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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50대 (1982-91)

[백남준] 라울 뒤피,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 1[라울 뒤피와 백남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 로봇 퐁피두 전시 / 원문 백남준 아래 설치물은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에 있는 Raoul Dufy의 전시실 방을 배경으로 전자 로봇을 설치하다. 그래서 백남준은 이 작품의 이름을 전자 요정(La Fée électronique.)>이라고 붙이다 //Nam-June Paik, 1989, douze postes de télévision en bois, douze moniteurs couleurs, un lecteur vidéodisque laser, tissu, fleurs en tissu, 300*200*50cm, Paris,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L'auteur de ce robot for.. 더보기
[백남준]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야기 2024.04.25 백남준 유치원 동창이자 수필가 이경희 선생(1932 생) 오늘 12시에 / 향년 92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내 몸이 그렇게 안 좋더니 결국 이경희 여사가 귀천, 자택은 용인이지만 장례식장 어딘지 확인? 반포 성모병원 장례식장 / 발인 4월 27일 8시 / 문상 25일 12시부터 / 사진 상. 2013년 / 하.이은화 선생님(오마이 기사 제가 초대 / 미술 미술사랑 미술사람 사람 생생한 미술관 이야기 전 세계 누비다 / 미에 미쳐서 미를 나누려고 하는 미술 스토리 텔러) - 저의 소개(김형순 30세기를 산 20세기 인물이라  제 이야기 좀 이해가 안 될수도?/백남준 불가해한 작고 -대체불가능 작가/백남준 연재 2년 -유튜브 6개월 -백남준 / 포럼.. 더보기
[백남준] 만약 코리아에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쫄딱 망했다 [백남준] 만약 대한민국에 그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쫄딱 망했다 [1부] 백남준 누구?[백남준 10년마다 크게 발전하다] (아래사진 백남준 1964년이후 10년간 뉴욕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 걸리다) / 백남준 '1932년' 초부자 집에서 태어나다 집이 3천평이고 집에 캐딜락 수리공 10명 고용 / '1942년(10대)' 뭘 했나? 프랑스어를 독학, 누이의 피아노 공부를 보면서 혼자 연습과 작곡 / 중간에 맑스를 접하면서 1945년(경기중 1학년) 당에 가입 / '1952년(20대)' 동경대 공부 쇤베르크 연구 / '1962-3년(30대)' 독일에서 첫 전시 TV 혁명(TV아트로 서양미술 추방-서양미술사 해체, 서양미술사에는 TV가 없다) / 그 중간인 60년대와 70년대 사이인 1968-1.. 더보기
[백남준] 퐁피두 삼색기와 랜던액세스 1. "책은 랜덤액세스가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 백남준 * 랜덤액세스는 질서정연한 서구 근대주의의 해체를 의미한다. 선사시대에는 예술(art)에 주술(magic)이 들어갔지만, 21세기에는 예술(art)에 주술 되신 기술(technology)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현대미술에서 주술(근원적 생명을 부활시키는 에너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백남준은 선사시대 주술성을 대신해서 샤머니즘 아트(한국 굿 문화)를 도입했다. 기술에는 야생성, 주술에는 과학성이 결핍될 수 있지만 이를 상호 보완하고 융합해서 만든 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다 2. "의심할 여지없이 백남준의 단일 작품(삼색기 1982년)이 퐁피두센터 전시에서 이렇게 큰 공간이 제공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개월 동안 퐁피두 전시..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 아트-위성 아트의 창시자, 레이저 아트의 개척자 0 백남준 없었다면 큰일 날뻔 했다. 서양미술 공세가 원자폭탄급이라 / 그들보다 더 센 핵 원자폭탄급이고 그들을 훨씬 뛰어넘는 방어막인 백남준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가 서양미술에 삼켜 먹힐 뻔했다 1958 케이지 만남 1960 존 케니비 넥타이 잘림 1961 1 백남준, 비디오 아트와 위성 아트의 창시자이고, 레이저 아트의 개척자이다. 2 한국은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천문학의 나라다. 조선에서 아침 朝라는 한자를 보면 이 들어 있다. 백남준은 바로 천문학의 후손답게 을 최대로 발휘해서 를 바탕으로 그것을 예술화했다 그것이 바로 위성아트다. 위성아트의 정신을 바로 초국가적으로 초연결을 의미하는 것이고 지구촌에 인류공동체(참여와 나눔과 공유와 연대를 극대화하는 코뮌세상) 건설하는 것이다 3 백남준과 .. 더보기
[백남준] "그는 나의 엄마 / 백남준 한마디로 세계적 예술 샤먼" Art press, nov. 1989 // Intro : pourquoi ce titre : Souvenir de ma mère l’oie… Loi… / Ma mère Paik // Quand Paik en aura fini avec la vidéo, il écrira, me dit-il, un grand livre sur la Chine. Je lui réponds que moi, c’est à peu près le contraire. Quand j’en ai eu fini avec la Chine, je me suis mis à m’intéresser à l’art vidéo. Et comme par hasard, le café où nous échangeons ces propos, au coin d.. 더보기
