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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단군시대 이후 멸종했던 '홍익인간' 다시 환생하다 스키타이 단군 시대 5천년 전 있었다가 멸종했던 '홍익인간(두루 넓게 주변 사람에 도움을 주는 인간형)이 한반도에 다시 환생하다. 그가 바로 백남준이다. 그는 문화 칭기즈칸으로 "내가 황색 재앙(yellow peril)이다"라고 선언하다. 이제 유럽과 미국은 다 죽었다. "그들과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그 룰을 바꿔라"라고 선포하다. 21세기 형 전자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돌아오다. 더보기
[백남준] 말하길, 18세기까지 '동양 3국', 유럽의 선진국 모델 18세기까지 동양 3국(한중일)은 유럽의 선진국 모델 -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하는 동양을 후진국처럼 말하는 것은 완전히 미신으로, 18세기까지 유럽인은 동양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도 중국을 선진국의 모델로서 글을 썼고, '몽테스키외'나 '아담 스미스'까지도 그렇게 썼다.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직물, 실크, 식기류가 발전했다는 것이며 유럽에서는 목기, 즉 나무로 만든 식기였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설거지가 잘 되지 않아서 병원균이 발생하면 사람들이 줄줄이 죽었다. 중국이나 동양에 왜 인간이 많은가 하면 일찍부터 도자기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목기에 비해서 훨씬 깔끔하게 때를 닦아낼 수 있다. 페스트가 동양에서 그렇게 크게 유행하지 않은 것도 그.. 더보기
[백남준] 아트-과학 결함한 종합예술 - 옥스퍼드 캠프 교수 옥스퍼드 대학 마틴 켐프 교수 백남준의 과학과 예술의 종합판 원고 중 일부 이런 질문이 나온다. So can art be science and science can be art? 이 교수의 화두다. 심각한 교수들 이런 질문을 하지만 백남준에게는 예술과 과학의 경계란 전혀 없다. // 하여간 백남준은 세계미술계 존재 조차 희미한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더보기
[백남준] 1984 Mr. 오웰 파리에서 총지휘, 서구인들 한국 전혀 몰라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생중계 파리 퐁피두센터 중계자 사령탑 앞에서 백남준이 총지휘를 하다. 당시 이를 본 한국인들 감격하다. 천호선 선생(문화 행정 공무원)과 김홍희 선생 등 이를 참관하다 천호선 김홍희 선생 부부가 그날 이 행사에 참가한 한국 방송 스텝(step)과 한국인들 식사에 초대해 위로하다 // 1984년 당시만 해도 서구인들 한국에 대해서 거의 몰랐다 // [1988년] 세계 올림픽으로 한국이 처음으로 지구촌에 데뷔하다 // 그리고 30년 후 [2018년 문재인 정권 당시] 한국은 50-30클럽 7개 국가 중 한 나라가 되었다 // 즉 인구 5천만명 이상, 국민소득 3만 달로 이상 대단한 성과다 // 여기서 정말 놀라운 것은 나머지 6개 나라(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 더보기
[백남준] "비디오작업 끝나면 난 중국에 관한 놀라운 책 쓰겠다" [백남준] '장 폴 파르지에'에게 "비디오작업 끝나면 난 중국에 관한 놀랍도록 두꺼운 책 쓰겠다" 전했다는데 // 그런데 정말 썼나? // MIT 대학출판사에서 나온 후반부에 중국의 명언과 잠언 등을 영어로 번역한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 글 제목은 이라고 난 아직 못봤다. 백남준은 평생 서구보다 훨씬 수준 높은 지혜문서인 중국고전을 서양인에게 알리려 했다. 2016년 백남준 10주년 맞아 갤러리현대를 방문한 장 폴 파르지에(파리 8대학에서 20년간 백남준을 강의한 백남준 전문가 원래는 '고다르' 전공자 아래 사진 백남준 처음 만났을 때 사진과 후반기 사진) 인터뷰한 후 // 당신의 백남준 저서(1989년 발간 아래)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 프랑스로 귀국한 후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 그 책.. 더보기
