인연인가 백남준과 나는 어떤 인인이 있는가 사실 나는 백남준은 직접 본 적은 없다. 물론 TV 많은 영상과 뉴스에서 봤다. 백남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70년 말 경인 것 같다. 백남준 1978년부터 독일의 명문 미술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를 했는데 그때 누이가 뒤셀도르프 살았고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간간히 들은 것 같다. 당시에는 차범근도 독일에서 축구선수로 이를 날리 때다 차범근의 나의 중고 동기동참이다. 그는 중3대 경기도 화성인가 축구 특.. 더보기
[들뢰즈] 백남준과 들뢰즈: 모랄과 에틱 GILLES DELEUZE Spinoza Philosophie pratiques -들뢰즈. La philosophie théorique de Spinoza est une des tentatives les plus radicales pour constituer une ontologie pure : une seule substance absolument infinie, avec tous les attributs, les êtres n'étant que des manières d'être de cette substance. Mais pourquoi une telle ontologie s'appelle-t-elle Éthique ? Quel rapport y a-t-il entre la grande propos.. 더보기
<NJP 여름 페스티벌-스물 하나의 방> -백남준아트센터 오는 7월 20일 백남준의 79번째 생일에 맞춰 [오마이뉴스 백남준 써머 페스티벌-스물 하나의 밤] 관련 기사 http://t.co/zBhw99N [관련기사주간한국 박우진] http://weekly.hankooki.com/lpage/arts/201107/wk20110727005302105130.htm 백남준아트센터 카페테리아 마당 7월 20일부터 9월 13일까지 총 8주간 펼쳐지는 이번 페스티벌은 백남준이 1961년에 작성한 ‘스코어’ 에서영감 받아 기획된 여름 축제로 아트센터 2층과 야외 공간 등에서 전시와 공연, 퍼블릭 프로그램 등 총 20개의 작품과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리치 오와키 Richi Owaki I '스킬 슬라이드 Skinslides' 영상 설치, 2009 도.. 더보기
구보타씨 '나의 사랑, 백남준' 회고록 출간 [백남준78회생일축하] 내가 사랑한 천재, 백남준을 추억합니다 백남준생일7월20일 구글대문(2010.7.20일자) 웹디자인 마이크 더튼 Mike Dutton - 부인 구보타씨 '나의 사랑, 백남준' 회고록 출간 '비디오 아트계의 조지 워싱턴' 관련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007/h2010072017561886330.htm "백남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완전히 빈털터리였어요. 입는 것도 형편없었고 먹고 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가난한 예술가였죠. 사람들이 슈퍼에서 먹는 것을 사기는 쉽지만 예술품은 정신적인 것이라 예술품을 팔기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죠. 뉴욕에 예술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더보기
[백남준총서 2권 출판회] 서구 미술 뭉개다 [백남준총서 2권출판기념회] 서구문명을 욕조에 쳐박고 돈의 신 뭉개다 - 2010.4.2(금) 프레스센터 20층 -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 백남준아트선터 백승원 행정팀장과 이영철관장. 이번 출판에 두 분의 공로가 너무 크죠. 멀리 뒤로 또 한 사람의 주역인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 토비아스 버거가 보이네요 백남준 그가 왜 천재인가 그는 진정 놀 줄 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잘 노는 것이다. 21세기는 영웅은 유희적 인간이다. 바로 그런 21세기형 전형을 보인 사람이 백남준이다. 제대로 놀고 싶은 우선 6개 국어 정도는 해야 한다. 그는 6개국을 하는 놀이꾼으로 서구의 지성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렸다. 그리고 돈의 신을 완벽하게 뭉갰다. 철저하게 무시했다. 물론 작업을.. 더보기
살아있는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같이 만나다 백남준아트센터에 가면 살아있는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를 만날 수 있다 - TV(텔레)토피아 제국의 황제 돌아오다 2010년3월13일-5월9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www.njpartcenter.kr - 2010년 백남준 상설전 전면개편기획전 신소장품 전시오픈닝행사에 다녀와서 백남준 I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1995 백남준이 말하는 백남준 백남준이 로제타 돌의 형식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말하고 있다. 영어 불어 독어 일본어 한국어 등으로 쓰여있다. 그의 문장에서 누구도 하지 않은 말이 많다. 그리고 그의 한국어는 일제시대 양반들이 쓰던 한국어 투가 많다. 짧고 투박하지만 독창적이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다. 그는 누구가 말하지 않는 신은 죽었다와 같은 니체 풍의 언어로 그득 넘친다. 하지만 그의 한국어는 반말투라.. 더보기
문화 칭기즈칸이 우리에게 준 선물 10가지 [백남준 4주기에] 20세기 문화의 칭기즈칸 백남준이 우리에게 준 선물 10가지 - 다다익선, 정치적 다양성과 사회적 관용, 문화예술 공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백남준은 3천년대 창조적이고 유희적인 신인류상(Global Encoder)을 제시하다. 백남준아트센터포스터사진 위성시대혁명을 꿈꾸었던 백남준 http://blog.naver.com/yj651215/140088764499 http://www.sculpture.org/documents/scmag01/june01/paik/paik.shtml John Hanhardt, curator of Paik’s 2000 retrospective at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asserts, "Paik is a utopian ar.. 더보기
[백남준] 그는 부처, 귀로 보고 눈으로 듣다] [부처 백남준은 귀로 보고 눈으로 듣다] 백남준은 선불교의 정신에 따라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미술을 듣고 음악을 보는)' 예술가가 되었다. 음악가로써 미술을 연주했고 미술가로서 음악을 그렸다.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천재가 된 셈이다. TV 부처 1976-78 폐쇄회로 백남준의 명상작품 가운데 백미로 손꼽히는 TV 부처는 1974년 뉴욕의 보니노 화랑에서 가진 네번째 개인전에 처음 출품된 이후 돌에 둘러싸인 모습, 흙 속에 파묻힌 모습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번안되어 소개되어 왔다. 서양의 과학기술과 동양의 명상 세계가 접목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그 둘의 세계가 서로의 이질성에 대한 담론을 나누며 서로의 정체성 확인에 몰두해 있는 상황을 알게 된다. 심오한 명상의 세계마저 테크놀로지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