[백남준] 파리 김순기 작가, 뉴욕 백남준 쳐들어가다 파리에 사는 김순기 작가, 뉴욕에 사는 백남준을 쳐들어가다 1982년 / 그녀는 인터뷰를 비디오로 작품화하다. 프랑스 유명 철학자 데리다와 낭시 등과의 대담도 작품화하다. 백남준은 가장 오래된 문서는 바로 이라고 말한다. 인류문명적, 인류학적 대화를 나누다 [인터뷰 ] 백남준과 김순기, 질문과 대답이 다 예리했다. 백남준 자택에서 //김순기 재불작가의 탁월한 비디오 작품 1982년 백남준 예술론에 대해 다양하게 묻는다. 백남준의 사상의 광맥은 무궁무진하다. 아니 광활하다. 이 작품 옆에 김순기 작가가 프랑스 사상가이자 해체주의 철학으로 유명한 데리다와 인터뷰 내용을 비디오아트로 만든 것이 같이 있다. 백남준도 데리다 그 이상의 대단한 사상가였다. 김순기는 백남준에게 물었다. 중국과 몽골의 차이는 뭔가? .. 더보기
[백남준] 그는 '인복'이 터진 사람이다. 왜? '홍익인간'이기에 홍익인간(두루 넓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백남준은 세계 예술가 중에서 인복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샬럿 무어먼, 슈톡하우젠 등등 기라성같은 예술가와 절친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인복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가 홍익인간으로 먼저 남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을 만난 미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일본인 등등 모두 그에게 반했고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만큼 그들도 도움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미국 록펠러 재단 자금부장과도 절친이 되다. 그는 MoMA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이 록펠러 지원금을 받도록 백남준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다. 바바라 런던은 미술지원금을 받게 되고, 그 후 백남준에게 별명 하나를 붙이다. 백남준은 예술가 이전에 외교관이다. 협상에 귀재라.. 더보기
[백남준] '그 안에 무당 있다', 엑스터시 같은 황홀경 없이 어찌 예술인가? 시게코 여사 책 재구성 "남준 안에 무당 있다".  남준 어머니는 무속신앙을 믿는 분이었다. / 그의 어머니는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 점괘를 받아 오셨단다 남준과 그의 부인은 동양철학을이야기하다가 말싸움을 심하게 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 일본의 선도 좋지만 한국의 샤머니즘에 비하면 무척이나 따분하지 이에 부인은 발끈한다 / 무슨 소리예요 둘 다 각자의 이론과 배경을 가진 철학 아니에요 위아래가 어디 있어요 / 남준도 이에 못지 않게 반박한다 / 절대 아니야 한국의 무당은 훨씬 창의적이라고 / 사실 한국문화의 뿌리는 샤머니즘이다 한국문화는 유교적이기보다는 불교적이고 불교적이기보다는 샤머니즘적이다 이것은 동학사상과 함께 한국문화의 기원이자 뿌리가 되는 근간이다 그러나 이를.. 더보기
[백남준] 내년 첫날 광화문에서 '굿모닝! Mr.오웰' 재방영하라 "백남준은 세계 미술사에서 하늘(우주)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린 오페라를 연주한 첫 예술가다" [22세기는 바로 오늘부터 시작한다] 40주년( (1984~2024) 맞아 내년 첫날인 2024년 1월 1일 광화문 광장 역사박물관에서 지금보다 훨씬 큰 대형 스크린으로 방영해야 한다. 1984년 백남준 작품의 오리지널을 살리되 최근 NFT, 메타버스, 뉴미디어 기술을 합쳐 전 세계에 방영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백남준 작품이 임팩트가 없다고 하는데 이번에 한번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백남준은 1984년 캔버스로 전 세계를 연결해 우주로 확장한 천상에서 전자 오페라를 그려낸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와 하이아트를 반반씩(백남준 주특기)로 살려낸 것이다. 당시에 최고 대중예술가와 고급미술가가 총출동한 지구상에 .. 더보기
[백남준] 1984년 1월 1일 우주 미학, 디지털-인터넷시대 선언 백남준 1984년 1월 1일 우주 미학, 디지털시대, 인터넷시대를 선언하다> 1984년 위성아트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creating a multi-temporal and multi-spacial symphony) 일종의 전 세계 방송의 정보와 뉴스가 하나 하나 악기가 되어 총체적으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라고 본 것이다. 백남준은 거기서 총감독 총지휘자가 되다. 그래서 이 작품을 흔히 '우주 오페라'라고 한다.  백남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기 직전 1993년 겨울에 "이제 우리에게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Pour nous, le XXl e siècle commencera le 1er janvier / For us, the twenty-f.. 더보기