[백남준] 1989년 퐁피두센터 홍라희 여사, 박명자 회장 백남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 프랑스 미테랑 정부로 부터 작품 의뢰를 받고 프랑스 측 큐레이터와 작업을 하면서 찍은 사진(1989.5.27)이다 큐레이터 수잔 파제(Suzanne Pagé, 현재 파리 루이 뷔통 창조 재단의 예술 감독)와 가운데 세계적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 1960년대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의 창시자)가 보인다 [1] 1989년(프랑스 혁명 200주년) 백남준, 홍라희 여사, 박명자 회장, 원화랑의 정기용대표등이 파리 시립미술관 에서 열리는 백남준 전시 관람 [2]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당시 한국의 경제는 단군 이래 최고의 호경기였다. 내가 1989년(프랑스혁명 200주년) 8월 파리에 갔을 때 한국돈 가치가 정말 높았다. 돈을 쓸만 했다. 위사.. 더보기
[백남준] 1984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드로잉 심플하다 // 백남준 드로잉(작품 구상) 정말 심플하다. 백남준 왈 "[...] 이는 마치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프랑스 철학자)와 노먼 메일러(1923~2007 미국 맑시스트 소설가)와 실존문제를 놓고 위성대담을 벌리는 걸 상상하는 것과 같잖아요. // 양 대륙 간 하늘이 막혔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 고작 몇 백 명을 놓고 하루 저녁 공연하는 브로드웨이공연보다 덜 드는 돈으로 나는 대륙 간 심지어 철의 장막에 갇힌 수백만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작품구상 중 하나였다 더보기
[백남준] 1995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다움(Daum) 발동 다움(Daum)이 1995년 백남준이 광주비엔날레에서 기획한 특별전 에서 처음 나왔다고 백남준은 당시 미디어아트의 세계적 권위자 미국 출신 '굿맨'을 큐레이터로 초청했다 그리고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한국 측 큐레이터로 지명했다. 백남준은 지식보다 정보를 더 중시하다. 자신을 '정보 아티스트'라고 했다. 1995년 한국에서 처음 광주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특별전으로 정보 아트(Info Art)전을 열었다. 백남준은 "한국은 다 좋은데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고 늘 말했다. 우리가 이 말을 항상 되새겨야 할 것 같다. 큐레이팅 김홍희(전 시립관장), 신시아 굿맨(아래 사진) 백남준은 신시아 굿맨 같은 세계적 정보(전자)아트 전문가를 광주비엔날레에 초대해, 우리로 하여금 정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데 .. 더보기
[공자와 백남준] 정치와 예술을 음악으로 풀다 두 사람은 정치와 예술을 음악(결국 평화)으로 풀려했다 1) 백남준 미술(총체예술)을 결국 음악으로 풀려 했다 미술도 음악(성)으로 풀 때 진정한 미술이 된다. // 백남준의 발상이 아닌가 싶다. // 물론 이런 갈 직접 언급으 하지는 않았지만... // 사실 이것은 칸딘스키기 먼저 발상하고 그런 미술을 실천했다. // 그래서 음악적 요소가 많은 추상 미술이 탄생한 것이다. // 칸딘스키와 백남준은 음악적 미술을 했다는 면에서 서로 통한다. 2) 공자는 정치를 결국 음악으로 풀려 했다. 정치를 통치가 아니라 음악(율려)이 세상을 다스릴 때 지상에 평화와 공존의 세상이 온다. 공자의 사상과 유사하다> // "율려가 무엇인가? 율려가 무엇이관데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인가? //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바로 정.. 더보기
[백남준] 그의 마지막 꿈, 서울 한강에서 뉴욕 맨해튼까지 서울에서 날마다 뉴욕 맨해튼 거리를 볼 수 있는 백남준 메가트론 작품(서울에서 뉴욕까지, 40인치 TV 150대)이 마포 한강공원에 설치되었다면 미국을 가지 않고도 생방송으로 매일 뉴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백남준의 마지막 꿈은 서울 한강(마포 여의도)에서 미국 맨해튼을 보고 미국 맨하튼에서 서울 한강(마포 여의도)을 보는 메가트론을 만든 것이었다 - 백남준 전자 테크니션 이정성 더보기
[백남준] 샤머니즘보다 더 이상적 유토피아는 없다 한국출신 백남준에게 샤머니즘보다 더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없다. // 샤머니즘의 꽃인 '굿'은 영어로 GOOD이다. // 좋은 세상(해원상생 혹은 정음정양)을 만들자는 것이다. // 박경리가 "한국 예술의 뿌리가 샤머니즘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 백남준 예술의 근간이 궁극적으로 샤머니즘에서 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백남준의 샤머니즘은 스키타이 북방 아시아 몽골이나 시베리아 우랄 알타이뿐만 아니라 // 북미 인디언과 멕시코와 페루의 샤머니즘도 다 포함한다. // 샤머니즘이 무엇보다 좋은 것은 무정부주의적이기 때문이다. // 개인이 절대로 조직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 독재가 불가능하다. // 그런데 요즘 한국이 신자유주의로 정신 건강이 최악이라 // 권력과 손 잡은 사이비 샤머니즘이 횡행.. 더보기
[백남준] '네트워크-디지털'로 더 평등한 인류애 추구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시 도록 중] 국경이나 문화적 경계나 위계 없이 서로 얽혀 있는 세상에 대한 그의 비전은 점점 더 네트워크화(수직적 혹은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보다 평등한 관계로)되고 디지털로 연결되는 오늘날의 현실과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매우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 백남준은 '문화를 민족주의(애국주의나 파시즘)에서 벗어나게 하고, 허영과 속물근성(스노비즘)에서 벗어나 소통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 His vision of a world intertwined without national borders or cultural hierarchies resonates strongly with our increasingly networked and digi.. 더보기
[백남준] 우리는 결코 단일민족 아니다 박정희는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강조했지만 그건 독재를 하기 위해서였다. 몽골대제국 시대에 고려 왕조의 딸들과 몽골귀족들 결혼정책을 썼기에 피가 많이 섞여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신라의 왕족은 스키타이(흉노) 족에서 온 것이다 신라 문무왕 비에 자신의 조상을 적으면서 스키타이 지방에서 내려온 훈족(흉노족)임을 확실히 문자화-기록화했다 // 단일민족 이데올로기가 왜 나쁜가? (타 민족 혐오주의를 낳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이 좋아한다. 단일민족을 강조한 지도자 중 히틀러만한 이가 또 있을까? // 히틀러는 수백만 유대인을 대학살하다. // 백남준이 애국주의를 그렇게 증오한 이유다. // 백남준은 항상 자신이 몽골족 후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 더보기
[백남준] 'TV 정원'을 통해 전지구 생태계아트의 발명자 [미디어 생태계] 백남준아트 센터 이수영 학예연구사 등등 1) 서문_ 김성은 2) 백남준의 미디어 생태학적 탐구_ 이동후 3) 어디에나 있는 미디어: 고래에서 유튜브까지, 미디어 환경의 변화_ 이희은 4) 백남준의 대안적 미디어 생태학_ 이수영 5) TV 정원: 주석_ 이소요 6) 인류세와 백남준의 매개체로서의 에코-에코-펑크_ 조안나 질린스카 7) 전회, 교란, 번역 그리고 백남준의 정치생태학_ 김준수 // Foreword_ Kim Seong Eun Media Ecological Exploration by Nam June Paik_ Lee Dong-Hoo Media That Are All Around: The Change of the Media Environment from the Whale to Yo.. 더보기
[백남준] 1963년 독일 첫 전시 후 일본에 전자공학 공부 1년 백남준 1963년 3월 초 독일에서 첫 전시를 마친 후 // 자신의 전자공학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 1년 남짓 동경에서 1963년 초부터 1964년 초까지 전자공학을 더 심도 있게 공부하다. // 형집에 있으니 생활비를 확 줄일 수 있었다. // 이때 백남준은 처음으로 일본에 요셉 보이스를 소개하다. // 당시 일본은 전자기술에 최고의 기술을 가진 나라였다 // 공부하기 더 없이 좋은 나라다 // 당시 일본에는 진공관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히데오 우치다>와 첨단 기술자 슈아 아베>가 있었다. // 백남준은 운좋게 우치다와 친구가 되었고 그의 소개로 아베를 만나 두 사람은 평생 우정이 이어진다. 백남준은 그 두 사람으로부터 첨단의 전자공학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 세계 최고의 선생들을 만난 셈이.. 더보기