[백남준] 노은님, 함부르크 미대 다닐 때 그의 제자 [노은님(아래 작품)과 백남준] 백남준은 뒤셀도르프미술대학 정교수가 되기 전에 잠시 함부르크미술대학에서 초빙교수를 했다. 그때 노은님을 만나 그녀를 평생 자랑하고 다녔다. 훌륭한 화가라고 // 노은님은 노자의 세계를 독일 표현주의 풍으로 천진난만하게 그렸다. 그래서 독일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노자의 동양 사상도 배울 수 있고 거기다 자신의 나라에서 잉태한 독일 표현주의 화풍이 결합되어 있으니 금상첨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더보기
[백남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전 세계적에 영향을 주다 PART 3 Culture and Politics: Local and Global // // 백남준은 혁신적인 예술 아이디어의 창작과 전시의 중심지인 로어 맨해튼에서 살면서 작업했다. 백남준은 이 뉴욕을 출발점으로 전 세계를 여행했고, 독일, 프랑스, 브라질, 멕시코,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서 현지 예술가처럼 인정받았다. 많은 국가와 문화에서 백남준은 그를 자기 나라의 예술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다른 삶의 방식을 탐구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생각과 예술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 Nam June Paik was an intensely political person. He understood how organizations work, which people held power, an.. 더보기
[백남준] 말하길, 18세기까지 '동양 3국', 유럽의 선진국 모델 18세기까지 동양 3국(한중일)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 -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하는 동양을 후진국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히 미신으로, 18세기까지 유럽인은 동양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중국을 선진국의 모델로서 글을 썼고, '몽테스키외'나 '아담 스미스'까지도 그렇게 썼다.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직물, 실크, 식기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며 유럽에서는 목기, 즉 나무로 만든 식기였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설거지가 잘 되지 않아서 병원균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죽었다. 중국이나 동양에 왜 인간이 많은가 하면 일찍부터 도자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목기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게 때를 닦아낼 수 있다. 페스트가 동양에서 그렇게 크게 유행하지 않은 것도 그.. 더보기
[백남준] 1984 Mr. 오웰 파리에서 총지휘, 서구인들 한국 전혀 몰라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생중계 파리 퐁피두센터 중계자 사령탑 앞에서 백남준이 총지휘를 하다. 당시 이를 본 한국인들 감격하다. 천호선 선생(문화 행정 공무원)과 김홍희 선생 등 이를 참관하다 천호선 김홍희 선생 부부가 그날 이 행사에 참가한 한국 방송 스텝(step)과 한국인들 식사에 초대해 위로하다 // 1984년 당시만 해도 서구인들 한국에 대해서 거의 몰랐다 // [1988년] 세계 올림픽으로 한국이 처음으로 지구촌에 데뷔하다 // 그리고 30년 후 [2018년 문재인 정권 당시] 한국은 50-30클럽 7개 국가 중 한 나라가 되었다 // 즉 인구 5천만명 이상, 국민소득 3만 달로 이상 대단한 성과다 //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나머지 6개 나라(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작업 끝나면 난 중국에 관한 놀라운 책 쓰겠다" [백남준] '장 폴 파르지에'에게 "비디오작업 끝나면 난 중국에 관한 놀랍도록 두꺼운 책 쓰겠다" 전했다는데 // 그런데 정말 썼나? // MIT 대학출판사에서 나온 후반부에 중국의 명언과 잠언 등을 영어로 번역한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 글 제목은 이라고 난 아직 못봤다. 백남준은 평생 서구보다 훨씬 수준 높은 지혜문서인 중국고전을 서양인에게 알리려 했다. 2016년 백남준 10주년 맞아 갤러리현대를 방문한 장 폴 파르지에(파리 8대학에서 20년간 백남준을 강의한 백남준 전문가 원래는 '고다르' 전공자 아래 사진 백남준 처음 만났을 때 사진과 후반기 사진) 인터뷰한 후 // 당신의 백남준 저서(1989년 발간 아래)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 프랑스로 귀국한 후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 그 책.. 더보기
[백남준] 1989년 퐁피두센터 홍라희 여사, 박명자 회장 백남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프랑스 미테랑 정부로 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프랑스 측 큐레이터와 작업을 하면서 찍은 사진(1989.5.27)이다 큐레이터 수잔 파제(Suzanne Pagé, 현재 파리 루이 뷔통 창조 재단의 예술 감독)와 가운데 세계적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1960년대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의 창시자)가 보인다 [1] 1989년(프랑스 혁명 200주년) 백남준, 홍라희 여사, 박명자 회장, 원화랑의 정기용대표등이 파리 시립미술관 에서 열리는 백남준 전시 관람 [2]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당시 한국의 경제는 단군 이래 최고의 호경기였다. 내가 1989년(프랑스혁명 200주년) 8월 파리에 갔을 때 한국돈 가치가 정말 높았다. 돈을 쓸만 했다. 위사.. 더보기