[백남준 ] 작품 소장, 독일처럼 보수적인 미술관에서 독일의 보수적 미술관은 백남준의 진보를 수용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 마치 필요에 의한 보수와 진보의 결합과도 같은 것이었다. // 또한 마치 타파할 수 없는 보수의 진보성을 과격의 상징인 백남준을 통해 털어버리려 했던 것과도 같았다. -김은지. // 독일의 뒤셀도르프 미술관은 아래 작품(88대 TV 모니터 사용 물고기가 하늘을 날다 1985년 비디오조각으로 불리다. // 이 작품 수집 제안은 1982년이다)을 드디어 소장하다. // 작품이 천장에 붙는 백남준의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것이었다. // 그러나 동심, 어린아이의 거침 없는 상상력이 활활 타오르는 작품이었다. // 백남준 1982년 미국 휘트니 미술과 1982년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 화려한 회고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자 // 독.. 더보기
[백남준] 평생에, 학벌 그런 이야기한 적이 없다. 백남준 학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 그의 트라우마인가? // 그의 아버지는 일본 니혼대 상과와 메이지대 법과를 나온 최고 학벌을 가진 엘리트였다. // 백남준은 학벌이 좋을수록 나쁜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 것인가 보다 // 도무지 부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부친과 대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단다 // 부친과 원수 그 이상으로 지냈다 // 사업가인 부친은 일제시대에 일본과 친할 수밖에 없었다 // 백남준 학벌, 교수나 뭐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 다만 이렇게 말했다 // 백남준 왈, 철자법이 귀찮으니, '초역' 신약성서로 돌아가자 // 음악가는 풍악쟁이, 화가는 도배쟁이, 조각가는 미장이야 // 레비스트로스 말하는 학벌이 없는 '야생의 사고'로 돌아가자고... 더보기
[백남준] 100세기~300세기를 내다보다 백남준 100주년을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다. // 올해가 91주년 앞으로 10년 첫 해다. // 멍하니 있다가 시간 다 놓친다. // 분주히 할 일이 많다. /// "2032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백살이 될 것이다. 3032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천살이 될 것이다. 11932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나는 십만살이 될 것이다" - 백남준 // 그는 30세기를, 300세기를 내다보고 있었다. 더보기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백남준 16만달러 빚지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국가가 해도 하기 힘든 프로젝트를 // 백남준 개인이 하다) 때문에 // 백남준 미국 PBS 공영방송에 16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고 // 매달 일정액을 분납해왔다 그런데 // 돈이 갈급한 시기에 // 마침 KBS가 방송권을 사줬기(1만 8천 800달러 )에 // 그 재정적 위기를 조금이나마 // 넘길 수 있었다. // PBS 지불할 돈의 8분의 1을 확보한 셈이다. //  이 일에 다리를 놓은 사람은 바로 천호선 선생(당시 문화부 장관의 비서실장) // 아찔한 순간들이다. //  백남준 이 빚을 갚기 위해서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앨런 긴스버그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에게 // 무조건 판화 제작을 강제하고 // 그 작품 세트를 팔아서 제작비를 충당했다. // .. 더보기
[비디올로지] '진중권'이 본 백남준 '미디어 아트'론 요약 훌륭하다 01. 비디아와 비디올로지(videology)는 백남준의 예술적 신앙고백. 비디아(videa)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에서 유래하다. // 02. 비디올로지(vediology)는 도상학(iconology)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 03. 구텐베르크 종이시대의 종언을 선언하다. 이제 더 이상 역사는 없으며 영상물과 비디오물이 있을 뿐이다. // 04. 백남준은 낮은 해상도와 노이즈로 승부를 걸다. // 05. TV는 모든 기술적 오작동을 통해 TV아트가 되었다(인터넷 되다) // 06.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언의 명제를 실천하다. // 07. 랜덤 액세스*(비정형-비연속-비결정주의 개척)-1963 선형성의 파괴, 소음의 도입, 관객의 참여 3요소를 담고 있다. // 08. 올드미디어.. 더보기