[백남준]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드로잉 심플하다 // 백남준 드로잉(작품 구상) 정말 심플하다. 백남준 왈 "[...] 이는 마치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프랑스 철학자)와 노먼 메일러(1923~2007 미국 맑시스트 소설가)와 실존문제를 놓고 위성대담을 벌리는 걸 상상하는 것과 같잖아요. // 양 대륙 간 하늘이 막혔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 고작 몇 백 명을 놓고 하루 저녁 공연하는 브로드웨이공연보다 덜 드는 돈으로 나는 대륙 간 심지어 철의 장막에 갇힌 수백만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작품구상 중 하나였다 더보기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백남준 16만달러 빚지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국가가 해도 하기 힘든 프로젝트를 // 백남준 개인이 하다) 때문에 // 백남준 미국 PBS 공영방송에 16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고 // 매달 일정액을 분납해왔다 그런데 // 돈이 갈급한 시기에 // 마침 KBS가 방송권을 사줬기(1만 8천 800달러 )에 // 그 재정적 위기를 조금이나마 // 넘길 수 있었다. // PBS 지불할 돈의 8분의 1을 확보한 셈이다. //  이 일에 다리를 놓은 사람은 바로 천호선 선생(당시 문화부 장관의 비서실장) // 아찔한 순간들이다. //  백남준 이 빚을 갚기 위해서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앨런 긴스버그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 무조건 판화 제작을 강제하고 // 그 작품 세트를 팔아서 제작비를 충당했다. // .. 더보기
[백남준] 80년대 '위성아트', 1977년 '카셀'에서 시작 [백남준] 80년대 백남준 위성아트는 1977년 카셀 도쿠멘타 시작 비디오 아트의 중요한 기원을 갖고 있는 독일은 1977년 제 6회 카셀 도큐멘타를 매체 도큐멘타로 꾸미면서 비디오 탄생 이후 최초의 대규모 국제 벤트를 기획했다. 독일의 비디오 큐레이터이며 이론가인 '볼프 헤르조겐라트'에 의해서 특별기획 전시는 14명의 미국 및 유럽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1) 스페인 안토니오 문타다스 2) 미국의 베릴 코롯 3) 백남준 대형설치 TV 정글 4) 구보다 시게코의 계단으르 내려오는 나부 5) 더글러스 데이비스 그리고 독일 6) 올리케 로젠바흐, 7) 호로, 8) 페졸트의 작품이 선보였다. [1] 1977년 카셀: 개막식의 위성 원격 생방송: 제6회 도쿠멘타는 개막식부터 화제였다. 1960년대 후반, 텔레비전.. 더보기
[백남준] 정보화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백남준은 정보화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정진씨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인류학자이신데 드디어 백남준 책을 내셨군요. 그는 모든 사람은 무당이다 말로 백남준의 사상의 기조를 요약하고 있네요. 인간은 무당이 될 때 가장 초인적인 인간이 된다. 거의 신이 되는 것이다. 신명 속에 한국인은 최고의 에너지를 발휘한다. 2002년 붉은 악마가 그렇다. 요즘 사람들이 신기와 신명이 없다. 죽임의 세력(귀신)이 너무 승하여 살림의 세력(신명)이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에도 신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즉 샤머니즘의 에너지 말이다. 한국인은 샤머니즘의 안에서 그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그런 샤먼의 원조는 바로 단군이다. 칭기즈칸이 세게를 정복한 것도 바로 샤먼의 힘이고 백남준이 세계미술을 평정한 것도 바.. 더보기
[나의 사랑 백남준] 발췌 소름 돋는 천재와 3살배기 소름 돋는 천재와 3살배기 아이 -나의 사랑 백남준 중- 2011-01-04 소름 돋는 천재와 3살배기 아이 남준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사람이었다. 대론 세 살배기 아이처럼 단순하면서도 그의 사고와 지식은 비할 수 없이 심오했다. 존 케이지는 음악만 했지만 난 음악과 비디오를 섞어서 했으니 훨씬 뛰어난 것 아니겠어 그게 커뮤니케이션이고 현대적인 진화인 거야 타고난 명석한 머리와 비상한 기억력 그리고 광적인 독서욕은 그의 사고를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맴돌게 했다. 한국에서 발군의 수재들이 다녔다는 경기공립학교를 다니다가 전쟁을 만나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최고명문 도쿄대학 들어갈 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당신 남준은 굉장히 높은 점수로 도쿄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한다.. 더보기