백남준 조수6년(1997~2002)간 '라파엘레 셜리(건축가집안)' 시인 Armand Schwerner 부고기사] 백남준 조수 라파엘레 셜리의 친구인 Frances Alenikoff가 좋아한 시인이다. 뉴욕은 한 예술가를 검색하면 서로 연결 연결되는 예술가가 많다. 네트워킹 촘촘하다 그래서 뉴욕에서 예술가들이 활동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미국은 좋은 나라는 아니지만 전쟁으로 돈 벌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예술가에게 뉴욕만큼 인맥을 만들기 좋은 곳은 없다. 그런 면에서 뉴욕은 매력적이다 [] 백남준 머서 스트리트 5층에 살았다 머서 스트리트 4층에 무용가 Frances Alenikoff가 살았다 백남준 조수를 7년한 라파엘레 셜리는 바로 이 무용과와 같이 살았다 그래서 그녀는 윗층과 사는 백남준의 조수가 된 것이다 셜리는 건축가집안으로 예술적 환경에서 자랐고 처음에는 회.. 더보기
[현묘지도] '최치원과 백남준과 보들레르' 3요소 5감각 [1] 최치원: 한국문화 원류 유불선 종합세트 그러나 이보다 더 훌륭한 풍류가 이미 있었다. 이게 코리아 독창적 미학. 풍류(현묘지도), 그냥 노는 게 아니다 [2] 백남준: 이미지 사운드 모바일 고차원(천지인) 비빔밥(융복합) 전자 미학 [3] 보들레르: 빛깔 소리 향기 오감 다 만족 오차원 감각 미학 현묘지도 신체의 혈관이 다 폭발하는 단계 신명이 일어나야 한국인은 에너지가 무진장으로 분출하다 풍류, 사상과 종교와 예술이 하나 되는 것 - 최치원 [한국인 이상주의] (스키타이) 단군의 에서 시작해, 최제우의 으로 끝난다. [한국인 이상주의] (스키타이) 단군의 에서 시작해, 최제우의 으로 끝난다. 현묘지도 신체의 혈관이 다 폭발하는 단계 신명이 일어나야 한국인은 에너지가 무진장으로 분출하다 풍류, 사.. 더보기
[백남준] 왜 TV에 이어 '비디오아트'를 하게 되었나? The purpose of video art is to liberate people from the tyranny of TV and its images" - Nam June Paik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하게 된 동기/"비디오 아트의 목적은 TV 및 이미지의 폭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백남준. The purpose of video art is to liberate people from the tyranny of TV and its images" 백남준 TV로 예술을 시작했지만 텔레비전(one-way)의 지배구조를 해체시키기 위해 그 저항의 수단으로 비디오(two-way)를 1964년부터 도입 그러면서 기술에 저항하는 기술 즉 기술의 인간화를 추구하다. 아래 1964년 백남준 텔레비전의 지.. 더보기
[백남준] 80년대 '위성아트', 1977년 '카셀'에서 시작 [백남준] 80년대 백남준 위성아트는 1977년 카셀 도쿠멘타 시작 비디오 아트의 중요한 기원을 갖고 있는 독일은 1977년 제 6회 카셀 도큐멘타를 매체 도큐멘타로 꾸미면서 비디오 탄생 이후 최초의 대규모 국제 벤트를 기획했다. 독일의 비디오 큐레이터이며 이론가인 '볼프 헤르조겐라트'에 의해서 특별기획 전시는 14명의 미국 및 유럽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1) 스페인 안토니오 문타다스 2) 미국의 베릴 코롯 3) 백남준 대형설치 TV 정글 4) 구보다 시게코의 계단으르 내려오는 나부 5) 더글러스 데이비스 그리고 독일 6) 올리케 로젠바흐, 7) 호로, 8) 페졸트의 작품이 선보였다. [1] 1977년 카셀: 개막식의 위성 원격 생방송: 제6회 도쿠멘타는 개막식부터 화제였다. 1960년대 후반, 텔레비전.. 더보기
[백남준] TV와 함께, 놋그릇으로 연주하는 굿 10마당 TV와 함께, 요강과 놋그릇으로 연주하는 굿 -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제주돌문화공원 특별전) 굿, 백남준 어린 시절의 '원경험' 굿은 백남준에게 모든 예술의 원류였다. 어린 시절 추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집안은 일 년에 한 번씩 음력 시월상달에 무당을 데려와 집안 사업 잘 풀어달라는 '재수굿'을 벌였다. 그때마다 애꾸 무당이 단골로 왔다. 음식을 차려 놓고 징과 북 치고 동네 사람들 다 모아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백남준은 어머니처럼 샤머니즘을 종교로 믿는 건 아니나, 여기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백남준 부인 시게코는 "그가 미친 듯 무대 위를 뛰어올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샬럿과 함께 공연하는 순간을 볼 때면 백남준은 영락없이 신기 들린 무당의 모습 그대로였다"라고 의 증언한.. 더보기
[백남준] 무릇 늑대의 世界에서 더 한 進步한 것은 別로 없다 백남준 천재의 글쓰기인데 한자가 너무 많다. 백남준의 인류학적 넋두리 결론 '굿'은 '미디어'다 // 무릇 늑대의 世界에서 더 한 進步한 것은 別로 없다. 따라서 Canal plus Ex Nihilo의 四人組 로케(프랑스 방송)에는 Fargier, Gautereaux, Nahon, Audio man이 우리의 Beuys 追禱굿을 곳을 훌륭히 번역, Media化해 준 것도 必然的이었다고도 생각된다. Canada의 Indian specialist와 점심할 機會가 있었기에 " 만약 내가 America Indian으로 태어났다면 무슨 부족에 속했을까요?" 했더니 순식간에 서슴치 않고 "너는 Eskimo다" 라는 明答을 해주었다 항상Eskimo의 고집쟁이임과 그의 掠奪婚(원시사회이에서, 다른 부족(部族) 여자를 약.. 더보기
[백남준] 서구예술이라는 우상에 테러 가한 바이러스 '해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포부는 정말 세계미술계의 위상을 전복시키려는 그의 착상과 커다란 그림(big picture)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한 정도로 대단한 것, 서양을 뒤집어버리고 동서양 문화의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이다 // 백남준은 서양에 직접 가서 원자폭탄 떨어뜨리고 서양미술판을 제로 그라운드로 만들었다. 그 터전 위에 '비디오 아트'라는 서양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혀 새로운 예술의 신기원을 세웠다.// 백남준은 1963년에 그의 첫 전시에서 서양미술을 바닥부터 무너뜨리려고 그들의 성상을 파괴하고 그들이 믿는 서구적 우월주의나 과학주의라는 우상에 테러를 가한 (바이러스) '해커'였다. 백남준은 서양 예술가의 혼을 빼놓고 대혼란에 빠지게 하려고 '피드백'과 '랜덤 액세스'라는 기괴한 노이즈 .. 더보기
[백남준] 문화 테러리스트 Eine Kultur Terrorist von Orient [백남준] 문화 테러리스트 Eine Kultur Terrorist von Orient 2010-01-22 맑음 백남준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 Eine Kultur Terrorist von Orient 참으로 멋진 별명이다. 이런 영광이 없다. 한국예술가중 이런 찬사를 받은 작가는 없다. 유일무이하다. 독일인은 백에 완전히 반한 것이다. 예술의 뿌리는 공존과 평화다. 그러나 그 행위는 과격할 수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않는 범위내에서 그런 테러를 통해서 평화를 갈구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테러라 말이 엇나가지만 한국의 미는 바로 엇나가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역설이라고도 말한다. 키에르케고는 연애에 열정에 해당하는 것이 진리에서는 역설이라고 했다 역설은 하나의 열정이다. 미술은 착시를 통해서 .. 더보기
[백남준] 그의 스승, 존 케이지: 소음이, 경이로운 음악 –기존음악 테러 [백남준스승 존 케이지] -소음이야말로 경이로운 음악 –기존음악 테러2010/01/18 07:31 백남준 그의 웃음은 백만 불짜리 그는 마음이 무심이다. 백남준에게 스승이 있었다 그의 창작에 안내자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안내작백남준이 스승이라고 일컫는 사람들 한국인신재덕피아노성악 배운 신재덕작곡이 건우 그런데 한국인재덕서양인존케이지대열청소년은 사라며 예술가사상상상려불어넣어 준 서양인은사존케이지 존은 플럭서스탄생결정적 기여 미국현대미술중심적 역할 정신적 지주백남준에게 준영향어마어마하다 "우리가 어디가 건 우리의 귀 들리는 것은 대부분 소음이다 우리가 소음을 귀찮아한다면우히려우리를괴롭힌다만약우리가 그것을 주의 깊게 들으려 한다면 소음이 얼마나 환상적인 것인가를 드디어 알게 된다. 소음이야 말로경이로운 음악가장.. 더보기
[백남준] 일생의 동반자 요셉 보이스 만나 윈윈 유목민 2010/01/19 08:20 seulsong.egloos.com/3546041 덧글수 : 0 백남준 그는 인덕이 많다 보이스를 만나게 된 것을 바로 그렇다 둘은 라이벌이면서 상승효과를 주는 관계다. 윈원의전형이다. 앤디워홀이 보이스는 그리고 백남준은 안 그린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둘은 동급인데한사람은 동양인한사랑은 서양인의 차이가 있을 뿐이데 요셉은 백남준 워홀과 함께 2020세기 최고의 예술가다. 행위예술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그가 왜 유명한 가는 아직도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그는 독일인의 한계를 지적하고 거기에서 구 출시 켜준 사람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인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 요셉이백을 만남으로 그의 예술은 더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되었다. 환경인권창조상상.. 더보기