[백남준] 기술을 인간화하는 예술을 추구하다 Nam June Paik endeavors to humanize technology and electronic media http://www.sculpture.org/documents/scmag01/june01/paik/paik.shtml June 2001 - Vol.20 No.5 by Carla Hanzal Nam June Paik endeavors to humanize technology and electronic media, a pursuit evident throughout his prolific, complex, and visionary career. He champions technology’s powerful potential to foster interactivity within our i.. 더보기
[백남준]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출품작 1989 백남준(Nam-June Paik)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출품작 1989 Nam-June Paik, 1989, douze postes de télévision en bois, douze moniteurs couleurs, un lecteur vidéodisque laser, tissu, fleurs en tissu, 300*200*50cm, Paris,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L'auteur de ce robot formé de douze postes de télévision n'est autre que Nam-June Paik, le père de l'art vidéo. Au début des années 60, cet artiste sud coré.. 더보기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 시작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 이미 시작 by 유목민 2009/07/28 20:50 seulsong.egloos.com/2793827 덧글수 : 0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 이미 시작 백남준은 21세기를 예견한 철학자 슈퍼하이웨이 첫 휴게소(The First Stop on the Super Highway) 2009년 3월7일~5월16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홈페이지 www.njpartcenter.kr/ie.html 백남준아트센터 블로고 blog.naver.com/njpartcenter 백남준 오블 blog.ohmynews.com/seulsong/252076 "현대예술은 예술 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다" - 백남준 백남준 봄나들이 슈퍼 하이웨이 첫 휴.. 더보기
백남준과 절친이었던 2명 대통령(플럭서스회원) 백남준 전 세계 예술인과 지식인, 그들과 우정과 지성의 네트워킹의 천재, 플럭서스 친구들 중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최초의 극작가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통령이고 또 한 사람은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 후 의 초대 대통령이자 음악가이면서 100권의 저서를 남긴 이들과 우정도 각별했다. 1989년 리투아니아의 주권 독립을 위한 연설 중인 란즈베르기스. 리투아니아 국가중앙기록원 더보기
[백남준]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 [백남준기획전 및 상설전] 백남준은 21세기를 예견한 철학자 슈퍼하이웨이 첫 휴게소(The First Stop on the Super Highway) 2009년 3월7일~5월16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홈페이지 www.njpartcenter.kr/ie.html 백남준아트센터 블로고 blog.naver.com/njpartcenter  백남준 오블 blog.ohmynews.com/seulsong/252076 "현대예술은 예술 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다" - 백남준  백남준 봄나들이 슈퍼 하이웨이 첫 휴게소  백남준은 우리시대 최고의 예언자이자 시인, 철학자, 음악가다. 그리고 종이문명의 창조적 파괴자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다. '참여와 소통'이라는 삶의 예술을 전위적으로 실천한 예술가 아니 정치사기꾼을 사기 치는 고.. 더보기
백남준, 그의 생애 목적 "fun, fun, fun!" 백남준과 TV와 장난치며 잘 놀기(Playful Nam June Paik) 그의 생애 목표는 "fun, fun, fun!"이다. 인생에서 남는 것 잘 논 것 뿐이다. "백남준은 매우 지적(highly intelligent)이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동양과 서양, 과학과 종교와 예술을 큰 틀 안에서 연관시키는 사유를 했다. 그는 내가 만난 본 사람 중 마음의 스케일이 가장 컸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명상의 형태로 즐겼고, 레이저 빛 아래 어둠 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레이저조각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른 조수도 그랬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특별했다. 그는 거의 완벽한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레이저작품을 응시했다. 그의 침묵이 깨지는 순간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